글/ 헤이룽장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올해 59세인 농촌 여성으로 1999년 3월에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법을 배운지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공산당의 박해가 시작됐다. 사악한 당은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통해 온 하루 유언비어를 퍼뜨려 사부님을 공격하고, 대법을 모욕하며, 원한을 선동했다. 파출소 경찰과 진(鎭) 공무원들이 함께 집집마다 다니며 대법서적을 압수하고 ‘수련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라고 핍박했는데 그 사악한 기세는 하늘땅을 뒤덮을 듯했다. 이때부터 나는 정법 수련의 길에 들어섰으며 사부님의 호탕한 은혜의 증인이 됐다.
시련 중에서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호 입어
2001년 겨울, 나는 진 장터에서 물건을 팔고 있었다. 나는 대법의 억울함을 호소할 경로가 모두 막히고 박해는 계속 가혹해지는 것을 보고 베이징 톈안먼에 가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민의를 표명해 파룬궁에 대한 정부의 박해를 중단시키려 했다. 마침 엄동설한이라 기온은 영하 2,30도가 됐는데 나는 대법을 위해 꼭 바른말을 하고 며칠 후 꼭 돌아오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좌판을 거두고 가족들에게 말하지 않고 한 수련생과 함께 베이징으로 가는 길에 올랐다.
톈안먼광장에서 우리는 경찰에게 납치됐다. 여러 번 전전해 해질 무렵에 나는 단독으로 경찰차에 실려 한 검은 소굴 구치소로 압송됐다. 차가 멈추자 경찰이 나를 힘껏 끌어내려 얼굴을 사정없이 때린 후 집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이때 또 경찰 4명이 나와서 한 마디도 묻지도 않고 달려들어 마구 때리고 짓밟았다. 그들은 내 팔을 비틀어 뒤로 가져다 수갑을 채우고 땅에 쓰러뜨린 후 발로 내 몸을 딛고 서서 전기봉으로 내 왼쪽다리와 얼굴 전체에 한 번 한 번 옮겨가며 전기충격을 가했다. 청색 불빛이 번쩍이는 것만 보였다. 당시 발정념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던 나는 순간 마음을 굳게 먹고 대법을 실증하겠다고 생각했다. ‘살아 바라는 것 없고 죽어 애석할 것 없다’[1]!나는 큰 소리로 외치고 눈을 감고 거듭 발정념 구결을 외웠다. 전기봉의 ‘찌릿 찌릿’하는 소리만 들릴 뿐 고통은 조금도 없었고 마치 무슨 물건으로 내 몸을 내리누르는 듯했다. 그들은 내 다리와 얼굴에 온통 충격을 가했다. 몇 시간이 지나갔다. 경찰은 들락날락하면서 전기봉을 몇 번이나 갈았는지 모른다.
한 경찰이 내가 반응이 없는 것을 보고 말했다. “그녀 가슴에 전기충격을 가해라! 음부에 전기충격을 가해라!” 나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절대 안 된다!” 그들은 멈췄다가 다시 내 얼굴에 전기충격을 가했다.
밤이 깊어 그들은 내 얼굴이 전기충격으로 모두 자줏빛을 띤 것을 보고 내가 잘못될 것 같아 손을 멈췄다. 한 경찰이 나에게 묻기 시작했다. “감각이 어때? 우리에게 구심환이 있으니 한 알 먹어! 심장병이 있지?” 나는 말했다. “나는 병이 없어요. 당신들의 그런 것을 먹지 않겠습니다.” 그들은 그 후 나를 다른 방으로 끌고 갔다. 또 한 경찰이 내 가슴을 겨누고 전기봉을 내밀었다. 이때 나는 주춤하지 않고 의식적으로 앞을 향해 가슴을 내밀자 그 경찰은 즉시 전기봉을 내렸다. 그들은 나를 방에 가두고 두 손을 각각 의자에 채워놓고 경찰 몇이 돌아가며 나를 감시하면서 자지 못하게 했다. 조금만 눈을 붙여도 때렸고 화장실로 가려 해도 가지 못하게 하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나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대법은 어떻게 사람으로 하여금 선을 향하게 하고,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며, 사부님께서 우리를 좋은 사람으로 되라고 가르친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한 젊은 경찰이 선한 생각이 들어 말했다. “아주머니, 제가 수갑을 좀 느슨하게 해드릴게요!” 그제야 나는 내 손목의 살이 수갑 때문에 파고 든 것을 발견했다.
이튿날 새벽 5시가 넘어 그들은 나를 마당으로 끌고 나가 농구대에 수갑으로 채워놓고 추위에 떨게 했다. 내 두 손은 감각을 잃었고 아픔을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끊임없이 높이 외쳤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이때 한 할아버지가 다가와 나에게 욕설을 퍼부었고 마당에 있던 사람들도 나를 비웃고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듣지 않으며 조금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외치다 지치면 마음속으로 사부님의 ‘논어’를 외웠으며 다 외우고 나면 또다시 외쳤다.
군용 외투를 입은 한 경찰이 땅에서 너덜너덜한 더러운 걸레를 주어 억지로 내 입에 쑤셔 넣었다. 잠시 후 또 한 경찰이 말했다. “사람이 잘못될 것 같네요. 빨리 풀어줍시다.” 그들은 나를 복도로 끌고 들어왔다. 한 경찰 두목이 말했다. “문을 열어 놓고 그녀를 밖에 앉혀 놓으시오.” 나는 또 핍박에 의해 문을 열어 놓은 복도에서 반나절이나 추위에 떨었다. 먼 곳에서부터 경찰들이 의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 다리가 전기 충격으로 저렇게 되어 걷지 못할 것 같군.”
전반 과정에 그들은 심문도 하지 않고 다만 일방적인 폭행으로 사람을 괴롭혔다. 이튿날 그들은 나를 다른 곳으로 옮겨 감금했다. 이때서야 나는 내 얼굴과 몸이 그들이 가한 전기충격으로 모두 검게 되어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조금도 아프지는 않았다. 나는 묵묵히 사부님의 가호에 감사드렸다. 만약 사부님께서 내 고통을 감당해 주시지 않았다면 왜소한 내가 그런 고압 전기곤봉 충격에 어떻게 됐을지 상상도 못할 일이다.
나는 불법적으로 다른 곳에 있는 구치소에 감금됐다. 감방에는 안후이에서 온 40세 되는 여 수련생이 감금되어 있었는데 이 수련생이 박해당한 경과를 말했다. 사악한 4명의 경찰은 이 수련생의 팔을 양쪽에서 잡아당긴 후 손으로 팔을 차례로 내리찍어 팔은 자줏빛으로 변하고 두 팔을 움직일 수 없게 됐다. 사악한 경찰은 또 이 수련생의 허벅지를 내리누른 후 무릎으로 연이어 들이받아 두 다리 바깥쪽 피부와 근육이 으깨지고 썩어 푹 삶아 놓은 것 같았는데 참아 눈을 뜨고 볼 수 없었다. 또 남방에서 온 여 수련생이 두 살 되는 아이와 함께 감금되어 있었다. 사악한 경찰이 전기곤봉으로 이 수련생의 인후를 충격해 인후가 검게 변하고 부어올라 말소리도 나오지 못했으며, 어린애는 배고파 계속 울었다. 이곳이야 말로 인간성이 없는 소굴이었다.
일주일 후 고향 공안국에서 온 사람이 나를 현지로 납치해갔다. 고향으로 가는 기차에서 이들은 내 몸에 간직하고 있던 300위안이 넘는 돈을 들추어내 빼앗아 갔고, 또 내 가족을 향해 어떻게 돈을 갈취할 것인지 의논하고 있었다. 나는 말했다. “당신들은 우리 집에 가서 돈을 달라고 하지 마세요. 우리 집에서는 절대로 돈을 주지 않을 것이에요!” 그들은 나를 구치소에 감금했다. 구치소에 들어가자 내가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은 소장은 나에게 물었다. “며칠 동안 먹지 않았습니까?” 내가 나흘이 된다고 대답하자 그는 하얀 pvc파이프를 꺼내들고 내 몸을 사납게 후려갈기면서 노발대발했다. “또 베이징으로 갈 거야! 갈 거야, 안 갈 가야?!……” 두 달 후인 음력 섣달 그믐날에야 가족들에게 나를 데려가게 했다.
수련생 자매가 박해를 해체하다
2002년 초, 내가 박해를 당하다 집으로 돌아온 지 두 달이 넘어 현지의 사악한 자들이 또 한 차례 광적인 박해를 시작해 파룬궁수련생을 붙잡았다. 현지 파출소와 ‘610’의 한 무리 경찰들이 수련생인 내 둘째 여동생과 나를 납치해 구치소에 감금했다. 그들은 또 내 셋째 여동생도 붙잡으려 했으나 당시 동생이 집에 없어 그들은 허탕을 쳤다.
나는 구치소에서 박해 당하고 있는 다른 몇 명 수련생들과 함께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했다. 구치소 소장은 우리를 욕하고 때렸으며, 우리들을 노동교양소로 보내겠다고 위협했지만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이때 남편이 나를 찾아와 말했다. “이번에는 1만 위안 넘게 내야 할 것 같아요!” 이때 나는 대법을 실증함에 사람 마음이 있어서는 안 되며, 가족의 도움에 의지하지 말고 응당 ‘정념정행(正念正行)’해야 함을 깨달았다. 나는 말했다. “안돼요! 그들에게 한 푼도 줄 수 없어요. 나쁜 사람을 추종하고 용인할 수 없어요!” 남편은 돌아간 후 다시는 나를 상관하지 않았다.
나는 감옥에서 온 하루 법을 외우고 ‘발정념’을 하면서 모든 사람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으려고 노력했다. ‘610’경찰에서 나를 몇 차례 찾아와 심문하면 나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때때로 그들은 문제도 제기했는데 나는 모두 해답해 주었다. 어떤 사람은 다 들은 후 돌아갔고, 어떤 사람은 나랑 변론하기도 했다. 또 어떤 사람은 나에게 수련을 포기하고 ‘전향’하게 하기 위해 온갖 좋은 말로 유혹하고 공갈협박했지만 나는 넘어가지 않고 확고하게 수련하고 수련을 끝까지 하겠다고 밝혔다.
내 셋째여동생은 내가 단식한다는 소리를 듣고 초조해서 국보대대를 찾아가 석방을 요구했다. 경찰은 수갑을 내들고 내 동생을 향해 말했다. “당신을 붙잡으려던 참인데 감히 찾아오다니! 이번에는 도망칠 생각도 하지마라!” 셋째여동생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말했다. “나는 사람을 찾으려 왔지 당신들에게 붙잡히려고 오지 않았어요. 보건대 당신들도 나쁜 사람인 것 같지 않은데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어요? 나는 이미 온 이상 당신들이 붙잡을 것 같아 두려워하지 않아요! 당신들은 사람을 시원하게 풀어주세요. 제 언니가 올 때에는 멀쩡했는데 만일 불길한 일이라도 생기면 나는 당신들과 끝장을 볼 겁니다.” 동생은 말을 마치고 곧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국보대대장이 물었다. “당신은 어느 때부터 수련했어요?” 셋째 동생이 대답했다. “나는 수련하지 않다가 당신들이 늘 제 언니를 붙잡는 것을 보고 이 공법이 확실히 아주 좋다고 단정하고 수련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국보대대 경찰이 셋째동생을 보고 말했다. “3만 위안을 가져오시오. 그러면 당신 언니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아니면 이미 노동교양소로 보내기로 했어요.” 셋째동생이 말했다. “언니가 어디에서 그런 돈을 얻어 오겠어요. 관계하는 사람도 없는데 당신들은 돈을 달라고 하네요! 오늘 석방하지 않으면 나는 내일 오지도 않겠어요! 돈은 없으니 당신들 내키는 대로 하세요. 나는 한 푼도 주지 않겠어요!”
내가 단식한지 9일 만에 셋째동생은 나를 데려가라는 통지를 받았다. 둘째동생은 이미 남편이 와서 데려갔다. 경찰이 셋째동생을 향해 3천 위안을 요구했다. 당시 셋째동생은 호주머니에서 20위안을 꺼내 손에 쥐고 말했다. “내가 어디서 그런 돈을 갖고 있겠어요! 몸에 갖고 있는 것이 모두 20위안 외 한 푼도 더 없어요.” 국보대대 부대장이 덥석 빼앗아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 셋째동생이 말했다. “당신 너무하네요. 당신이 20위안 마저 빼앗으면 우리는 차비도 없어 어떻게 집으로 가나요?” 한 경찰이 급히 말했다. “빨리 가서 당신의 언니를 업어오시오!” 셋째동생이 말했다. “나는 업지 않겠습니다. 당신들이 이렇게 만들어 놓고 당신들이 업기 싫어 나더러 업으라고 합니까!” 이때 한 죄수가 나를 업어 내왔는데 셋째동생은 나를 가리키면서 경찰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당신들이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어요! 멀쩡한 사람을 파룬궁을 연마한다고 이 지경으로 만들어요? 당신들은 이렇게 사람을 해치는군요!” 몇몇 경찰은 아무 소리도 못했다.
2002년 말, 성 ‘610’이 우리 현에서 세뇌반을 개설했다. 국보 경찰은 각 지역 파출소와 결탁해 대법제자를 납치했다. 사악들은 우리 현에서 20여명 대법제자를 납치했다. 이번에 나와 셋째여동생 모두 납치돼 세뇌반으로 들어갔다. 악인들은 각 부서에서 한 무리의 교사, 간부를 차출해 이른바 ‘전문가 교육도우미 팀’을 만들었다. 그들은 대법제자를 한 사람씩 분리해 ‘전향’세뇌를 하고 ‘보증’을 쓰라고 핍박하고, 강압으로 대법을 모욕하는 음향자료를 보게 했다.
수련생들은 모두 매우 확고했으며 그들을 향해 진상을 알리고, 대법이 세계에 널리 알려졌으며, 사람의 신심 건강을 개선해 준다고 말해줬다. 그들은 말했다. “당신들은 모두 정신이 맑고 아주 이성적이네요! 그들이 말하는 것과 같지 않네요!” 또 어떤 사람은 말했다. “원래는 당신들에게 사상 교육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거꾸로 당신들이 우리에게 해주었습니다! 우리도 방법이 없습니다. 상급에서 하라고 하니 부득이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며칠 후 이런 이른바 전문가들이 간데없이 사라졌다. 또 20일이 넘어 세뇌반 책임자는 내 부친을 협박해 세뇌반으로 불러 내가 ‘전향서’에 서명하도록 핍박하게 했다. 나와 셋째동생이 서명하지 않자 부친은 화가 나서 우리를 때리기 시작했고 때리면서 또 자신의 머리를 벽에 박았다. 이때 나는 부친이 걱정돼 마음이 동했지만 또 아주 빨리 냉정해졌다.
나는 깨닫게 됐다. “대법제자는 중생을 구도하므로 절대 사악에 부합되어서는 안 되며 그러면 중생을 훼멸하게 된다. 서명한다는 것은 대법을 부정하고, 수련을 부정하는 것으로 이 사람들 모두 따라서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대법이 없으면 일체가 없다.” 나의 확고한 마음은 추호도 동요하지 않았다. 부친이 말했다. “네가 서명하지 않으면 그들은 너를 보내버릴 것이다.” 그래도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말했다. “저는 내일 나갈 수 있어요.”
아무런 작용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을 본 경찰은 부친에게 손을 멈추게 하고 곧 경찰차로 나와 셋째동생을 집으로 실어다 주었다. 이튿날 세뇌반에 감금됐던 모든 사람들은 현지의 사람들이 와서 집까지 데려다 주었고 사악한 세뇌반은 결국 낭패로 끝났다.
진상을 알려 환경을 개척하다
몇 차례 박해를 당한 후 우리들은 안으로 찾으면서 자신을 바로잡고 법 학습 시간을 증가했다. 나는 이렇게 심각한 박해를 당하게 된 것은 평상시 진상을 중시하지 않아 환경을 개척하지 못했기에 사악이 우리 지역에서 이렇게 창궐할 수 있었고, 구세력이 배치한 길을 가게 됐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내려놓고 시간을 틀어쥐고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했다.
우리는 처음 시작에는 전단지 형식으로 했다. 우리는 사방 수십 리 이내에 있는 진과 촌락의 집집마다 빠짐이 없이 전단지를 배포했다. 당시 자료가 매우 부족했기에 자료를 조금만 얻어도 보배처럼 귀중하게 여겼다. 우리는 가는 곳마다 자료를 배포했다. 2004년에 이르러 소책자, ‘9평’ CD진상자료 등이 점차 많아졌다. 나와 여동생은 물건을 팔 때면 사는 사람들에게 모두 진상을 알려주었고 손님이 많아 틈이 없을 때는 소책자를 주면서 돌아가서 자세히 보라고 당부했다. 우리는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을 절대 빈손으로 돌아가게 하지 않았다. 나는 그 한 단락 시간에 ‘형세가 험악하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으며,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곧 했는데 마음에 거리낌이 없었다. 이후에 나는 판매대를 여동생에게 넘겨주고 직업을 바꾸어 남편과 함께 술을 팔았다. 술 사러 오는 사람들에게 모두 진상을 알렸다. 남편과 함께 차로 상품을 배달할 때면 이르는 곳마다 진상을 알렸고 사방 수십 리에 모두 알렸다. 남편은 두려움에 나를 방해할 때도 있었는데 나는 곧 안으로 자신의 집착심을 찾았다. 나는 때때로 너무 급히 서두르면서 심리 상태가 안정되지 않아 지혜를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다. 내가 잘 말할 때면 남편도 기뻐했고 이후에는 점차 간섭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한 번에 접수하지 못했다. 나는 기억했다가 다음에 그곳을 지날 때면 다시 그에게 이야기했다. 한 번은 시골의 간이매점에서 한 무리 사람들이 잡담을 하고 있었다. 내가 보니 바로 기회였다. 나는 ‘톈안먼 분실자살 자작극’에서 생체 장기적출에 이르기까지 이야기하고 또 ‘삼퇴보평안’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 사람이 말했다. “공산당이 나에게 돈을 주는데 당신은 왜 그를 나쁘다고 해요?” 내가 말했다. “공산당은 일을 하지 않는데 어디에서 돈이 오나요? 그들이 쓰는 돈이 인민의 것이 아닙니까! 당신이 농사일을 하면서 자신이 번 돈이 아닙니까! 공산당이 당신에게 준 것이 아니지요!” 한 사람이 말했다. “공산당은 좋습니다. 농사를 하면 보조금을 줍니다.” 나는 말했다. “당신에게 주는 보조금은 화학비료와 농약 가격 증가를 따르지 못합니다. 모두 세금으로 들어갑니다.” 한 사람이 말했다. “당신은 신앙에 너무 집착하네요.” 나는 말했다. “우리는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해 좋은 사람으로 됩니다. 좋은 사람으로 되려고 견지하는 것은 집착이 아니지요! 이것은 사람이 응당 갖추어야 할 품격이지요.” 그들은 다 듣고 나서 아주 기뻐했고 어떤 사람은 좋다고 소리쳤다. 나는 ‘삼퇴’ 명단을 적는 필기장을 상 위에 놓으면서 말했다. “‘삼퇴’하고 싶은 분은 스스로 서명하세요. 실명 가명으로 다 할 수 있어요.” 그들 모두 서명했다.
한 번은 한 사람 집에서 진상을 알렸는데 내가 어떻게 말해도 믿지 않았으며 대법을 모욕하는 말까지 했다. “××촌에서 두 자매가 파룬궁을 수련하다 붙들렸다는 소식을 들었지. 많은 고통을 받았다고 하더군! 당신이 공산당과 맞서 좋은 결과가 있을 수 있겠어?” 나는 말했다. “당신이 말하는 그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저는 공법의 요구에 따라 좋은 사람으로 되려고 하는데 잘 못이 없지요. 그들도 감히 나를 어쩌지 못해요. 내가 이렇게 멀쩡하지 않나요?! 이 사악한 당이 온갖 나쁜 짓을 다 했기에 하늘이 그를 소멸하려 합니다. 오직 그의 조직에서 탈퇴해야만 평안할 수 있습니다. 바로 당신이 출근하는 직장이 파산하게 됐는데 당신이 새로이 출로를 찾을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는 이때 결국 이해하고 기쁘게 ‘삼퇴’하면서 그의 아들을 불러 역시 사악한 당 조직에서 탈퇴하게 했다.
또 한 번은 저녁에 셋째동생과 내가 한 마을에 가서 자료를 배포하는데 한 사람이 우리를 발견하고 손전등을 켜고 쫓아왔다. 우리는 한 벽돌더미 뒤에 숨어서 정념을 했다. 그가 우리들 앞까지 걸어오자 더는 피할 곳이 없어 우리 둘은 곧 그를 대면하고 나갔다. 셋째동생이 말했다. “한밤중에 뭘 하는 겁니까?” 그는 말했다. “당신들은 어디에서 왔죠? 물건을 훔치고 있지 않나요? 왜 숨어요?” 셋째동생이 말했다. “당신이 옷도 입지 않고 웃통을 드러내놓고 있으니 노상 강도인줄 알았어요!” 내가 말했다. “떠들지 마, 떠들지 마! 저 전등불이 켜져 있는 집이 당신 집이지요? 갑시다! 당신 집에 가서 이야기합시다.” 우리는 그의 집으로 가서 그들 온 가족들에게 진상을 말해주었고 그들은 모두 사악한 당 조직에서 탈퇴했으며 우리가 떠날 때 또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한 번은 시골에서 나를 향해 돈을 달라고 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말했다. “당신이 나에게 돈을 주면 당신을 믿을게요. 돈을 주지 않으면 당신을 믿을 수 없어요.”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당신에게 돈을 좀 주면 당신이 써버리면 없어집니다. 당신의 생명은 얼마나 소중합니까. 어떤 물건도 생명의 가치와 비할 수 없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말해주는 것은 당신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밑천입니까? 당신의 몸이 밑천이지요. 좋은 몸이 없으면 돈을 가져서 뭘 하겠습니까!” 그는 이 말에 부끄러운 기색을 띠고 돌아갔다.
나는 나를 납치한 적 있는 선임 파출소 소장을 만나기만 하면 진상을 말해 주었다. 내가 다섯 번이나 말했지만 그는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때로는 나에게 말도 못하게 했고 이후에는 나를 보면 피해 갔다. 그런데 얼마 전에 그가 동창 모임에 참가했는데 내가 그곳에 가서 진상을 알리다가 그를 보자 또 그에게 말했다. 그는 내가 장쩌민을 고소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많은 느낌이 있었다. 그는 나에게 물었다. “장쩌민이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나는 말했다. “집단학살죄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그의 태도가 완전히 변했다. 나는 그에게 소책자, 봉쇄돌파 소프트웨어, 호신부 등을 주었다. 그는 일어서서 모두 받아 품에 안고 감사하다고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는데 태도가 아주 경건했다. 그는 곧 탈당에 동의하면서 말했다. “당신이 보기에 내가 경건하게 믿고 있지요?” 그와 한 상에 앉은 동창들 중 어떤 사람은 교사이고 어떤 사람은 공무원이었는데 모두 나를 향해 진상자료를 달라고 했다. 그들은 말했다. “우리는 모두 당원입니다. 모두 탈퇴하겠습니다!” 나는 말했다. “나는 당신들에게 아름다운 미래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진상은 경찰을 개변시킬 수 있다
작년 겨울, 우리 현의 수련생들은 전체적으로 협력해 집집마다 찾아가 진상을 알렸다. 우리들이 비교적 먼 편벽한 마을을 찾아가 두 사람이 한 팀이 되어 집집마다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다. 방금 몇몇 집을 알리다가 우리를 고발하겠다고 표독스럽게 말하는 마을 사람을 만났다. 절반 정도 진상을 알렸을 때 한 착한 사람이 와 우리에게 말했다. “빨리 떠나세요! 당신들을 고발한 사람이 있어요. 곧 경찰차가 도착할 거예요.” 나는 수련생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먼저 물건들을 잘 보관합시다.”
우리들은 갈라져서 가기로 결정하고 갖고 있던 자료를 한 마을사람 집에 보관했다. 나는 두 수련생을 먼저 보내고 다른 수련생과 함께 다른 마을을 향해 걸어갔다. 경찰차가 뒤에서 쫓아왔고 경찰은 나를 보고도 말없이 다른 수련생을 쫓아가 그 수련생을 붙잡아 차에 실었다. 한 경찰이 나를 보고 말했다. “당신도 차에 타시오. 당신도 돌아가잖아요? 당신을 데려다 줄 테니 우리 차로 가세요!” 나는 수련생 혼자 차로가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말했다. “난 당신들 차를 탈 생각이 없었지만 당신들이 타라고 했어요.”
경찰차에서 수련생은 계속 진상을 알렸고 나는 옆에서 묵묵히 정념을 했다. 이때 수련생의 휴대폰이 울렸다. 소장이 물었다. “누구 전화입니까?” 수련생은 급히 휴대폰전지를 뽑아냈다.(다른 수련생에게 연루되지 않게 하기 위함.) 파출소에 도착했을 때 수련생은 휴대폰 배터리를 한 쪽 구석에 던져버렸다. 건물 안에 들어가서 수련생은 계속 진상을 알렸고 이때 한 경찰이 수련생이 던진 휴대폰 배터리를 주어다가 나에게 주면서 말했다. “그녀에게 주세요. 아직 쓸 수 있는데 버리면 아깝죠.” 당시 현장에는 또 이미 진상을 알고 ‘삼퇴’를 한 안면이 있는 두 경찰이 있었다. 그들 둘은 말했다. “갑시다. 말하고 갑시다.” 그들은 말이 끝나자 곧 모두 걸어나갔다. 소장이 말했다. “그녀는 남고 당신은 돌아가시오.” 나는 말했다. “안 됩니다. 그녀는 반드시 나와 함께 가야합니다. 빨리 사람을 놓아주세요!” 나는 네 번 반복해 말했다. 소장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은 다시는 외지 사람을 이곳으로 데려오지 마세요. 우리도 좀 편안하게 설을 보내게 해주세요.” 말을 마치고 우리를 놓아주라고 눈짓했다. 우리는 그날로 집으로 돌아왔다.
할 이야기가 너무 많다! 이렇게 오랜 비바람을 맞으면서 나와 수련생들은 우리 현의 모든 거리와 골목, 동네방네를 누비였다. 대법제자의 정념정행은 갈수록 사람들에게서 인정을 받았다. 진상을 명확히 알게 된 중생은 진심으로 대법의 은혜에 감사했다. 나는 대법제자들이 오늘까지 걸어 올 수 있던 것은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는 강대한 정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떠한 간난신고 중에서도 모두 확고하게 수련을 하고 확고하게 사부님을 믿고, 확고하게 대법을 믿으며 추호의 동요도 없이, 외적 요소에 의존하려는 마음이 없어야 하는데 바로 당신이 속인의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없는가에 달렸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속인의 마음 내려놓고 법(法) 얻으면 신(神)이로다”[2]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 ‘홍음-무존(無存)’
[2] 리훙쯔 사부님 시: ‘홍음-중생을 널리 제도하다’
문장발표: 2016년 9월 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9/7/33411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