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만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올해 24세이고 2015년 4월에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간단하게 자신의 작은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려 한다.
나는 중등학교부터 편두통이 있었다. 7일 중 3일이 머리가 아프지 않으면 손뼉을 칠 정도였다. 때로 머리가 아파 직선으로 걷기도 어려웠다. 일본영화 “1리터의 눈물”이 있는데 엄마는 내가 영화의 주인공처럼 될까 봐 두려워 나를 데리고 큰 병원에 가 뇌 스캔 검사를 했다. 하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다. 엄마도 편두통 질병이 있다. 엄마는 자주 말한다. “나는 40세부터 편두통이 있는데 너는 열 몇 살 때부터 아프니 이후에 어떻게…….”
자신이 엄마의 큰 짐이 된 것 같고 엄마에게 걱정을 끼치게 한 것 같았다. 돈과 시간을 많이 들여 나의 편두통을 치료하려 했다. 각종 치료방법을 모두 시도해 보았다. 서양 의학, 한약을 먹고 침도 맞아보고 국술관(國術館), 민속전통 방법도 시도해 보았다. 상황은 좀 호전이 됐지만 완쾌되지는 않았다. 엄마의 걱정을 덜어드리려고 토하려 하거나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날 때를 제외하고는 나는 고통을 참으며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다. 이렇게 아프고 아픈 것이 습관이 됐으며 내가 대학에 들어가서야 상황은 좀 호전됐다.
나는 다른 사람과 정면적인 충돌을 일으키려 하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매번 다른 사람과 모순이 있을 때 나는 직접 참는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자신은 화가 치밀고 혈압이 올라 두통의 발병률이 더욱 높아졌다.
대학 2학년 때 아빠는 어지럼증으로 머리를 땅에 부딪쳐 뇌수술했다. 수술 후 성격이 좀 변했는데 이때부터 우리 집은 또 각종 의사를 찾는 여정을 시작했다. 물론 양의학, 한의학, 국술관, 민속전통 방법 등등이 포함됐고 거기에다 기공 치료도 했다. 다년간의 두통이 호전될 수 있을까 싶어 당시 나도 기공사에게 신체 조절을 받았다. 하지만 상황이 약간 호전됐을 뿐 완쾌되지는 않았다.
2년간 의사를 찾는 여정 중에 우리는 한의사를 만났다. 그녀는 파룬궁 수련생이다. 실내에 많은 대법책을 배열해 놓았다. 우리가 아는 첫 번째 대법제자이다. 그녀는 우리에게 대법과 션윈을 소개해 주었다. 그리하여 우리 온 가족은 2014년 처음으로 션윈을 보게 됐다. 오빠는 집에서 처음으로 ‘전법륜’을 들고 자세히 열독한 사람이다. 그 후 오빠는 매일 대법의 일을 말하고 적극적으로 나에게 ‘전법륜’을 추천했다. 한 권 한 권의 대법책을 나의 책상에 올려놓았다.
나와 오빠는 평소 사이가 좋았고 책도 보기 좋았다. 그러므로 오빠의 추천을 받아들였다. 처음으로 ‘전법륜’을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 개월의 시간을 이용해 ‘전법륜’을 보았다. 본 후 단지 “말씀을 잘했다. 정말로 이치가 있다!”고만 생각했다. ‘전법륜’을 본 2개월 후 션윈이 또 대만에 왔다. 우리 온 가족은 또 두 번째로 션윈을 보게 됐다.
2014년 션윈을 볼 때 혼미하여 졸면서 션윈을 보았다. 하지만 나는 2015년 션윈을 오기를 기대했다. 가득 기대를 품고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여동생과 웃고 장난하다가 문득 션윈의 제1막이 나의 눈에 들어왔다. 일종의 원인 모를 감동으로 나는 눈물을 흘렸으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는 ‘수련하겠다.’고 외쳤다.
나는 ‘파룬따파 대만사이트’에 접속해 스스로 5장 공법을 배우고 학교 근처 연공 장소에 가 연공하는 이모에게 동작을 바로 잡아 달라고 했다. 그리고 기타 대법 책을 읽었다. 점차 파룬따파는 도대체 무엇인지 갈수록 깊이 이해했다. 나는 자신이 모순에 부딪힐 때 도대체 어떻게 대응하는가? 울분을 참으면서 아무 말 하지 않는가? 아니면 한걸음 물러서야 하는가를 알게 됐다. 이 두 가지는 완전히 다르다. 자신이 어디에서 잘못했는가를 보고 어디에서 다른 사람을 고려하지 않아 자신의 마음이 불편했는가를 보았다.
기적처럼 나의 두통 증상은 짧은 3개월 이내에 많이 해소됐다. 3개월이라고 말하면 아마도 너무나 길다. 마땅히 3개월 후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두통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고 말해야 맞다. 지금 때로 여전히 불편할 때가 있지만, 어디에서 소홀히 했는가를 반성하거나 혹은 조용히 ‘전법륜’을 읽거나 연공을 하면 두통 증상은 사라진다.
대학교에서의 나의 전공은 심리학이다. 자신의 내심을 분석하는 데 능숙하고 자신이 수련하려는 원인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올해 겨울 방학에 연구생인 나는 ‘진선인 체험캠프’에 참가했다. 작은 무리의 보도원을 담당했다. 야영 대오의 지점이 윈린(雲林)지구과학기술대학이라 대만 각 전문대학과 대학에서 온 청년 제자는 겨울방학 전 주말에 2일 시간을 이용해 여기에서 토론활동을 하고 수화(手話)를 훈련하고 선전영화를 찍고 연극공연도 한다. 우리는 함께 법공부하고 연공했다. 이는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정경이었다. 이튿날 아침에 평균 20여 세 젊은 사람이 5시에 일어나 5장 공법을 하기 위해 민쑤(民宿)에서 지구과학기술까지 걸어갔다. 사람마다 모두 자신의 마음속의 조용함을 찾았다. 그 이틀간 파룬궁 수련의 ‘진, 선, 인’을 진정으로 체험했다. 사람마다 모두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고 다른 사람을 선하게 대하며 모순을 만나면 안으로 찾고 자신이 어디에 잘못이 있는가를 본다. 한 친구가 나와 토론했다. 참음은 사람 신체에 나쁘다. 그러면 이렇게 오래 참으면 신체에 문제가 생기지 않겠는가?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그렇지 않다. 우리가 말하는 참음은 진정으로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이고 화가 나서 마음이 괴로운 것이 아니다.” 때로 사람과 모순이 생기면 처음에 상대방을 원망하고 자신이 잘못이 없다고 하지만 나는 점차 자신이 집착하는 그 마음을 내려놓으면 모순이 사라지는 것이 보인다.
지금 우리 집에 3명이 수련을 하는데 오빠, 나, 여동생이 한다. 우리는 모두 진선인(眞善忍)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고 어디에 집착심이 있고 어디를 잘못하면 서로 선의로 지적해 준다. 그중 가장 변화가 큰 사람은 여동생이다. 여동생은 겨울방학 ‘진선인 체험캠프’에 참가하고 변했다. 전에는 참을성이 없었고 반역 소녀이며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만나면 폭발했다. 엄마 아빠도 그녀를 어찌하지 못한다. “이후 사회대학에서 너를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하지만 근 1달 사이에 여동생이 ‘전법륜’을 보고 나와 함께 법공부를 한 후 시시각각 자신의 심성을 수련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좀 불편해하기는 하지만 이전처럼 다른 사람을 저주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연공을 할 때 아주 고통스러워 눈물, 콧물을 많이 흘리지만, 끝까지 견지한다.
비록 아빠, 엄마는 아직 명확한 변화가 없지만 상관없다. 여동생은 자신의 심성을 잘 수련해 엄마, 아빠에게 ‘파룬따파하오!’를 알게 할 수 있다. ‘진선인’을 인식했기에 지금 나는 가장 행복하다.
문장발표: 2016년 9월 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신수련생마당>대법과의 인연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9/8/33384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