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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정, 대법의 신기가 곧 나타나다

글/ 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2년부터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하였는데 그 당시 나는 대학교수였다.

나는 청년 시절 위병이 심해서 위병이 발발하면 어떤 음식도 먹지 못했다. 심지어 물을 마셔도 극심한 통증을 느꼈고 걸음을 걸어도 허리를 굽혀 동료들이 “작은 노인”이라고 놀렸으며 입원도 자주 했다. 동시에 신경성 두통과 과민성 비염을 앓아 아주 고통스러웠고 치료해도 잘 낫지 않았다. 서양의와 중의에 가 보았지만, 효과가 없어 곳곳에 편방, 소문난 약도 효과를 보지 못해 결국 기공으로 출로를 찾으려 했다.

나는 1980년부터 자습으로 기공단련을 시작했고, 후에 기공 고조가 일어나 끊임없이 기공 보고회, 학습반에 다녔다. 당시 이름 있는 기공 학습반은 거의 다 참여하였다.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기공단련으로 신체는 현저한 개변이 있었다. 그때 최대의 수확은 기공이 병 치료와 건강에 좋을 뿐만 아니라 더욱 깊은 함의가 있어 완전히 기공에 빠져버렸다. 당시 즐겨 찾는 곳은 서점이었다. 못 본 기공 책은 다 사들이고 또, 사회의 기공 잡지, 신문을 정기 구독하여 동료들이 “기공 애호가”라고 하였다. 책을 보면서 실천했는데 전후 10여 년간, 공들여 소주천이 통하고 대주천도 통했지만 층차가 비교적 낮았다. 길을 걸으면 몸은 가벼웠고 발아래는 바람이 부는 듯 기는 표층에서 운행하였다. 천목도 열려 내시도 할 수 있었고, 어떤 때는 다른 공간도 볼 수 있었다. 신체도 외계 정보에 아주 민감하였다.

이 일보에 도달한 다음 더 높이 수련하려니 방향을 찾을 수 없는 감각이 들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주천이 시작되면 곧 진정한 연공이다. 그러므로 일부 기공사들은 대주천을 전하지 않으며, 그가 전하는 것은 바로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다.” [1] 그 당시 의식했는데 선생이 없으면 더 제고하지 못한다는 것을 느끼고 곳곳에 선생을 구했다. 그 당시 기공과 병 치료를 하는 많은 기공사가 있었는데 능력 있다는 기공사는 다 접촉했지만, 나의 염원과는 너무도 멀어 실망하였다.

1992년 8월 나는 행운으로 리훙쯔 사부님께서 꾸리시는 북경 제3기 학습반에 참여하였다. 첫날부터 가슴, 아랫배와 머리 위에 파룬이 도는 것을 감촉했다. “파룬좡파”[2]를포륜 할 때 두 팔에 모두 파룬이 돌고 두 팔과 신체에도 큰 파룬이 도는데, 바르게 돌다가 뒤로 도는 것이 아주 명확하여 매우 놀랐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은 내가 종래로 듣지 못한 것으로, 기공에 대한 나의 인식을 멀리멀리 초월한 것이었다. 매일 저녁 나는 반 시간 혹은 한 시간 전에 설법 장소에 도착했는데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9일째 나는 평생 잊지 못할 장면을 보았다. 당시 정신을 집중하여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는데 갑자기 사부님의 신체가 금광이 번쩍이는 불상으로 변했다. 절에서의 불상이 아니라 후에 공법을 가르쳐주는 녹화장면에 나오는 그런 불상인데 당시는 처음 본 것이었다. 동시에 책상도 안 보였지만, 그런데 불상의 입은 설법에 따라 그냥 움직였고 목소리도 정상이었다. 나의 마음은 비상히 격동해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닌가? 하여 눈을 비비고 바라보았지만 역시 똑같았다. 옆의 설법을 듣는 분들도 정상적이었다. 내가 눈을 감아도 역시 보였는데 당시 놀라웠고 흥분했다. 보통 기공사가 아니라 이분은 부처님이시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부님께서 설법하신 후 한 제자가 연공 요령을 소개하였다. 당시 나는 무대 우측의 계단 옆에 있었는데 사부님께서는 수강생들의 동작을 교정하려 내려오셨는데 처음으로 내 앞에 오셨다. 사부님의 손이 나의 손과 부딪치는 순간 강대한 에너지가 전신을 통과하는 데 마음은 비할 바 없는 따뜻함을 느꼈다. 동시에 속으로 결심했다. 이는 곧 내가 찾는 사부님이시다. 나의 생명은 이분을 따른다. 학습반이 결속된 후 나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연공을 견지하고 시간만 나면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다. (당시 책은 없었다.) 이후 사부님께서 북경에서 학습반을 꾸리면 나는 곧 참가하였고 외지의 학습반도 참여하였다. 전후로 십여 번의 학습반에 참여하였는데 매번 새로운 감수가 있었고 더 듣고 싶었다.

연공과 법을 듣는 동시에 나는 엄격하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심성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고 명리정의 집착심을 부단히 내려놓았다. 예를 들면, 일찍이 분양받은 집은 매번 변화가 생기는데 나의 심성을 고험 한다는 것을 의식하고 떠들지 않았고 묻지도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우리 수련인은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름을 중시하는데, 당신의 것이라면 잃지 않을 것이고, 당신의 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다퉈서도 얻지 못한다.” [1] 매번 사부님의 말씀을 생각하는데 고위직에 오를 때도 역시 이러한데 내가 중간 직급에서 20년을 일했는데 매번 평가할 때 많은 동료는 그 몇 개 직함을 얻기 위해 쟁투하는 것을 보고는 처음에는 주저하다가 뒤에는 아예 포기하였다.

최초 2년은 친구지간, 동료들, 가정 내, 심지어 동수 간에 마찰과 심성 고험이 거의 연달아 나타났는데 다수 정황은 사부님께서 심성을 지키라는 말씀이 생각나서 심성을 지킬 수 있었다.

그 당시 공이 자라는 것이 아주 빠른 것을 감촉했다. 가부좌하면 나의 공기둥을 볼 수 있었고 공기둥 위에는 가부좌한 작은 사람이 있었다. 머리 위는 제일 떠들썩한 곳인데 자주 “영아”가 들락거리고 어떤 때는 코를 따라 미끄럼도 탔다. 이런 현상은 사부님 설법에서 똑똑히 말씀하셨으므로 나도 관계하지 않았고 생활과 사업에도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대략 수련을 반년 하니 곧 “현관설위”[1]의 단계에 진입하였다. “원영출세”[1]에 감각도 확실하지 않아 그리 중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탄생한 “기포”의 감각은 아주 돌출했다. 우유색이고 탁구공 고만할 때부터는 감각이 있었다. 주먹만큼 크니 곧 위로 승화하는데 상승 과정은 아주 느린데 날마다 2, 3치다. 전중혈-가슴중심에 오르니 마치 거기에서 정지된 것 같았고 흉부는 마치 막힌 감각인데 2, 3일 지나니 또 위로 오르는 것이다. 목에 도착하니 또 목이 막힌 감각이고 2, 3일 지나니 머리에 도착하였다. 그 며칠 머리, 눈은 붓는 느낌이고 천목 위치는 어떤 물건이 밖으로 떠밀고 이런 상황이 5, 6일 동안 아주 불편했다. “기포”가 완전히 떠밀려 나간 후 단번에 시원한 느낌인데 눈앞은 몽롱하였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 법에서 똑똑히 이야기하셨으므로 이를 알고 있어 마음은 평온하였다. 또 며칠 지나니 눈앞의 몽롱한 감각은 없어지므로 현관이 위치를 옮기는 것을 알았다. 옥침혈에서도 감각이 있었는데 그리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고 이후에 계속 아래로 귀위할 때 과정의 감각도 그리 명확하지 않았다.

또 몇 달 지나니 갑자기 머리 위에서 3개의 “빛줄기”가 출현하여 하늘 끝까지 닿는 것이었다. “빛줄기” 위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고 3가닥의 “빛줄기”는 윤번으로 도는데 매 “빛줄기”마다 자유롭다. 가부좌할 때도 보이는데 높은 데는 잘 안 보였다. 당시 마음속으로는 이것이 곧 “삼화취정(三花聚頂)”[1]인 것을 알았다. 그 기간 매일 같이 사부님의 설법녹음을 들었고 이런 체험을 아주 평온하게 격동되는 감각도 없었다.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그 시기 제일 체험이 깊은 것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어떻게 심성을 닦고 심성을 제고하는 법인데 이는 수련의 근본이고 역시 오묘하기로 끝이 없었다.

전에 우리 부부는 자주 말다툼을 했는데, 아내는 말하는 게 직설적이라 한 말이 대뇌를 거치지 않는 후과를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나도 자존심 허영심이 강해서 아내의 말은 단번에 나의 폐를 찔러 마음에 즉각 불같은 분노가 까닭없이 일어나 즉각 싸움이 일어났다. 이런 일은 자주 발생하여 습관이 되어 버렸다. 하루는 아내가 이전처럼 아주 듣기 싫은 말을 하기에 내가 습관적으로 반박하려는데 갑자기 마음의 불길이 예전처럼 타오르지 않았다. 예전에는 이런 불길이 금방 타올라 나 자신을 통제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마음이 평정되어 즉각 사부님께서 제거해 주셨음을 깨달았다. 그 나쁜 물질은 제거되었지만, 또 성질을 내려는 생각이 있는 것은 원래의 그 사유 습관이 작용을 일으킨 것이었다. 왜냐하면, 한 번 이런 경력이 있은 이후에 이런 일을 만나면 아주 평온하게 처리되기 때문이다.

수련의 부동한 단계에 부동한 모순 형식으로 출현하는데, 가정은 보편적인 모순 형식의 일종이다. 왜냐하면, 가정은 제일 좋은 수련환경이기 때문이다. 수련 제고에 직접적인 작용이 있고 부작용도 제일 적기 때문이다. 후에 많은 동수도 이런 경력을 보았는데 더욱이 연세가 많은 분은 일정한 수련 층차에 도달하면 이 문제는 주요 형식으로 출현하고 피할 수 없는 모순 형식이다. 그들은 사회에서나 회사에서의 표현은 좋아 명, 리, 정을 많이 내려놓았는데 그러나 가정 모순은 반복적으로 출현하고 어떤 분들은 갈수록 격렬한데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다. 매우 골치 아픈 게 심지어 상대방이 낡은 세력에 통제되어 그를 교란한다고 생각하여 같이 맞대응하는 방식을 취한다.

나의 체험으로 말하자면, 절대다수의 가정모순은 수련의 제고를 위해 안배한 것이다. (당연히 개별정황은 교란 작용도 있다.) 목적은 한 가지 참을 “인(忍)”자이다. 당연히 과정 중에는 진도 있고 선도 있는데 주요하게는 참을 수 있는가를 본다. 가능하게 수련 중에 진과 선은 잘 수련했는데 참을성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이다. 시작에는 참지 못 하지만, 천천히 참을 수 있다. 그러나 미워하고 억울한 마음으로 참는데 그럼 표준에 도달 못 한다. 사부님께서 “참음(忍)은 心性(씬씽)을 제고하는 관건이다. 화가 나 원망하고, 억울해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참는 것은 속인이 해를 입을까 염려하는 참음이다. 화를 내거나 원망함이 전혀 생기지 않으며 억울함을 느끼지 않는 것이야말로 수련자의 참음이다.” [3]

1993년 어느 날, 그날은 사부님과 같이 있을 때였다. 사부님께서 내 앞에서 손으로 나의 머리를 돌면서 둥그런 그림 형상을 그리면서 “당신의 뒷면의 둥근 빛은 이미 있는데 보았는가?” 내가 “사부님 보았습니다.” 나는 보았지만 모호한 게 이런 물건이 있다는 감각은 있었다. 곧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후 이 둥근 빛은 똑똑히 보였다. 동시에 칠색의 빛이 나의 머리 후면에 나타났다. 보았지만 나 자신도 어떻게 된 일인지 몰랐지만 묻지도 않았고 곧 사부님의 말씀 “이는 모두 좋은 일이다.” [4] 그러나 내심에는 무한한 감격과 기쁨으로 꽉 들어찼다.

1996년의 하루 가부좌하는데 입정한 상태에서 이미 수련 성취한 불체를 보았다. 나의 5, 6세의 모습인데 금광으로 빛나면서 가부좌에 결인 한 자세였다. 아래의 연화 좌석도 이미 몇 층의 연화였다. 나는 알고 있는데 이는 모두 사부님의 지도하에서 도달한 것이고 내가 어느 곳까지 수련했어도 끝없는 대법 중에서는 오직 하나의 먼지이고 어쩌면 하나의 먼지에도 도달할 수 없을것이다. 그러나 나의 수련의 결심은 종래로 동요한 적이 없었는데 1999년 7월 후의 참혹한 박해에도 종래로 동요하지 않았고 일사 일념도 동요하지 않았다.

오늘까지 나의 파룬따파 수련은 이미 20여 년이 지나왔고 개인의 체험은 확실히 많다. 한 권의 책을 써도 모자랄 정도다. 그러나 이 몇 년간의 체험은 점차 두 글자로 농축되었는데 견정이다. 당신이 오직 견정한 신사신법이 동요하지 않고, 견정하게 매 일보를 잘 걷고, 견정하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면 대법의 신기는 당신의 몸에서 체현될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당신의 매 일보의 관을 넘도록 도우실 것이고, 일부 동수가 관을 못 넘긴 것은 모두 이 방면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수련의 길에서 나는 절뚝거리며 넘어지면서 걸어 지나왔는데 어떤 관은 잘 넘기지 못했고, 어떤 고험은 한 번에 넘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꼭 사부님께서 가르쳐 주신 길로 걸으면서 사부님의 말씀대로 실천하겠다는 이 결심은 영원히 동요하지 않는다.

나는 고등교육을 받고 대학에서 30여 년간 교수직을 했다. 오늘 나의 수련체험을 써내어 곧 내가 친히 실천한 것을 세인에게 알린다. 파룬따파는 정말로 만년에도 만나기 힘든 우주 대법이다.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하신 매 한마디 말씀은 글자마다 모두 진실한 것이다. 파룬따파는 이 세계에서 최고의 깊은 과학이고 역시 실천성이 제일 강한 과학이다. 오직 진정으로 결심을 내려 진수와 착실히 수련하면 초상적인 체험을 얻을 수 있고 세인이 상상도 하지 못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1] 리훙쯔 사부님 저작:《전법룬》

[2] 리훙쯔 사부님저작:《대원만법》

[3] 무엇이 참음인가(何爲忍)

[4] 리훙쯔 사부님저작:《카나다법회설법》

문장발표: 2016년 9월 7일

문장분류: 수련체험> 심성제고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9/7/33404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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