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류를 정확히 대하는 것’과 대법을 정확히 대하는 것을 말해 보자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오늘 사이트에 접속해 보니 사부님께서 ‘푸왠선 관련 문장이 일으킨 파동에 관하여’란 신경문을 발표하신 것을 보았다. 사부님 신경문을 학습하기 위해 나는 당일 문장 전부를 내려받았다. 내려받은 문장을 열어보았을 때 나는 즉각 자신의 수련에 심각한 문제 하나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즉 자기 마음속에서 대법의 위치를 바로 놓지 못했고, 자신은 정말 법에서 성숙해야함을 느꼈다.
나는 여기에서 문장 작자가 이 문장을 쓰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수련생마다 길이 다르고, 인식이 다르며, 밍후이왕 자체가 바로 대법제자가 교류하는 플랫폼이므로 역시 여기에서 밍후이왕 수련생이 어떻게 잘하지 못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밍후이왕 수련생이 이 문장을 매일 교류로 삼고 ‘밍후이 주간’에 선택하지 않은 것은 이상적인 방법이 아니라고 여긴다. 다만 우리 어떤 수련생은 사람 마음이 일어나면 안으로 찾는 것이 아니라 집착심을 따라가게 되므로, 파동이 일어난다.
파동이 일게 된 모든 수련생은 모두 자신이 왜 파동 당했는지 찾아봐야 한다. 내가 자신을 찾아보니 심각한 문제 하나를 발견했는데 바로 수련생의 교류를 정확히 대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는 밍후이왕 홈페이지를 보는 데서 체현된다. 나의 눈길을 몹시 끌어당기는 글이 있으면(어느 정도는 자신의 사람 마음에 부합되고 만족하는 것이지 참고가 아니다), 몹시 마음이 움직인다. 어느 정도에서 수련생의 글을 법보다 더 중하게 보았다. 사부님의 간곡한 타이름으로 우리는 모두 알게 되었다. 수련의 길이 다르므로 남의 체험은 참고로 할 수 있을 뿐이지 진정한 제고는 틀림없이 법에 있는 것이다.
나는 어떤 때 수련생의 교류 문장을 볼 때 수련생이 인용한 사부님 설법 부분을 그저 지나쳐 버리면서 자신은 다 안다고 여기고, 수련생의 체득은 아주 진지하게 본다. 특히 다른 공간에 연루된 부분은 아주 흥미를 느낀다. 어떤 때는 수련생의 교류문장을 보는 시간이 법 공부 시간을 초과한다. 날마다 법 공부를 보장하는 기초 상에서 교류 체득을 보는 것이 아니라 교류를 다 보고 나서 나머지 시간에 다시 법 공부하거나 어떤 때는 아예 법 공부하지 않았다.
더욱 엄중한 것은, 수련하는 중 자신이나 수련생에게 문제가 나타났을 때, 먼저 생각하는 것이 어느 문장의 체득에서 인식한 것이거나 모 수련생이 어떻게 했다는 것이지 법에서 어떻게 말씀했고, 사부님께서 어떻게 말씀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자기도 모르게 수련생의 인식과 체험을 법으로 여기고 자신과 수련생의 수련을 지도했다. 이런 인식이 발전해 간다면 사람을 따라 배우고 법을 따라 배우지 않게 되며, 연설로 난법 하는 자에게 기회와 공간을 제공하게 될 것이고, 자기도 모르게 난법 하는 자를 추종하고, 그들의 인식을 법으로 삼고 자신의 수련을 지도할 것인즉 남도 해치고 자신도 해치게 된다.
수련인으로서 문제에 부딪혔을 때, 우선 생각하는 것이 사부님과 법이 어떻게 말씀했는가가 아닐 때, 이는 이젠 아주 위험한 상태이다. 지금 이것은 사람 마음이 빚어낸 것임을 인식하기는 했지만. 무슨 마음이든 상관없이 근본으로부터 보면 자기 마음속에 대법의 위치를 바로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있다. 구세력의 교란을 신사신법(信師信法)보다 더 중하게 보았는데 이 역시 마음속에 대법의 위치를 바로 놓지 않았다는 표현이다. 나는 2000년 떠돌이 생활을 1년 한 후, 납치당해 구치소에 갇혔다. 1년 남짓 수련생을 접촉하지 못했고, 사부님의 그 어떤 신경문도 얻지 못했는지라 정법과 수련의 형세를 알 수 없어 수련생을 만날 수 있기를 몹시 갈망했다.
며칠 후, 납치당한 여러 명의 수련생이 나의 감방에 배치됐다. 수련생을 보니 나는 무척 기뻤고 수련생과 잘 교류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데 수련생은 나에게 일체 모두는 구세력의 배치이고 하나의 염두, 하나의 눈길마저 모두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에게 주는 느낌이란 수련생은 몹시 어쩔 도리가 없어 하고, 구세력의 배치는 대법제자 앞을 가로막은 큰 산과도 같아 넘어갈 희망이 없어 하는 것 같았다. 자신이 이전에 한 일체는 모두 구세력의 배치인 것 같았다.
처음에 나는 막막하게 여겨졌다. 왜냐하면, 자신은 필경 오랫동안 법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재빨리 자신을 바로 하고 수련생에게 말했다. 오직 우리가 사부님 요구대로 하고 대법의 요구대로 하기만 한다면 누가 배치했든 우리에 대해서는 모두 소용없으며, 우리는 모두 지나올 수 있다. 그 수련생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머리를 저었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마치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당신은 어찌하여 이런 것을 인식할 수 있는가!” 지금 나는 인식했다. 만약 우리가 어떠한 교란이든 너무 중하게 본다면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신사신법(信師信法)의 바른길에서 벗어난 것이다.
위에서 말한 어떤 수련생은 교류를 보는 것을 법 공부, 실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본다는 것을 제외하고도 나는 또 어떤 수련생, 나 자신을 포함하여 사상 중에 사부님의 각지 설법을 보는 것을 ‘전법륜’을 보는 것보다 중요하게 보는데 ‘전법륜’은 모두 이젠 너무 익숙하다는 것이다. 나 자신도 한동안 각지 설법 보기를 몹시 즐겼고, ‘전법륜’은 아주 적게 보거나 어떤 때는 보지 않았다. 각지 설법을 보는 것으로 자신의 법 공부를 대체했다. 서서히 나는 자신이 ‘전법륜’을 보는 데 대하여 배척하는 생각이 있음을 발견하고 즉각 경각하면서 이런 상태는 옳지 않다는 것을 인식했다. 나는 자신을 강박하여 ‘전법륜’을 보도록 하기 시작했으며,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아내지 못했으므로 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것이 바르지 못한 염두임을 알고 이런 생각을 억제하고 ‘전법륜’을 보려고 애썼다. 서서히 마음이 안정되었고, 후에는 갈수록 보고 싶었다. 더 후에는 ‘전법륜’을 외우기 시작했다. 외우는 과정에 체험은 갈수록 깊어졌고, 각지 설법에서 하신 말씀이 모두 이 법에 있고, 내 수련의 일체가 모두 이 ‘전법륜’ 안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 내가 오늘 뭘 해야 하고 어떻게 하며, 나타난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가 모두 여기에 있었다.
최근, 사부님께서는 설법에서 법 공부는 주요하게 ‘전법륜’을 배워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셨다. 나는 많은 수련생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나는 내가 당신들에게 줄 수 있는 일체를 모두 이 법 속에 내포시켜 넣었다.”[1]의 깊은 함의를 이해하지 못하고, ‘전법륜’을 배우는 것이 우리 수련 지도에 얼마나 중요하고 관건인가를 인식하지 못했으며, 진정한 우주 대법은 바로 이 ‘전법륜’이고, 기타 각지 설법은 모두 ‘전법륜’을 해석한 것임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여긴다,
개인의 조그마한 인식이므로 법에 부합되지 않는 것은 지적해 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오스트레일리아법회설법’
문장발표 : 2016년 8월 26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8/26/33348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