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몇 년간 가끔 밍후이왕에 현지 수련생의 ‘문제’에 관한 글이 발표되는데 예를 들면 누군가 휴대폰 안전을 주의하지 않거나, 연설하며 난법한다든가, 발정념 내용이 남과 다르거나, 수련생을 시장으로 삼아 향을 판매한다든가, 사부님께서 돌아오시는 것을 환영한다는 현수막 혹은 연공복을 만들거나, 천목에 집착한다든가 등등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문제는 마땅히 지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만약 누구도 얘기하지 않는다면 발전해나가 정체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수련생과 개인 수련에 아주 큰 손실을 조성할 수 있다.
대부분 수련생들은 문장을 본 후 법으로 가늠하는 동시에 안으로 찾으면서 이 일을 마땅히 말해야 하고 폭로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을 발견했다. 수련생을 일깨워주고 문제가 발전해나가는 것을 저지하는데 아주 좋은 점과 바른 작용이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일부 수련생들은 사람 마음으로 대하고 원망하며 투덜거리면서 곳곳을 다니며 누가 문장을 썼는지 조사한다. 자신이 체면을 잃었다고 여기면서 도처에서 수련생에게 묻는다. “그 문장을 누가 썼는지 아세요?” 심지어 법공부 소조에서까지 의견이 분분한데 마치 문장을 쓴 수련생이 오히려 죄인이 된 것 같았다.
수련자로서 다른 사람이 우리의 문제를 지적해주면 마땅히 기뻐해야 한다. 속인마저 ‘자신의 잘못이나 결점을 남이 지적해 주면 기뻐한다’는 말이 있는데 하물며 우리가 속인보다도 못한가? 있으면 고치고 없으면 경계하면 된다. 당신에게 그 어떤 다른 의견이 있든지 우리는 모두 무조건 안으로 찾아 자신에게 이 방면의 문제가 없는지 찾아보아야 한다. 수련 중에는 우연한 일이 없는데 문제가 폭로돼 불만스러워 한다는 자체가 심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이런 불인정과 불만, 원망의 표현은 낡은 우주 생명의 속성으로서 닦아버리지 않는다면 새로운 우주 생명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한다. 진정한 수련자라면 남이 문제를 지적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데 어찌 밖으로 내밀 수 있겠는가?
얼마 전에 천목이 열린 수련생 사진을 사부님 법상과 같이 놓고 향을 올린 일에 대해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이런 일에 집착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런 난법(亂法) 하는 것이 나타난다.’[1]고 지적하셨다. 이는 현지에서 큰 파동을 일으켰는데 적지 않은 수련생이 모두 누가 썼는지 물었다. 동시에 “어느 천목이 열린 수련생이고 누가 그의 상을 모시는가?”라며 조사했다. 또한 어떤 수련생은 “그런 일까지 사부님께 묻다니? 그럴 필요가 있나?”라고 투덜거렸다.
대법제자로서 사부님의 매 한마디 말씀, 매 한 단락 법에 대해 마땅히 공경하는 마음으로, 엄숙한 심태로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 얘기하신 것은 우주의 법이기 때문이다. 비록 현상은 현지를 얘기한 것이지만 이성적인 함의는 무궁무진하다. 우리가 잘못해 사부님께 심려를 끼쳐드렸으면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하고, 사부님께서 얘기하셨으니 즉시 바로잡아야 하지 않는가. 어찌 인정하지 않으면서 사람 마음으로 대하고 밖으로 보는가? 마땅히 다른 사람에게 고마워해야 하지 않는가.
얕은 인식으로서 수련생께서 참고하기를 바라고 자비롭게 시정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2016년 뉴욕법회 설법’
문장발표: 2016년 8월 2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8/21/33326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