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안을 향해 찾아 관용하고 양해하며, 영원히 포기하지 않다

– ‘부원신 중의 구세력의 배치를 청리하다’를 읽은 소감

글/ 서설소양(瑞雪昭陽)

[밍후이왕] 조금 전에 최근 문장 ‘부원신(副元神) 중의 구세력의 안배를 청리하다’를 자세히 읽고 받은 계발을 말하려 한다. 우선 작자가 본 것과 깨달은 것은 다만 참고일 뿐 우리의 수련은 법을 스승으로 삼아야 하는데 본문도 이러하다.

나는 법을 얻은 이래의 수련노정을 회상해 보았는데 ‘나는 왜 이 방면에서 다른 수련생들처럼 극복하지 못할까? 나는 왜 이 점을 잘하지 못할까? 이 방면에서 선천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못한 것이 아닌가?’고 생각되는 곳이 아주 많았다. 생각해 보니 수련생이 문장에서 묘사한 구세력의 기제(機制)와 교란과 관련이 있었다. 게다가 사부님의 분부에 따라 여가 시간을 엄격하게 관리하지 않고 세 가지 일을 잘 안배하지 않아 법에 가지(加持)된 그런 강대한 힘이 없었다.

자신의 수련과정을 회상해 보니 주의식(主意識)은 그래도 강한 편이어서 생활 속에서 만나는 일은 기본적으로 옳고 그름을 분별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떤 때는 옳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무형의 힘’에 자신의 행위를 통제당해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데 이 물건은 매우 무섭다. 그리하여 사부님께서 수련생들에게 함께 법공부하고 교류할 것을 강조하신 것은 정진을 촉진하는 효과적인 방법임을 깊이 깨달았다.

고독은 일종 아주 큰 고통이다. 하지만 나는 태어나자마자 상대적으로 ‘외로운’ 환경 속에 있었다. 이런 안배는 이런 환경 속에서 자신을 잘 수련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줄곧 가족 수련생이 있는 대법제자를 부러워했다. 이후에 나는 이것이 바로 나의 길이며 반드시 기댈 곳과 너무 많은 안내(법공부 제외)가 없이 한 갈래 길을 걸어 나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 정신세계 중의 기회는 줄곧 ‘생이별, 이별, 잃어버림과 포기’였다. 끊임없이 심장을 도려내고 뼈를 깎는 포기 중에서 단련해낸 것은 사실상 확고한 의지였다. 그리고 인생과 세계의 본질에 대한 인식도 끊임없이 끌어 올렸다. 생각해 보니 만약 그 과정에서 정진하는 수련생 몇 명을 만나 도움과 일깨움을 받았더라면 아마도 더욱 잘했을 것이다.

“어떤 부원신(副元神)은 주원신의 윤회기록을 펼쳐 보면서 주원신이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지 본다. 어떤 것은 몇 생, 십 몇 생, 심지어 백 생 넘게 펼쳐 보면서 주원신의 약점을 찾는다.” 이 단락을 보고 나는 자신의 ‘약점’이 다른 공간의 생명에게 발각되었다고 생각됐다. 나의 윤회 속에는 아마도 아주 많은 ‘취약’ 요소가 모아졌을 것이다.

이것은 정말로 아주 무섭다. 다른 사람은 아마도 이 위에서 걸어 지나갔기에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내 수련의 길에서 큰 결정과 곤두박질은 모두 ‘취약’ 이 두 글자와 관련 있다. 그것은 마치나의 매우 미시적인 공간장 중에 존재하는 요소처럼 건드리기만 하면 자기도 모르게 그것이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뚫고 올라오는데 아주 강력하다. 짧은 시간 내에 붕괴되어 당해낼 수 없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즉시 이지적이지 못한 어떤 행위를 하게 된다.

이런 강력한 ‘미혼약(迷魂藥)’에 대해 나는 상대적으로 그것을 대처하는 경험이 생겼다. 하지만 가끔은 한 번씩 물리기도 한다. 예를 들면 며칠 전에 착오를 범했는데 다른 사람에게도 상처를 줬을 것이다. 그것이 구세력의 ‘이간계’이긴 하지만 내가 냉정하지 못해서 조성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구세력의 안배는 얼마나 음험한가. 문장에서도 말했다. “때문에 우리가 일을 할 때 저애력은 너무 빨리 온다. 사악은 줄곧 호시탐탐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 가부좌 중에서 나는 보았다. 나와 수련생이 만길 깊은 낭떠러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자신에게 말했다. ‘너는 누군가가 너에게 관용하기를 영원히 바라지 마라, 너는 자신을 잘 수련해 사존께서 안배하신 길을 걸어야 한다’.”

확실히 나는 대단히 조심해야 한다. 이전 경험으로 보면 지금 사존의 안배는 내 수련의 길에 의미가 중대한 일이다. 그렇다면 구세력과 나쁜 부원신도 이런 중대한 의미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수련생의 문장에 이런 단락이 있다. “사존께서 설법하셨다. ‘이 구세력은 역사상 아주 많은 일을 배치했는데, 극히 주도면밀하게 했다. 그것들은 자신이 배치한 일에 문제가 없도록 하기 위해 지난번 지구에서 이미 한 번 연습을 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것들이 집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것들이 하고자 하는 것에서 손을 놓을 수 있겠는가?’[1] 그것들은 필히 무슨 행동이 있을 것이고 반드시 저애하고 교란할 것이다. 이후에는 또 걸음마다 놀랄 것이다. 지금 수련해야 하는 것은 일사 일념인데 정말 수시로 안을 향해 찾아야 한다.”

수련생의 문장 중의 이 단락은 나도 같은 느낌을 받고 있다. “지나온 길을 조용히 돌아다보니 내가 동요할 때 사존께서는 수련생을 안배해 나를 격려해주시고 수련생이 곤혹스러워할 때 사존께서는 나에게 매 한 마디 말을 심사숙고해서 하라고 깨우쳐 주셨다. 매 한 시기에 부딪치는 일, 어떻게 나가고 어떻게 후퇴하고를 사존께서는 이처럼 상세하게 안배하셨다. 우리가 중대한 일을 상의할 때 사존께서는 씌우개로 우리를 보호해 낡은 신의 정탐을 가로 막았다. 이 과정 중에서 나는 진일보로 사존께서 말씀하신 ‘장계취계’의 법리를 깨달았다. 다른 공간에서 내 신체(神體)가 깨지는 동시에 사존께서는 눈가림수로 모든 신을 차단하고 일념으로 나의 신체(神體)를 만드셨다. 낡은 신은 나를 훼멸시키고 사존께서는 새로 만들었는데 동시에 발생했다. 낡은 세력은 사존께서 층층의 공간에서 나의 흩어진 신체(身體)를 찾는 것만 보았지 사존께서 나의 신체(神體)를 다시 만들 때의 수승함과 장엄함은 보지 못했다. 제자는 사존의 가지, 가호에 더없이 감사드린다. 일체는 모두 사존의 통제 하에 있다.”

행운스러운 것은 우리에게는 영원히 포기하지 않고 심혈을 기울이는 위대한 사존이 계신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다. 나의 현재와 미래에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은 영원히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사존에 대한 신임은 영원히 변치 않는다. 사존께서는 ‘장계취계’로 우리를 도와주시고 성취시키신다. 만약 과정에서 누군가가 잠시 잘못했을 때 관용을 꺼낸다면 구세력의 계략은 모두 스스로 소멸될 것이다. 그것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우리 사이의 양해와 관용이다.

사존께서 설법 중에 말씀하셨다. “그러나, 우리가 만약 정념(正念)이 매우 충족하고 또 우주의 이치에 부합되면, 구우주(舊宇宙)든 신우주(新宇宙)든 모두 이런 이치가 있는바, 한 생명의 선택은 그 자신에 의해 결정되며, 역사상에서 그가 어떤 소원을 빌었든 결정적인 순간에는 여전히 그 자신에 의해서 결정된다. 여기에는 정반(正反) 두 개 방면을 포함하며 모두 이러하다.”[1]

이 길에서 아직도 얼마나 많은 위험이 있고 얼마나 많은 구세력의 계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도 사존의 계시대로 하고 선택하며 견지하고 서로 신임한다면 반드시 가장 좋은 마지막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사존께서 요구하시는 결과는 영원히 우리가 일하는 준칙이다. 왜냐하면 사존께서는 가장 좋은 그 결과로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나는 글 중의 네 글자로 자신을 격려해 법 중에서 더욱 잘 정진하려 한다. 영원히 포기하지 않는다[永不言棄]!

법에 있지 않은 곳은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허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2-2002년 미국필라델피아법회 설법’

문장발표: 2016년 8월 1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정법수련마당> 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8/15/33298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