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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께서 자비롭게 보호해 주셨다

글/ 헤이룽쟝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셨다. “우리 法輪大法(파룬따파)는 수련생에게 편차(偏差)가 생기지 않도록 보호할 수 있다. 어떻게 보호하는가? 당신이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우리 法輪(파룬)은 당신을 보호해 줄 것이다. 나의 뿌리는 모두 우주에 박혀 있으므로 누가 당신을 움직일 수 있다면 곧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그는 곧 이 우주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1] 나는 2002년 5월 중국공산당(이하 중공)에게 납치되어 불법적으로 7년형을 선고 받았다. 그 7년 동안 평범하지 않은 많은 경험을 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당시의 그 일들이 나를 더욱 분발하도록 해주고 또 고무와 격려가 되기도 한다.

1. 간지럼을 타지 않는 발바닥

나는 2002년 5월 어느 날 한 수련생에게 무선호출기를 사용하다가 위치추적을 당해 중공에 납치됐다. 그들은 나를 심문했지만 내가 협력하지 않자 그들은 나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전깃줄로 발가락을 수차례 후려쳤는데, 감각이 예민한 발가락의 고통은 매우 컸다. 마치 고양이가 물어뜯는 것처럼 아팠다. 그렇지만 나는 꼼짝하지 않고 참으며 사부님께 청을 드렸다. 내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들이 더욱 매질을 혹독하게 할 것 같아 참은 것이다. 그렇지만 고통이 극에 달하면 아마 피했을 것이다(피할 곳도 없지만). 그런데 그 순간 그는 다른 발을 때렸다. 사부님께서 도와주신 것이다. 한쪽 발의 고통이 극에 달했을 때 그는 또 다른 발을 때렸다.

그들이 전깃줄로 계속해서 나를 때릴 때 그들을 보니, 갑자기 그들의 모습이 모두 변했다. 귀는 길고 쫑긋했으며, 온 얼굴에는 털이 가득 덮여 있어서 하나같이 험상궂은 모습이었는데, 마치 ‘서유기’에 나오는 작은 요괴들 같았다. 전깃줄을 휘두르는 손은 짐승의 발로 변했는데 역시 털이 가득했다. 아, 나는 금방 알았다. 그건 다른 공간에서 그들을 조종하여 나쁜 일을 하고 있는 악령과 난귀(爛鬼)였던 것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그 경찰관들도 불쌍했다.당당해야할 사람이 그런 사악한 생명체에게 통제당해 대법제자를 박해하여 대법에 죄를 짓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런 것도 모른 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나와 나이가 비슷했다. 위로는 부모가 있을 것이고, 슬하에는 자식도 있을 것이며, 형제자매도 있는 어엿한 가정과 사회에서 그의 책임도 있을 것이다. 경찰이란 직책은 좋은 사람을 보호하는 권선징악을 위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현재 그들은 완전히 장쩌민 건달집단의 졸개가 되어 나쁜 짓을 하면서 비틀린 인성으로 마음에는 곰팡이가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사색에 잠겼다, ‘그들을 기다리는 미래는 무엇일까? 그들은 영원히 미래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미혹속의 사람은 불쌍하고도 비참하다!’ 그 후 나는 한 번도 경찰관들을 미워한 적이 없었다. 설사 그들이 나에게 상처를 주고 우리 대법제자를 박해했었어도 대인지심으로 결코 그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나의 자백을 얻기에 급급한 나머지 자세를 바꿔가며 때리고 자백을 강요했지만, 나는 줄곧 침묵했다. 그들은 지쳤는지, 아니면 이 방법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매질을 멈추었다. 내가 고통스러워하지도 않고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자, 그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사실 내가 강해서도 아니고, 내가 큰 감당능력이 있어서도 아니다. 실제로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매질이 별로 아프지 않았던 것이다. 대법제자는 모두 안다, 그것은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감당하신 것이다.

그들이 나에게 물어도 나는 입을 열지 않았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물어도 나는 전혀 대답하지 않았다. 나중에 그들은 무슨 묘책(絕招)이라도 생각난 듯이 나에게 간지럼을 태우기 시작했다. 나는 원래 간지럼을 무척 탔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다 클 때까지 내가 말을 잘 듣지 않으면 어른들이 내 옆구리에 간지러움을 태웠는데, 손이 오기 전에 순순히 용서를 빌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법제자로서 수련생과 대법을 파는 그런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간지러워도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먼저 내 왼쪽 옆구리에 간지러움을 태웠는데도 별다른 반응이 없자 다시 예민한 발바닥에 간지러움을 태웠다. 나는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매우 경악스러워 했고, 심지어 공포감을 느끼고는 나를 내버려두고 나가버렸다. 나도 매우 신기한 맘이 들었다. 순간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고, 마음속에는 감사가 가득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그 후부터 나는 뜻밖에도 간지럼을 타지 않았다.

2. 교도소 안의 경문

불법으로 감금된 대법제자가 가장 어려운 점은 손에 대법경서가 없다는 것이다. 구치소에서는 매우 엄격하게 감시를 했는데 정기, 비정기적으로 감방을 검색했다. 대법제자는 각각 다른 감방에 수감되기 때문에 설사 어렵게 경문을 들여온다고 해도 보관하기가매우 어려웠다. 판결문이 시달됐을 때였다. 우리 수련생들은 판결문 수령을 위해 구치소 중앙에 위치한 대기실로 끌려 나갔다. 그곳은 사면에 모두 감시카메라가 설치돼 있고, 역시 사면에 경찰관들이 에워싸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 여경들이 3,4미터 근처에서 감시하고 있었다. 수련생이 나에게 ‘전할 물건이 있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나는 경문임을 알았다. 내가 그 수련생에게 접근해 가서 뒷짐을 지고 함께 나란히 쭈그리고 앉았다. 그때 교도관이 우리에게 판결문을 가져가라고 했다. 우리는 둘이 동시에 일어설 때 수련생이 재빨리 경문(필사본)을 내 손에 쥐어줬다. 나는 받아든 경문을 얼른 바지 주머니에 넣고 매우 자연스럽게 감방으로 돌아왔다. 뭇 시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무사히 경문을 챙겨온 것이다. 그 순간 나의 공간장이 아우성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모든 중생들이 모두 환호하는 것 같았다.

나는 곧 투옥 될 예정이었다. 누범자가 나에게 들려준 수감얘기는 공포감을 더해줬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경문을 가지고 갈 것인가, 말 것인가?’ 나는, 감방에 있는 어떤 수련생들은 필사본의 경문조차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에게 가져다 줘야지, 아무리 어려워도 가지고 들어가야지’ 하고 결심했다. 경문을 잘 접어서 판결문과 기소문 갈피 속에 넣었다. 나는 앞으로 걸어가는 길이 아무리 험악하다고 해도 걸어가야만 했다.

교도소에 입소한 후 합숙훈련에 들어갔는데. 첫 번째 관문은 소지품검사였다. 한 가지 한 가지씩 매우 세심하게 검사했는데 마음이 좀 불안했다. 그때 합숙훈련대의 한 재소자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의아했다. 고향과 멀리 떨어진 교도소에 누가 나를 안단 말인가? 원래는 친척친구의 아들인데 그의 어머니는 나도 아는 사람이다. 더 말할 것도 없이 교도소에서아는 사람을 만났으므로 관을 넘기는 쉬웠다. 합숙훈련대에서 시간을 내어 경문을 몇 부 더 필사해서 수련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3. 독방에 감금할 수 없는 대법제자

중국 대륙의 교도소는 매우 정상적이지 않았다. 교도소에서는 수감자를 돈 버는 도구로 간주하기 때문에 모든 업무가 그 틀에서 돌아가기 마련이다. 각 구역의 교육담당책임자는 해마다 “교도소에서 얼마나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느냐”를 전제로 취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건달들이 구역의 교육감으로 발탁되는데, 그들의 수감자 관리수단은 바로 비정상적으로 규칙이 없었다. 그러므로 교도소는 이익을 위해서는 규정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방임하는 것이다.

그들이 쓰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가장 야만적인 운영방식은 바로 폭력이다. 폭력은 인류의문명사에서 침략, 도살, 야만, 역병과 한 부류로 분류해서 논하는 어휘로 현대문명사회에서는 멸시당하는 것이다. 한 국가에 폭력이 점하는 비례가 그 국가의 문명의 정도를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척도다. 그러나 중공의 교과서에서는 폭력은 일상적인 용어인 것이다. 정권을 탈취하는데 폭력에 의거해야 한다(항일전쟁이 끝난 후, 항일전쟁이 승리했다고 하더라도실제적으로는 ‘구평’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그건 내전임). 다른 사람의 재산을 강탈하는 것도 폭력에 의한다(토지개혁, 공상개조에 자본가의 재산을 몰수하는 등). 공민의 신앙의 자유와 권리를 박탈하는데 폭력에 의거한다(49년도 불교, 도교, 천주교, 기독교와 기타 회교도문(會道門)에 대한 소위 ‘개조’ 와 그 후 ‘가정교회’에 대한 지속적인 박해, 특히 99년도 ‘진선인(眞善忍)’을 믿는 파룬궁(法輪功)에 대한 탄압). 철거도 폭력에 의거하고 도시 관리도 폭력에 의거한다. 말하자면 법으로 쉽게 달성할 수 없는 것은 폭력을 통해 실현한다. 중공의 폭력기계, 즉 교도소에서의 폭력사용은 더욱 거리낌이 없다. 교도소에서는 매 수감자에게 이윤창출의 임무를 내렸고, 교도소 각 구역에서는 또 층층이 목표를 정해놓고 그의 달성과 성과를 높이기 위해 더욱 많은 이윤을 짜내기에 혈안이었다. 보통 노동시간을 연장하는 방법으로 착취하는데, 노동 강도를 높이고 노동보호에 필요한 조치를 무시하는 것 등으로 착취한다. 오후 9시까지 잔업을 시키는데, 이에 복종하지 않으면 폭력적 위협은 물론 직접 폭력을 행사한다. 폭력을 구사하는 자는 수감된 죄수 중에서 선발된 조장과 교도관, 또는 그들 양자가 합세해서 집단폭력을 휘두르고 그 다음 독방에 가둔다.

대법제자가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고 했는데 오히려 교도소에 갇혔는데, 그자체가 바로 박해인 것이다. 하지만 교도소에서 대법제자의 신체적 권리는 어떤 보장도 없다. 그러므로 대법제자의 끊임없이 반(反)박해를 위한 항의가 끊이지 않았다. 대법제자가 구타당하고 독방에 갇힌 소식이 자주 들렸다. 내가 불법으로 감금된 7년 동안 10여 명의 대법제자가 교도소의 고문박해로 사망했다. 그러므로 그런 공포는 그곳에 갇혀있던 매 한사람 한 사람을 공포로 짓눌렀다.

나는 2006년부터 반(反)박해에 나섰다. 죄수복 입기를 거부했고, 강제노역을 거부했으며, 죄인명패의 패용을 거부했다. 많은 수련생이 나를 위해 걱정했고, 많은 수감자들이 손에 땀을 쥐고 지켜봤다. 그러므로 내 스스로도 마지막까지 견지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다.그렇지만 나는 안다. 대법제자로서,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세상의 일체를 버릴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렇지 않고 한손으로는 부처를 잡고, 또 다른 한손으로는 사람을 잡고 놓지 않는다면 어떻게 수련성취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수련에서 문제가 발생해 중공에 납치당했고 또 박해당하고 있는 것이다. 착실하게 대법의 요구에 따라 실수(實修)한 그런 수련생들은 고정되고 안전하게 세 가지 일(법공부, 발정념, 진상을 알려 세인구도)을 하고 있다. 사악의 박해와 요구 그리고 그들의 명령과 지시를 인정하지 않고 협력하지 않는 것도 사부님께서 대법제자에게 요구하신 것이다. 그 교도관들도 당연히 기만당하고 이용당한 것이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중생을 구도하라고 하셨으므로 당연히 ‘공,검,법,사’의 요원들도 모두 포함된 것이다. 설사 당장은 그들을 구할 수 없다고 해도, 그들이 우리를 박해해서 대법에 죄를 짓게 되어 장래에 그들을 구하는데 어려움이 커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셨다. “속인 층차 보다 높은 사람은 속인을 적으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당신이 당신의 적을 사랑하지 않으면 당신은 원만에 이르지 못한다고 알려주었다.”[2] 그들 교도관들이 나를 박해하여 죄를 짓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나는 나의 심태를 조정하는데 노력했다.

한 대법제자가 공개적으로 죄수복을 입지 않고 점호를 하지 않고, 노역에 참가하지 않으며,죄수표찰을 패용하지 않자, 구역 교육감은 나를 현장으로 끌고 가서 말하려고 했다. 교도소에는 규칙이 하나 있는데(정말 규정에 있는지 알 수 없음), 수감자가 교도관과 대화 할 때는 바닥에 꿇어앉아야 했다.

나는 인격모독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떤 교도관에게도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지만, 누구도 그런 나를 뭐라고 지적하거나 말하지 않았다. 구역 교육감은 내게 말하기 전에 내가 그의 앞에서 쭈그려 꿇어앉지 않았다는 이유로 화를 내며 2명의 교도관을 시켜 나를 강제로 꿇어앉게 했다. 그렇지만 나는 복종하지 않았다. 그들이 완력으로 누르는 바람에 비록 바닥에 쓰러지기는 했어도 꿇지 않았다. 사람은 존엄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나는 고상한 사람이니 기개를 잃지 말아야 한다. 대장부까지는아니더라도 최소한 군자는 되어야 한다. 당당하게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 악비(嶽飛), 원톈샹(文天祥), 수우(蘇武), 그리고 불교, 기독교가 박해당할 시기의 그런 성도도 그랬는데, 하물며 대궁(大穹)을 구하기 위해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사부님께서 감당하신 것을 생각하면나의 마음은 태연할 수밖에 없었다.나는 거듭 그에게 말했다.”나는 당신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자 구역 교도관이 화가 나서 나를 발로 몇 번 찼다. 나는 땅에 앉아 그에게 진상을 알렸다. “나는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장쩌민이 자기 잇속을 위해 선량한 민중에 대해 역사상 유례가 없는 박해를강제로 발동한 겁니다. 선악에는 응보가 있습니다. 나는 당신이 이번 박해에 참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는 내말을 듣지 않고 내게 “일을 할 건가, 말건가?”하고 물었다. 나는 말했다.”나는 당신을 겨냥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기왕 이렇게 하기로 선택했으므로 끝까지 견지할 겁니다!” 그는 책임자를 불러 말했다. “큰 전기봉 2개를 가져다가 따끔한 맛을 좀 보여줘. 그리고 독방에 가둬!” 나는 생각했다. ‘당신이 그렇게 말해도 소용없다. 그건 나의 사부님께서 결정하실 문제다!’ 책임자가 전기봉을 가지러 갔다. 그런데 그가 돌아오지 않았다. 점심시간에 재소자 조장이 식사하라는 연락이 와서 나는 그 박해사무실에서 나왔고, 박해도 흐지부지해 졌다. 후에 그 구역 교육감도 수감자에게 고발당해 처분을 받았다. 이것은 첫 번째 대결이었다.

그 후 3년 반 동안 나는 5차례 독방위협을 받았고, 3차례 이감되었는데, 그중 한번 독방으로 압송될 때 4층 숙소에서 건물 밖 독방으로 가는 길에서 수감되지 않고 다시 되돌아왔다. 한 차례 한 차례의 공포의 위협은 사부님에 의해 그때마다 모두 해체되었다. 제자는 사존님의 가호의 은혜를 깊이 느끼면서도 말로는 뭐라고 감사를 표할 길이 없다. 그러므로 감사의 눈물을 얼마나 많이 흘렸는지 모른다. 사부님이 있는 제자는 이 얼마나 좋은가! 사부님의 말씀을 들으니 얼마나 좋은가! 어떤 수감자는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인맥이 대단한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큰 빽이 있고, 가장 단단한 인맥이 있는데, 그건 바로 우리 위대하고 자비로우신 사부님이시다!

주 :

[1] 리훙쯔(李洪志)사부님저작 :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李洪志)사부님저작 : ‘캐나다법회설법’

문장발표 : 2016년 7월 27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정법수련마당 >수련체험 >정념으로 박해를 선해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7/27/33185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