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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수련생 ‘훌륭한 수련자가 되다’

글/ 미주리주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서양 수련생입니다, 대법을 수련한지 4년 반이 됐습니다. 그 동안에 제 몸에서는 커다란 변화가 생겼습니다. 저도 한 수련자로서 해야 할 일을 잘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일에서 저에게는 아직도 누락이 있습니다.

뿌리가 깊이 박힌 집착은 버리기 아주 어려우며, 심지어 인식되기 아주 어렵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지금 저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재빨리 인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행위를 개변하기는 오히려 아주 어렵습니다.

저는 늘 법으로 자신의 행위를 가늠하곤 합니다. 저는 매번 자신이 고비를 넘길 때 실패한 공통 원인을 찾아내고자 하는데 이러면 다음번에는 제가 자신을 잘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진보는 여전히 이상적이 못 됩니다. 최근에 와서야 저는 제 근본적 결점이 무엇인지 인식하게 됐습니다.

안으로 찾는 것과 ‘반성’

나는 늘 안으로 찾는 것과 반성의 구별을 찾고자 했다. 이 양자는 모두 자신의 문제를 찾아야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아주 명확하게 말씀하셨다. “수련의 제고는 반성, 회개와 동등시 할 수 없다.”[1]

반성은 단지 표면상에서 문제를 인식했고 표면상에서 문제를 규정할 뿐, 결코 진정으로 집착을 찾아낸 것이 아니며, 안으로 이 집착의 핵심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보아야 하고, 아울러 이 핵심과 근원을 파내야 한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내가 방금 말한 것처럼, 나는 예전에 내가 어디에서 잘못했는지 인식할 수 있었다. 나는 내 사상이 법에 부합되지 않음을 인식할 수 있고, 게다가 나는 즉각 자신의 사상을 고치려 시도할 수 있다.

하지만 집착을 일게 한 진정한 원인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나의 진보는 매우 느리다. 왜냐하면 얕은 인식으로는 진정으로 집착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말해보겠다. 나는 수구를 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클 때까지 생활환경이 모두 아주 거칠고 저속해서 더러운 말을 하는 것은 일상적이었다. 나도 늘 막말을 했고 저급적인 농담을 했다. 그런데 이런 행위는 내가 성장하는 환경에서는 격려를 받았다. 저급적인 말일수록, 추잡한 말일수록 친구들의 환영을 쉽게 받았고 서로간의 관계가 가까워졌다.

물론 내가 수련을 시작한 후 이런 언행은 모두 정에서 왔으며 모두 법에 부합되지 않음을 인식했다. 하지만 매번 내가 이런 언행의 속인과 함께 있을 때마다 내 언행은 수련인답지 않게 변했다.

나는 이런 행위를 개변하려고 매우 노력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지만 마땅히 있어야 할 경지에 도달하기에는 아직 멀었다. 최근에 와서야 나는 사부님께서 주신 점화를 이해하게 되고 왜 내가 이 집착의 핵심이 소재한 곳을 찾지 못했는지 인식하게 됐다.

다섯 살 조카가 나에게 준 계발

몇 주 전, 내 남동생 일가가 우리집에 왔다. 나는 그들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으므로 그들과 하루 놀 수 있기를 바랐다. 우리는 아주 즐겁게 놀았지만 꼬박 하루 동안 내 행위가 속인이지 수련인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극력 부모 형제 그리고 그의 아들을 웃겼고, 심지어 수련인에 아주 부합되지 않는 농담을 했다. 나는 내 언행이 옳지 않다는 것을 의식했지만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다. 그 하루 종일, 나가서 저녁 식사를 할 때까지 나는 그냥 이러했다. 나는 자신에게 갈수록 화가 났지만 그래도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다.

내가 차를 운전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에야 사부님께서 이미 나에게 많은 점화를 주셨다는 것을 의식했다. 사실 지금 회상해 보면 그런 점화는 아주 뚜렷했고 심지어 점화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뚜렷했다.

내 다섯 살 조카는 장난이 심하고 귀여운 아이다. 그날 그는 이전보다 더 장난이 심했다. 동생은 그에게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호들갑 떨지 마!” 그날 그는 조카에게 적어도 열 번은 이 말을 했겠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건 실제로 사부님께서 그의 입으로 나에게 ‘뽐내고, 호들갑 떨고, 표현하는 것’을 중지시키려고 하셨던 것이다.

내가 자신의 근본 잘못을 인식했을 때 그야말로 머리에 방할을 맞은 것 같았다. 나는 갑자기 몸의 아주 무거운 압력이 대번에 다 없어진 것을 느꼈다. 사부님 도움으로 나는 근본적인 집착을 인식했고 아울러 그의 근원을 파냈다.

수련생과 수련환경을 소중히 여기다

내 몸에 존재하는 다른 하나의 문제는 바로 수련생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며 대법 수련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소중히 여기지 못한 것이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수련하는 것은 박해 받을 우려가 없는 얻기 어려운 기회다. 하지만 바로 환경이 너무 느슨함으로 인해 쉽게 게으름과 자만심이 야기되고 심지어 대법의 소중함조차 보아내지 못한다. 이 역시 다른 수련생을 대단찮게 보고 존중하지 않음을 조성했다.

나는 자신의 집착심을 인식했다. 늘 남의 집착을 보고는 다른 사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했다. 그들에게 정이 있든 나태하든 나는 안하무인격으로 그들을 평가하고 심지어 그들을 존중하지 않았다. 아주 오래 동안 나는 한 수련생과 모순이 있었지만 나는 심지어 모순을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수련생으로서 세 가지 일을 하기에 노력하고 있을 때 사부님께서는 언제나 나에게 점화하거나 방할하셨다.

몇 달 전 나는 한 동료에게 대법을 소개했다. 그녀는 아주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았고, 내가 말하는 대법에 관한 일도 접수했다. 그녀는 박해 소식도 조금 들었다고 했으며 불교신자라는 배경도 좀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녀가 시작하자마자 ‘전법륜’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해 입문서인 ‘파룬궁’ 책을 그녀에게 보여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녀에게 ‘전법륜’을 주었을 때 그녀는 몹시 격동하며 나를 포옹했다. 그녀는 또 즉시 읽어볼 것이라고 했다.

며칠 후 나는 전화로 그녀에게 읽어 보았는지 물었다, 그녀는 읽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아주 읽기 재미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튿날 그녀 생활에 갑자기 큰 재난이 나타났다. 그녀의 17살이 된 건강한 아들이 갑자기 감염 증세가 생겼을 뿐만 아니라 전신에 만연됐다. 장기도 손상을 입었고 게다가 여러 번 작은 뇌졸중과 심장 쇠약 증세도 나타났다. 그는 병원에 두 달 있었으나 생명이 위태로울 뿐만 아니라 갈수록 나빠졌다.

매번 이 동료와 말할 때마다 나는 ‘전법륜’을 다 읽었냐고 물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책을 만지지조차 하지 못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두 달 후 그녀 아들이 퇴원했다. 비록 심장 문제가 아직도 개선되지 않았지만 동료의 상황은 조금 호전됐다. 그래서 나는 또 ‘전법륜’을 읽으라고 권했고 그녀도 대답했다. 그러나 그녀가 읽기 시작 했을 때 그녀 남편이 갑자기 아무 까닭 없이 아주 폭력적으로 변했으며 늘 그녀에게 화를 냈다. 이는 또 그녀의 책 읽기를 지연시켰다. 하지만 이렇다 했지만 그녀는 그래도 책을 다 읽었고 게다가 또 두 번째 볼 생각을 했다. 이 때, 그녀는 나에게 그녀 아들의 상황이 호전되기 시작했다고 알려주었다.

이때 나는 그녀 몸에서 나타난 모든 상황은 모두 그녀의 ‘전법륜’ 읽기와 관계있다는 것을 즉각 인식했다. 이는 나에 대해 말하면 방할이었다. 오직 파룬따파에 접촉하기만 하면 그녀는 이렇게 많은 위기를 넘길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자신이 대법제자로 될 수 있은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의식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렇게 긴 시간을 다졌고 두 개의 지구, 2억 년의 역사에 이 일을 배치했다. 대법제자로서 말하자면 당신들은 자신의 사명을 완성하지 않을 어떤 이유도 없다. 당신이 여기에 앉게 되었다면, 당신이 대법제자라고 불린다면, 당신이 정진하든 정진하지 않든, 신수련생이든 노수련생이든 간에 당신은 곧 이 책임이 있다. 만약 인연이 없으면 당신은 오늘 절대로 여기에 앉을 수 없다.”[2]

대법제자로 될 수 있는 것은 행운이므로 더욱 소중히 여길만한 것이다. 비록 사부님께서 아주 일찍부터 우리에게 알려 주셨지만 나는 오히려 동료에게 일이 발생할 때까지 줄곧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나는 자신의 문제가 있는 곳을 인식하고 시정함으로서 정확한 궤도로 돌아가도록 노력하는 중이다.

나는 지금 수련생 매 한 분을 소중히 여길 뿐만 아니라 수련인답게 수련생과의 모순을 해결하려고 힘쓰고 있다.

이기심을 극복하고 모순을 해결하다

마지막으로 나는 여러분과 내가 어떻게 이기심을 극복하고 수련생과의 장시기적인 모순을 해결했는지 나누려 한다.

나는 이 연공장에 오기 전에 이미 1년 남짓 수련했다. 이전에는 내 신변에 수련생이 없었고 서로 도와주는 환경도 없었다. 나는 그 때 만약 내가 수련해 내려면 반드시 수련 환경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장 가까운 연공장이 차를 몰고 한 시간 반이나 걸렸지만 나는 그래도 현지 책임자와 연계해 그에게 단체 연공과 단체 법공부 상황을 물었다. 그는 나에게 서양 수련생 한 명을 소개해 주었다. 이 서양인 수련생은 아주 열심히 시간을 짜내 나와 함께 법공부와 연공을 했다. 이곳에는 서양 수련생이 아주 적어서 그도 무척 고독했던 지라 나와 함께 법공부와 연공하기를 좋아했다.

1년 남짓한 동안 우리는 줄곧 함께 법공부, 연공을 했고 그는 또 나에게 큰 연공장을 소개해 주었다. 모든 것이 아주 순조롭게 진행돼 가고 있을 때 우리 둘의 집착과 정이 생겨났다. 나는 우리가 함께 일하는 것은 더욱 많이는 우정에서 나온 것이지 법을 위해서가 아님을 발견했다. 내가 이 점을 인식했을 때, 나는 그와 함께 있으면 편안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모순을 만들고 싶지 않았으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서히 상황은 갈수록 나빠졌지만 나는 모순이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1년이 지났다. 우정에 대한 우리의 집착은 발전하고 있었지만 끊어야 할 때도 다가왔다. 나는 이사를 했다. 아울러 더는 그와 함께 있지 말아야 한다는 강렬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에게 해석하지 않았다.

어느 날 단체 법공부 후, 나는 이 수련생과의 연락을 철저히 끊어버렸다. 우리는 페이스북에서 몇 번 우호적이 못 되는 대화를 나누었고 내 행위도 완전히 법에 있지 않았다. 그 후의 2년 동안 우리는 더는 연락하지 않았다. 처음에 그는 나와 함께 법공부, 연공하자고 약속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함께 있으려는 구실임을 알고 있었다. 나는 이기적이고 충돌을 일고 싶지 않은 심리로부터 그의 요청을 밀어버렸다. 그 때부터 2년이란 동안, 매번 연공장이나 션윈 공연 때 상대방을 만나도 못 본 척 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들 상호 간에 당신들의 사람마음에 의해 배척되어 나간 그런 수련생, 물론 역시 잘하지 못하고 분분히 불평하면서 떠났는데, 당신이 그를 되찾아 오지 않는다면 당신도 죄를 범하는 것이다. 당신은 그것이 속인의 일과 마찬가지로, 지나갔으면 지나간 것이라고 여기는가? 그렇게 간단한가?”[2]

사부님의 뉴욕 설법을 듣고 또 나의 동료의 일을 겪은 후에야 나는 나 자신을 바로 잡아야 하고 충돌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의식하게 됐다. 그래서 이 수련생과 연락하고 내 행위에 대해 사과했으며 아울러 우리 둘 사이에 발생한 일에 대한 책임을 짊어졌다. 며칠 후 그는 내 사과를 받아들였다. 나는 일이 바른 궤도로 돌아왔음을 알았다. 내가 연공장에서 다시 그를 만났을 때 연공이 끝난 후 다가가서 그와 말했다. 우리는 이야기를 잘 나누었으며 서로 악수하고 헤어졌다.

수련생으로 말하면 정체 형성은 아주 중요하다. 사소한 일을 가지고 우리의 주요한 책임을 교란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서로 협력해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 가령 나처럼 방금 말한 사소한 충돌 같은 것을 장기적으로 해결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장차 얼마나 큰 손해를 조성할지 누가 알겠는가? 나는 정말 시간이 아주 긴박함을 느끼고 힘내어 뒤쫓아 가도록 노력하고 있다.

여러분이 수련 체험을 들어주셔서 감사드린다. 만약 부적절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감사합니다.

(2016년 미중부 법회 발언고)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오스트레일리아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16년 뉴욕법회 설법’

문장발표: 2016년 8월 9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8/9/33269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