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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심을 연마해 없애다

글/ 허베이 대법제자

[밍후이왕] 여러분과 원망심을 제거하는 과정을 교류하려고 한다.

개인적으로 원망심에는 불만과 증오가 포함되어 있고 무슨 일이 자신의 사욕을 만족하지 못했거나 자기의 무슨 물건을 영향 주었을 때 마음속으로 생긴 불만과 쌓인 원한이라고 생각한다. 수련생지간 혹은 일상생활 중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나쁘다고 하거나 당신에 대해 의견이 있을 때, 어떤 사람이나 어떤 일에 만족하지 않을 때 흔히 원망하는 마음이 생긴다. 만약 제때에 그것을 발견하고 제거한다면 이런 마음이 쌓이지 않지만 당시 마음에 두지 않거나 무슨 핑계로 덮어 감추면 이런 마음이 쌓이는데 쌓인 원한이 너무 많고 많으면 증오가 생긴다. 원망심은 대부분 잘 아는 사람이거나 가족지간에 생긴다.

원한심도 찾았고 제거도 했으며 승인하지도 않으면 쉽게 원망심을 없앴을 수 있을까? 꼭 그런 건 아니다. 어떤 원망심은 금방 나왔을 때 제때에 발견하고 제거하면 쉽게 없앨 수 있지만 어떤 원망심은 시간이 너무 오래됐고 어떤 것은 어릴 적부터 쌓이고 쌓여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다. 이런 원망심은 쉽게 한두 번 만에 제거할 수 없고 한층 한층 제거해야만 제거할 수 있다.

어머니에 대한 원망은 바로 어릴 때부터 형성된 것이다. 나에 대해서 이 마음을 없애는 과정은 정말로 고생스럽고 힘들었으며 여러 차례 반복했고 한동안은 어떻게 넘겼는지도 모른다. 정말로 뼈에 사무치듯 아팠다.

어머니는 생활에서 스트레스가 많았고 아이가 많아서 내가 어릴 때 늘 우리를 욕하고 때리셨다. 나는 어머니의 이런 행위에 대해 몹시 화가 났고 늘 싸웠으며 다른 집 엄마처럼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원망했다. 거기에 부모님은 사흘에 한 번씩 작은 싸움, 닷새에 한 번씩 큰 싸움을 했다. 내가 철이 든 이래 싸움이 없는 집안이 어떤 것인지 몰랐다. 어릴 때 그들이 싸우기만 하면 우리는 밥을 먹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은 어머니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의 잔소리 때문에 온가족이 편하게 있을 수가 없었다. 법을 얻기 전에 만사가 순조롭지 않았고 원망심이 많았으며 고집이 강했고 무슨 일이든 이치를 따졌다. 특히 어머니를 원망했다. 초중학교 때 어머니와 한번 싸운 후부터 결혼할 때까지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고 법을 얻었어도 부르지 않았고 모녀지간에도 대화가 없었다.

대법을 얻은 후 대법의 요구대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했기에 어머니와 싸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고치려고 노력했지만 표면적으로 좀 고쳤지 원망심을 진정으로 없애지 못했다. 여전히 어머니를 원망하고 미워하고 화를 냈다. 매번 화를 낸 후 심성을 지키지 못했다고 자신을 질책하며 몹시 후회했고 다음에 반드시 심성을 지키고 화를 내지 않고 잘하겠다고 스스로 타일렀지만 일에 부딪히면 한두 마디 하지 못하고 또 화를 내곤 해 ‘이 원망심을 왜 깨끗하게 없앨 수 없지?’라고 스스로 고민했다. 법공부할 때 머리에 온통 어머니의 잘못과 자매들에 대한 원망이었다. 자매들도 나에 대해 의견이 있었지만 마음에 두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떠한 집착심이든 당신에게 있기만 하면, 각종 환경 중에서 그것을 닳아 없어지게 해야 한다. 당신에게 곤두박질치게 하고 그 중에서 도(道)를 깨닫게 하는데, 바로 이렇게 수련해 온 것이다.”[1]라고 알려주셨다. 원망심을 없애는 과정은 사부님의 이 한 단락 설법을 더욱 증명했다.

부모님은 80세가 넘으셨고 최근 몇 년간 건강이 좋지 않고 스스로 생활할 수 없어 우리 자매들이 번갈아 돌봐야 했다. 이렇게 어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게 되자 모순도 폭로됐다. 원망심이 존재하기 때문에 어떤 때 심성을 지키지 못하고 병으로 앓아누운 어머니와 싸웠으며 듣기 싫은 말을 해 자신도 아주 고민했다.

원망심을 제거하려는 마음을 먹은 것은 언니의 한 마디 말이었다. 한번은 큰 언니가 “다른 사람은 대법을 배워 환골탈태의 변화가 생겼는데 넌 왜 변화가 없니? 셋째 동서는 불교를 믿더니 아주 잘 배워 사람이 많이 변했더라. 너도 불교를 배우는 것이 낫겠어!”라고 했다.

아! 갑자기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의식했다. 대법제자가 박해받는 몇 년간 가족은 나보고 배우지 말라고 말한 적이 없었는데 어머니에 대한 나의 태도로 인해 그들이 대법에 대해 선입견을 갖게 했다. 나는 즉시 “큰 언니, 대법이 안 좋은 것이 아니라 내가 사부님 말씀을 듣지 않아서 그래. 내가 잘 배우지 못했어”라고 했다.

대법에 먹칠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했고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이젠 갈 길이 없다. 반드시 법공부를 잘하고 반드시 어머니에 대한 원망심을 없애야 한다. 내가 대법을 배워 정말로 변했고 성격이 좋아졌다는 것을 꼭 가족에게 보여주고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와 대법이 좋다는 것을 인정하게 해야겠다.’ 많은 수련생은 대법의 문에 들어서자 착실하게 수련하고 집착을 없애는 것을 해냈지만 난 이제야 심성을 닦기 시작했다. 대오에서 낙오해 사부님께서 신경 쓰시게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녁에 잠이 들지 않았다. 왜 나는 원망심을 없애지 못할까?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나는 안을 향해 찾고 수련생을 찾아 교류했다. 수련생은 “선량하지 못해요. 속인도 ‘듣기 좋은 말은 추운 겨울에도 사람을 따뜻하게 하고,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은 더운 여름에도 사람을 춥게 만든다’라는데 수련인으로서 당신은 어떻게 어머니에게 그런 심한 말을 해요?”라고 했다.

수련생의 말은 날 일깨워줬다. 어머니에게 악랄하게 말하고 화를 내는 것이 바로 악이다. ‘악’은 무엇인가? 사부님의 “사람의 마성은 곧 악(惡)으로서, 살생하고, 훔치고 빼앗고, 이기적이고, 사념(邪念)적이며, 시비를 걸고, 선동하며 요언을 날조하고, 질투하고, 악독하며, 발광하고, 게으르고, 인륜을 어지럽히는 등등으로 표현된다.”[2]는 말씀이 생각났다.

내가 화를 낼 때 정말로 사부님께서 설법 중 말씀하신 마성의 그런 ‘악독’, ‘발광’하는 표현이었다. 당시 사상은 완전히 마성에 조종되고 통제돼 있었는데도 스스로 모르고 자신이 화를 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자신이라고 생각할수록 그것이 날 더욱 조종할 뿐만 아니라 점점 마성이 커진다. 그것을 똑똑히 분별하지 못하고 그것을 제어하지 못했기에 인위적으로 그것을 자양시켰다. 그것을 인정했기에 사부님께서도 날 도와 그것을 없애실 수 없었다. “수련자가 마성을 닦아 제거하지 않으면, 공(功)이 크게 난잡해져 얻지 못하거나 마도(魔道)로 들어간다.”[2]

오로지 마성을 제거해야만 철저히 원망심을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을 체득했다. 사부님께서 설법 중 “부처수련이란 바로 당신의 마성을 제거하고 당신의 불성을 충실히 하는 것이다.”[2]라고 말씀하셨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는 나와 어머니의 모순을 이용해 내 마성을 연마하게 하셨지만 나는 깨닫지 못해 몇 년 동안 사부님께서 신경 쓰시게 했다. 지금에야 자신의 마성이 자양돼 너무나 강하다는 것을 의식했다.

마성의 근원은 이기적인 마음이라는 것을 찾았다. 이기적인 마음 때문에 어머니를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어머니를 돌보는 것을 싫어했다. 어머니를 돌보면 내게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으며 이전에 나를 잘 대하지 않고서 늙어서 나에게 돌봐달라는 것이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원망심의 근원은 이기적인 마음이고 자아를 집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질투심, 쟁투심, 반항심이 있고 독선적이고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싫어하는 마음 등이 있었다. 이런 것들은 다 사람의 마성이다.

자신의 문제를 대면했다. 대법제자로서 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가지려는 것이 무엇인가? 사부님께서 법 중 우리보고 ‘무사무아’에 도달하라고 요구하셨는데 난 아직 멀었다.

강도 높은 발정념으로 자신의 공간장을 청리했고 공간장 중의 마성, 당문화의 물건 등은 자신의 것이 아니고 제거해야 한다고 중시했다. 발정념할 때 처음에 머릿속에 어머니에 대한 각종 좋지 않는 생각이 자꾸 떠올랐다. 그리하여 “비록 수련의 일을 말할지라도 마음속의 고집을 버려야 하느니라 잘라버리는 것은 자신이 아니요 모두가 미혹 속의 어리석음이로다”[3]라는 사부님의 법을 외웠다. 또 노력해서 법에 부합되지 않는 생각과 당문화의 물건을 머릿속에서 쏟아버렸고, 그것은 진정한 자신이 아니니 갖지 않겠다고 했으며, 이전에 어머니에 대한 좋지 않은 생각을 전부 쏟아버렸다. 그랬더니 다시 어머니를 보자 이전에 좋지 않은 생각이 몽땅 사라졌다. 새로운 좋지 않은 생각이 떠오르면 안을 향해 찾고 제때에 제거하고 바로 잡았다.

우리 자매 몇은 낮에 번갈아 가며 부모를 돌봤는데 보통 교대할 사람이 와야 갈 수 있었다. 셋째 언니가 날 교대했는데 어떤 때 좀 늦게 오면 어머니는 왜 아직 오지 않느냐고 잔소리를 하셨다. 처음에 늘 화를 내며 자매 간의 일인데 왜 자꾸 오지랖을 피우며 잔소리를 하냐고 어머니를 원망했다. 원망심을 없애는 것을 중시한 후 안을 향해 찾을 줄 알았다. ‘난 수련인인데 일에 부딪히면 자신을 연마하지 않고 어찌 속인을 원망할 수 있는가? 틀림없이 내가 틀렸다. 어디에 틀렸을까? 어머니의 각도에서 문제를 생각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잔소리는 날 위한 것이다. 셋째 언니가 빨리 오지 않으면 어머니 집과 멀리 떨어져 있는 내가 집에 늦게 들어갈까 봐 걱정해주시는 것인데 이해는커녕 오히려 원망하다니.’ 이렇게 생각하자 마음속의 원망도 없어졌다. 한 발자국 더 물러서서 어머니가 잔소리할 이유가 없고 날 잘 대하지 않으셔도 원망해서는 안 되고 어머니를 포용하고 이해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집착심을 제거할 좋은 기회를 제공해주셨고 집착심을 찾아내 없애고 원한이 없도록 해주신 어머니에게 감사드려야 한다. 어머니에 대한 원망심이 나왔을 때 그것을 찾아내 그것을 제거하고 자신을 찾았다.

진정으로 원망심을 제거하려면 반드시 법공부를 많이 해야 하고 “법 중에 용해되자(溶於法中)”[4]를 해내야 한다.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5] 이기 때문이다. 매번 법으로 자신을 세척하고 머릿속에 법을 가득 채우고 법에 부합되는 사상을 내보내야 좋지 않는 요소에 통제되지 않는다. 법공부할 때 글마다 마음에 닿게 해야 하고 형식만 갖춰서는 안 된다. 한동안 비록 속인의 일이 눈앞에 있었지만 머릿속은 이런 인간세상의 분쟁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지금 다시 모순과 일에 부딪히면 먼저 사부님의 법 중 어떻게 요구하셨는지 생각하고 법에서 요구하신 대로 했다. 바로 이렇게 간단한 일념이다.

부모님을 돌보는 것을 내 시간을 낭비한다고 다시는 생각하지 않았고 반드시 온힘을 다해 딸의 본분을 다하겠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을 돌보는 것은 수련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날 방해하지 못한다. 내가 조금 적게 휴식하고 길에서 진상자료를 배포하고 사람을 구하면 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사람의 불성은 선(善)으로서, 자비로 표현되며 일을 함에 우선 남을 고려하고 고통을 참고 견딜 수 있는 것으로 표현된다.”[2]라고 알려주셨다. 부모의 어려움을 깊게 체득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알뜰히 그들을 돌봤고 다시는 누구의 잘못을 따지지 않았고 무슨 일이든 될수록 어머니 뜻을 따랐고 다시는 어머니와 다투지 않았으며, 일을 많이 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기타 자매들에게 남겨주지 않았고, 손해 보는지 생각하지 않았고 화도 내지 않았으며, 가족에 대해서든 남에 대해서든 다시는 자신의 표준으로 가늠하고 요구하지 않았고, 자신에 대해 엄격하게 요구하고 자신의 일언일행, 일사일념이 법에 부합되게 했다. 어떤 때 자신을 느슨하게 하면 원망심이 또 나오는데 그렇게 되면 즉시 그것을 찾아내 바로 잡았고 이렇게 견지했다. 원망심이 나올 때 그것을 제멋대로 놔두지 않았고 반대로 집착심을 연마해 없애게 한 기회를 준 어머니에게 감사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러 번의 반복을 거친 후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에 대해 몇 년간 쌓아둔 원망심이 없어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마음은 안에서부터 바깥까지 특별히 밝았고 훤했고 물에 세척한 것처럼 맑았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도와 이 원망심을 없애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부님께서 ‘2005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중 집착심을 제거하는 한 질문에 답하신 설법을 공손히 보자. “제자: 교만, 질투 등과 같은 자신의 집착을 인식할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늘 제거해 버리지 못합니까? 사부: 만약 당신들이 정말로 이런 것들을 그토록 중하게 본다면 곧 그것을 억누를 수 있으며, 그럼 당신은 그것을 약화시킬 수 있고 점차 철저하게 제거해 버릴 수 있다. 만약 당신이 나는 알고 있다고 느끼고, 또 아주 조급해하지만, 그러나 실천 중에서 당신은 결코 진정으로 그것을 억누르지 않고 그것을 억제하지 않았다면, 사실 당신은 단지 이런 사상 활동을 오로지 보고 느끼는 것에만 머물러 있을 뿐, 당신은 그것의 행위를 억제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당신은 단지 생각만 했지 결코 실천하여 닦지 않았다. 또 한 가지가 있는데, 당신은 나 역시 마음을 써서 닦았고 나는 실천 중에서도 이렇게 했다고 말하는데, 또한 이런 정황도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장기간 양성된 것 역시 구(舊) 우주의 생명에 눌려 내려온 요소들에 의해 층층이 분할되었기 때문에, 매 한 층을 돌파하면 한 층을 제거해 버리고, 한 층을 돌파하면 한 층을 제거해 버리며, 한 층을 돌파하면 한 층을 제거해 버린다. 그러므로 그것은 갈수록 약해지며 갈수록 적어진다. 그것은 단번에 전부 제거되지는 않는데, 이런 표현이 있다. 수많은 다른 속인의 마음을 포함하여 역시 이런 표현이다.”

이외에 어머니에 대한 원망심에 사상업(思想業)도 존재한다는 것을 의식했다. 어머니를 향해 언제나 좋지 않은 생각을 했기 때문에 다른 공간에서 다른 하나의 ‘어머니’가 형성됐다. 이 ‘어머니’는 나의 사상업력으로 형성된 것이고 좋지 않는 물질로 구성된 것이기 때문에 이 가짜 ‘어머니’는 현실 중의 어머니를 통제해 날 화내게 하고 성질을 부리게 함으로써 날 방해하는 목적에 도달하려고 하는 것이고 내가 아무리 수련해도 잘 수련하지 못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해 내 의지를 훼멸시키려는 것이다. 한동안 난 정말로 매우 소침했고 잘 연마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이후에 법공부를 통해 수련생과 교류해서야 소침한 상태에서 걸어나왔다.

이상은 내가 어머니에 대한 원망심을 없앤 약간의 체득이다. 부족한 곳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불성과 마성(佛性與魔性)’

[3] 리훙쯔 사부님의 시가: ‘홍음2-고집을 버려라(去執)’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법 중에 용해되자(溶於法中)’

[5]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2-교란을 배제하자(排除幹擾)’

[6]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2005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문장발표: 2016년 7월 2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7/28/33199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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