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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외우는 중에서 개변

글/ 동북 청년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나는 자신의 가장 큰 수확이 법외우기를 견지할 수 있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일부 체득을 써내 수련생들과 교류하겠다.

1. 법학습 상태를 개변해 마음에 들어가도록 법공부하다

어릴 때부터 나는 다정다감한 사람이고 책보기, TV 영화를 좋아했다. 때문에 수련 이후 나의 사상업은 지극히 무거웠다. 책 속에서 TV에서 그런 명리색기 등의 것들이 내 머릿속에서 늘 들끓어 사상은 거의 청정할 때가 없었다. 10여 년 동안 수련하면서 마음에 들어가도록 법공부한 적이 아주 적었다. ‘전법륜’ 한 강의를 읽어도 기억하는 것이 몇 마디 되지 않았다. 책을 볼 때 사상업이 머릿속에서 말처럼 날뛰어 사상이 수련 속으로 전념하지 못하게 했다. 법공부가 따라가지 못하자 수련상태는 생각만 해도 알 수 있다. 가끔 나는 자신이 마치 대법 속에서 대충 때우는 것 같이 느껴졌고 법을 잘 배우지 못하니 자신을 진정으로 수련하기 아주 어려웠다.

자신의 20여 년 수련을 돌이켜보면 대부분 책을 보는 시간이 모두 형식으로 걸어가고 마음속에 들어가도록 법공부가 되지 않았다. 느낌에서 ‘전법륜’을 한 번도 마음을 조용히 하고 읽지 못했는데 정말로 너무나 부끄럽다! 작년 말 나는 이런 상태로는 더는 계속해 나갈 수 없고 개변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나는 진지하게 생각했다. 이렇게 무거운 사상업으로 어찌 진정으로 마음에 들어가도록 법공부할 수 있겠는가, 진정으로 자신이 배운 것인가? 그럼 오로지 한 가지 방법만 있었는데 바로 법을 외우는 것이었다! ‘전법륜’을 외우기 시작했다. 이전에 나도 책을 외운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의지가 단호하지 못하거나 추구하는 마음을 지니고 외워 효과가 크지 않았고 견지하지 못했다. 이번에 나는 지난번 교훈을 정리했고 자신에게 두려워하는 심리를 극복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또한 구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지속적으로 법공부를 견지했다.

사상업이 너무나 무거웠기 때문에 가끔 외울 때 사상이 딴 곳으로 갔다. 그리하여 나는 자신에게 법을 외울 때는 책 속의 매 글자가 모두 눈앞에 나타나도록 요구했고 진정으로 마음에 담아서 배우도록 했으며 자신이 배우도록 했다. 매번 내가 이 상태에 도달할 때 나는 사상 속에서 그러한 좋지 못한 것들이 제거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머리는 명석하게 변했다. 법속의 일부 내포는 가끔 단번에 명백해졌다.

법을 외운 후에 나는 또 한 가지 이치를 깨닫게 됐는데 바로 법을 외울 때의 심태를 단정히 하는 것이다. 법을 배울 때 지극히 세밀한 일념도 바르지 않거나 불경하면 모두 안 된다. 한번은 법을 외울 때 한 단락 말에서 나는 반복적으로 여러 번 외워도 기억할 수 없었다. 나는 원인을 찾았는데 내심에서 사부님의 법에 대해 일종 거부가 있었는데 사실 바로 믿지 않음이었다. 나는 내가 당시 한 단락 법을 외울 때 사부님 말씀에 대해 잠재의식에서 심사하는 태도를 지니고 있었는데 사람의 후천 관념과 실증과학으로 문제를 보는 각도로 사부님 말씀을 심사하는 것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내가 여기까지 찾았을 때 자신도 깜짝 놀랐고 내가 이전에 법공부를 해도 왜 변화가 크지 않았는지 갑자기 알게 됐다. 내 심태가 맞지 않았고 법에 대조해 자신을 대조하고 바로 잡지 않으며 자신의 후천 관념과 사람의 시비로 대법을 가늠하고 있었으며 자신을 법보다 더 높이 놓았으니 실로 너무나 가소롭고 너무나 주제를 모르며 사부님에 대해, 법에 대해 너무나 불경했다! 그러니 법속에서의 내포가 어찌 나에게 펼쳐지겠는가? 내가 자신의 심태를 개변하고 가로막고 있는 그런 관념을 제거한 후 그 법을 외우자 외워졌다.

법을 외우는 과정에서 나도 점차적으로 자신의 게으름, 두려움, 구하는 마음, 조급함 등 집착을 알게 됐다. 이전에 ‘전법륜’을 외운다고 생각하기만 하면 너무나 길게 느껴지고 언제 외울지 몰랐으며 게으름과 두려운 심리가 생겨났다. 그리고 조급한 마음이 있었는데 가끔 수량과 진도를 추구하느라 열심히 하지 않고 대충 외우고 끝냈으며 또 마음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이번에 나는 자신에게 법을 외우는 것은 더욱 잘 법을 배우기 위함이고 법을 이해하기 위함이라고 경고했다. 그리하여 자신이 진정으로 법을 얻고 대법에 동화하고 승화하게 했다.

작년 3월부터 시작해 나는 ‘누가 연공하면 누가 공을 얻는다’, ‘수구’, ‘불성’, ‘법속에 용해되다’ 등 비교적 짤막한 경문을 외웠고 또 3개월 시간으로 ‘따지웬(大紀元)회의 설법’을 외운 후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를 해야 한다’ 경문을 외웠다. 현재 나는 이미 법 외우는 상태에 습관 됐고 책을 들기만 하면 법을 외우려고 했으며 조급함, 두려움, 구함 등 집착도 자신도 모르게 많이 옅어졌다. 법을 외우는 것을 견지해나갈 것이고 영원히 계속할 것이다!

법을 외우면서 내 사유는 점차적으로 명석해졌고 이전에 매번 사유가 복잡하고 외워나가지 못할 때 나는 이런 상태가 법 외우는 품질에 영향 준다고 여기며 외우는 것을 포기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이럴 때일수록 정사대전의 시각임을 인식했고 외울 수 없을 때일수록 마땅히 외워야 하고 그러한 교란하는 사악한 요소를 전부 제거할 때까지 해야 한다. 주의식이 명석해졌고 진정한 자신이 자기의 사상과 행위를 주도했다. 과거에 나는 늘 원장이 무엇을 말하면 나는 생각하지 않고 반격하지 않았으며 시키는 일이 맞는지 틀린지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러나 법을 외우고 교류문장을 보면서 나는 진정으로 이런 미혹된 상태에서 걸어나올 수 있었다. 내심에서 나는 여기서 진정한 주역이 됐다고 인식했으며 대법제자가 하는 일의 표준을 법으로 가늠해야 하고 어떠한 요소에 의해 좌우지되지 말아야 하며 일체는 내가 주도해야 함을 인식하게 됐다.

이익, 쟁투, 유혹으로 충만한 세상에서 대법제자는 명석함을 유지하고 세파에 따라가지 말아야 하며 스스로 몸을 지켜야 하는데 이는 모두 법속에서 온 정념과 용기에 의지해야 한다. 작년 여름에 나는 한 환자를 치료한 적이 있고 그는 자신의 어머니와 할아버지를 모시고 와서 나에게 치료를 원했다. 나는 두 환자를 동시에 볼 수 없었기에 할아버지를 원장에게 맡겼다. 결국 환자가 사망하자 후에 원장은 고의적으로 환자 할아버지 앞으로 1천 위안의 돈을 더 받았다.(이때 환자는 비용을 전부 내지 못한 상황) 집에 돌아가서 나는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했다. 원장이 이렇게 했지만 나는 저지할 수 없었고 그들 사이의 인연 관계를 나는 볼 수 없었지만 나는 일념을 내보냈다. 법에 부합되지 않는 일을 나는 단호하게 하지 않겠다! 나는 나중에 간접적으로 원장을 일깨워주어 환자의 돈을 더 받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말했다. 이후 원장은 환자 치료 후 1천 위안을 더 받지 않았다.

2. 근본 집착을 인식하고 안을 향해 자신을 실질적으로 수련하다

나는 병원 문진부에서 일하고 있고 의학은 모험성이 아주 크기에 업무적으로 일종 불안정 상태에 처해 있었으며 자칫 잘못해서 환자와 자신에게 만회할 수 없는 손실을 가져다줄까 봐 두려웠다. 이 병원에서 2년간 일했고 매일 아주 바쁘고 피곤했으며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할 수 없었다. 아울러 원장은 내 업무능력에 대해 아주 불만족했고 나는 길 잃은 사람처럼 방향을 찾지 못했다.

작년 상반기에 밍후이왕에서 신사신법 교류문장을 여러 편 연속 발표했고 이는 나에게 큰 계발을 주었다. 나는 안을 향해 찾는 면에서 엄중한 문제가 있었다. 아주 오랜 시간 내 수련은 모두 흐리멍덩한 상태였고 자신이 대법 속에서 대충 시간을 보내고 수련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여겨졌다. 지난 2년간 나는 절대다수 시간, 정력을 모두 업무에 투입시켰고 잠재의식 속에서는 오로지 기술을 잘 배워야 돈을 벌 수 있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필사적으로 기술을 추구할 때 효과는 미미했고 바꿔온 것은 끊임없는 실수와 원장의 무시였다. 거기에 어릴 때부터의 부정적 사상이 엄중해 일에 부딪히면 나쁜 방향으로 생각하고 자신감이 없었기에 나는 하루 종일 우려 속에서 보냈고 내심은 아주 고달프고 피곤했으며 사람의 일면으로 힘들게 지탱하고 있을 뿐이었다.

‘누가 연공하면 누가 공을 얻는다’ 한 단락 법을 외울 때 나는 일부가 명백해진 것 같았고 마치 한 수련생이 말한 것처럼 내가 법속에서 수련하지 않았고 법속에서 구하고 있었다. 무엇을 구하려 했는가? 내가 안을 향해 찾으니 나는 사람 속의 안일한 생활을 구하고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집착을 가지고 법을 배우는 것은 진정한 수련이 아니다. 하지만 수련 중에서 자신의 근본적인 집착을 점차 인식하여 그것을 제거함으로써 수련인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근본적인 집착인가? 사람은 세상에서 많은 관념을 양성했으며, 관념에 이끌려 동경하는 것을 추구한다.”[1]

나는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고 사람의 집착을 지니고 법속에서 구하고 있었고 일 함에 있어서 순조로움을 구했고 가정의 아름다움, 사람 속 생활 속의 안일함과 편안함 등이다. 동시에 사람의 관념, 당문화, 실증과학과 진화론, 무신론의 영향으로 신에 대한 신앙, 신적 등 이런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의심했고 100% 신사신법을 하지 못했다. 이전에 일에 부딪히면 나는 관용적인 사유가 ‘내가 잘하기만 하면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 해결해주실 것’인데 기점은 여전히 문제 해결에 있었고 사람 속에 떨어져 있었다. 법학습과 수련생들의 교류문장을 보고서 나는 점차 알게 됐는데 수련인은 모순을 직접 마주해야 하고 일에 부딪히면 법의 표준에 따라 행해야 하며 자신의 법에 부합되지 않는 곳들을 찾아내 대법에 따라 바로 잡아야 하는데 이렇게 간단하다.

나는 깨닫고 행하는 사이에 한 가지 과정이 있다고 생각되는데 이 과정이 바로 실질적인 수련이다. 이전에 나는 늘 책을 많이 보고 법공부를 많이 하면 된다고 여겼다. 그러나 나는 안으로 찾는 것을 홀시했다. 수련인이 안을 향해 찾지 않으면 그 일체는 모두 빈 말이다. 나는 안을 향해 찾는 것도 실질적인 수련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한동안 나는 원장에 대한 원망이 아주 무거웠다. 이 공간에 대응된 것은 바로 그 기간에 그녀는 나를 보기만 하면 화를 냈고 내가 잘못한 일이 없어도 나를 보는 원장의 시선이 불편했다. 오랫동안 나는 마음속으로 원장에 대한 불만과 원한을 억누르고 있었고 이는 나를 괴롭게 했다. 나는 이 관을 넘기가 아주 어렵다고 여겼다. 한번은 수련생 집에서 돌아온 후 가족 수련생과 교류했다. 나는 내심 깊은 곳에서 일종 냉랭하고 딱딱한 것이 숨어 있는 것을 느꼈는데 이것의 본질은 이기적인 것과 악이었다. 한순간에 나는 명백해졌는데 일체 모두 내 잘못이었고 내심의 이런 사적인 것과 악한 물질이 건드려지자 원한을 품게 된 것이고 이런 냉랭하고 딱딱한 물질은 바로 내가 제거해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안을 향해서 도대체 무슨 원인인지 찾았다.

원장에 대해 어찌하여 이렇게도 강렬한 불만과 원한이 생겼을까? 그것이 바로 명에 대한 추구였다! 지금까지 원장은 다른 한 동료를 아주 좋아하고 수시로 그녀를 칭찬하며 나에 대해서는 아주 무시했다. 내가 모든 노력과 헌신을 해도 원장은 한 치의 긍정과 칭찬이 없었고 이에 대해 나는 깊은 불만과 원한이 생겼다. 그녀가 나에게 내심으로 한 마디 긍정어린 말 칭찬이 있어도 나는 평형을 이뤘을 것이다. 나는 끝내 명백해졌고 나는 사람 속의 허망한 명을 추구하고 있었으며 남의 나에 대한 칭찬과 인정을 구하고 있었다. 동시에 나의 헌신이 있어도 마땅히 얻어야 할 보답을 받지 못하자 원한이 생기고 남의 칭찬을 받을 때의 그러한 우월한 느낌을 느끼려 했던 것이다!

나는 단지 일종 허무한 느낌을 추구하려고 했으니 얼마나 가련한가! 이를 얻지 못하자 원한과 불평이 생겼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내가 이전에, 대법제자는 한 수련인으로서, 문제를 볼 때 사람과 반대로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언짢은 일에 부딪히면 기분 나빠 하는데, 그러면 당신은 바로 사람이 아닌가? 무슨 구별이 있는가? 언짢은 일에 부딪혔을 때가 바로 당신 자신을 수련할 때이며 마음을 수련할 때이다.”[2] 나는 이 문제에서 내가 이미 속인과 동등해지고 이미 떨어졌음을 느꼈다. 나는 속인의 사유로 마난을 마주하고 있었고 내가 잘못했음을 알았다. 수련인으로서 나는 마땅히 사부님께서 나에게 이기적인 것과 악한 것을 제거할 수 있도록 배치해주신 이런 기회에 감사드려야 했고 마땅히 원장에게 감사하고 원망하지 말아야 했다.

이리하여 나는 깊은 체험이 있었다. 일체는 모두 사부님께서 연화해주시고 나에게 집착심을 제거하라고 하신 것이었다. 내 마음이 명랑해지자 일체 외부 물질들도 이에 따라 즉시 평온을 찾았다. 이때 나는 마치 깊은 꿈속에서 깨어난 것 같았고 문제를 보는 각도도 다시 수련자가 마땅히 갖고 있어야 할 상태로 돌아갔는데, 평화롭고, 명석하고, 투명한 이런 느낌은 정말로 아주 행복했다.

작년 5월 사부님께서는 새로운 ‘논어’를 발표하셨고 나는 그를 외웠다. 새로운 ‘논어’를 외우는 과정 중에서 나는 대법이 무엇이고 우주와 생명의 생성, 근원, 무엇이 수련이고 사람이 어떻게 신으로 수련되는지, 인류과학의 경박함 등 문제를 알게 됐다. 예전에 비해 더 깊은 인식이 있었고 나는 수련의 근본, 나의 근본 집착이 어디에 있는지 단번에 알게 됐다.

작년 7월에 나는 한 환자를 치료했고 수술 이후 반응이 비교적 좋지 않아 아주 기분이 좋지 않았다. 환자는 직접 원장을 찾았고 정서가 아주 격동되어 있었는데 이 일은 아주 좋지 못한 영향을 주었다. 환자가 가고 나서 나는 계속 걱정됐고 저녁에 마취가 풀리면 통증이 심할지 심하지 않을지, 만약 통증이 심하면 환자가 내일 와서 아마도 더욱 크게 화내면 영향이 아주 커질 것 같았다. 원장은 환자의 수술 후 통증을 해결할 더 좋은 방법이 없었고 일체는 환자가 집에 돌아간 후의 반응을 보고 다시 생각해야 했다.

온 오후 나는 이 일로 번거롭고 내일 결과가 어떨지 걱정됐다. 퇴근해서 가족 수련생에게 이 일을 말하자 나에게 신사신법하라고 했다. 이때 나는 비로소 법을 생각할 힘이 생겼고 갑자기 나는 자신이 교란 받지 말아야 함을 인식했다. 마땅히 예전처럼 정상적으로 법공부를 해야 했다! 책을 들고 법을 볼 때 내심이 여전히 평온하지 못했고 내일의 걱정으로 여전히 내 마음이 불안했으며 나는 자신에게 왜 이러한지를 물었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걱정하는가? 조용히 하고 이런 걱정의 근원을 자세히 찾아보니 내가 걱정하는 것은 일의 최종 결과를 보지 못하는 것이고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세히 찾아보니 나는 이것이 신사신법의 문제임을 발견했고 나는 자신을 완전히 사부님과 법에 맡기지 못하고 있었다. 늘 사람의 관념과 실증과학의 경험과 인식으로 무엇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내 잠재의식에서 내가 실증과학 중에서 얻은 경험과 사람의 인식을 더욱 믿고 있었던 것이다. 아울러 법의 위력과 신적에 대해서는 무신론, 진화론, 실증과학 관념의 영향으로 잠재의식 중에서 나는 늘 의심이 존재하고 있었다. 무엇을 의심하는가? 왜냐하면 나는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치 사부님 말씀과 같았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은 일종의 고집스러운 관념이 생겨서 그는 눈을 통해 본 것만이 확실하고 확실한 것이라 여기며, 그가 보지 못하는 것은 믿지 않는다.”[3] 나는 나의 근본 집착을 끝내 찾았고 그것은 바로 천백년 동안 뼛속에서 형성된 것인 바, 보지 못하면 믿지 않는 관념이었다. 그것은 줄곧 내가 완전히 법에 동화하지 못하도록 저애하고 있었고 많은 일들에서 나는 이런 관념에 가로막혀 있었다.

나는 끝내 나의 전진을 가로 막는 것을 알게 됐고 이번에 나는 그것의 말을 듣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는 자신에게 알려주었다. 나는 이 ‘믿음’을 닦을 것이다. 보지 못하는 미래의 결과에 대해서도 나는 신사신법할 것이고 나는 자신을 완전히 사부님께 맡길 것이다 내가 이렇게 하려고 결심했을 때 나는 마치 한 층의 두꺼운 벽이 망치에 의해 한 가닥 분열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나는 실증과학이 형성한 완고한 관념이 타파되는 것을 알게 됐고 나는 이미 첫 번째 걸음을 걸어나가고 있었다.

나는 사부님의 법을 외웠다. “오직 당신들이 사람을 접촉하기만 하면 곧바로 사람을 구하고 있는 것인 즉, 광고 따는 것을 포함해서이다. 사람이 어느 편에 서느냐와 되고 안 되고는, 모두 대법제자가 속인을 접촉하는 일 가운데 배치되는 것으로, 일을 중하게 보지 말라. 당신들이 어려움을 크게 볼수록, 일은 더욱 어려워지는 것으로, 상유심생(相由心生)이라, 그 일은 더욱 번거롭게 될 것이다. 상유심생은 또 이런 한 층의 뜻이 있는데, 당신이 그것을 높게 놓고, 자신을 작게 놓았기 때문이다. 그 일을 별 것 아닌 것으로 보고, 사람을 구도하는 이처럼 큰일을, 당신들이 해야 할 바를 해야 한다. 마음속으로 좀 착실히 하고, 무슨 그다지 마음에 내키지 않는 것과 그다지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마주치거나 듣게 되더라도 마음에 두지 말며, 정정당당하게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도록 하라. 사악의 교란을 받지 말고 그것에 이끌리지 말라. 그런 좋지 못한 요소가 자신에게서 생기지 않으면 사악은 보잘것없어지고, 당신들 자신은 높고 크며, 정념이 족해질 것이다. 정말로 모두 이러하다.”[4]

나는 그러한 부정적 사유와 일체 사심 잡념의 교란을 노력해 배제하기로 했다. 발정념으로 이 환자와의 인연을 선해했으며 사부님께서 가장 좋은 결과를 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다음날 환자는 수술 후 반응이 오히려 완화됐는데 정상적 이치로 말하면 마취가 지나간 후 통증은 오랜 시간 지속된다. 아울러 이 환자가 와서 약을 바꿔갈 때 태도가 180도로 바뀌었다. 화를 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어제 일을 사과까지 했으며 풍파가 이렇게 평온해졌다. 이 일체는 모두 사부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임을 알았으며 나는 신사신법 이후 유암화명(柳暗花明)의 느낌을 깊이 느꼈다.

3. 환경의 변화

작년부터 나는 자신의 법학습 상태를 개변한 후 아주 오랫동안 수련 중에 존재하는 근본 집착을 점차 인식했다. 지난 2년간 수련에서 나는 스스로 종합했는데 사람의 집착을 지니고 법속에서 구하고 있었고 결국 머리가 깨지고 피가 흘러도 구해내지 못했다. 현재 나는 점차 각성했는데 수련이 명백해진 후 법을 기준으로 삼아 자신을 바로 잡고 사람의 관념, 인식 등을 포기했으며 구함이 없었다.

예전에 나는 늘 표면의 것, 외재적인 표현을 중하게 보았다. 현재 내가 인식하기로는, 사실 진정으로 일의 결과를 주도하는 것은 수련인의 정념이고 오로지 법속에서 수련해낸 순정한 상태만이 비로소 외부적인 환경에 근본 개변이 발생하게 한다.

한번을 한 이웃이 병원에 찾아왔고 나는 그녀에게 진상을 알려야 할지 머뭇거렸다. 나는 진상을 알림에 있어 안전문제가 없는지 걱정했다. 이 아주머니는 치료가 거의 끝날 무렵에 나와 이야기를 나눴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중국공산당 고위관리들의 부패, 뉴스 날조(분신자살 조작 사건) 대법제자 생체 장기적출을 말했다. 나는 당시 무슨 너무 많은 생각이 없었고 구하는 마음이 없었으며 부정적 사유가 없었다. 바로 일종 아주 자연스러운 상태로 그녀와 교류했고 그녀는 아주 진지하게 들었으며 아주 자연스럽게 사당에서 탈퇴했다.

예전에 나는 부정적 사유가 엄중했고 자신감이 없었다. 수련생의 교류문장을 보면서 나는 점차 인식하게 됐는데 이는 신사신법 문제였다. 이 문제에 대해 명석하지 못하면 우리의 정법수련에 대한 이해를 저애하고 세인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펼쳐 보이는 것을 저애한다. 나는 이 병원에서 2년 넘게 일했고 많은 환자를 치료했지만 나를 인정해주는 환자는 제한적이었다. 세인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펼쳐보여야 한다고 인식한 후 이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가 예전보다 많이 증가된 것을 발견했다. 아울러 나를 전문적으로 찾는 환자가 전보다 많아졌고 병원의 인원 배정과 기타 방면에서도 점차적으로 양성순환으로 들어섰다. 사부님께서는 ‘상유심생’[4]을 말씀하셨다. 우리가 어느 면에서 바르게 깨달았으면 환경은 자연스럽게 변한다.

2년 전에 나는 이 병원에 오기 전에 사부님께 청하기를, 이 업종에서 첨단 진단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배치해달라고 했고 그 시기 나는 대법제자는 마땅히 업종 중 가장 좋은 곳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후 사부님께서는 나를 이 병원에 오게 하셨다. 비록 2년간의 노력으로 나는 기술상 일정한 돌파가 있었지만 병원의 레벨과 환경은 시종 내 사상 속의 존재보다는 차이가 있었다. 가장 나를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나에게 단독 진료실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내가 환자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을 엄중하게 영향주었다. 나는 대부분 직장에서 일해 평소 진상을 알릴 시간이 없었다. 휴식시간도 적고 나는 내가 일하는 병원이 진상을 알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라고 여겼다. 아쉬운 것은 이렇게 오랜 시간 수련해도 이 방면은 수련을 잘하지 못했고 만약 내가 이 방면에서 개선과 돌파가 없다면 내 수련에서 가장 큰 부족함과 아쉬움이 될 것이다.

내가 점차적으로 자신을 바로 잡으면서 내가 가장 번거롭게 여겼던 일을 사부님께서 해결해주셨다. 작년 6월 원장은 새롭게 인테리어를 했고 병원의 레벨을 업그레이드했다. 이번 인테리어에서 단독 VIP진찰실을 만들어주었고 의사들은 독립적인 공간에서 환자와 교류할 수 있었다. 8월에 인테리어가 채 끝나지 않았는데 VIP룸 두 개 중 하나를 나에게 배정해준다고 했다. 그때 나는 단독적인 공간에서 환자에게 진상을 알릴 수 있게 되자 정말로 너무나 좋았다!

이 한 단락 시간을 돌이켜보면 시간은 정말로 너무나 빨리 지나갔다. 잘한 부분이 있지만 많은 부분에서는 아직도 부족하다. 나는 자신이 너무나 적게 했다고 생각되는데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100%를 주셨고 사부님께서는 정말로 너무나 자비로우시다! 이전에 자신의 수련과 업무환경을 생각하기만 하면 답답했지만 사부님께서 심혈을 기울여 나에게 닦아주신 길을 보면 내심에서 무한한 감격이 올라오고 나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 희망으로 충만된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를 위해 개창해주신 수련환경을 소중히 여길 것이고 반드시 잘할 것이다! 사부님 걱정하지 마세요!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원만을 향해 나아가자’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 설법11-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 해야 한다’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 설법10-따지웬(大紀元)회의 설법’

문장발표: 2016년 7월 3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7/31/33144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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