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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으로 보서를 만나 ‘진선인(眞善忍)’을 실천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신위(新宇)

[밍후이왕] 1997년 여름 어느 날 오전, 나는 책을 보려고 서점으로 갔다. 내가 도서 진열대 앞으로 갔는데 서점 직원이 나에게 ‘전법륜’을 추천해 주었다. 이때부터 대법 수련에 들어서서 지금까지 이미 19년을 수련하면서 나 자신이 대법 수련에서 보답과 복을 얻은 소감을 적어 보려 한다.

‘전법륜’을 읽고 백병이 사라지고 복 얻어

이전 직장 본사 광고디자인 작업실은 백화점 4층에 있었고 1층에 서점이 있었다. 서점 직원의 소개로 운이 좋게 ‘전법륜’을 만나게 된 나는 책을 펼쳐보자마자 아주 좋은 책이라고 느껴 작업실로 갖고 와서 온 종일 보았다. 나는 진심으로 기쁨을 느꼈으며 이것이 바로 내가 찾던 것이고, 내가 수련하려던 좋은 공법이라는 생각을 되풀이했다. 이때부터 나는 책을 보물처럼 여기면서 매일 법을 학습하고 연공했다. 매일 기쁘고 편안했으며 생명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행복을 체험했다.

내가 진정으로 수련을 시작한 후 진정으로 건강한 신체를 얻을 수 있음에 대해 알게 됐다. 우선 좋은 사람으로 되어 다른 사람을 선하게 대하고, 일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해야 한다. 이럼에 따라 도덕이 승화되고 내 몸에서도 신기한 변화가 일어났다. 20여 년 동안 겪은 두통과 저림, 류머티즘, 위장병, 기침, 부정맥, 치질, 부인병 등등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았다.

나는 광고 디자인을 하는 디자이너로서 본사와 지사를 합해 5개 회사의 업무를 책임졌다. 하루에 수없이 층계를 오르내리지만 지칠 줄 모르고 원기가 왕성하고 경쾌했다. 매일 1시간 넘게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지만 마치 바람에 날아가는 듯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 하루는 길에서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이웃을 만나 함께 가게 됐는데 그녀는 숨이 차서 헐떡이며 나를 쫓아 왔고 나는 앞에서 달리다가도 속도를 늦추고 그녀를 기다리면서 천천히 달렸다. 한 번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또 그녀를 만났는데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혼자 먼저 가세요! 저번에 함께 갔다가 직장에 도착해 보니 속옷이 땀에 흠뻑 젖었고 감기까지 걸려 며칠 출근도 못했어요! 이번에는 같이 가지 않겠어요.”

현재 나는 60세가 다 됐지만 많은 사람들이 40세로 보고 있으며 내 피부가 처녀들 피부처럼 희고 광택이 있다고 칭찬한다. 대법 사부님께서 내 천목을 열어주셔서 나는 또 다른 공간의 진실한 광경을 보고 접촉했다. 한 번은 사부님께서 지옥에서 한 사람 한 사람 건져 구해주는 장면을 보면서 사부님께서 중생을 위하고 있는 경천동지할 일들이 얼마나 자비롭고 위대한지 절실히 느꼈다! 대법이 펼쳐 보이는 기적은 정말 현대과학이 발견한 것보다 높다.

‘전법륜’을 보고 지혜가 열리는 것은 초상(超常) 과학

이전에 직장생활을 하면서 휴식 시간을 이용해 자비로 국화(國畫)와 서예 과정을 전공했다. 매일 저녁부터 새벽까지 회화와 서예를 하고 동시에 가정주부의 직책을 다했으며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데려오고 했다. 비록 일, 가정, 학습 모두가 바빴지만 원기가 왕성했고 지치지 않았다. 예술 전공에 비상한 재능을 발휘했기에 학교에서 학생들은 나에게 ‘영재’라는 별명을 붙였고, 모두 나를 찾아 문제를 물었다. 졸업성적은 과목마다 모두 90점 이상이었다. 대법이 나에게 지혜를 열어주었다. 업무에서도 우수했기에 사장과 주임의 호평을 받았다. 자신이 모든 지사의 업무내용을 책임질 수 있었고, 동시에 회사에 경제적 이익을 주고, 불필요한 채용인원을 줄여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었다.

현재 퇴직한 후 친척, 친구, 이웃 학부모들이 잇달아 나를 찾아와 어린이들의 회화를 지도해 달라고 한다. 학부모들이 인연이 있어 나를 찾게 되었으니 나는 대법의 요구에 따라 ‘진(眞)ㆍ선(善)ㆍ인(忍)’을 실천했다. 누구에게도 좋게 대하고 예술 고시생들에게 무료로 가르쳐 주었다. 특히 현재 사회 예술고시 학원들은 매우 높은 학비를 받고 있다. 어떤 학부모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워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한다. 미술기초가 낮은 어떤 학생들은 예술 고시를 앞두고 미술 학원을 찾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나의 선량함에 많은 학부형들이 대법에 탄복했다.

학생들의 회화기초 수준과 시간이 각기 달라 나에게 많은 어려움을 주었지만 대법 수련이 나에게 이 난제를 풀어주었다.

수업에서 나는 학생들의 착한 본성을 계발하고, 선하고 바른 의식을 북돋아 주었다. 수업에 참가하는 매 학생들에게 ‘삼퇴’를 말하고(이미 가입한 중국공산당의 당, 단, 대 조직에서 탈퇴하게 함), 문제에 봉착하면 항상 ‘파룬따파 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를 외우게 해 그들이 후천적으로 주입당한 사악한 관념을 부정하고 버리게 했다. 예를 들면 학생들은 어려서부터 학부모와 학교에서 교조적인 교육을 받아 항상 두려움이 앞서고 그리지 못하고 어려워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었다. 어째서 죽겠다, 어째서 죽을 것 같다는 말로 항상 자신의 적극적인 면을 부정했다.

그러나 나는 대법의 위력으로 이전에 반에서 꼴찌였던 학생을 자신이 좋아하는 전문학교에 입학하게 했다. 많은 학생들을 반년 심지어 3개월 동안 지도를 받고 본과 전업학교에 합격하게 했다. 역대 예술학부 합격률이 95%이상에 달했다. 어떤 학생은 미술 대회에서 전국 금상을 수상했고, 전 시에서 1등상과 전 구에서 우수상을 수상해 학교와 가정에 영예를 가져오고 자신의 진학에 유리한 장점을 만들었다. 나 자신은 한 번도 영예와 이익을 얻으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대법제자의 수업에 참가한 학생들은 모두 지혜가 개발되고 복을 받으며 평안을 얻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삼퇴’ 대열풍 중에서 학생들은 잇따라 ‘삼퇴’해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했다. 이 어찌 대법이 가져온 뛰어난 기적이 아니겠는가!

‘전법륜’을 보고 도덕성이 향상되어 주견 없이 표류하지 않았다

퇴직 전에는 업무상 관계로 늘 나가서 상담을 하고 디자인 자료를 구매하며 외지에 가서 현장 일을 하거나 혹은 대형 예술전람회를 보거나 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문제에 봉착하면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라고 하셨다. 나는 시간을 절약하고 불필요한 경제 지출을 줄이기 위해 점심은 항상 고구마나 전병(煎餅)으로 때우면서 여태껏 별도의 보조금을 요구하지 않았다. 책임자들도 내가 업무에 몰두하면 밥 먹는 것조차 잊는다는 것을 알고 사장은 항상 동료들에게 말한다. “그녀에게 맡긴 일은 안심하세요!” 매 회사에서 업무전화가 오면 어떤 이유나 구실을 찾지 않고 식사 요청이나 선물 등 모든 바르지 않은 풍기를 거절했고 업무상 어떤 요구도 제출하지 않았다.

현재 사회도덕이 미끄러져서 회사에 남아도는 많은 원단을 이전의 주임, 부처 조장, 직원들은 거리낌 없이 집으로 가져갔는데 어떤 동료들은 나를 꼬드기기도 했다. 나는 파룬따파를 수련하기에 반드시 ‘진선인’에 따라 처사하고 진실한 말을 하며 진실하게 일해야 한다. 나는 모두 성실하게 거절했다.

1998년 여름, 직장에서 주택 분양을 했는데 분양조건은 기술, 능력, 연차, 성적 등등이었다. 현재 상황은 직원이 많고 분양할 주택이 적었는데 분양조건으로 보면 나에게는 한 몫이 있었다. 평소 나와 친하게 지내는 회사 화물용 엘리베이터 관리원 언니는 내가 고지식하다고 했다. “왜 월급을 올릴 때에도 쟁취하지 않고 지금 주택을 분양하는데도 가보지 않아요? 사장, 조장, 직원 모두 사람을 찾아 부탁하고 있어요. 선물을 보내는 사람이 있고, 심지어 어떤 직원은 식칼이나 농약을 들고 협박하고 싸우기까지 하면서 모든 방법을 다해 분양받으려고 하고 있어요.” 나는 우리들의 관계가 좋기에 언니가 나에게 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 때 이 언니는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는데 친척들조차 그녀가 빚을 갚지 못할 것 같아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 나는 언니에게 어려움이 있으면 나에게 말하라고 했다. 나중에 그녀가 급히 돈이 필요했을 때 내가 돈을 빌려주었는데 그녀는 아주 감동했다. “내가 돈을 갚지 않을까 걱정이 안 되나요. 정말 담이 크네요.” 이후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집 때문에 사장이 나를 찾아 이야기할 때 나는 자진해 주택분양에서 물러났다. 집 한 채 때문에 직원들이 상하 인맥을 찾아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 몫을 다른 직원이 갖게 하고 나니 마음이 매우 편했다.

하지만 경제가 계속 나빠져 각 계열사들도 문을 닫고 양도할 상태에 직면했다. 사장은 월급도 돈을 빌려야 지불할 수 있다고 늘 말했다. 디자인 업무량도 갈수록 적어졌고 직원들은 출근하면 앉아서 차를 마시고 한담을 하게 되었는데 모두 마음이 불안해졌다. 나는 직장의 경제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자발적으로 사직했다. 내 업무 능력이 우수했기에 책임자들은 내가 떠나는 것을 아주 아쉬워하면서 상황이 호전되면 다시 복귀시키려 했다. 나는 이렇게 억지로 아무런 경제적 보상도 없는 상황에서 내 정보를 직업소개소에 보관했다.

‘전법륜’을 학습하고, 모든 일에서 성실, 선량, 관용을 베풀다

내가 사직한 후 경제는 남편에게만 의지하게 되어 비교적 어려웠다. 노인을 부양해야 했고, 아이들의 학교 등록금도 아주 많았다. 도움 받을 곳이 없어 나는 이전에 창작했던 회화작품을 꺼내 구매자를 찾아다니고, 창작주문과 창작시간을 협상했다. 갑자기 시아버지가 병으로 입원하셨다. 의사는 환자의 상황이 병원 음식이 맞지 않으니 집에서 특별히 환자 음식을 만들어 공급하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일손을 놓고 매일 시아버지의 음식을 만들고 일상생활을 시중들었다. 퇴원 후 시부모님은 다른 자녀들 집을 돌아가며 생활하던 데서 우리 단층집에서 함께 지내기를 원하셨다. 시부모님은 조용하고 안정된 생활방식을 요구하셨고 나는 시부모님의 생각에 동의했다.

얼마 되지 않아 남편 직장에서 기업개혁을 하면서 주주제를 실행해 주식을 사는데 많은 돈이 필요했다. 어디에 가서 이렇게 많은 돈을 빌리겠는가. 은행대출금도 조건이 되지 않아 할 수 없었다. 얼마 전에 우리는 아파트 한 채를 사면서 있던 적금을 다 썼다. 우리는 방법이 없어 시부모님께 집을 다시 팔아야 하는 사정을 논의했다. 두 분은 우리들이 아파트를 산 것을 보고 우리들에게 많은 적금이 있다고 생각하고 너희들이 돈이 있으니 팔지 말라고 했다. 나는 이 집에서 시부모님을 모시기로 했다.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에게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으로 되라고 요구했고,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면 잘하지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시부모님의 생각에 동의했다. 시부모님은 즐겁게 생활했고 마지막에 스스로 생활할 수 없게 됐을 때에도 서로 시중들면서 세상을 뜨는 그 날까지 부양했다. 시부모님은 행복하게 만년을 보냈다.

현재 사회는 금전상의 풍기로 친구 사이에도 개인적 이익을 위해 종종 반목하거나 법정으로 갈 때도 있다.

작년 우리 지역에서 판자 집을 철거하게 됐다. 법을 모르는 시부모님이 30년 전에 소위 ‘글자 증서’를 남긴 것이 있었다. 우리들이 이 ‘증서’를 갖고 철거사무실 변호사 자문처를 찾아 갔으나 변호사는 이것이 법률 규정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시동생 부부를 찾아가 현실 주거 상황부터 시작해 법률규정의 각 조항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해석해주고 ‘증서’가 법적 효력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 눈에는 ‘증서’만 보였고, ‘증서’대로 돈을 달라고 했다. 심지어 우리들을 법정에 고소하겠다고 했다. 남편은 친동생마저 돈을 위해 윤리도덕마저 없고 법도 모르는데 대해 어쩔 수 없다고 느꼈다.

나는 남편을 설득해 금전 이익을 포기하게 했다. 형제간의 화목을 위해 모든 사람에게 관용했다. 대법은 우리 가정에 복과 아름다움을 가져다주었다. 우리 대가정이 어떤 문제에 봉착해도 나는 모두 ‘진선인’ 표준으로 문제를 잘 처리했다. 남편도 내 수련을 더욱 지지했고, 역시 그도 대법으로부터 복을 받았다. 19년 동안 매년 건강 검진에서 합격했다. 이번에 내 권고를 듣고 시동생에게 10여만 위안을 현금으로 주는데 모두 동의했다. 남편은 감격해서 말했다. “당신이 제일이야! 정말 잘했어요. 나도 그렇게 못하겠어.” 나는 말했다. “우리는 도리와 근거가 있어요. 법정에 간다 해도 법률조항에 따라 이 돈은 줄 수 없는 돈이에요.”

나는 파룬따파를 수련하기에 ‘진선인’에 따라 모든 것을 가늠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포기했지만 더욱 큰 가족의 아름다움을 얻게 됐다. 이것이 바로 대법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복이 아닌가? 나는 예나 다름없이 그들을 대했고 진정으로 그들을 관심하는 마음으로 대했다. 진실하고 선한 마음으로 시부모님이 남겨온 30년 동안의 후유증을 해결했다. 예나 다름없이 친밀하고 가정이 화목하게 됐으며 또 시조카와 친척들에게 ‘삼퇴’를 권하고, 사회의 오염으로 천재인화가 끊이지 않음을 알려주었다. 그들도 느낄 수 있어 잇따라 ‘삼퇴’했다.

파룬따파를 수련한지 19년이 된다. 나는 60살이 다 되었지만 여전히 건강하고 젊은 활력을 갖고 있으며, 또 자비로움, 관용, 거침없는 심경을 갖고 있다. 관용하는 마음으로 상대를 배려하고, 명리를 담담히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대의 마음도 정화되고 깨우칠 수 있었다.

문장발표: 2016년 7월 2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7/27/33162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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