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당문화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가로막지 말아야 한다

-사상 속의 투쟁의식을 청리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1. 사상 속 투쟁의식을 청리하고 우리의 언어를 순정하게 하자

‘해체 당문화’ 책에 쓰기를 “지금 중국 사회는, 사람 마음이 냉정하고 서로 의심하고 서로 믿지 못하며 포용하지 못하는데, 당문화 중의 투쟁 철학과 관계가 있다. 중공은 투쟁 철학으로 발전해 왔다. 본래 중용의 도를 중히 여기고 화합을 중요시하던 중화 민족이 사람마다 부득이 투쟁하는 것이 정상적인 사회가 되게 했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경계하는 심태로 변하게 했으며 서로 다투는 것을 사회 경쟁의 생존으로 여기게 했다.”라고 했다.

“성실하고 선량하고 관용하고 자신 있는 사람은, 쩍하면 때리고 죽이겠다고 외치지 않고 더욱이 언어로 상대방을 제압하지도 않으며 독한 말과 비뚤어진 이치를 말하지 않고, 갖은 방법의 언어로 상대방을 제압하려 하거나 상대방을 난처하게 하여 심리상의 만족감을 얻지 않는다. 투쟁 언어의 배후는 중공의 투쟁철학으로 조성된 잘난 척하는 비뚤어진 자격지심이고 기형적인 인격이다.”

“정상적인 인류사회에서는 사람은 동등한 위치에 처한 사람에게 예절이 바르고 자신보다 약하고 불행한 사람에 대해 말투는 되도록 부드럽고 좋은 말로 위안해 준다. 부부 사이는 서로 깍듯이 대하고 아이를 교육할 때는 차근차근 타일러 가르치며 이치를 말할 때는 공리공론을 하지 않고 냉정하고 지혜롭게 하며 틀리면 솔직히 인정한다. 군자 품위의 배후는 평화롭고 자신이 있고 다른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는 건강한 태도다. 언어 중의 투쟁 의식을 제거해야 하지만 언어상의 노력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당문화의 투쟁사유를 바꿔야 한다.” “하나의 도리를 논증할 때 당문화 영향을 받은 사람은 평온하고 선하게 이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궤변을 늘어놓고 터무니없는 말로 억지를 부리고 이치에 바르다고 생각하면 절대 남을 봐주지 않으며 이치가 없어도 우기고 태도가 건방지다.”

“중공이 주장하는 ‘사람이 만약 나를 침범하면 나는 반드시 그 사람을 침범하겠다’고 하는 것은 사실 흉금이 좁고 하찮은 원한이라도 반드시 갚는다는 표현이다. 이것은 ‘투쟁’ 정신에 아주 부합된다. 이런 사상은 사회상의 사람이 서로 보복하고 사람마다 적이 된다. 이것이 오늘날의 인간관계가 긴장된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이다.

2. 쟁투심은 위험하다 – 말하기만 하면 화를 내게 되고, 원영을 녹게 하며, 마성을 자양하고 공기둥은 삭감된다

사부님께선 말씀하셨다. “정법이 이르지 못한 공간 중에서 대법제자의 생각이 비교적 바를 때면, 한 정신(正神) 혹은 요소가 작용을 일으켜 그의 정념을 가지(加持)해 준다. 어떤 때 대법제자가 서로 협력을 잘하지 못하고, 성질을 부리고 화를 낼 때면, 나는 일부 변이된 생명을 보는데, 어떤 것은 대단히 큰 것으로서, 그것을 강화해주고 있다. 게다가 부동한 층차에서 부동한 저층차(低層次)에 부합하면서 층층의 좋지 못한 생명도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내가 사람에게는 선과 악 두 면이 다 있다고 말하지 않았는가.”[1]

우리가 당문화 사상 행위가 나타날 때 공간장에 순식간에 공산 사령이 침입하는 것을 발견했다. 예를 들면 쟁투, 화를 내고 조급해하며 원망하고 질책하고 질투, 색욕, 시비를 걸고, 간격을 만들고 교활하고 거짓말하고 과시하고 게으르고 두려워하는 등등이다. 사령은 대다수가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 모택동, 장귀의 형상이고 마귀와 해골과 독사이다. 사령의 해골 두목은 인민복을 입고 어깨에 붉은 깃발을 꽂고 있다. 그들은 회의를 열어 어떻게 대법제자의 집착심을 가중해야 하는가를 연구하며 수련인을 아래로 끌어내린다. 그런 것들은 공간장으로 들어간 후 대법제자가 대법에 동화하는 것을 교란하고 수련생이 책을 들면 졸리게 하고 안으로 찾는 것을 교란하고 그들이 강렬하게 밖으로 찾게 하고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어떻게 좋지 않다고 불평불만으로 가득하게 한다. 쟁투심을 오랫동안 제거하지 못하고 난폭하고 화를 잘 내는 수련생은 더욱 주의해야 한다. 그들의 공간장에는 손에 총포를 든 해골과 큰 칼을 든 마귀로 충만해 있고 그들의 중생을 마음대로 살해하며 그들의 육체를 상해한다. 사령은 층차가 낮지만 아주 많으며 법에서 자신을 바로잡지 않으면 발정념을 해도 소용없다. 수련생에게는 병업 상태로 나타나고 납치당하고 육체를 잃을 수도 있다. 당문화에 육체를 잃은 수련생이 절반이나 된다.

여 수련생 갑은 일에 봉착하면 밖으로 보고 참지 않으며 자주 화를 낸다. 말하면 폭발하고 마음이 평온하지 않고, 좋은 말만 들으려 하고 수구를 하지 않고, 배후에서 뒷말을 하고 관마다 넘기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자녀의 혼인에 관여하여 가정이 화합하지 못하고 아들을 이혼하게 하고, 외손자는 어려서 부모를 잃게 되어 그녀와 함께 생활한다. 남편도 수련생인데 두 사람은 법공부만 하고 안으로 찾지 않고 일에 봉착하면 다투고 어느 점이 수련인다운 것인지를 보아낼 수 없다. 한 사람은 반신불수가 돼 몇 년 동안 침대에 누워 있고 그들 집을 임대한 수련생과 자주 다툰다. 자신에게 누락이 있기에 공간장이 대량의 사악으로 충만했고 핸드폰이 감청되고 610, 경찰, 주민센터에서 여러 번 소란을 피워 몇 번이나 그녀를 데려가려 했다. 만약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보호(병업 가상으로 연화해 그녀를 벗어나게 했다)하지 않으셨으면 결과는 상상할 수 없다.

여자 수련생 을은 몇 번이나 납치당하고 박해받았다. 사부님께선 그녀가 일에 봉착하면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점화해 주셨다. 그녀의 몇 층 신체는 당문화 때문에 구세력에 의해 지옥으로 끌려가 소멸할 준비가 됐다. 사부님은 그녀에게 선념이 부족하고 일에 봉착하면 참지 않고 투쟁한다고 점화해 주셨다. 거짓, 악, 투쟁은 전형적인 당문화이다. 사부님께선 어린 제자의 입을 이용해 그녀에게 점화해 주셨다. 말하고 일하는 것을 허위로 날조하고 아침에 분명히 밥을 먹었는데 밥을 먹지 않았다고 말하고 분명히 국화인데 그녀는 매화라고 말한다. 이 수련생은 일에 봉착하면 밖으로 보고 늘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질책한다. 착실히 수련하지 않으면 사존의 고생스러우신 배치를 낭비한 것이다. 매일 발생하는 일은 모두 우리가 사람 마음을 제거하려는 것과 관계된다.

외지의 한 여자 수련생 병은 감옥에서 나온 후 어떤 누락으로 박해당했는지 안으로 찾지 않았다. 남편이 장사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또 박해당할까 봐 장사를 그만두고 온 가족은 다른 도시에 가 새로운 생활을 했다. 하지만 여 수련생의 쟁투심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변하지 않았고 반대로 더욱 심각해지고 자주 화를 낸다. 한번은 그녀의 공간장에서 장 마귀가 그녀를 조종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누가 오면 누구와 싸운다. 후에 나는 그곳을 떠났다. 듣는 말에 의하면 그녀는 또 납치당했다. 사실 그것은 사람의 사람에 대한 박해가 아니라 자신의 사람 마음이 바르지 않아 다른 공간장의 마가 박해하는 것이다. 여기서 참지 않고 화를 내면 그곳의 사악이 경찰을 조종해 찾아오게 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어떻게 잘 수련했다고 하는데 그러면 그녀의 당문화는 제거하지 않는가? 수련은 착실하게 자신을 수련하고 자신을 바로잡는 것이 아닌가? 다른 사람이 아무리 잘 수련해도 교류를 잘해도 그녀를 도와 발정념을 해도 자신이 착실히 수련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남자 수련생 정은 1996년 법을 얻었다. 하지만 줄곧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2013년부터 법공부와 연공을 하기 시작했고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한 적은 없으며 발정념은 10분을 초과한 적이 없다. 자정 발정념은 여태 한 적이 없고 아침 연공은 거의 참가하지 않고 먹기 좋아하고 잠자기 좋아하고 게으르며 잘못을 하면 거짓말하고 변명하며 진(真)에 부합되지 않는 데다 속인의 책과 DVD를 본다. 손은 칼에 베여 오랫동안 한 손가락을 굽히지 못해도 깨닫지 못한다. 마성이 폭발하고 자신의 부모를 포함해 누구를 대해도 악으로 대하고 선과 참음에 부합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에게 말하면 폭발한다. 그는 말한다. “사부님께선 나를 관여하고 계시다. 나는 나의 수련 방법이 있다. 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다. 당신이나 잘 관리하라.” 사당 문화의 사령이 교류를 교란하고 그가 안으로 찾는 것을 교란하고 그의 집착심을 확대한다. 만약 그가 ‘밍후이주간’을 다른 이야기책처럼 보고 정진하는 수련생이 어떻게 하고 법에 대조하는지 자신의 격차를 찾고 자신에게 존재하는 문제를 정시하면 더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고 나태하거나 방임하지 않을 것이다!

당문화는 우리가 진·선·인에 동화하는 것을 방해하고 우리의 제고를 교란하고 정체 협조를 교란한다. 당문화 사상과 행위를 수련해 버려야 공산 사령은 철저히 제거되고 자신을 대법에서 바로잡을 수 있다.

3. 하늘과 땅과 싸우는 당문화의 협애한 사유를 포기하고 일에 부딪히면 참는 가운데 노력해야 한다

참음의 ‘인(忍)’ 자는 마음에 칼이 꽂혀 있다. 일에 봉착하면 도량이 넓고 관용하고 양보해야 한다. 일을 처리할 때 매우 화내는 것과 평온할 때 얻는 효과는 절대 다르다. 만약 우리가 모욕당하고 충돌이 발생할 때 거만한 마음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말로 자신의 행동을 가늠할 수 있다면 우리는 새로운 진보와 제고가 있을 것이다.

증자는 말했다. “나는 하루에 세 가지 일을 가지고 나 자신을 반성한다.” 수련인으로서 모순과 충돌을 만나면 우리가 수련해 제거하려는 사람 마음이 있는 것이고 다른 사람의 질책이 없으면 스스로 어찌 자신의 잘못을 알 수 있겠는가? 잘못을 모르면 어떻게 자신을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귀도 먹고 눈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안으로 찾아야 하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뒤돌아봐야 문제의 존재를 볼 수 있다. 이로써 끊임없이 자신을 승화케 해야 비로소 겸허한 덕행이 갖춰진다. 성숙한 수련인은 사람을 용서하는 아량과 관용 박대한 흉금이 있어야 하고 마음이 평온하고 자비롭고 상화(祥和)해야 하며 늘 겸손하고 신중해야 다른 사람을 용납할 수 없는 일도 용납할 수 있다.

사부님께선 말씀하셨다. “특히 ‘인(忍)’ 할 수 있음을 강조하는데, 오직 ‘인’ 해야만 비로소 대덕지사(大德之士)로 수련할 수 있다. ‘인’은 아주 강한 것으로서 ‘진’과 ‘선’을 넘어선 것이다. 수련의 전 과정에서 당신에게 ‘인’ 하라고 하며, 心性(씬씽)을 지키고 함부로 행동하지 말도록 한다.”[2]

사부님께선 말씀하셨다. “연공인으로서 당신과 모순이 발생한 사람에 대해, 당신에게 직접 맞대놓고 욕을 하는 사람에 대해, 당신은 참아야 할 뿐만 아니라 자태도 높아야 하며, 나아가 그에게 감사드려야 한다. 만약 그가 당신과 모순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당신은 어떻게 心性(씬씽)을 제고할 수 있으며, 어떻게 고통을 받아 흑색물질을 백색물질로 전화시킬 수 있으며, 어떻게 공이 자랄 수 있겠는가? 사람이 겁난(劫難) 중에서 지나가기란 몹시 어려운 것이지만 이때 꼭 자제해야 한다. 공력이 높아감에 따라 그 겁난도 끊임없이 커지기 때문에, 당신이 씬씽(心性)을 제고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본다. 초기에는 당신을 노엽게 하면 당신은 대단히 화가 나고 속이 아주 갑갑해서 견디기 어려우며, 화가 난 당신은 간이 아프고 위가 아플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화를 내지 않고 참아냈다면, 이는 참 잘한 것이다. 당신은 참기 시작했지만, 의식적으로 참아낸 것이다. 당신이 천천히, 끊임없이 씬씽을 제고시킬 수 있고 당신이 진정으로 그 일을 담담하게 볼 수 있는 그때가 바로 더욱 큰 제고이다. 속인은 일부 마찰이나 조그마한 일도 아주 큰 것으로 여기고, 산다는 것이 바로 체면을 위한 것이라 여기는데, 참지 못해 극도에 이르면 아무 짓이나 저지른다. 그러나 연공인으로서, 남이 아주 대단하게 여기는 것이 당신에게는 아주 작게, 아주 작게, 아주 아주 작게 보인다. 왜냐하면, 당신의 그 목표는 참으로 장원(長遠)하고 원대(遠大)한 것으로서, 당신은 우주와 같은 나이가 되려고 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다시금 그런 것들을 생각해 보면,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며, 당신이 크게 생각하면 그런 것들은 다 지나칠 수 있다.”[2]

‘해체 당문화’ 책에서 말했다. “소동파(蘇東坡)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모욕을 당한 후 즉시 칼을 뽑아 다른 사람과 싸우면 이것은 필부라고 하고 근본적인 용감함이라고 말할 수 없다. 진정으로 용감한 사람은 갑자기 침범에 직면해도 늘 진정하고 놀라지 않는다. 게다가 어이없는 모욕을 당해도 자신의 분노를 지배할 수 있다. 이것은 그의 흉금이 박대하고 수양이 깊고 지향이 높기 때문이다. 참음이란 전통문화 속에서는 자제하고 관용하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기억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절대 나약하고 무원칙한 양보가 아니다.”

유순함 중에 참음이 포함돼 있고 양보하는 덕이 있다. “한 번만 참으면 평온을 맞을 것이고, 한 걸음만 양보하면 하늘을 얻을 것이다.” 한신(韓信)이 사타구니 밑을 기어나가는 치욕을 당했다는 전고가 2천여 년 유전되고 있다. 이것은 중국인의 참음에 대한 숭배이다. 중공은 투쟁을 부추긴다. “공산당의 철학은 투쟁 철학이다” “사람이 나를 침범하면 나는 반드시 다른 사람을 침범하겠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란 협상과 대화에 의거하지 않고 폭력과 진압에 의거하며 과감히 보복하는 것을 용감하다고 한다.

두목(杜牧)은 시에서 말했다. “일을 참으면 더욱 기쁘다” ‘운유적록기재(雲遊摘錄記載)’에서 횡포하고 억지스러운 일에 봉착하면 자신이 먼저 왜 이런 횡포한 일을 당하는가를 생각하고 그런 후 다시 횡포한 일을 처리하는 방법을 고려하고 조용하고 분노하지 않으면 재환(災患)을 제거하고 화를 멀리할 수 있다. 이는 횡포한 일을 처리하는 요령이다.

자신도 참음에서 마음을 더 써야 한다. 아래 우리는 다시 사존의 몇 단락의 설법을 복습하고 함께 정진하기를 바란다.

사부님께선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좋지 않게 대해도 당신은 그냥 웃고 지나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 모순이 발생했을 때 제삼자인 당신마저도 마땅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 나는 마땅히 어떻게 해야 좋은가, 이 일에서 만약 나였다면 자신을 지킬 수 있고 수련인답게 비평과 이의에 대면할 수 있었겠는가? 수련이란 바로 안을 향해 찾는 것이라, 맞든지 맞지 않든지 모두 자신에서 찾아야 하며, 닦음이란 바로 사람의 마음을 닦는 것이다. 늘 지적과 비평을 받아들이지 않고 늘 밖을 향해 지적하며, 늘 다른 사람의 의견과 비평을 반박하는 그것이 수련인가? 그것이 어찌 닦는 것인가? 습관적으로 늘 다른 사람의 부족을 보고 여태껏 자신을 보는 것을 중시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은 수련을 잘했는데 당신은 또 어떻게 하겠는가? 사부는 당신이 잘 수련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닌가? 당신은 왜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늘 다른 사람을 보는가? 오히려 안을 향하여 닦지 않고 자신을 찾지 않는가? 자신에 대한 말을 꺼낼 때면 당신은 왜 좋지 않아 하는가? 당신들, 이 자리에 앉은 사람들 몇이나 갑자기 어떤 사람이 삿대질하며 당신에게 욕할 때 심정이 담담할 수 있는가? 몇이나 다른 사람의 비평과 지적에 직면해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을 수 있는가?”[3]

“어떤 사람은 바로 그 성냥처럼 긋기만 하면 불이 붙는다. 마치 그 지뢰와도 같아 밟기만 하면 소리가 난다. 당신은 나에 대해 말할 수 없다. 나에 대해 말하면 안 된다. 어떤 의견도 듣지 않으며, 선의(善意)적이든 악의(惡意)적이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일률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더욱이 안을 향해 찾지 않는데, 상당히 심각해졌다. 이는 여러분을 탓하는 것이 아니니 당신들은 지금부터 시작해서 이 문제에 주의해야 한다. 누가 말하든 반드시 해야 하고 모두 되어야 한다. 있으면 고치고 없으면 주의해야 한다. 당신이 비판과 지적에 직면하여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당신은 바로 제고하고 있다.”[3]

“가장 근본적으로, 가장 본질에서 한 사람이 수련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증명하자면,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하게 하는 이것은 반드시 제거해 버려야 한다. 당신이 어느 방면에서나 다 잘했더라도 이 방면에서 좋지 않다면, 그건 수련인일 수 없다. 과거에 그 수련인은 올라오자마자 먼저 이 방면부터 하였고, 이는 또한 제자를 선택하는 조건이었다.”[3]

“절대 주의해야 하는데, 지금부터 시작해서 누가 다시 남에게 말을 못 하게 한다면 그가 바로 정진하지 않는 것이며, 누가 다시 남에게 말을 못 하게 한다면 그는 바로 표현한 것이 수련인의 상태가 아닌데, 최소한 이 한 점에서 말이다. (박수) 누가 만일 이 하나의 고비를 더는 넘기려 하지 않는다면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그럼 너무 위험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수련인의 가장 근본적이고 또한 가장 마땅히 제거해야 할 것이며, 또한 반드시 제거해야 할 것으로, 당신이 제거하지 않는다면 원만을 향해 걸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속인이 대법제자의 일을 하는 것처럼 되지 마라. 원만을 이루어야지, 복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다.”[3]

사부님께선 줄곧 우리에게 자신을 잘 수련하게 기회를 주셨다. 하지만 우리의 강렬한 자아와 후천적 관념의 부추김 아래 제고하는 기회를 많이 낭비했다. 낡은 업을 소업하지 못하고 새로운 업을 짓게 됐다. 천천히 수련할 기회가 없다. 신속히 법에서 자신을 바로잡아야 하고 당문화를 해체하고 쟁투심을 제거해야 하며 단번에 목표에 도달해야 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각지 설법11-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를 해야 한다’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파룬궁 -제3장 심성수련’

[3]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로스앤젤레스 시 법회 설법’

문장발표: 2016년 6월 2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6/21/33025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