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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파룬궁수련생들이 베이징 TV방송국에 청원한 일을 회상

글/ 베이징 대법제자 퉁신(童欣)

[밍후이왕] 경성(베이징)에서 평화로 불공정함을 대하니, 파룬따파는 인심에 녹아들었다네. 당신이 진선인(眞善忍)을 알기를 진심으로 바라거니, 만고에 이뤄진 성스러운 인연 아끼길 바라노라.

1. 1998년 베이징 TV방송국 사건 요약

1992년 5월, 리훙쯔 사부님께서 창춘(長春)에서 파룬궁을 전파하기 시작하셨다. 2년 남짓한 동안에 54기 파룬궁 학습반을 열기 위해 고생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각지로 쉴 틈 없이 뛰어다니셨다. 1995년 초에 ‘전법륜’이 정식 출판됐고 리훙쯔 사부님께서는 국내에서 공을 전하고 설법하는 학습반을 마치셨다. 그 후 완전히 무료로 공을 가르쳤고 또 효과가 현저한 파룬궁이 전해졌는데 아무런 홍보나 광고도 없이 사람에서 사람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의 방식으로 신속히 널리 전해져 1998년에 이미 수천만 수련생들이 심신이 건강해지고 가정이 행복해져 사회가 안정되게 했으며 사회도덕이 반등을 보였고 고덕대법(高德大法)의 신기함과 아름다움을 충분히 나타냈다.

1996年北京戒台寺大型集体练功

1996년 베이징 계태사(戒台寺)에서 대형 단체 연공을 하는 장면

그러나 1998년 5월 23일, 베이징 TV방송국 ‘베이징터콰이(北京特快)’ 코너가 방영한 프로그램에서 기공에 대해 홍보하지 않고, 논쟁하지 않으며, 비판하지 않는다는 세 가지 원칙과 규정을 어기고 파룬궁수련생 위위안탄(玉淵潭)이 기자에게 파룬따파가 심신에 유익하다고 한 화면에서 중국 과학기술원 원사 허쭤슈(何祚庥)가 파룬궁을 공격한 내용을 넣고취재 녹음을 부정적으로 편집해 민중을 속였다.

‘베이징터콰이’프로그램이 방영된 며칠 사이에 베이징을 위주로 한 수백 명 파룬궁수련생들이 진선인 대법과 언론 매체를 도와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려는 성실한 마음으로 선의적으로 베이징 TV방송국에 가서 진상을 알렸고 프로그램 내용과 사실이 맞지 않는다는 엄중한 문제를 제기했다. 1998년 6월 2일, 베이징 TV방송국은 상황을 충분히 파악한 후 이것은 방송국이 세워진 이후 가장 심각한 실수임을 시인하고 책임자 한 명을 해고했고 그 영향력을 만회하기 위해 그 후에 또 한 번의 프로그램을 제작해 새로 파룬궁을 바르게 보도했으며 그로 인해 ‘베이징터콰이’ 사건은 적절히 해결됐다.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한 후 사악한 공산당은 당시 사건 진상을 왜곡하고 베이징 TV방송국을 모함하고 집중 공격했다.

나는 1998년 5월 31일에 운 좋게 몸소 베이징 TV방송국에 가서 파룬궁의 진실한 상황을 반영했다. 파룬궁수련생들의 평화롭고 상냥하고 자비로운진술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특별하고 얻기 힘든 한 차례 파룬따파 수련의 심득교류회였다. 현장에 있던 TV방송국 면담자나 파룬궁수련생들을 막론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정화됐는데 그 아름다운 정경은 사람들로 하여금 잊지 못하게 했고이미 18년이 지났지만 일부 세부적인 장면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 후의 사악의 박해 중에서 나는 파출소, 구치소, 노동교양소, 감옥에서 내가 직접 겪은 그 아름다움과 ‘4.25’평화 청원의 진실을 수련생, 수감자와 경찰들에게 알렸는데 들은 사람들은 모두 감동했고 파룬궁에 대해 감탄을 연발했다.

1998년 5월 31일, 베이징 TV방송국에서 한 차례 특수하고 신성하며 장엄한 법회를 행운으로 경험한데 대해 비할 수 없는 행복과 자부심을 느낀다. 대법 사부님의 무한한 자비에 감사드린다!

2. 베이징 TV방송국 ‘베이징터콰이’ 사건

1998년 5월 30일, 베이징 TV방송국 ‘베이징터콰이’ 프로그램의 한 실습기자가 기공에 관한 프로그램을 제작했는데 역대로 기공을 반대하던 중국과학기술원 원사 허쭤슈 등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허씨는 어느 과학원 박사가 파룬궁을 수련해 중병에 걸렸다고 했고(그 박사를 아는 여러 명은 완전히 허씨가 비방하고 모함한 것이라고 증언했다.) 또 기공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했다. 그 프로그램 팀은 그 후 베이징 위위안탄 공원 연공장의 파룬궁수련생을 취재했는데 수련생은 기자에게 파룬궁을 수련한 후 심신이 수혜를 입은 체험을 말했다. 그러나 ‘베이징터콰이’ 프로그램은 취재 상황을 진실하게 보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파룬궁의 몇 가지 화면을 추악하게 만들고 일부 장면을 편집해 몇 마디 똑똑하게 표현하지 못한 녹음을 이용해 취재에 응하는 사람의 원뜻을 왜곡했다.

1998년 5월 30일 토요일, 우리지역 협조인들의 단체 법공부가 거의 끝날 무렵, 베이징 터미널에서 법공부를 하던 협조인에게 전화가 와서 간단하게 ‘베이징터콰이’ 프로그램이 파룬궁을 모함했고 취재에 응한 연공장 수련생들이 이미 그곳에 가서 상황을 반영했다고 말했다. 베이징의 일부 수련생들이 또 가려고 하는데 더 많은 상황은 그들이 돌아온 후 자세히 말하자고 했다.

베이징 TV방송국이 파룬궁을 모함했다는 말을 듣고 가서 상황을 반영하자고 할 때 어떤 수련생들은 즉시 가자고 했으나 어떤 수련생들은 심사숙고하며 말하지 않았다. 모두들 사악한 공산당의 제도 내에서 폭력으로 사람들 마음에 주입시킨 강권의 깊은 공포를 느낄 수 있었다. 연세가 많은 한 수련생이 물었다. “우리가 구체적인 상황도 파악하지 못했는데 거기에 가서 구체적으로 뭘 말해야 하죠?” 나는 그녀가 제기한 것은 문제가 안 되며 그녀가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속으로 좀 괴로웠다.

나는 조용히 내 생각을 교류했다. “비록 내일 우리집에서 이미 할 일이 있지만 저는 꼭 갈 것이고 집안일은 잠시 미룰 수 있습니다.” 나는 방송국에 가서 내 신체 변화를 알리고, 사부님 얼굴조차도 보지 못했고 사부님께서 나에게 일전 한 푼 받지 않으셨지만 많은 병들이 나도 모르게 좋아졌다는 사실을 알리려 했다. 나는 통증이 감소됐고 직장을 위해 의료비도 절감해줬다.당시 우리는 해마다 120위안의 약값을 보상받을 수 있었는데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해서부터 3년 동안 한 푼도 보상받은 적이 없었다. 이 증거는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진선인’에 따라 해 우리 가정은 더 좋아졌고 나와 사무실 동료들은 더욱 화목해졌다. 나는 이전에 일을 그리 착실히 하지 않았는데 수련한 후 갈수록 잘하게 됐고 관리자들도 내 변화를 보고 최근에 나를 칭찬해주었다. 파룬궁은 우리에게 그렇게 많고 큰 이익을 주었고 우리는 다만 이것을 그들에게 알려주면 될 것 같았다.

성에서 서둘러 돌아온 협조인은 밥 먹을 사이도 없이 즉시 와서 모두에게 베이징 TV방송국에서 방영한 프로그램에서 파룬궁수련생 위위안탄이 파룬궁을 수련한 후 심신이 혜택을 본 취재 장면을 편집해 파룬궁을 나쁘게 공격하는 프로그램으로 만든 사건을 통보했다. 이런 책임지지 않는 왜곡 보도를 보고 취재에 응한 수련생은 아주 분개했으며 바로 베이징 방송국에 가서 진실한 상황을 반영하고 잘못된 보도를 취소할 것을 요구해 사회의 부정적인 영향을 만회하려 했다.

소식에 의하면 그날 우여곡절 끝에 TV방송국 관리자가 직접 파룬궁수련생들을 접대했고 수련생들에게 상황을 말하라고 했으며 파룬궁수련생들은 잇달아 무대에 올라가 자신이 파룬궁을 수련해 심신이 이익을 본 감동적인 사례를 진술했다. TV방송국 관리자들은 아주 감동했으며 그 프로그램에 엄중한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악영향을 없앨 구체적인 해결법이 없었다. 때문에 베이징의 많은 수련생들은 계속 방송국에 가서 상황을 반영해 방송국이 잘못을 바로 잡고 파룬궁수련생들에게 사과해 영향을 만회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상황을 수련생들에게 알리려 했고 방송국에 갈지 안 갈지는 각자가 결정하게 했다. 어떤 사람은 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어떤 사람은 어떻게 갈지 의논하자고 했으며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연공장, 법공부 소조의 더욱 많은 수련생들에게 이 일을 알릴 것인지생각했다.

저녁에 연공장에서 모두에게 이 일을 통보했고 당시 많은 사람들이 결연히 가겠다고 표시했다. 우리가 어떻게 차를 타고 갈 것인지 상의할 때 한 열정적인 아주머니가 이미 사위에게 연락해 그 다음날 소형 버스로 우리들을 직접 베이징방송국에 보내주기로 했다고 하면서 모두들 차비만 조금 내면 차를 갈아타거나 물어서 가는 번거로움을 덜 수 있다고 했다. 그 아주머니는 아주 시원시원했고 대법에 아주 감사하고 있었다. 1996년 봄, 우리 지역에서 처음으로 사부님의 설법 동영상을 대규모로 관람하는 것을 조직했다. 중간에 하루 일정이 끝나고 그 아주머니는 자발적으로 몇 마디 했다. 그녀는 아주 격동하면서 이전에 불면증이 아주 심해서 장기간 잠을 잘 자지 못해 매우 고통스러웠는데 사부님의 동영상을 본지 며칠 안 됐는데 어느새 갑자기 잠을 잘 수 있었기에 사부님께 특별히 감사드린다고 했고 꼭 확고하게 수련하겠다고 했다. 그 후 그녀는 적극적으로 모두를 위해 서비스를 제공해주었고 또 자리를 마련해 수련생들이 그녀 집에서 법공부를 하게 했다.

3. 베이징 TV방송국에 청원하러 간 경험

아침: 심신을 정화하다

1998년 5월 31일 아침, 우리 연공장에서 약 20명이 소형버스를 타고 베이징 TV방송국에 가서 상황을 반영했다. 우리 지역을 떠날 때 방향을 바꿔 베이징으로 가는 큰 길로 들어서려는 순간 나는 눈물을 흘렸고 사부님의 무한한 자비와 대법제자가 된 비할 바 없는 신성함, 행복감을 느꼈다. 우리가 아직 가지도 않았는데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셨고 우리 마음은 순간적으로 정화된 느낌을 받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었고 마음은 무한한 감사로 가득했다.

오전: 아주 큰 변화

길에서 아주 순리롭게 베이징 TV방송국으로 갔다. 북쪽 대문에 들어서니 큰 정원이었고 위는 투명한 지붕이 있었으며 가운데는 음식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둥근 테이블들이 10여개 놓여 있었다. 출근시간이 되어 매 테이블에 모두 TV방송국 직원들을 배치해 접대하게 했고 상황을 반영하는 파룬궁수련생들은 앉거나 서서 자연스럽게 원이 형성되었으며 누가 말하고 싶으면 말했고 접대하는 사람들은 펜으로 기록했다. 그들은 보통 먼저 말했다. 첫째, 베이징 TV방송국이 기공에 대해 홍보하지 않고 논쟁하지 않으며 비판하지 않는다는 세 가지 규정을 위반했고, 둘째, ‘베이징터콰이’ 프로그램에 진실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으며, 셋째, 방송국에서 이미 당사자를 처리했고 그 실습기자를 해고시켰다고 했다.

어떤 직원이 비교적 평화로운 말투로 강조했다. “이 사건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고 결론도 나왔습니다. 여러분에게 특별한 요구사항이 있다면 말씀하시고 우리는 반영하겠습니다.” 그들의 뜻은 무슨 특별한 것이 없으면 말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어떤 직원들은 접대하면서 반감을 갖고 참지 못하고 말했다. 내가 들은 뜻은 우리가 사건을 반영한 일을 그들이 이미 알고 처리까지 해주었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가서 괜히 일을 만들어 직원들이 아주 바쁘니 그들에게 번거로움을 주지 말라는 뜻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것은 완강하게 말한 것이었다. 언론 매체를 포함한 사악한 중국공산당 정권은 국민에게 한 번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고 사과할 줄은 더욱 모른다. 사람들은 머리를 숙이고 잘못을 인정하는데 이 베이징 TV방송국은 머리를 쳐들고 잘못을 인정했다. 그 뜻은 오늘 잘못을 시인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 아니니 다시는 주제넘게 행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들은 공공매체로서 좋은 것을 나쁘다고 말해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해치고 국민을 잘못 인도해 아주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고 속으로 만회하지 말아야 하고 사과하고 바로 잡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있는 힘껏 부정적인 영향을 만회하려는 생각이 없었다. 그것이 진정으로 잘못을 인정하는 것인가? 상처 입은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내가 참가한 그 테이블에서 접대하던 기자로 보이는 사람은 선량한 사람이었고 모두가 말한 것을 노트에 기록했다. 그들은 세 가지를 먼저 이야기했고 그 다음 수련생들은 자신의 상황을 말했다. 대부분 수련생들은 모두 자신이 수련해 심신이 이익을 본 구체적인 사례를 이야기 했고 파룬궁이 개인에 대해, 사회에 대해 아주 많은 좋은 점이 있다는 것을 집중적으로 이야기했다. 한 모녀가 급히 쫓아왔는데 보기에도 특별히 온화하고 선량해 보였다. 엄마는 딸이 대입시험을 본다며 주말에 학원에 가야 하기에 서둘러 택시를 타고 왔다면서 원래 집이 부유하지 않아 택시를 타본 적이 없는데 그것은 그들이 처음으로 택시를 탄 것이라고 했다. 거기에 쫓아온 것은 TV방송국에 파룬궁이 정말 좋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녀들의 그 순수한 마음은 나와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나도 간단하게 온 가족이 파룬궁을 수련해 이익을 본 상황을 알렸고어머니, 아내, 아들, 며느리가 모두 수련한다고 했으며 또 허베이 농촌의 큰 이모와 베이징에서 온 숙모도 모두 파룬궁을 수련한다고 말했다.(숙모는 중국 3대 방송국의 아나운서였고 기술적인 명칭은 최고 방송지도자이며 정식 교수였으며 행정상으로 지도자이자 구 인민대표였다. 이후에 그녀는 방송국 기타 파룬궁수련생들과 함께 베이징 TV방송국에 가서 상황을 반영했다고 들었다. 아나운서 전문가이고 국가 급이어서 그들은 안에서 특별한 접대를 받았다고 했다) 수련생마다 많은 병이 다 나아 몸이 가뿐해졌고 가정이 화목해졌다고 했다. 나는 이전에 비해 일을 더 열심히 했고 과거에는 글자도 비뚤비뚤하게 썼는데 수련 후 모두 또박또박 적었으며 아주 일을 열심히 해서 관리자들이 특별히 나를 칭찬했다고 했다. 이런 것들은 모두 파룬궁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좋은 점이다.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한 테이블은 대부분 모두 온 가족이 수련해 이로움을 얻었지만 2,3명이 대표로 왔고 한 예쁜 자매가 온 가족을 대표해 왔으며 그 외 부자, 부부, 시누이, 올케 등 가족을 대표해 TV방송국에 와서 기자들에게 알리면서 상황을 봐서 만약 만족스러운 결과가 없으면 그들 가족이 또 올 수 있다고 했다. 모두 사회 상류층 사람들이어서 아주 상냥하고 진솔했다.

모두들 아주 존중했고 접대 직원들을 잘 이해해주었으며 파룬궁의 좋은 점을 끊임없이 그에게 이야기했다. 그 직원은 들을수록 파룬궁의 좋은 점에 감동했고 그는 재차 여러분이 반영한 상황을 윗선에 보고하겠다고 말했다. 한 접대 직원은 작은 관리자 같았는데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고 큰 컵을 들고 와서 거기에 앉았는데 팍 하면서 약통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진쌍쯔허우바오(金嗓子喉寶, 목캔디류)’란 약이었을 것이다. 그 뜻은 그가 바쁘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까짓 일을 가지고 끊임없이 그들을 괴롭히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파룬궁수련생들은 대법을 수련하면서 이득을 본 것을 말하는 동시에 더 많은 사람들이 법을 얻어 이익을 보게 하려는 선량한 염원을 표했고 그에게 알려주었다. 우리가 그에게 번거로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더 아름다워지기를 희망하고 그들을 도와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여러 사람들의 선량한 마음은 그를 감동시키고 있었다. 이후에 어느새 그는 비스듬히 앉았던 몸을 서서히 곧게 폈고 태도도 좋게 변했으며 갈수록 상냥해졌다. 목이 아픈 것과 책상 위의 약도 잊었다.파룬궁수련생들은 잊지 않고 생수를 몰래 그의 책상에 놓아주었다. 정말로 그를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이것은 교류 중에 내가 본 분위기 변화가 가장 극적인 테이블이었다.

상황을 반영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순서대로 아주 상냥하게 반영했고 중간에 TV방송국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녹화했다. 우리는 아주 태연하게 정부부서의 잘못에 대해 비판적인 건의를 제기했고, 국민의 권리이자 책임을 펼치는 합리적이고 합법적이며 정정당당한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조금도 원망하거나 적대시하는 등 부정적인 마음이 없었고 선의로 사람들에게 파룬궁은 좋은 것이고 개인과 사회에 좋으며 당신이 공무원이거나 기자거나 보통 사람이거나를 막론하고 다 좋다고 했다. 당시 하나도 두렵지 않았고 녹화하려면 하라고 생각했다. 사실 베이징 TV방송국 북문 맞은편이 바로 베이징 무장경찰총부다. 베이징 사람들은 ‘6.4천안문 학살 사건’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사악한 공산당이 무슨 일을 못하겠는가? 추후에 추궁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고 총을 쏘고 피를 흘리는 것도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왜 어떤 사람은 시간이 있으면서 오지 않았는가? TV방송국이 잘못한 것을 몰라서가 아니고 파룬궁이 정말 좋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다. 그것은 일이 생길까 봐 두려워서이고 사악한 공상당의 사악함이 두려워서이다.

그 테이블에서 말이 거의 끝나가자 나는 다른 테이블로 옮겨갔다. 모두들 자유롭게 옮겨 다녔고 아주 자연스러웠다. 오전에 한동안 듣고 돌아가야 할지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한 수련생이 전화를 받았는데 싱가포르 수련생이 이 사건을 알고 비행기를 타고 오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 소식을 듣고 모두들 아주 들떴고 나도 특별히 감동했으며 해외 수련생이 천리만리에서도 오는데 파룬궁에 특별히 큰 수혜를 입지 않았더라면 가능한 일이겠는가? 대법을 보호하려는 결연한 마음이 없다면 가능한 일이겠는가? 자비롭고 선량한 마음이 없었다면 가능한 일이겠는가? 나는 우리는 이렇게 가깝지만 악영향을 만회할 합리적인 답변을 하나도 듣지 않았는데 어떻게 돌아가겠느냐고 생각했다. 무슨 일이든 잘해야 한다.

한 여수련생은 아주 개성이 있어 나에게 아주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녀는 외곽의 40여세 농민이고 남편과 함께 왔다. 그녀는 말솜씨가 아주 좋았고 빠르고 시원시원하게 말했다. 그녀의 남편은 옆에 있었는데 매우 소박하고 무던하며 말을 잘하지 못하는 순수한 농민으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내가 말한 것이 그의 속마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부부가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수련 전에는 원래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원칙은 촌 간부가 고기를 먹으면 자신이 어떻게 해서라도 국물이라도 먹어야 했고 이익이 있으면 바로 다투고 조금도 손해를 보지 않았으며 무서운 것이 없었다. 때문에 소송까지 했는데 그녀는 법정에서 책상을 두드리고 판사의 코를 손가락질하면서 말했다. “당신의 머리 위의 것은 국가의 휘장이지 술병마개가 아닙니다. 당신이 나에게 불공정하게 대하면 나는 몸에 ‘원(冤-억울할 원)’자를 머리만큼 크게 쓰고 천안문광장에 가서 억울하다고 외칠 겁니다.”

한번은 그녀 인근 공장에서 촌의 땅을 매입하려 했는데 그녀는 소식을 알고 밤에 볏모를 뽑고 포도를 심었다. 그것은 포도 배상금이 훨씬 더 비싸기 때문이다. 그러자 직원은 허가하지 않고 “언니, 우리는 사전에 항공 시진을 찍었어요. 그 밭에는 밀을 심었기에 밀 배상금으로 보상해줄 수밖에 없어요” 라고 하자 그녀는 막무가내로 떼를 써서 어쩔 수 없이 나중에 포도 배상금의 절반을 보상 받았다. 그녀는 이익을 본 것으로 아주 만족했다. 이후에 파룬궁을 수련했고 몸도 좋아졌으며 무슨 일을 하나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으로 해서 정말로 사람이 바뀐 것 같았고 다시는 사람들과 이익을 다투지 않았다. 또한 사람들에게 그녀 집으로 와서 법공부를 하게하고 그녀 집 앞에서 연공하게 했으며 여러 사람들에게 좋은 환경을 주기 위해 자신의 돈으로 시멘트를 사서 바닥을 평평하게 만들었다.

변화가 얼마나 큰가. 이것이 파룬궁의 위덕 아닌가? 이것이 사회가 안정되고 아름다워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닌가? 사람마다 수련한 후 모두 하늘땅이 뒤집히는 변화가 생겼고 모두 성실한 사람이 되어서 소박하고 성실하며 평화롭게 이야기 했다. 들은 사람들은 모두 감동하고 정말로 ‘불광이 널리 비치고 불은(佛恩)이 호탕(浩蕩)했다.’ 온 오후, 베이징 TV방송국의 거대한 변화 중에서 접대를 책임진 직원이 모두 변하고 있었다. 나 자신이 느끼기에 전적으로 수혜가 무궁했고 몸소 그 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오: 자발적으로 교류

정오에 직원들이 휴식을 취했고 우리는 거기에서 기다렸다. TV방송국도 아주 선의적이었고 식당에서 우리에게 밥을 먹게 개방해주었다. 우리는 식당에서 간단하게 밥을 사먹었다. 정오에는 접대 직원들이 없었고 여러 지역 수련생들은 두 세 사람씩 함께 교류했다.

한 여 수련생은 그녀가 이전에는 이익을 중시해서 한번은 나쁜 수단으로 1,2천 위안의 돈을 다퉈서 얻고 으쓱했다고 했다. 이후에 아들이 심하게 아파서 현지 병원에 갔는데 의사는 암이 의심된다면서 성(省)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 정말 엄마로서 걱정돼서 말이 아니었고 어떻게 할지 생각했다. 아들을 데리고 성 병원에 갔지만 사람이 많아서 검사를 받지 못했고 부근 여관에 머물렀다. 이틀 후 검사하니 아무 병도 없어서 정말로 다행이었다. 이후에 파룬궁을 수련해 모든 것을 알게 됐다. 아들의 검사를 위해 쓴 돈이 마침 그 다퉈서 얻은 금액과 동일했다. 정말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1]였다!

한 5, 60세 남자 수련생은 기업 관리자 같이 보였는데 그는 말했다. “현재 사회 기풍이 정말 나쁜데 모두 진선인에 따라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한번은 내가 타지로 출장을 갔는데 여관에서 나올 때 카운터 직원은 나에게 숙박비 영수증을 얼마로 끊을지 물어서 나는 정말 갑갑했고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어요. 그녀는 하루에 30위안, 50위안, 100위안씩 영수증을 더 끊어도 괜찮다고 했어요. 나는 그녀에게 실제 가격대로 영수증을 끊으라고 했지요. 카운터 직원은 의아하게 나를 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갈 때 영수증에 실제 가격과 다르게 끊어 달라고 하고 아무튼 나라 돈인데 갖지 않으면 손해라고 했어요. 나는 내가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고 진선인의 첫째가 진(眞)이므로 가격이 얼마면 그대로 해야지 공공기관의 돈을 부당하게 가질 수 없다고 말했어요.”

오후 2, 3시 경에 산간 지역에 사는 수련생이 막 도착했다. 과장하지 않고 말하면 당시 그들은 집일과 농사일을 내려놓고 산을 넘고 온 것 같았고 장시간 와서 고달파 보였다. 그들은 책임성 없는 홍보를 듣고 자신이 무궁하게 이득을 보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무궁하게 이득을 볼 수 있는 파룬궁이 모함을 당하는 것을 보고 TV방송국 사람들이 상황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와서 마음속 말을 하려고 온 것이었다. 그 소박함은 사람을 감동시켰다.

오후: 갈수록 평온해지다

오후도 오전과 마찬가지로 모두들 계속해서 방송국 직원들에게 파룬궁을 수련하는 좋은 점에 대해 말했다. 내가 들은 가장 평온한 테이블은 노인 파룬궁수련생들의 테이블이었다. 그 테이블을 접대하는 직원은 나이가 많지 않은 젊은이였는데 본성이 선했으며 몇몇 노년 수련생들은 그와 이야기가 특별히 잘 통했다. 그 젊은이는 방송국에서 이미 그 당사자를 해고시켰다고 했다. 노년 수련생들은 말했다. “잘못을 알고 고치면 되죠. 우리가 방송국에 온 것은 사람을 처리해달라고 온 것이 아니고 여러 사람들에게 파룬궁이 아주 좋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온 것이고 그들도 파룬궁을 알지 못해서 그런 것이니 그 사람들을 해고하지 말아요. 그리고 방송국 관리자에게 말해서 그를 해고하지 말라고 하세요.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젊은이는 말했다. “나는 늘 공원에서 사람들이 연공하는 것을 보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잘 알지 못했는데 파룬궁이 그렇게 좋아요?” 한 할머니는 “나는 나이가 이렇게 많고 젊은이 어머니보다 나이가 더 많은데 파룬궁을 수련한 후 병이 다 나았고 주사도 맞지 않고 약도 먹지 않아요. 정말로 병이 없고 몸이 가뿐해요. 당신들이 이렇게 보도해서 다른 사람들이 와서 배우는 시간을 지체하잖아요. 나는 연공해서 몸이 좋아졌고 아이가 밖에서 일해도 안심되잖아요. 젊은이 부모님도 만약 이러면 당신이 밖에서 일을 해도 마음이 놓이잖아요.” 그 젊은이는 “원래 파룬궁이 그렇게 좋았어요? 그럼 제가 엄마에게 파룬궁을 수련하라고 말해볼게요”라고 했다. 몇몇 할머니들은 모두 “잘됐어요! 당신이 밖에서 일해도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거예요”라고 했고 노년 수련생이 그에게 ‘전법륜’을 선물했으며 그는 아주 기뻐했다. 나는당시 그 할머니가 완전히 선량한 마음으로 말했기에 청원한다는 느낌이 조금도 들지 않았고 상황을 보고하는 모습이 이웃집 할머니와 아랫사람이 골목에서 한담하는 것 같았으며 그것은 관념이 없는 선량한 본성의 대화이자 아무런 방해도 없는 심리적 소통이었다. 진짜로 아름다운 정경에 마음과 눈이 즐거웠다. 그 젊은이도 본성이 착해서 그 어떤 관념도 없었고 그 인연을 놓치지 않았다. 정말로 마음속 깊은 곳으로 대법에 대한 바른 견해가 있었다.

시간은 빨리 흘렀고 한 노수련생이 어떤 사람은 갔는데 우리도 갈 것인지 물었다. 나는 좀 더 듣자고 하자 모두들 이후에는 이런 기회가 없을 것 같으니 정말 잘 됐다고 했다.(그 다음 날에 사람들이 더 많이 올 줄은 생각도 못했고 사람이 많아서 사람마다 모두 말을 할 기회가 없었다.)

저녁: 떠나기 아쉬워하다

3, 4시에 멀리 산골마을에서 온 수련생들이 돌아간 후 그들 중 어떤 사람은 전날에 소식을 듣고 저녁부터 일손을 놓고 달려왔는데 그날 오전에야 도착했기에 그 때 돌아가야 했으며 더 늦으면 장거리 차를 놓치게 되고 집에 많은 일들을 해야 했다. 그러나 그때까지 방송국에서는 만족할만한 답변이 없어서 그들은 그런 상황에서 돌아가기 싫어했다. 어떤 수련생들은 거기에 와서 알게 된 수련생에게 연락처를 남기는 방식으로 무슨 상황이 있으면 바로 그들에게 알겨주기를 바랐고 모두들 원만한 결과가 있기를 바랐다.

저녁: 아름다움을 나누다

저녁에 집에 도착했을 때 이미 시간이 늦어 밥을 먹고 나는 연공장에 가서 수련생들과 교류했으며 TV방송국에 간 수확을 함께 나눴다. 나는 개인적으로 퇴직한 사람들이 시간이 있는 기타 사람들과 함께 가서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아름다움을 나누기를 바랐다.

1998년 5월 31일은 일요일이었고 그 다음날은 사악한 공산당의 어린이 날이었다. 당시 아들은 5살이었고 휴일이어서 아들을 데리고 놀러가는 날이었다. 그러나 많은 파룬궁수련생들은 휴일에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갈 수 없었다. 속인에게는 그것이 쉽지 않은 기회다. 그러나 개인, 세계에 ‘백익무해(有百利而無一害)’한 진선인 대법을 보호하는 것은 파룬궁 제자의 책임이자 아름다운 의무였다. 그날 또 많고 많은 사람들이 파룬궁의 아름다움을 알게 됐다. 이것이 대법의 일원으로서의 가장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닌가!

1998년 5월 31일은 나 개인, 한 대법제자에게 특별히 기억할 가치가 있는 날이자 비할 바 없이 아름다운 날이었고 나에게는 전례 없는 파룬따파 수련 심득교류회였다.

4. 베이징 TV방송국 사건이 타당하게 해결

6월 1일, 아침에 연공이 끝난 후 어떤 수련생들은 베이징에 갔다. 우리는 월요일에 출근해야 했기에 다시 갈 수 없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방송국의 상황을 염려하고 있었다. 저녁에 법공부 소조에 가서 법공부를 했고 돌아온 수련생들은 울안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 꽉 차서 대문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서 그들은 대문밖에 서있었다. 밖에도 사람들이 많아서 안이 어떤지 확실하지 않았고 수련생들이 말하는 것을 전해 들었으며 전날처럼 그렇게 매 사람마다 직원들과 말할 기회가 없었으며 대표로 몇 사람을 선발해서 이야기하게 했다고 했다. 정말로 하루에 한번 씩 변했다. 저녁에 어떤 사람은 그 다음날에도 방송국에 가서 상황을 반영하겠다고 했다.

6월 2일, 보도소에서 베이징 TV방송국에서 프로그램을 다시 제작해 빠른 시일 내에 파룬궁을 긍정적으로 보도하겠다고 했기에 그 사건은 타당하게 해결되었으니 수련생들에게 우선 다시 가지 말라는 소식을 전했다. 이후에 베이징 TV방송국에서 또 위위안탄에 와서 취재했고 프로그램을 다시 제작해 방영했는데 마치 내용과 시간을 간추려서 내보낸 것 같았고 대답한 대로 전부 내보내지는 않았다. 그러나 파룬궁을 바르게 보도해 일부 악영향을 만회했는데 당시 그 환경에서 비교적 좋은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5. 그 순간적으로 사라진 만고의 기연

베이징 TV방송국 사건 후, 베이징시 한 부시장은 베이징의 모든 언론 매체는 다시는 과학기술원 원사 허쭤슈(何祚庥)에게 시장을 주지 말라는 말을 했다. 1999년 4월, 허쭤슈는 또 톈진에 가서 말썽을 일으켜 톈진 공안이 불법적으로 사람을 체포했다. 결국 1999년 4월 25일에 중난하이(中南海)에서 파룬궁수련생 1만 명이 청원했고 파룬궁의 평화로움과 이성적인 행동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바른 것이 있으면 사한 것이 있고 부처가 있으면 마도 있다. 그러나 사한 것이 바른 것을 이기지 못하는 것은 하늘의 이치다. 매번 대법에 대한 사악의 파괴는 대법제자들이 진상을 분명히 알리는 것을 통해 모두 한 차례 대법을 더 널리 전하는 기회가 됐는데 이것은 악인들이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1998년 5월 베이징 TV방송국 사건도 그랬고 1999년 4월 25일 1만 명 파룬궁수련생들의 평화청원도 그랬으며 1999년부터 오늘까지 17년 동안 파룬궁에 대한 전면적인 박해도 마찬가지로 더욱 그랬다.

1999년 6월 10일, 장쩌민 개인이 사사로이 불법조직 ‘610 사무실’을 설립했고 파룬궁을 박해할 준비를 했다. 1999년 7월 20일, 질투심에 사로잡힌 장쩌민은 사악한 공산당의 전 자원을 이용해 하늘을 뒤덮는 파룬궁에 대한 전면 박해를 시작했고 3개월 동안 파룬궁을 소멸할 망상을 했다. 사악이 더 사악해졌고 미쳐서 더 날뛰었다. 무리하게 해고하고 납치하며 세뇌시키고 불법노동교양을 시키고 징역 판결을 하고 1백 가지 고문에 시달리게 했으며 분신자살 사건을 조작하고 심지어 이 별에서 전례 없던 악행인 파룬궁수련생들의 장기를 산채로 적출해 돈을 벌었다.

그러나 생각 밖으로 17년 동안 동서고금을 초월하는 이 사악한 박해는 오히려 전 세계 사람들에게 파룬궁의 아름다움을 알렸다. 파룬궁은 변하지 않았고 진선인의 원칙은 변하지 않았으며, 파룬궁수련생들의 평화적이고 이성적이며 지혜롭게 진상을 알리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전 세계에서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난 것과 박해하기 전에 40여개 국가에서 수련했는데 박해 후 100여개 국가로 확대된 것이다. 중국공산당이 불법적으로 출판을 금지시킨 ‘전법륜’이 40여종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사람들의 광범위한 환영을 받고 있다. 사악이 박해할수록 대법은 널리 알려진다.

‘9평공산당’은 공산당 붉은 악마의 목을 베는 날카로운 검이고, ‘해체 당(黨)문화’는 사악한 공산당이 중국인에게 주입한 늑대 약을 해독하는 좋은 처방이며, 션윈 공연은 순수하고 아름다우며 해마다 4개 팀이 순회공연을 하며 각국 주류사회의 성대한 찬사를 받고 있다. 밍후이왕은 사악의 박해를 폭로해 사람들에게 무궁한 정념을 더해주고 정견망은 중화전통 신전문화를 찾는 선량한 사람들에게 유익한 도움을 주고 있다. 대기원신문, NTD방송국 등 언론 매체는 전면적으로 중국의 진실한 상황을 보도하고 일반 언론이 말할 수 없는 사실에 대해 지속적으로 정의의 목소리를 내고 진정으로 중국과 인류에게 희망을 가져다준다.

반면에 사악한 중국공산당에게도 거대한 변화가 발생했다. 갈수록 부패하고 타락했으며 사악의 발광도 갈수록 못해지고 신속하게 붕괴 해체되어 가는 것을 모두들 똑똑히 보고 있다. 하늘이 중국공산당을 멸망시키는 날이 눈앞에 다가왔다. 오늘날 삼퇴를 하는 사람이 이미 2억4천만 명에 달했고 매일 또 10만 명씩 증가되고 있다. 나쁜 일을 한 사람에게 응보가 빈번하고 박해의 선봉 왕리쥔(王立軍), 보시라이(薄熙來)는 이미 징역 판결을 받았고 저우융캉(周永康), 리둥성(李東生), 장웨(張越) 등 각급 ‘610’두목은 순차적으로 체포되고 생체 장기적출로 이익을 본 군 우두머리 쉬차이허우(徐才厚), 궈보슝(郭伯雄)은 한 명은 사망하고 한 명은 감금당했다.

2015년 5월부터 지금까지 1년 동안에 20만 파룬궁수련생 및 가족들이 사심 없이 매우 용감하게 두 최고 기관에 국가와 국민을 해친 원흉 장쩌민을 고소했으며 아시아에서만 100만이 넘는 사람이 장쩌민을 고발했다. 장쩌민 정치깡패집단은 전면적으로 해체되고 있고 사람마다 놀라서 당황해하고 있다. 이렇게 인과응보라는 하늘의 진리는 이미 인간 세상에 나타나고 있다.

2016년, 18년 전 베이징 TV방송국사건을 돌이켜 보면서 파룬궁수련생들의 모든 말과 행위, 순수하고 선의가 담긴 따뜻한 세상이 생각났다. 사악한 공산당 언론 매체 중의 사람과 사악한 공산당의 거짓말을 홍보한 모든 중국 국민들은 두 역사를 거울로 삼아 선악에는 보응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진정한 선한 본성을 되찾고 정사(正邪)를 똑똑 구분해 하루 빨리 사악한 공산당에서 탈퇴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다시는 붉은 마귀를 따라 나쁜 일을 하지 말고 천리와 인심, 정의의 편에 서는 것을 선택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 진선인은 좋습니다)’를 널리 알리기 바란다.

인연 있는 세인과 중생이여, 이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만고의 기연을 소중히 여기라!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문장발표: 2016년 6월 12일

분장분류: 온고명금> 밍후이 자료센터> 증거(1992.5. 13-1999,7.20)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6/12/32990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