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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진정으로 신통해지자

글/ 란신

[밍후이왕] 최근 내가 알고 있는 서로 다른 지역의 수련생이 어떤 이는 진상을 알리다가 체포되고, 어떤 이는 병업으로 병원에 갔으며, 어떤 이는 정욕 방면으로 고통 속에 빠졌다. 더구나 이런 수련생은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심한 시련 속에서 걸어 나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법 실증이 이젠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는데 왜 나타나지 말아야 할 이런 문제가 나타나는가?

내가 이런 문제를 깊이 생각할 때, 사부님 말씀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매번 마난(魔難)이 닥쳐올 때, 본성(本性)의 일면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완전히 사람의 일면으로 이해한다. 그럼 사악한 마(邪魔)는 이 점을 이용하여 끝없이 교란하고 파괴함으로써, 수련생으로 하여금 장기간 마난 속에 빠지게 한다. 사실 이것은 사람의 일면이 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빚어진 것이며, 인위적으로 당신들 신(神)의 일면을 억제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당신들이 이미 수련 성취된 그 부분을 억제하여 신의 일면이 법을 바로잡는 것을 저애하였다. 아직 수련 성취되지 않은 일면이 어찌 주사상(主思想)을 억제하며, 이미 법을 얻은 일면을 억제할 수 있는가? 인위적으로 사악한 마를 자양(滋養)하여 그것이 법의 틈을 타게 한 것이다. 제자로서 마난이 올 때, 정말로 마음이 움직이지 않거나 부동한 층차에서 당신에 대한 부동한 요구에 부합하도록 마음을 둔다면, 충분히 고비를 넘을 수 있다. 끝없이 끌고 내려간다면, 만약 心性(씬씽) 또는 행위에 다른 문제가 없다면, 사악한 마(魔)가 당신들이 방임(放任)한 틈을 탄 것이 틀림없다.”[1]

그 때 나는 갑자기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한 가지 “당신들 신의 일면”, “이미 수련 성취된 그 부분” [1]의 내포를 조금 알게 됐다. 그 일부분은 우주 대법이 우리에게 준 경지와 요구에 완전히 부합되는 것이다. 비록 부동한 생명 층차와 경지 및 생명의 특징은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모두 우주 대법이 포괄하는 범주내의 부동한 경지이다. 그럼 특징상으로부터 말한다면, 우리 지금 인류의 언어로 형용해도 역시 ‘무사(無私)’와 ‘남을 위한다’는 표현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법을 실증하는 구체적인 실천 가운데서,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완전히 ‘무사’와 ‘남을 위한다’는 기점에서 한다면 내 생각에 그렇게 많은 나타나지 말아야 할 교란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이렇게 여러 해 되는 동안 많은 수련생은 체득 가운데서 모두 “단 한 번의 생각 차이로 결과가 완전히 다른” 각가지 사례를 언급했다. 어떤 사람은 신체에 병업 상태가 나타나면 확고하게 신사신법 하는 외에 그는 생각할 것이다. 나의 신체는 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지 사악이 박해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아주 순수하게 이렇게 생각할 때. 병업의 가상도 지나간다. 어떤 수련생은 진상을 알릴 때 완전히 중생에 대해 자비하며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득실은 생각하지도 않으며 또 어떻게 자신의 위덕을 세울 것인가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면 어떤 교란을 만났다 하더라도 모두 위기를 넘길 수 있다. 어떤 수련생은 부부간에 한쪽이 정욕이 아주 강한 상황에서 자신을 순정하게 하는 동시에 곧 생각한다. 나는 사악이 상대방의 정욕을 가중시켜 수련생을 망가뜨리지 못하게 할 것이다. 이러면 상대방의 정욕도 그리 심하지 않게 되고 부부 이 방면도 아주 화목하게 된다.

이런 예를 통해 나는 사부님께서 여러 번 언급하신 ‘서약실현’의 또 하나의 내포–신(神)에 대해 알게 된 것 같다. 생명의 특징과 층차에 어떠한 다른 점이 있든지 막론하고 모두 “언행이 일치” 해야만 비로소 부동한 경지의 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신으로 될 자격이 없을 뿐만 아니라 결과도 상상하기 어렵다.

그럼 우리가 문제에 봉착했을 때, 우리가 철저히 일체 ‘낡은 나’ 심지어 형형색색의 ‘가짜 나’와 ‘사(私)’의 제한에서 걸어 나올 수 있는가? 자신의 과거의 일체 집착을 진정으로 내려놓을 수 있으며, 진정으로 대법과 정법의 요구에 따라 하게 되면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마난이 올 때, 정말로 마음이 움직이지 않거나 부동한 층차에서 당신에 대한 부동한 요구에 부합하도록 마음을 둔다면, 충분히 고비를 넘을 수 있다.”[1] 일체 문제를 고려함에 모두 사심이 없고 남을 위하는 상태로 하며, ‘나’를 철저히 내려놓는 어떠어떠한 사유 방식으로 한다면 우리의 신의 일면이 진정으로 신적이 나타나게 할 것이고 일체 교란을 제거하고 더욱 훌륭히 사람을 구할 것이며 더욱 빨리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진정으로 신 우주 대법에 동화해야만 비로소 우리 개체 생명의 존재가 있는 것이다. 형형색색의 ‘자아’를 내려놓지 않으면 신 우주 대법의 부동한 층차의 표준에 도달할 수 없으며 그러면 당연히 신 우주 중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가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할 때,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해야 하며 내가 무엇을 얻어야 한다거나 장래와 과거가 어떠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직 이렇게 해야만 최대한도로 우리의 ‘신’의 일면을 발휘할 수 있고 더욱 훌륭히 우리의역사 사명을 완수할 수 있으며, 그러면 자연히 우리의 신성한 서약을 실현할 수 있다.

설명: 이 글을 쓴 후, 원래는 어쩐지 좀 명석하지 못하던 머리가 대번에 맑아지고, 많은 일이 인식 상에서 더욱 더 명석해졌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개인의 깨달음을 여러분과 교류한다

주:[1] 리훙쯔사부님저작 :《정진요지》〈도법〉

문장발표 : 2016년 6월10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 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6/10/-32985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