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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사부님, 저희 온가족이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세계 파룬따파의 날을 맞이하여 우리 온가족이 대법의 홍은(洪恩) 하에 행복하게 수련하며 생활해온 한 토막의 이야기를 말해보고자 한다.

“복이 다 어르신 집으로 갔어요!”

파룬따파가 널리 전해짐에 따라 우리 집 여섯 식구는 잇달아 법을 얻었고 자연적으로 우리 집은 마을의 법공부·연공하는 장소가 됐으며 ‘파룬궁 집’이라고 불렸다.

대법을 수련하기 전에 우리 대가족은 사분오열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속마음이 각각 달랐는데 동서, 며느리와 시어머니, 올케와 시누이간의 모순이 매우 많았고 어떤 땐 심지어 만나도 말을 하지 않았다.

대법을 수련한 후 우리 집에 천지개벽의 변화가 생겼다. 수련하는 모두가 다 파룬따파의 ‘진(眞), 선(善), 인(忍)’의 요구대로 자신을 요구했다. 모순이 생기면 각자 자신의 원인을 찾았고 어디에서 잘하지 못했으면 이후에 잘했다. 손해를 볼 때도 ‘그녀는 고의가 아니다. 그녀는 나보다도 더욱 필요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문제를 처리할 때 우리는 언제나 상대방의 각도에서 고려했고 사람을 잘 대했으므로 대가족은 매우 화목했고 한 가정에 일이 있으면 모두들 도왔다. 정말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다.

지금 사회에서 노인을 봉양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문제가 된 것 같다.

시어머니에게 3남 3녀가 있는데 남편은 셋째고 형이 둘, 여동생 셋이 있다. 세 며느리가 다 파룬궁을 연마하기 때문에 노인을 봉양하는 것은 우리 집만의 문제가 아니었고 모두들 극진히 모셨으며 자신들이 노인에게 해야 할 효도를 다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진 시부모도 정신 건강이 좋아졌다. 이웃들은 시어머니를 보기만 하면 “할머니, 정말 복이 많네요! 지금 얼마나 잘 지내고 있어요!”라고 했다. 시어머니는 “그러네요, 다 파룬궁 덕분이죠!”라고 했다.

2004년에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도소에 수감됐다. 3년 후 집에 돌아와서야 시어머니가 며느리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을 안고 2005년 인간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됐다.

교도소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 남편은 “아버지가 살고 있는 고향 집이 너무 낡고 비새는 곳이 갈수록 많은데 개축해 드리면 어떻겠어요?”라고 했다. 비록 집에 돌아온 지 열흘 밖에 안됐고 신체도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지만 남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즉시 “그래요, 가을에 비가 적을 때 빨리 개축합시다.”라고 했다. 남편은 개축하는 돈을 둘째 형에게 주면서 모든 일을 외주로 주고 형은 감독만 하라고 했다.

2개월 후 새로운 단층집이 섰는데 넓고 밝았으며 연꽃이 새겨져 있는 4개 유리로 구성된 대문은 아주 예뻤다. 시아버지는 새집을 바라보고 “평생 이렇게 좋은 집에서 살 수 있을 줄이야.”라고 하며 유난히 기뻐하셨다.

지금 시아버지는 88세 고령이지만 신체가 좋고 얼굴이 볼그스레하고 완전히 스스로 생활할 수 있다. 물만두를 빚고 찐빵을 찌고 밥을 하고 보일러에 불을 때는 일은 누구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고 옷을 깨끗하고 정연하게(며느리가 씻은 것) 입었으며 마을에서 이름난 행복하고 장수한 어르신이다. 시아버지가 산책할 때 마을 사람들이 보면 “어르신 살수록 활기차네요, 복이 다 어르신 집으로 갔어요. 일가족이 참 좋네요!”라고 했다. 그러면 시아버지는 “집에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 많아 파룬궁의 덕을 본 것이죠! 세 며느리가 진심으로 잘 대해줘요. 이 파룬궁이 그녀들을 개변했고 우리 온 가족을 개변시켰어요. 나도 파룬궁을 배웠기 때문에 신체가 이렇게 좋아요. 복이요, 파룬궁이 가져다 준 것이에요, 누구 집에 파룬궁을 배우는 사람이 있으면 그 집에 복이 있어요.”라고 했다.

“지금 사회에서 누가 해낼 수 있는가?”

2002년에 직장에서는 불경기의 압력을 감소하고자 책임자는 40~50세 여성 근로자가 반신불수, 심근경색, 폐병, 전염병 등에 걸린 적이 있고 입원, 퇴원증명, 의사의 서명이 있기만 하면 직장에서는 병으로 일찍 퇴직하는 수속을 해준다고 결정했다. 병으로 일찍 퇴직하는 것은 출근하는 것보다 적지 않게 받기 때문에 만약 병퇴하고 또 다른 일자리를 찾으면 좋은 일이 아닌가? 그러므로 40~50세 여성 근로자는 온갖 궁리를 다 해 큰돈을 쓰고 가짜 병력을 샀다. 뜻밖에도 마지막에는 나를 빼고는 모두가 다 ‘병으로 퇴직했다’.

남편에게 인맥이 넓고 발이 너른 아주 친한 동료가 있는데 우리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수속을 다 해놓았고 내가 서명하기만 기다렸다. 남편은 그에게 “감사하지만 신경 쓰지 말아요, 아내는 동의하지 않을 거에요.”라고 했다.

병으로 퇴직하는 일에 관해 남편과 의논한 적이 있다. 그는 “이 기회에 퇴직하고 집에서 밥이나 하고 집을 돌보는 것이 얼마나 좋아요! 임금도 적지 않은데.”라고 했다. 나는 “안 돼요, 이전 신체를 당신도 알죠, 질병에 시달려 하마터면 폐인이 될 뻔했고 당신이 절 데리고 도처로 다니며 병을 고치려고 했던 그 조급해하는 모습을 잊지 않았죠? 지금 파룬따파를 수련해 비로소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정력이 왕성한데 이것은 모든 사람이 공인하는 것이에요. 어찌 양심을 팔아먹고 가짜를 만들어 거짓말하고 사람을 속일 수 있겠어요?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사람이므로 ‘진·선·인(眞·善·忍)’대로 일하고 진실한 말을 해야 해요. 그런 일을 절대 할 수 없어요. 누가 자신에게 병을 초래하겠어요!”라고 했다. 남편은 명백한 사람이라 더는 말하지 않았다.

후에 이 일을 사람들이 알게 됐다. 어떤 사람은 “아직도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들은 되고(바르고) 정기가 있으며 부정하게 일을 처리하지 않는구나. 이 사회에서 누가 해낼 수 있겠는가?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해낼 수 있다.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했다.

막내 시누이를 도와 고비를 넘다

2012년 1월 어느 날 저녁에 막내 시누이의 전화를 받았다. 아들이 다음 달에 결혼하게 돼 물건들을 사서 새 집에 준비해 놓았는데 그저께 밤에 도둑이 몽땅 훔쳐갔다고 했다. 여자 쪽에서 예단비도 달라고 해 할 수 없이 내게서 돈을 좀 빌리겠다고 했다. “얼마 필요해요?”라고 하자 막내 시누이는 “2만 위안(한화 약 360만원)이에요.”라고 했다. “정말 미안한데 손에 돈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반달 전에 큰 아가씨의 큰 딸이 집을 사려고 하는데 계약금 1만 위안(한화 약 180만원)이 부족하다고 해서 부쳐줬어요. 하지만 1만 위안은 긁어모아 빌려 줄게요.”라고 했다. 막내 시누이는 “1만 위안도 괜찮아요, 부족하면 다른 방법을 생각할게요.”라고 했다. 아들과 며느리는 다 출근하기 때문에 이틀 후에 내가 그녀에게 돈을 부쳐줬다.

아이가 결혼한 후 막내 시누이의 남편은 빚을 갚으려고 외지에 가서 일했는데 3개월 후에 위가 불편하고 음식을 조금 먹기만 하면 토해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았다. 결과는 ‘위암말기’라고 했다. 이것은 정말로 설상가상이다! 돈을 적지 않게 썼지만 2개월 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집에는 병에 걸린 60여세 시어머니, 이 가정을 떠받들 수 없는 금방 결혼한 겨우 22살 밖에 안 되는 아들과 태산 같은 빚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막내 시누이는 괴로워하며 슬퍼했다. 막내 시누이의 가련한 눈빛을 보고 그녀를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울지 말아요, 아무리 어려워도 살아가야 해요. 올케들 셋이서 아가씨를 도와주면 이 고비를 넘길 수 있다고 믿어요. 제가 빌려준 돈은 갚지 않아도 괜찮아요. 비록 큰 액수는 아니지만 다소 부담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에요. 이후에도 계속 도와줄게요.”라고 했다.

막내 시누이가 큰 감동을 받았는지 아마 그녀의 친구와 친척에게 이 일을 말한 것 같다. 그들은 다 “파룬궁이 가르친 사람은 정말 좋다. 파룬궁은 비교할 데가 없어요.”라고 했다.

하늘에는 예측할 수 없는 풍운이 있다. 2013년 막내 시누이의 집에 손녀딸이 태어났는데 선천성 심장병이 있었다. 의사는 2살쯤에 수술하면 가장 좋다고 건의했다. 2015년 10월에 손녀에게 수술해주려고 하지만 그들이 모은 돈은 여전히 부족했고 여전히 1만 위안이 부족했다. 이번에 막내 시누이는 내게 말하지 않았고 직접 친정 큰 오빠 집에 가서 빌렸는데 큰 형님은 듣고 매우 통쾌하게 빌려줬고 “만약 부족하면 또 말해요.”라고 했다.

아이의 수술은 잘 됐다. 퇴원한 후 두 형님이 보러 갔고 아이의 아빠와 엄마에게 늘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면 평안을 보장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신체회복도 빠르다고 했다. 그들은 모두 받아들였다.

올해 남편과 함께 설을 쇠러 미리 고향으로 내려갔고 큰 형님과 함께 아이를 보러 갔다. 대문에 들어서자 아이가 밖에서 놀고 있었는데 건강하고 활발하며 전혀 큰 수술을 한 것 같지 않았다. 온가족은 우리를 보자 매우 기뻐했고 풍성한 한 상을 차려주며 감사를 표했다. 남편은 팔자가 좋지 않은 여동생을 보고 “돈이 많지 않은데 설 쇨 때 너와 아이 옷을 좀 사 입어라.”라고 1,000위안(약 18만원)을 억지로 손에 쥐어줬다. 여동생은 감동해 눈물을 흘렸다.

큰 형님이 그들에게 NTD방송을 볼 수 있는 위성 수신기를 설치해주자고 건의하자 온가족은 동의했고 며칠 후에 큰 형님이 무료로 그들에게 설치해줬다. 온가족은 매우 기뻐했고 감사하다는 말로 가득했다.

그녀의 온가족은 벌써 삼퇴했다.(중국공산당의 당, 단, 대 조직에서 탈퇴) 우리는 “아가씨, 빨리 대법에 들어와요. 대법이야말로 고생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고 생명에 대한 보장이 있어요.”라고 권했다.

우리는 그 날이 하루 빨리 오길 기대한다.

나의 남편

내가 막 파룬궁을 연마했을 때 남편은 매우 지지했고 ‘전법륜’도 한 번 봤으며 병이 있는 부모님에게 파룬궁을 연마하라고 건의하기도 했다. 함께 연마하자고 남편에게 권한 적이 있지만 그는 “신체가 이렇게 좋고 병도 없는데다 말하자면 이 공법이 너무나 바르고 요구도 너무나 엄격해 해낼 수 없어요. 당신들이나 잘 연마해요.”라고 했다.

파룬궁이 탄압당한 이후 우리 집은 심한 박해를 당했다. 1999년 말 시댁과 친정집은 파룬궁을 연마한다는 이유로 불법적인 1만 위안의 벌금을 냈다. 남편은 터무니없다고 했다.

2001년 소위 ‘톈안먼 분신자살’이 방송되자 그는 “이것은 가짜에요.”라고 했다. “당신 어떻게 알죠?”라고 물었더니 그는 “한 의사가 인터뷰를 할 때 ‘우리는 벌써부터 구조준비를 다 했어요.’라고 말했잖아요. 그건 사전에 이 일을 안다는 것이잖아요.”라고 했다.

파룬궁에 대한 박해가 끊임없이 강화됨에 따라 우리 집은 여러 번 불법 가택수색을 당했고 나는 여러 번 납치, 구류, 세뇌를 당했다. 남편은 두 번이나 나를 구치소에서 업고 나왔고 위로해주며 돌봐줬기 때문에 신체의 회복이 매우 빨랐다. 그러나 남편은 원망하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내가 불법 노동교양과 불법 판결을 받는 기간에 남편은 출근하며 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돌봐야했기 때문에 매우 고생했다. 또 후에 아이는 이 슬픈 곳을 떠나려고 대학 졸업 후 베이징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않았고 외지로 갔기 때문에 남편은 홀로 집에 있었다. 그는 장기적인 고통 속에서 고독하고 외롭고 도움이 없는 속에서 큰 압력을 받았으며 감당은 극한에 이르렀다. 성격은 나날이 나빠졌고 마음속의 억압감을 평정할 수 없었으며 어떤 장소에서든 내 이야기만 꺼내면 크게 장쩌민과 공산당을 욕했다.

한 번은 퇴근길에서 고향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날 가리킴) 면회하고 연마하지 말라고 좀 설득해요. 고생해서 뭘 해요?”라고 하자마자 남편은 큰소리로 “그녀가 어째서요? 사람을 죽이지도 않았고 불을 지르지도 않았고 나쁜 일을 한 적도 없어요. 포기하라고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끝까지 견지하라고 해야겠어요! 지금 공산당은 막돼먹었고 국민당보다 못해요!”라고 했다. 이 고향 사람은 듣자 얼른 빠른 걸음으로 떠났다.

이것은 내가 집으로 돌아온 후 그가 내게 알려준 것이다.

내가 불법으로 수감된 지 1년쯤 되었을 때에 남편에게 첫 번째 편지를 썼다. 서두에 “잘 지내고 있어요!”라고 썼는데 그가 답장을 쓸 때 “편지에서 잘 지내고 있냐고 묻지만 난 잘 지내고 있냐고 묻지 못하겠네요. 우리 집에 적합한 말이 아니지요. 당신이 교도소에서 학대를 받고 난 집에서 온갖 시달림을 받는데 무슨 좋은 일이 있겠어요!”라고 했다.

2007년 집에 돌아왔는데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남편은 기뻐하지도 않았고 슬픔뿐이었다. 그는 “돌아왔으면 좋아요. 살아서 돌아온 것은 무엇보다 좋아요!’라고 했다. 나는 “당신 고생 많았어요. 이 집을 지키며 내가 돌아오길 기다려줘서 정말로 감사해요”라고 했다. 그는 말하지 않았다. 좀 지나 그는 “당신이 간 후 당신의 목숨이 가장 걱정됐어요.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 학대를 받아 죽은 사람이 적지 않다고 들었기 때문이에요. 거의 매일 저녁 침대에 앉아 당신을 위해 기도했고 당신들의 대자대비하신 사부님께 당신이 상처를 받지 않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빌었어요.”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울었다. 내게 이런 남편이 있다는 것은 정말로 행운이다. 이렇게 선량한 사람이 만약 대법의 구도를 받지 못한다면 너무 아쉽다.

2015년 중반 무렵 남편은 한 차례 큰 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한 후 그는 “한 번의 생사이별을 겪은 것 같고 너무 무서웠어요.”라고 했다. 나는 “그렇죠, 사람이 돈이 얼마나 있든 직위가 얼마나 높든 권력이 얼마나 크든 이 병이란 물건에 대해서 특히 목숨을 위협하는 병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죠. 당신은 제가 20여 년간 약을 먹고 주사를 맞는 것을 봤어요?”라고 했다.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왜 이렇게 건강해요? 대법의 법리대로 했기 때문이죠. 법 중에서 사람이 왜 병에 걸리는지 왜 재난이 있고 어려움이 있고 불행이 있으며 그것의 근본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됐어요. 사람이 어떻게 해야 병이 낫고 병이 없는지 사부님께서 ‘전법륜’ 중에 매우 똑똑히 말씀하셨어요. 당신 잘 알아봐요. 거기 안에 당신이 알고 싶어 하고 누가 당신에게 해답해줄 수 있는 문제의 답안이 다 있어요.”라고 했다. 그는 “그렇죠, 아니면 당신들이 그렇게 악렬한 환경 하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그렇게 확고할 수 있겠어요. 꼭 표면적인 그 물건뿐만 아니겠죠. 공산당이 탄압하는 물건은 꼭 진귀한 것이에요.”라고 했다.

이렇게 남편은 확고하게 파룬따파 수련에 들어섰고 매우 몰두했으며 반가부좌를 하면 1시간이었고 지금은 결가부좌를 40분 할 수 있다. 매일 법공부를 두세 시간 했다. 몸무게는 62kg으로부터 70kg으로 증가했고 고혈압, 고혈당, 폐결핵, 이명증 등 질병은 모르는 사이에 다 나았다. 마음가짐이 온전해지자 성격도 좋아졌고 말도 부드럽게 했으며 동료, 친구 및 가족들도 그의 변화가 너무 크다고 했다! ‘정신면모가 확 바뀌었다’라는 이 말로 표현해도 전혀 지나치지 않는다.

남편은 구도됐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온가족은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감사드립니다! 사부님의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문장발표: 2016년 5월 13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신수련생마당>대법과의 연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5/13/32754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