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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이 우리 부부 두 사람에게 준 좋은 변화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화목하고 행복한 중등 부유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단순하고 고집스러우며 열정적이고 오만했던 나는 촌에서 첫 번째로 날아오른 황금 봉황이었다. 나는 줄곧 학교 문을 떠나지 않았고 인생 경험이 별로 없었다.

결혼할 나이가 되어 나는 사귄 시간이 길지 않았지만 그때 가장 인기 좋은 외자기업에서 국제 업무를 보는 남편에게 시집갔다. 남편 가정은 학자 가문이어서 당시 내 친구들은 나를 아주 부러워했다. 시댁에 방 한 칸이 있어 우리가 결혼한 후 살 수 있었다. 이는 80년대에 상당히 괜찮은 조건이었다. 나는 모든 여자들처럼 내 혼수를 가지고 아름다운 미래 생활을 동경하며 남편을 따라 시댁에 갔다.

그러나 모든 아름다운 동경이 시댁에 들어간 지 이틀 만에 깨졌다. 결혼식도 없었고 열정적인 접대도 없었으며 심지어 한 집안 식구가 함께 밥 한 끼 먹지 않았다. 단순했기 때문에 따질 줄 몰랐다. 이튿날 남편이 출근한 후 시어머니는 나를 주방에 불러놓고 말씀하셨다. “너희들 어제 뭐 먹었니?” 나는 시어머니가 우리를 관심하는 줄로 알고 남편에게 국수를 만들어주었다고 했다. 시어머니는 엄숙하게 말씀하셨다. “너 누구 국수를 썼어? 너 인민의 교사로서 어떻게 내 양식을 훔칠 수 있지? 여기에서 살면 정기적으로 계단을 쓸고 화장실 청소를 해야 해!” 나는 놀라서 어리둥절해졌다. 신혼의 천국 같은 행복과 아름다운 동경이 갑자기 파멸됐다.

하루하루 지나면서 나는 임신한 것을 발견했다. 아무도 이 때문에 기뻐하는 사람이 없었고 축복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시어머니의 관심과 보살핌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남편이 집에 없을 때는 늘 나에게 화를 내고 원망하셨다. 시어머니는 일찍이 남편을 잃고 이후에 재가한 남편도 병이 고황에 들었다. 어떤 때는 식칼을 들고 내 방에 와서 칼에 묻은 물을 왜 깨끗이 닦지 않았냐고 하셨다. 차츰 나는 남편도 근심과 고뇌가 가득한 심리가 왜곡된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임신한 나를 돌볼 줄 몰랐고 심지어 자전거를 빌려 자전거를 타고 교외로 소풍가자고 했다. 나는 어릴 때 학교 운동장에서 연습해 봤을 뿐 자전거를 탈 줄 몰랐다. 나는 속으로 마땅치 않게 생각했지만 거절할줄 몰랐다. 임신한 기간 좋은 날이 며칠 없었고 항상 눈물범벅이었다. 선천적으로 순진하고 선량했던 나는 이번 혼인 때문에 원망과 증오가 생겼다. 아이를 출산한 후 병원에 있는 8일 동안 시어머니의 그림자도 보지 못했고 출산 휴가 후 아이를 어린이 집에 보내고 나는 출근했다.

아이가 한 살 반 됐을 때 남편 직장에서 집을 나눠주어 마침내 시어머니 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세상이 있게 됐지만 마음은 별로 좋아지지 않았다. 하루는 집을 치우면서 남편 공책이 펼쳐져 있는 것을 보았다. 올해 업무 계획이었는데 그 중 한 가지에 ‘애인’이 있었다. 또 하루는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서 다른 집 빨래 줄에 내 옷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남편이 내 옷을 한 보따리 쓰레기통에 던져 다른 사람이 주어간 것이었다.

장기간 억제됐던 분노와 고달픔으로 원래 건강했던 내 몸에 빨간 신호등이 켜졌다. 폐결핵, 저혈압, 심박동 이상 등이었다. 아이가 하루하루 자라는 것을 보면서 나는 자아가 없어졌으며 흐리멍덩하게 지내면서 인생이 왜 이렇게 괴로운지 몰랐다. 남편의 성격은 여전히 이상했다. 한 번은 아이가 병이 나 구토해서 내가 남편을 불러 도와달라고 했더니 남편은 아이 얼굴을 꼬집었다. 또는 아이를 데리고 들놀이 가기로 해서 내가 물건을 다 정리하고 가자고 하니 그는 안 가겠다고 하거나, 산에 가서 놀 때 아이가 겁이 많아 벌레를 감히 잡지 못하면 아이 귀를 비튼 후 혼자 우리 모자를 산에 버리고 가버리기도 했다. 아이 때문에 나는 역경을 참으며 살았고 아이에게 온전한 집이 있게 하려고 나는 나를 포기했다. 어떤 때 우리는 한 달 내내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을 때가 있었다. 남편은 내 물건, 목걸이, 알람시계를 내동댕이치고 심지어 주식을 연구한다는 명의로 애인을 집에 데려와 내가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못한 느낌이 들게 했다. 10년 동안 결혼 생활에서 나는 남편과 시어머니를 뼛속 깊게 미워했으며 온몸에 병이 생겼다.

아이가 9살 되던 해 나는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해 마음이 갑자기 명랑해졌다. 원래 이 모든 고난이 모두 내가 전생에 빚진 죄업이었던 것이다. 법 얻은 행복과 흥분으로 나는 벌떡 일어났다. 나는 다시 생존 목표를 찾았다. 수련하여 원만해 내 생명이 탄생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대법은 내 성격을 개변해 평소 울적했던 내 눈은 다시 새 삶을 얻은 듯 빛이 반짝였다. 나는 고작 30살이 넘었는데 다시는 역경 속에 있는 어린 양이 아니었다. 나는 예전처럼 가정을 위해, 아이를 위해 대가를 치렀지만 진정한 나를 찾았고 신체도 건강해졌다. 내 변화에 남편은 나를 괄목상대했다.

법 얻은 초기 나는 출근하고 가사를 돌본 이외 시간은 모두 법공부와 연공하고 법을 알리는데 썼다. 법공부 팀에 가서 법공부했기 때문에 남편의 분노를 샀다. 남편은 책을 찢고 설법 비디오테이프를 뜯었다. 나는 마음이 아주 아팠지만 남편이 나를 어떻게 대하든 모두 진선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면서 가정 일을 잘 했더니 남편은 따뜻함을 느꼈다. 서서히 나의 내심의 변화에 남편의 냉혹했던 얼굴이 펴지기 시작했고 차츰 미소를 짓기도 했다.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남편의 이상한 성격(어릴 때 할머니 집에서 자라다 5살에 부모님 옆에 돌아왔지만 부모님은 늘 남편을 학대하고 구타했음) 때문에 심정이 좋지 않았으며 스스로 자기 신체를 망쳐 고혈압, 전립선염, 요근 손상 등 질병에 걸렸다. 저녁에 내가 집에 돌아와 사부님의 설법 동영상을 볼 때 남편은 자면서 보는둥 마는둥 하면서 대체적으로 좀 보았는데 이튿날 나에게 당신 사부님께서 정말 잘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이후에 나는 남편 몰래 베이징에 청원하러 가서 정부에 대법을 공정하게 대해줄 것을 바랐다. 남편이 두 번째로 베이징에 가서 나를 찾았을 때 이전 같았으면 나를 한 바탕 마구 때렸을 텐데 뜻밖에 남편은 내 어깨를 가볍게 만지며 말했다. “당신을 찾았으니 다행이네.” 이는 내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남편 마음에 그렇게 중요한 위치에 놓이게 됐던 것이다.

남편은 성격이 이상해 인간관계를 잘 처리하지 못했으며 일을 할 때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했다. 당시 남편은 회사 지도자가 일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 20년 근무연수도 갖지 않고 사사로이 사직하고 집에 돌아와틀어박혔다. 그때는 아이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남편 봉급이 나보다 두 배 이상많았기에 남편의 이 행동에 나는 집안 기둥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남편 자체가 부담이 됐다. 나는 파룬따파 수련자로서 반드시 난관을 걸어지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안정시키고 예전처럼 남편을 대했다. 맛있는 걸 해주고 아이 공부를 돌봐주어 1년 후 아이는 외지 중점 대학에 갔다. 나는 늘 남편을 관심하고 남편과 교류하면서 남편에게 다시 일해 정상인 생활을 하라고 했다. 당시 남편은 45살밖에 되지 않았다.

몇 년 동안 생활적인 부담이 내 몸을 짓눌렀지만 대법의 힘으로 나는 하나 또 하나의 관을 넘었다. 대법을 수련하면 복이 있는 것이다. 최근 몇 해 나는 늘 주말에 돈 벌 기회가 있어 아이가 대학 다닐 때 생활비를 벌었다. 지금 아이는 이미 졸업하고 본인이 좋아하면서 수입도 괜찮은 일자리를 찾았다. 남편 변화는 더 컸다. 매일 얼굴에 웃음을 담았고 외모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했는데 얼굴이 아주 평온하게 변했다.

하루는 길거리에서 우연하게 한 여자가 나를 불렀다. 보니 원래 남편 이전 동료였다. 그녀는 이미 이혼한지 여러 해 되었는데 나를 보고 놀라워했다. “이렇게 여러 해 됐는데 당신은 아직도 이렇게 젊어요? 당신이 가정을 유지할 수 있다니 정말 탄복합니다.” 내가 스스로 하나하나의 고난을 이겨내고 마침내 고생 끝에 낙이 온 것은 대법이 나에게 준 힘이라고 말했다.

남편은 지금 성격이 좋아졌다. 집에서 늘 남편의 무던한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는 늘 대법이 아내를 육성해 자신을 잘 대하고 본인의 심태와 심리장애를 개변시켜주었다면서 대법에 감사하고 대법 사부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한다. 지금 남편도 날품팔이를 하면서 건강을 챙기고 가정에도 보탬이 되고 있으며 집안일도 자발적으로 좀 한다. 남편은 늘 자기가 번 돈으로 나에게 선물을 사주면서 나에 대한 감격의 정을 표현하고 늘 나를 잘 대하느라 나와 함께 연공도 하고 포륜할 때 감각이 아주 좋다고 말하기도 한다. 고혈압 때문에 습관적으로 약을 먹는 이외 다른 병은 다 사라졌다.

설날 전에 나는 시어머니가 80여 세에 신체가 허약하고 움직임이 불편하신 것을 보고 우리집에 모셔와 만년을 잘 보내게 해드렸다. 대법제자의 집은 정말 불광이 널리 비추어 시어머니 건강도 아주 빨리 좋아졌으며 밖에 돌아다니며 햇볕도 쬐고 물건도 사들이며 스스로 맛있는 반찬도 해드신다. 하루는 남편의동료가 우리집에 왔다가 집에 노인이 계신 것을 보고 지금 어느 집이 노인과 함께 사느냐며 아주 감탄했다.

사존의 자비로운 구도에 감사드린다. 파룬따파의 뛰어난 힘이 나와 우리 가정을 만회시켜주어 감사드린다.

문장발표: 2016년 6월 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6/4/32912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