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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미움과 노여움이 사라지고 감탄과 자랑으로 바뀌다

글/ 한 중국 대법제자의 남편

[밍후이왕] 지난 10여 년 간 아내는 ‘진선인(真善忍)’을 지향하는 파룬궁을 수련했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납치되고 노동교양소에 갇히고 집을 떠나 방랑했다. 나는 그런 아내를 미워도 하고 원망도 하고 욕하고 때리기도 했으며 이혼까지 하려고 했다. 그러나 결국 나는 깨달았다. 내가 폭력적이고 독재적인 사악한 정권의 박해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아내에게 화풀이 하면 나는 사악의 공모자나 다름없고 사악을 도와 좋은 사람을 박해하는 것이다!

아내가 처음 감옥에 잡혀 들어갔을 때인데 경찰은 집에 다녀올 기회를 주었다. 나는밉고 화가 나서 아내를 큰 소리로 욕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때리기까지 했다. 나는 아내가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감옥에 갇혔겠는가? 그러니 아이는 누가 돌보겠는가? 가게는 누가 돌보겠는가? 생활은 어떻게 하겠는가? 라고 생각하며 중공이 선량한 아내를 박해해 생긴 스트레스를 전부 아내에게 분출했다.

한 때 경찰이 늘 집에 찾아와 아내를 납치하려고 시도하여 아내는 할 수 없이 집을 떠났다. 그리하여 내가 아이의 모든 것을 돌보고 집안일을 했으며 또 가게를 봐야 했다. 나는 너무 힘들어 또 가게 문을 닫았다. 소득이 없는데다 떠돌이 생활을 하여 셋집을 얻어야 하니 해보지도 않은 막노동을 해야 했다……. 나는 그렇게 사는 것을 참을 수 없어 아내가 밉고 원망스러웠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이런 생활이 언제면 끝나겠어? 감옥에 갇히지 않으면 세뇌반에 가고 노동교양소에 가지 않으면 떠돌이가 되고. 정말 참을 수 없단 말이야, 제대로 살 수 있겠어? 당신이 더는 밖에 나가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않으면 당장 이혼이야!” 당시 나는 이혼하려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나는 늘 마음이 불안하고 조마조마하게 하는 그 가정을 벗어나려 했다.

그 즈음 어린 아들이 자주 눈물을 흘렸다. 나는 아이와 헤어지기 싫고 아내와도 헤어지기 싫었다. 나는 아내가 무고하고 선량하며 법을 위반한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그녀는 자신의 신앙을 견지할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불안하고 비정상적인 생활이 힘들었다. 아내가 밖에 나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결국 아내와 아들 옆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여전히 원망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한 번 뱀에게 물리면 10년 동안 두레박줄을 보고도 무서워한다.’는 말이 있다.아내는 여러 차례 납치되고 노동교양을 당했다. 아내가 문을 나서기만 하면 나는 마음이 불안하여 매 번 집으로 돌아오면 큰 소리로 욕설을 퍼부었고 “밖에 나가 대법 일을 하면 가정 폭력이 기다린다는 것을 기억해!”라고 협박했다. 나는 또 아내가 만약 다시 붙잡히면 즉시 이혼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나는 아내에게 압력을 주어 위험한 일을 적게 하게 하려고 했다. 밖에 나갈 때마다 납치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아무 말 없이 나의 불만과 비웃음을 묵묵히 견디다가 나중에는 화 내지 말라고 권고했다. 어느 날 아내가 또 늦게 돌아왔다. 내가 심하게 욕설을 퍼붓자 아내는 눈물을 흘렸다. 나는 나 때문인 줄 알았는데 아내는 눈물을 머금고 “대법은 억울해요. 파룬궁 수련생이 박해 받고 있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진상을 몰라요. 만약 내가 집에서 편안한 생활을 하면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만약 당신 친구가 억울함을 당하거나 수난 당했는데 그를 위해 공정한 말을 하지 않으면 어떻겠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아내의 말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노기는 단번에 사라졌고 도리어 존중과 탄복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렇다, 지금 사람들은 모두 이기적이며 어떻게 하면 잘 살 궁리만 한다. 파룬궁 수련생처럼 사악하고 포악한 세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개인의 득실을 위하지 않으면서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들에게 참말을 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중국 국민은 알 권리가 없고 진상을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아내는 압력을 무릅쓰고 앞으로 나아가는데 도와주지 못할망정 악인 편에 서면 안 된다!

그 해 겨울, 아내는 대법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구치소에 감금되었다. 나는 가게를 나가면서 4살 된 아들까지 돌봐야 했다. 그해 겨울은 특히 추웠다. 저녁에 가게 문을 닫고 눈보라 속에서 자전거를 타고 아이와 함께 집으로 가면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엄마 없는 아이가 불쌍하고 또 아내도 안쓰럽고 다시 박해 받을까봐 걱정도 됐다. 그 때를 생각하면 정말 힘들다!

나는 아내에게 편지를 썼는데 그 중 한 구절은 이랬다. “나는 그 두려운 장면을 상상할 엄두도 나지 않아……” 나는 아내가 대법을 견정히 믿기에 노동교양소에서 수련을 포기하지 않아 고문을 당할까 봐 걱정했다. 내 예상대로 아내는 노동교양소에서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내가 여러 번 찾아가도 경찰은 만나지 못하게 했다. 후에 나는 끊임 없이 노동교양소 대대장, 옥경들에게 전화하고 편지를 썼다. 나는 그들에게 아내는 고집이 세고 오랫동안 수련을 했기에 단번에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에 시간을 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경찰에게 우리 가족은 모두 아내를 매우 관심하며 늘 전화를 하거나 편지를 써 아내의 정황을 물어볼 것이라고 했다. 이는 사실 그들이 아내를 심하게 대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아내는 비록 어느 정도 욕설이나 매를 당하긴 했지만 다른 수련생과 비교하면 확실히 함부로 건드리지 않았고 시달림도 적게 받았다. 아내는 노동교양소에 몇 달 감금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가 수련을 포기하지 않고 가족이 ‘성가시게’하니 번거로워 내보냈을지 모른다.

만약 모든 수련생 가족이 수련생 편에 서서 최선을 다해 구출하고 박해를 저지하면 경찰의 기염을 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 한 번은 경찰이 이유 없이 우리집에 찾아와 아내를 세뇌반에 감금하려 했다. 나는 큰 소리로 그들을 꾸짖었다. “사람을 그렇게 마구 잡아가도 됩니까!” 그들은 할 말이 없자 강제로 아내를 납치하려 했다. 나는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 그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이 많아 결국 나를 땅바닥에 제압하고 아내를 끌고 갔다. 경찰차가 떠난 후 그들은 나를 놓아주었는데 나는 세뇌반까지 쫓아가 따졌다. 하지만 그들은 “장쩌민에게 물어봐. 장쩌민이 시킨 것이야.”라고 말했다.

나는 화가 났다. 평범한 백성은 어디에 가서 하소연하겠는가? 이틀 후 아내는 세뇌반을 탈출했지만 집에 오지 않았기에 모르고 있었다. 전에 아내를 납치한 적 있는 경찰이 아침 일찍 문을 두드리며 아내를 찾으러 왔는데 아내에게 사고라도 생기면 책임을 지지 못할까 봐 두려워한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다. 나는 그 경찰이 손가락에 붕대(아내를 납치할 때 생긴 상처)를 감은 것을 보았다. 나는 그에게 “공이라도 세운 것 같네! 여린 여자를 그렇게 대하니 자랑스럽습니까? 깡패들을 혼내야 진짜 대단한 게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내가 그들에게 협조하지 않고 아내 편에 서자 현지 경찰은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우리집에 찾아오지 않았다.

또 한 번은 경찰이 아내를 납치하려 했다. 몇몇 경찰이 빌라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었지만 몇 시간 동안 올라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는 그동안 대법책과 자료를 전부 숨겨놓았다. 아내는 내가 누구보다 잘 안다. 아내가 만약 정말 법을 어겼다면 나도 감싸줄 엄두를 못 낼 것이다.

몇 년 전 어느 날, 아내가 또 밖에서 납치됐다. 경찰은 아내가 갖고 있던 열쇠로 문을 따고 집에 들어섰다. 나는 평소 뇌경색, 뇌전색 등으로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고 가끔은 흐리멍덩했다. 그러나 그때 어찌된 일인지 머리가 매우 맑았다. 나는 초인종이 울리자 눈치 채고 아내의 물건을 빠르게 숨겼다. 10여 명의 경찰이 사진기와 동영상 카메라 등을 들고 물건을 뒤지기 시작했다. 나는 걱정되었다. 나는 일부 흩어 진 물건을 미처 숨기지 못했고 급해서 잘 감추지도 못했다. 만약 수색해 나오면 아내는 죄가 중해진다. 하지만 걱정해도 소용없었기에 하늘에 맡기자고 생각했다. 당시 나는 비록 대법사부님에게 보호해 달라고 빌지 않았지만 속으로 ‘하늘에게 맡기자’고 생각하면 아마 사부님이 봐주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신기하게도 숨긴 물건이 바로 앞에 있지만 그들은 보지 못했다. 나중에 그들은 아내가 평소 자주 사용하는 물건을 가져가려 했다. 나는 그들에게 목숨 걸고 그것을 지키겠다면서 “만약 아내의 이 물건이 없으면 저도 목숨을 내놓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물러섰다. 간부로 보이는 한 사람이 나에게 “걱정 마십시오. 가져가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정말 가져가지 않았다. 그들은 나에게 압수한 물건 명세서에 서명하게 했다. 나는 아내가 종래로 그들에게 서명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상기하고 나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나는 머리에 문제가 있는 탓에 반응이 늦어 평소 아내가 대부분 가게를 돌봤다. 하지만 아내가 집에 없으니 어떻게 하겠는가? 생활은 해야 하기에 나는 어렵게 가게 문을 열고 주인공이 되었다. 하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 머리가 정상을 되찾은 것처럼 돈을 받거나 장부 결산을 할 때 아주 명석했다. 그리하여 가게를 정상 운영했을 뿐만 아니라 장사도 되었다.

아내가 돌아온 후 이웃은 아내에게 “당신이 집에 없는 동안 남편은 아무런 문제도 없고 반응도 느리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아내는 감개무량하여 “사부님께서 우리 가족을 돌봐주시고 있어요. 당신이 대법자료를 보호해 복 받은 것이기도 하고요.”라고 말했다.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확실히 대법의 덕을 보았다. 나는 이전에 신장 결석이 있었다. 신장 결석에 걸린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아프기 시작하면 정말 죽을 지경이다. 어느 해 정월 초나흘 날 병이 발작해 밤새 자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이튿날 의사를 찾아가 링거를 여러 대 맞아서야 조금 나아졌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아내는 가슴이 아파 나에게 “오직 대법만이 당신을 구할 수 있어요.”라고 말하면서 나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염하게 했고 사부님의 설법을 듣게 했다. 그러자며칠 만에 나는 약 한 알 먹지 않고 주사 한 대 맞지 않고 좋아졌다.

한 동안 지난 후 나는 갑자기 소변보는 것이 힘들었다. 요도에 무엇이 막힌 것처럼 오줌이 점점 가늘어지다가 저녁이 되자 아예 나오지 않았다. 아내는 나에게 또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묵념하게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속으로 사부님께 빌었다. 나는 소변을 보지 못해 배가 부풀어 올랐으며 얼굴이 벌겋게 됐다. 버티지 못하고 병원에 가려고 하다가 시험 삼아 소변을 봤는데 어떤 물건이 변기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보니 옥수수 크기의 작은 결석이 나왔다. 나는 온 몸이 즉시 홀가분해졌다. 정말 말로도 당시의 심정을 표현할 수 없었다! 나는 그 돌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떤 사람은 많은 돈을 쓰며 병원에 가서 결석을 깨는데, 깨진 결석도 전부 나오게 하기 어렵고 설사 나왔더라도 또 생겨 얼마 되지 않아 재발한다. 그러나 나는 그 때 완전히 나아 지금까지 10년이 지났지만 재발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병이 생기기만 하면 병원에 가며 돈을 적지 않게 써도 결국 낫지 않고 어떤 사람들은 젊은 나이에 저 세상에 가기도 한다. 그들과 비교하면 나는 정말 행운이다. 비록 지금까지 파룬따파를 수련하지 않지만 나는 내심으로 아내가 수련하는 것을 지지한다. 간혹 아내가 바쁘면 나는 되도록 집안일을 많이 도와주어 아내가 법공부 할 시간이 있게 했다. 아내가 법을 외우면 나는 틀린 곳을 봐줬고 글자가 있는 돈을 갖고 오면 가져다가 썼다. 간혹 물건을 팔 때 고객들이 왜 내가 주는 돈에 모두 글자가 있냐고 물으면 나는 “그런 돈이 좋아서 일부러 바꿔왔습니다. 잘 읽어보십시오.”라고 말했다. 아내가 진상을 말하면 나도 협조해서 말하고 “탈당하십시오. 우리는 모두 탈당했어요!”라고 한마디씩 거들어 주는데 효과가 좋았다.

한 번은 친구와 식사를 했는데 아내가 곁에 없었는데도 내가 그를 탈당시켰다.

아내는 수련을 한지 20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신체가 건강하여 약 한 알 먹지 않고 주사 한 번 맞지 않았으며 병 치료에 돈 한 푼도 쓰지 않았다. 집에 모순이 생기면 늘 나에게 양보했다. 아내는 매일 집을 돌보고 아이를 돌보고 돈을 벌어야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연공하고 법공부를 했으며 대법 일까지 했다. 아내는 시간을 내기 위해 매일 잠을 적게 잔다. 중공이 파룬궁 수련자는 집을 상관하지 않고 아이를 상관하지 않는다고 선전하는데 그렇지 않다.

아내는 무수한 파룬궁 수련생들 중의 한 명이다. 파룬궁 수련생들은 선량한 수련 단체다. 그러나 장쩌민은 개인의 사심 때문에 아내와 같은 무수한 파룬궁 수련생 및 가족이 그처럼 참혹한 박해를 받게 했다.

작년에 전국적으로 장쩌민 고소 열풍이 일어났다.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장쩌민을 고소했다. 신탕런TV 평론원이 말한 것처럼 인류의 그러한 악의 우두머리를 조용히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온갖 죄악으로 가득 찬 악인이 심판 받는 것을 모든 선량한 사람이 보게 해 인과응보가 있다는 하늘의 이치를 명시해야 한다.

나는 여러 번 수련을 하려 생각했다. 그러나 어렵다고 생각되어 늘 결심을 내리지 못했다. 나는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것이 보기에는 간단한 것 같지만 사실 오랫동안 견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체득했다. 때문에 나는 탄복한다. 아내는 20년 동안 처음에 먹은 마음을 개변하지 않고 견정히 수련을 한 것에 탄복하고 그녀가 사람을 대하는 것이 선량하고 관용하고 보기에는 연약하지만 속이 강직한데 탄복한다. 파룬따파는 100여개 국가와 지역에 홍전되었다. 부동한 피부색, 부동한 민족, 많은 고학력,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수련을 하고 있다. 아내는 그 중의 평범한 사람이다. 나는 아내가 대법제자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올해 정월에 아내는 나에게 새해를 맞이하면서 전 세계 대법제자와 가족을 포함한 세인들이 모두 사부님께 새해인사를 올리는데 당신은 아직 사부님께 문안을 드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는 정말 인터넷에서 사부님께 문안드릴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리하여 나는 이번 ‘5.13’ 세계 파룬따파의 날을 맞아 사부님께 문안을 드리려고 한다. 사부님의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사부님 안녕하세요, 사부님 수고 많으십니다. 사부님은 대법제자를 보호하실 뿐만 아니라 대법제자의 가족도 보호하십니다. 우리는 그 은혜에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표현할 방법이 없어 단지 “사부님,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드리겠습니다.

문장발표: 2016년 5월23일
문장분류: 대륙소식>정의로운 이야기>인심이 점차 밝아지다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5/23/32753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