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사지에서 벗어나다

글/ 헤이룽장 파룬궁 수련생

[밍후이왕] 나는 헤이룽장 파룬궁수련생이다. 수련 전에 우리 집은 사지에 빠졌으나 다행히 파룬따파를 만나 온 가족이 새 삶을 얻었다.

나는 6, 7살 때 부모를 여의었다. 성장한 뒤에는 관둥에 가서 다리가 장애인인 아내를 맞이했다. 우리가 갓 결혼했을 때는 생활이 몹시 곤란하여 식품 가공비로 빚진 1전 때문에 굴욕당한 적도 있었다. 나의 별명은 거우성즈(狗剩子, 개××는 꺼져라)였다.

후에 나는 다리 근육위축, 폐결핵, 요골결핵과 치질에 걸렸다. 각혈만 해도 2년간 했고, 요추간판 돌출은 바늘로 찌르는 듯 아팠으며, 한쪽 허벅지에는 부스럼이 났고, 후에는 다리 근육 위축으로 다리가 팔처럼 약해졌다. 체중은 겨우 48㎏으로 바짝 말라서 피골이 맞닿았고, 나무 지팡이를 짚고 걸으면서 허리도 펼 수 없었다. 그 고통이야말로 입으로 다 말할 수 없었다.

1997년 아내가 또 유방암에 걸렸으나 돈이 없어 큰 병원에 가지 못하고 시둥현 현지의 8501 농장병원에서 수술할 수밖에 없었다. 수술 후 또 번거로움이 나타났는데, 마땅히 수술 자리가 아물 때가 됐는데도 무슨 원인인지 아물지 않고 고름이 흘렀다. 의사는 피부 이식을 해야 하고 또 화학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 부부는 절망에 빠져들었다.

바로 그 무렵 다행히도 아내는 ‘전법륜’ 천서를 얻었다. 나는 아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아내는 금요일에 ‘전법륜’을 보기 시작했는데 월요일에 피부이식을 하려고 검사할 때 보니 수술자리가 아물어서 피부 이식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의사마저 괴이하게 여겼다. 어떻게 이틀 사이에 이렇게 큰 변화가 있단 말인가?

나는 이 파룬궁이 너무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아내를 구하기 위해 나는 날마다 밀차를 밀고 아내를 법공부장에 데려가 법공부 하게 했다. 집이 멀어서 나는 밖에서 아내를 기다렸다가 법공부가 끝나면 집에 싣고 왔다. 그때 나는 병에 걸린 사람만 배우는 줄 알고 함께 들어가 아내를 기다리는 게 계면쩍었다. 어쨌든 별다른 일이 없어서 나도 창문 곁에 앉아서 그들이 법 읽는 것을 들었다. 어떤 땐 똑똑히 들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책에서 말씀하신 것은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는 것임을 알았고 들으면서 참 좋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법 공부와 연공을 견지하면서 아무런 약물치료와 화학치료를 하지 않았지만, 기적같이 건강을 회복했다. 그때 아내와 같이 유방암 수술을 한 사람은 진작 사망했다. 다행히 사부님께서 구원해 주셔서 아내는 죽지 않고 살 수 있었다.

아내의 몸에서 일어난 불가사의한 변화를 보고 나도 1998년 9월 ‘전법륜’을 청했다. 나는 부모 없는 고아여서 1달에 2위안 주는 돈으로 살아야 했다. 그러다 보니 돈이 없어 학교에 가지 못해 글을 몰라 책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수련생에게서 배웠는데 얼마 안 되어 나는 ‘전법륜’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날마다 일찍 일어나 연공하고 전법륜을 읽었더니 얼마 안 되어 폐결핵, 요추간판 돌출도 나았고, 석 달이 되지 않아 다리도 예전처럼 튼튼해졌다. 나의 최대 변화는 백발이 검은 머리로 변한 것이었는데 게다가 까맣고도 윤기가 돌았다. 그 유명한 나 거우성즈가 정상적인 사람과 마찬가지로 살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두는 대법의 신기함과 위력에서 이익을 얻은 것이다. 나는 너무 기뻐서 만나는 사람마다 말했다. 나는 너무 기뻐서 말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수련하지 않았다면 누가 이런 것을 주겠는가?

대법은사람마다 모두 수많은 신기한 일이 나타나게 했다. 한번은 장 보러 가느라 베이징 여객화물 운수차량에 올라 바구니에 앉았다. 차 안에는 또 6, 7명이 앉았는데 철로 만든 난간을 지날 때 기사도 나도 발견하지 못했고 단지 누가 나를 잡아당기는 감을 느꼈다. 차는 쾌속으로 지났으나 나는 오히려 철 난간을 끌어안고 있어 신기하게 생명의 고비를 넘겼다. 그때 차량 바구니에 앉은 사람과 주위 사람은 모두 겁에 질렸다. 이런 상황에서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다면 내 머리는 무조건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한번은 나가서 진상 현수막을 걸었는데 다 걸고 나니 유달리 몸이 가벼웠다. 갑자기 자신의 두 발바닥 아래서 빛이 나는 게 마치 뜨거운 바퀴를 디디고 선 것 같았다. 가방 안의 진상 소책자에서도 빛이 반짝이는 걸 보았다. 당시 참여한 수련생 가운데는 공능이 열린 수련생이 보았는데 내가 줄곧 뜨거운 바퀴를 밟으며 집까지 갔다고 했다.

1999년 7월, 장쩌민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해, 억만 수련생의 수련환경을 빼앗았다. 나도 다른 수련생과 마찬가지로 여러 형식의 박해를 당했다. 현 국보대대, 파출소, 향 서기 등은 여러 번 나에게 연공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라고 핍박했다. 나는 말했다 “안 된다, 이 글에 나는 서명할 수 없다. 당신들이 알아보라, 연공하기 전에 나는 해마다 도움을 받고 살았다. 길을 걸어도 지팡이를 짚어야 했고 바람만 조금 불어도 넘어지려고 했다. 나는 유명한 거우성즈였다. 지금 나는 파룬궁을 연마하여 정상인이 되었고 누구에게도 시끄러움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 장사해서 나만이 아니라 여러 명의 노동자를 먹여 살리고 있으며 사회에 공헌하고 있는데 이게 무슨 나쁠 게 있는가?”

박해 가운데 우리 자녀도 연루되어 신분증을 만들어 주지 않아 우리 가족 모두 정신적, 경제적으로 큰 손실을 보았다. 당초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이 일체는 일시적인 고난으로 장쩌민 원흉이 한 짓이란 것을. 하루빨리 죄악의 박해를 종료하고 중화민족의 도덕적 양심을 되살리기 위해, 될수록 빨리 죄악의 괴수 장쩌민과 그 범죄 집단의 모든 범죄 사실을 입안 조사하여, 그가 반드시 감당해야 할 모든 책임을 법적 추궁함으로써 인민에게 공도(公道)를 돌려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6년 5월 26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5/26/32922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