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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심혈을 기울여 수련하자

글/ 중국 대법제자 이페이(一飛)

[밍후이왕] 4년 전 박해를 받은 후 나는 심리적으로 장애가 있어 줄곧 정진하지 못했다. 나는 그 전에 몇 번 박해당했을 때는 아주 짧은 시간 내에 심태를 조절했지만, 이번에는 일종 심신의 피로감으로 신체는 풀이 죽고 정신적으로는 무뎌져갔다.

비록 줄곧 법공부를 했지만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 느낌이었고 진상을 알리는 것도 거의 진상지폐를 사용하고 진상자료를 몇 부 배포하는 것에 국한되었다. 이전의 그런 모든 심혈을 기울여 많은 항목에서 끊임없이 정진하는 상태가 없어졌다.

나는 일찍이 마음속의 진실한 생각을 자세히 찾았다. 나는 이전에 접촉한 수련생에 대해 일종 원망하는 마음을 보았다. 일부분 수련생이 과분하게 나에게 의지했고 크고 작은 일로 나를 찾아와 토론한 것을 원망했다. 여러 번 전화안전을 교류해도 효과가 없었고 결국 악인에게 도청당한 것을 원망했다. 수련생이 자료를 만들 줄 알지만 늘 나를 찾아 자료를 요구한 것을 원망하고 수련생이 끊임없이 나를 찾아 기계를 수리하고 안으로 찾아 마음을 수련하지 않은 것을 원망했다. 또, 수련생이 끊임없이 일부 수련생과 모순을 만들고 회개하지 않는 것을 원망했다. 수련생이 처음에는 나를 부러워하다가 나중에는 질투한 것을 원망했다. 마지막에 박해를 당하기 전 사부님께서는 줄곧 꿈속에서 나에게 번거로움이 있을 수 있다고 점오하셨다. 그때 휴대폰이 끊임없이 별다른 이유 없이 자동으로 꺼졌고, 저녁에 잠잘 때는 반듯이 눕지 못하고 옆으로 누울 수밖에 없었다. 늘 압력이 가슴을 누르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다른 수련생과 교류할 때 집에서 마음을 조용히 하고 심태를 조절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수련생은 내가 나오지 않으면 일부 일은 누가 하겠느냐고 했다.

박해를 당할 때 박해에 참여한 사람은 나에게 이렇게 많은 파룬궁수련생을 붙잡지 않고 무엇 때문에 당신을 붙잡았는지 잘 생각해 보았냐고 말했다. 자유를 얻은 후 줄곧 미행하는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만 아니라 내가 퇴근하거나 문밖을 나서기만 하면 몇몇 사람이 멀리서 미행하고 있었다. 이것도 내가 수련생을 원망하는 하나의 구실로 되었다. 수련생이 아직도 나에게 의지하는 것을 원망했다.

나는 줄곧 이 원망을 내려놓으려고 노력했지만 내려놓을수록 위로 올라왔다. 특히 연공할 때 나를 교란해 거의 마음을 조용히 하지 못했다.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후에 나는 새롭게 시작하자고 생각했다. 초기 상태로 시작해 자신을 신수련생으로 생각하고 일체를 새롭게 시작하자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나는 집안일을 할 때 밍후이 방송에서 다운로드 받은 ‘선악은 일념 사이(善惡一念間)’를 들었다. 진지하게 듣는 과정에서 하나하나 대법의 신기한 사례는 끊임없이 나를 깨끗이 씻어주었다. 간혹 나는 감동해 자신도 모르게 사부님께서 너무 위대하시다고 말했다.

200여 집을 들은 후 나는 자신이 더 듣고 싶어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나는 ‘사부님의 은혜를 회상하다’를 들었다. 한 집씩 들은 후 나는 전신에 힘이 충만한 것을 느꼈고 늘 바른 일을 하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 나는 또 ‘밍후이주간’ 600기를 듣기 시작했다. 천천히 내 마음 속에 견고했던 원망의 얼음이 녹았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마땅히 어떻게 해야 진정으로 심혈을 기울여 수련하는지 알았다!

나는 지금 더는 모 수련생이 이전에 늘 나를 중상하며 악담한 것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지금 그녀가 무엇 때문에 늘 나를 그렇게 대하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간혹 정진하지 않는 가족 수련생을 대할 때 내심으로 생각하는 것은 악독한 사념이었다. 비록 입 밖에 내지 않았지만 당시 온 머릿속에는 악념이었다. 악한 염두가 있는 두 사람이 함께 모여 충돌하자 한 사람은 외적으로 표시하고 한 사람은 내심으로 교란한다. 여러 해 동안 나는 이 법리를 깨닫지 못했다!

나는 더는 수련생들이 나를 의지하고 질투하는 것을 원망하지 않았다. 이것은 내가 초래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전에 법공부 팀에서 매주 법공부를 한 후 나는 흥미진진하게 내가 대법 중에서 깨달은 법리를 말하고, 또 면전에서 어떻게 진상을 알렸는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말했고, 또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했다는 등등을 말했다. 보기에는 교류하고 토론하고 수련생을 도와 제고하는 것 같지만, 시종 가장 중한 과시심과 환희심을 안고 말했다. 나는 한 수련생이 아주 중한 병업관을 넘을 때 그녀는 내가 그녀를 도와 안으로 찾아주는 것을 원했고 어떤 사람의 마음이 장애를 하는지 봐달라고 했다. 그러나 마지막에 이 수련생은 먼저 갔다. 이후에 나는 그녀의 여동생이 나를 원망하는 마음이 있음을 들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매우 낙담했다. 내가 힘들게 수련생들을 찾아 당신을 도와주었는데 당신은 오히려 나를 원망하는구나. 나는 지금 명백히 알았다. 수구에 주의하지 않았다. 이 수련생의 진실한 상황을 내가 어떻게 똑똑히 볼 수 있었겠는가? 내가 또 어떻게 그녀의 마음속 깊이 은폐된 집착을 알겠는가, 내가 한 말이 또 어찌 대법과 비할 수 있겠는가, 말이 많으면 아마 수구에서 빚질 수도 있다.

나는 수련생이 나를 찾아 기계를 수리하는 것을 원망하지 않았다. 내가 원망을 하는 것은 나에게 아직도 질투심이 있어서다. 수련생이 기술을 배우지 않고 나 이 바보가 뛰어다니는 것을 질투해 불공평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수련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수련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의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다른 사람의 것이다. 내가 수련을 하는 것은 나 자신이고, 다른 사람이 보여주는 어떠한 모습이든 마땅히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동시에 나는 내가 어려서부터 지닌 하나의 질투심을 발견했다. 돈 있는 사람이나 권력 있고 좋은 자가용을 가진 사람을 보면 속이 불편해서 그들과 접촉하기 싫어했고, 내심으로 매우 그들을 거부하며 그들이 별로 대단하지 않다고 느꼈다. 사실 이것은 아주 강한 집착심의 표현이다. 이전에 나는 무엇 때문에 여러 차례 박해를 당했는지 늘 의문이었다.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면 박해받지 말아야 하는데! 나는 지금 명백히 알았다. 나의 지금 경지 중에서 나는 법을 실증하는 것은 두 층의 의의가 있다. 하나는 세인에게 법을 실증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현수막, CD, 책자, 전시판, 진상전화, 면전에서 진상을 알리는 등등이다. 이것은 세인이 대법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방식이다. 세인이 대법진상을 알았을 때 그들의 처음 일념은 대법은 대단하다, 우리들의 사부님은 대단하다이다. 이것은 세인에게 법을 실증하는 것이지만 여기에서 자신을 앞에 놓는 것을 늘 벗어나지 못했다. 자신이 무엇을 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하면 세인은 당신을 대단하다고 여긴다. 이것은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다. 다른 한 면은 자신을 잘 수련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 공간의 생명을 구도하고 우리가 끊임없이 법공부를 하고, 밍후이 등등 대법제자의 매체를 보고 끊임없이 안으로 찾고 법에 위배되는 것을 찾아 그것을 억제하고 마지막에는 제거해야 한다. 우리가 수련을 잘했을 때라야 세인과 자기 세계 및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할 수 있다.

나는 지금은 늘 나를 미행하던 사람을 원망하지 않았다. 이것도 자신과 관련이 있다. 이전에 나는 늘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사람을 뼛속 깊이 미워했다. 비록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그들을 저주했고 심지어 대법제자를 미행하는 사람은 교통사고로 다리가 부러지리라는 악한 염두를 생각했다. 지금 자세히 생각해보니 뭇 신의 눈을 어찌 속일 수 있겠는가. 또 어떻게 ‘진선인(眞善忍)’을 실증할 수 있겠는가! 지금 나를 미행하던 사람도 사라졌다.

대법이 끊임없이 나의 사상 중의 법을 위배한 물건을 제거한 후 주위의 많은 것들도 변했다. 몇 년 동안 나는 면전에서 진상을 알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한 번은 한 친척이 몇 십 위안이 드는 큰 수술을 하게 됐다. 그 전에 그가 내 가족과 만나자고 했다. 나는 두려움과 장애를 돌파하고 그의 가족 몇몇을 삼퇴시켰다. 그들은 대법을 지지한다고 표시했는데 마지막에 수술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우연히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를 만났다. 결과 몇 마디 하자 그들 두 사람은 당원에서 탈퇴했다.

박해를 여러 번 받았기에 이전에 내 노부모님은 내가 대법을 말하기만 하면 끝없이 욕을 하셨다. 그래서 어느 한 번 나는 직접 아버지에게 이어폰으로 ‘선악은 일념 사이’를 들려드렸다. 당시 아버지는 높은 소리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라고 읽었다. 이전에 가족들은 얼마 못산다고 했지만 지금은 갈수록 건강하시다. 어머니는 절에 수 십 년을 다녔고 몸에는 좋지 않는 물건이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대법을 수련하면서 어머니가 절에서 좋지 않는 물건을 몸에 지니고 온 것을 느꼈다. 간혹 그 물건은 나를 교란했다. 그러나 어떻게 말해도 어머니를 개변시키지 못했다. 한 번은 어머니는 또 절에 가서 절을 하고 나에게 접수하라고 하셨다. 당시 나는 몇 마디하고 이어폰을 어머니의 귀에 꽂았다. 결국 어머니는 지금도 ‘선악은 일념 사이’ 등 밍후이 라디오 방송을 들으신다.

나는 마침내 알았다. 대법 수련자로서 오직 법을 스승으로 삼고 안으로 수련해야만 비로소 마지막까지 견지할 수 있다. 만약 대법을 하늘에 닿을 만한 하나의 큰 산으로 비하면 나는 수련생들의 견해를 각 경지 중의 한 갈래 풍경이라 간주하겠다. 내가 분발해 기어오를 때 어찌 적막할 수 있겠는가!

이상은 개인의 얕은 견해이므로 수련생이 자비로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6년 5월 8일
문장발표: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5/8/32794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