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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께서 나의 예술 생명을 연장해주셨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배우인데 1996년 10월 4일에 파룬따파 수련에 들어섰다. 그해 40살이었는데 ‘전법륜’ 이 책에서 우주의 최고 법리 ‘진(眞)·선(善)·인(忍)’을 알게 됐고 인간세상의 보편적인 가치를 알게 됐으며 동시에 인생의 진정한 의의를 알게 됐다.

제일 먼저 혜택을 받은 것은 내 몸이었다. 한번은 외지에서 연출하는데 얼굴에 갑자기 매우 많은 부스럼이 나기 시작했고 화장을 지울 때마다 부스럼이 터져 핏물이 흘러나왔다. 지도자는 얼굴에 화장할 수 없음을 보고 나에게 집에 돌아가 병을 치료하라고 했다. 그해 31살이었는데 겨울의 초입인 11월에도 나는 날씨가 이상하게 춥게 느껴졌다. 의사는 내가 장기적으로 도란 화장(주로 배우들이 쓰는 기름기 많은 화장)을 하고 날씨가 추워 모공이 수축해 막힌 데다 또 울화 때문이라고 했다. 주삿바늘로 얼굴을 찌르고는 고름을 배출시켰으며 그다음 약을 바르고 또 한약, 양약을 복용해야 했다. 음식을 가려야 했고 치료 효과에 영향을 줄까 봐 간단한 일상화장도 해서는 안 됐다. 날 보는 사람마다 “예쁜 얼굴이 어떻게 된 일이에요?”라고 물어봤다. 사람을 보기 두려워했고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면 죽을 마음도 있었다.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오자 얼굴은 좀 나아져 또 공연에 참가했다(해마다 임무가 있음). 그러나 11월이 되자 얼굴에 또 부스럼이 나는 바람에 또 치료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마다 반복돼 매우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대법 수련에 들어선 그해부터 발작하지 않았다.

10년의 고질병은 차마 다시 돌이켜볼 수가 없다. 하마터면 나의 예술인생을 망칠 뻔했다. 대법과 사부님께서 고질병을 제거해주셨고 나의 예술 생명에 새로운 활력을 넣어주셨다. 동시에 신체의 기타 증상들도 모두 없어졌다. 두통, 인후염, 경추골증식, 기관지 질환, 십이지장궤양(十二指腸球部潰瘍), 위하수 7cm, 요추병(발작하면 감히 움직이지 못한다), 신경쇠약 등. 우리는 해마다 시골에 가서 100차례 공연하는 임무가 있는데 숙식 조건이 매우 좋지 않았고 채 적응되기도 전에 또 장소를 바꿔야 했기 때문에 밤새 잠을 잘 수 없었다. 30여 세인 나는 온종일 머리가 띵했고 후에 건망증으로까지 발전해 무대에서 대사를 까먹는 고통으로 인해 직업을 바꾸고 싶었다. 어떤 때 머리가 아파서 밤에 깨어났고 엎치락뒤치락하여 아이도 놀라 깨어났으며 진통제를 먹고서야 완화할 수 있다. 대법을 수련한 지 며칠 안 돼 어느 날 밤 금방 드러누웠는데 또 머리가 심하게 아프기 시작했다. 시계를 보니 10시쯤이었다. 사부님께서 신체를 정화해주시고 있음을 알았지만, 새벽 3시 30분이 되자 나는 사부님의 법상 앞에 서서 공원에 연공하러 가야 하니 머리가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러자 얼마 안 되어 머리가 아프지 않았다. 낮에는 평소대로 출근하여 무대 연습을 했기 때문에 누구도 내가 한잠도 자지 못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대법을 수련한 후 받은 혜택을 몇 장의 종이에다 다 쓸 수는 없다. 대법의 신기함은 오로지 수련인만이 절실하게 그 진실한 존재를 체득할 수 있다.

점쟁이는 나보고 머리에 세 개의 횃불을 달고 있는 여자라 화가 많다고 했다. 3살 때 국민당 군대에 참가했던 아버지는 역사 반혁명분자란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죽었고(사당의 군대에 참가한 적이 있고 한국전쟁에도 나갔다) 23살 때 어머니가 또 암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나는 도도하고 고집이 세고 자강·자립하는 성격을 양성했다. 학교에서든 직장에서든 동아리에서든 뛰어난 사람이었고 무슨 일을 잘못했어도 승인하지는 않고 단지 행동에서만 고쳤다. 그러나 선량하고 마음이 착함을 여러 사람이 다 인정했고 이익 방면에서 신경을 쓰지 않아 어떤 사람은 마음이 크고 넓다고 했다.

대법을 배우고 심성을 제고하는 방면에 마음을 기울였기 때문에 딴사람이 된 것 같았고 정말로 환골탈태한 느낌이었다. 매일 행복과 평화로움 속에 빠져 있었다. 나의 모든 표현은 가족이 제일 먼저 혜택을 받았다. 남편과 아이와 다투지 않았고 소리 지르거나 인색하지 않았고 원망하고 잔소리하지 않았다. 특히 내 몸에서 병소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39도 열이 났는데 약을 먹지 않고 다 나았다. 이상한 것은 매번의 소업은 다 주말에 있었고 아무리 심해도 일주일이면 다 나았으며 출근하면 누구도 (그런 사실을) 알아보지 못한다.

1997년 지도자의 추천을 받아 나는 중간 간부로 승진됐다. 배우는 실력과 기회에 의하는 것이라 무대 실천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간부하기 싫어한다. 후에 사부님의 설법을 듣고 이 직책을 맡았다. 우리는 늘 출장 가야 했는데 공연할 때의 전체 과정에서 나의 임무의 양이 매우 컸다. 숙소를 배치하고 배우를 조직해 무대 미술팀을 도와 물건을 운반하고 무대 설치팀을 도와 무대를 설치하고 여배우를 이끌고 가벼운 일을 하고 큰 막을 깁고 무대 앞뒤의 환경 청소 등을 해야 했다. 매번 몇 명의 말썽이 적은 사람(대법제자도 있다)을 데리고 조건이 가장 나쁜 곳을 찾아 숙박했다. 비록 공연마다 주연은 아니지만 2, 3호 인물이었고 분량이 많았다. 매번 출장 가면 반달이나 열흘 걸렸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부딪히고 모순이 생기는 일은 피할 수 없었고 여러 가지 모순을 화해시켜야 했다. 어떻든 모두 수련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했으므로 여러 사람의 호평을 받았다. 97년부터 09년 문예 체제를 개혁하기 전까지 줄곧 이 일을 맡았고 투표로 선발됐다. 일하면서 사람과 분쟁이 생긴 적도 있다. 그러나 대법을 배우는 사람이므로 어디에서든 좋은 사람이 돼야 하고 사람과 선하게 지내야 하며 직장에서도 수련인의 자비로움과 대범함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도 잘하지 못한 곳이 있었다.

그때 매일 정말 기쁘고 유쾌했다. 자신이 파룬궁수련생이라는 것만 생각해도 마음속으로 아주 격동됐고 어릴 적에 100점을 맞은 듯 흥분했다.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모교 문 앞을 지날 때 마음속으로 ‘대법을 배웠다. 나는 파룬궁수련생이다!’고 외쳤다. 그때 우리는 사부님을 선생님이라고 불렀고 언제나 입가에 걸고 다녔으며 누굴 만나든 대법이 좋다고 말했다.

문장발표: 2016년 4월 2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신수련생마당>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한 이야기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4/24/32705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