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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

글/ 푸젠(福建) 대법제자

[밍후이왕] 1998년부터 파룬따파를 수련했는데 그때 겨우 14살이었지만 스스로 찾아가 배웠다. 이후부터 내 인생에 근본적인 큰 변화가 나타났다.

지금까지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9살 때 그믐날 밤에 TV를 보는데 무슨 영문인지 갑자기 쓰러졌고 깨어나보니 아빠 품에 안겨 있었다. 설날이 지난 후 겨우 10살 밖에 안됐는데 상반년에 한 번 쓰러졌고 하반년에 또 한 번 쓰러졌다. 이후에 간질병이라는 병원 진단을 받았다. 이 괴질이 발작할 때의 고통과 참상은 일반인들이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가정 형편이 가난했기 때문에 부모님은 날 데리고 병원으로가실 형편이 아니셨다. 시골에 있는 할머니가 가끔 약을 가져와 먹으라고 하셨을 뿐이다.

11살이 되자 발작 간격이 갈수록 짧아졌다. 이때야 부모님은 부득이 날 데리고 의사를 찾고 약을 구하러 다니셨다. 이후에 나는 늘 약을 먹었다. 장기적으로 약을 먹었기 때문에 신체 손상이 매우 컸다. 한동안 심한 빈혈이 나타났고 얼굴에 혈색이 없었으며 손발이차갑고 열이 났으며 감기는 일상이 됐다. 또 늘 동시에 두통, 현기증, 복통이 나타나 하루 종일 기운이 없었다. 이후에 또 무좀, 사마귀가 생기고 온몸이 썩기 시작했으며 손발에 조갑진균증 등 연쇄 반응도 생겼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병투성이였다.

병마에 시달리고 몸에 끊임없이 나타난 질병 때문에꾸준히 치료하고 약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늘 한약, 양약을 함께 먹었고 심지어 약을 밥으로 먹었다. 약통도 갈수록 커졌다. 이후에 그 약들은 전혀 효과가 없었고 먹으나마나 괴로운 것은 같았다. 이 질병에 시달려 정신이 붕괴될 정도였는데 늘 멍해있고 반응이 느리며 바보가 된 것 같았다. 친척과 친구들은 모두 부모님에게 “이 아이는 키워봤자 쓸데없어”라고 했다.

행운인 것은 1998년 여름방학에 어떤 사람이 파룬궁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원래부터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 기공, 무술에 대해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씨 고운 한 아주머니를 일부러 찾아가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러나 처음에 신체적 기초가 약해 거의 책을 볼 힘이 없어 먼저 동작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연마한지 얼마 안 되어 몸과 마음에 변화가 생겨서야 책을 좀 보고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갑자기 어느 날 발가락 사이가 잇따라 썩기 시작했고 매우 아팠으며 고름까지 흘러나왔다. 빨리 마르긴했지만 발가락이 함께 붙었다. 이런 상황을 보고 가족은 걱정했다. 그러나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변함없이 법공부하고 연공을 3일간했다. 그러자표면 피부가 한층 벗겨지더니 심한 무좀이 이렇게 나았을 뿐만 아니라 온몸다른 부위 피부도 손으로 벗기면 다 벗겨졌다. 매우 신기했다. 표면적으로 보면 껍질 한 층이 벗겨진 것 같지만 사실상 그야말로 진정으로 평범한 육체가 환골탈태한 것이었다. 이후부터 하루 종일 시름시름 병을 앓거나 병이 고황에 든 폐인이 진정한 의의에서의 수련인이 됐다. 그때 나이가 비교적 어렸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이 일에 대해 말한 적이 없었지만 사부님께서 소업해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끊임없이 법공부하고 연공함에 따라 점차 법리도 갈수록 많이 알게 됐다. 처음에는 질병을 없애고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 것으로부터 차차 진정한 수련에 들어섰다. 약을 버렸을 뿐만 아니라 건강한 마음과 체격을 얻었고 더욱 중요한 것은대법 수련의 길에 진정하게 들어서게 됐다.

그러나 1999년 7월 20일에 장쩌민을 우두머리로 한 사악한 집단은 전례 없는 광적인 박해를 시작했다. 당시 아직 어린 나는 ‘이렇게 좋은 공법이고 백성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정부는 왜 반대할까? 왜 연마하지 못하게 할까? 또 흑백을 전도하고 천지를 뒤엎는 듯이 대법을 먹칠하고 비방할까’에 대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해 마침 중3이었고 2학기 ‘시사정치’에 대법을 모욕하는 제목이 있었다. 나는 동창들에게 책에 쓴 것은 다 가짜라고 알려줬다. 시험 중 문제를 풀지 않아 선생님께 불려가 한바탕 비평도 받았다. 하지만 그들에게 해석해줘도 듣지 않았다.

2000년 고교 입학시험이 끝나자 15살도 안 된 나는 베이징에 민원신청을 하러 가고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려고 결심했다. 역전에서 기차에 오르려 할 때 경찰에게 발견돼 불법적으로 경찰서로 끌려와 심문을 받았다. 악인들은 즉시 시내에서 노동일을 하는 가족과 나를함께 시골 고향으로 돌려보냈고 시내에서 공부하고 돈을 벌지 못하게 했다.

당시 가정 형편이 가난했고 어머니께서 아르바이트 하는 돈으로만 가정을 먹여 살려야 했다. 이렇게 갑자기 수입이 없어졌고 또 낡은 흙집에서 살게되자 온 가족의 기분은 갑자기 우울해졌다!이런 공격으로 이미 우리 가족은 충분히 곤궁에 처했는데 사당 악도들은 날 또 가만두지 않았다. 겉으로 듣기 좋게 소위 ‘사상을 바꾸게 도와준다’고 했다. 무식하고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던어머니는 모든 압력을 다 내게 가했고 울면서 날 때리고 욕하셨다. 아무리 어머니에게 설명해드려도 귀에 들어가지 않으셨다. 사악의 심한 박해와 끊임없는 방해 하에 진상을 모르는 마을 사람들도 감히 우리집에 오지 못했다.

당시를 말하자면 어려움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야말로 설상가상이었다. 그러나 위기에 부딪힐 때마다 기적적으로 전화위복이 됐는데 모든 것이 매우 불가사의했다.

어느 날 저녁에 흙집에서 자고 있었다. 금방 전등을 껐는데 발이 갑자기 무엇에 찔린 것 같았고 소리도 났다. 옆 침대에서 자고 있는 어머니는 소리를 듣고 즉시 전등을 켜고 어찌 된 일이냐고 물으셨다. 등을 켜는 순간 벽에 매우 큰 지네가 붙어있는 것을 봤다. 그 모습은 정말로 사람을 놀라게 할 정도였다. 만약 속인이라면 독 지네에게 물려 죽기 전에 이미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죽었을 것이다. 당시 마음속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난 수련인이다. 사부님께서 보호하시고 계신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엄마에게 “괜찮아요”라고 했다. 이튿날 깨어나 보니 과연 아무 일도 없었다.

지네 사건 이후 얼마 안 된 어느 날 아침이었다. 날이 금방 밝자 일어나 화장실로 가는 도중(시골에는 실내에 화장실이 없음) 갑자기 발이 따끔하게 아팠다. 고개를 숙여 보니 깜짝 놀랐다. 발이 독사에게 물렸던 것이다. 당시 좀 당황했지만 수련인으로서 매우 빨리 이것은 한 차례 더욱 큰 고험이라는 것을 의식했다. 그리하여 즉시 앉아 가부좌하고 연공했다. 대략 20여분 후 발을 내려놓았더니 두 번째 발가락이 뱀에 물린 구멍이 똑똑히 보였고 물이 흘러나왔지만 붓지도 피도 나지 않았다. 다만 그 작은 구멍 주변이 약간 새까맣게 됐는데 하루 이틀 지나자 다 나았다. 뱀에 물리고도 병원에 가지 않고 이렇게 빨리 다 나았다. 이렇게 신기하고도 신속히 다 나았다. 사촌 큰 아버지는 내 상황을 보고 “파룬궁은 대단해!”라고 한마디 하셨다.

또 한 번은 집안의 멀티 탭이 망가졌는데 수리하려고 드라이버로 멀티 탭을 여는데 뜻밖에 안에 아직 전류가 흐르는 전선이 순식간에 내 손에 닿았다. 펑하는 소리와 함께 온 방안이 어두워졌고 내가 정신을 차리자 이마는 온통 땀이고 코를 찌르는 탄 냄새가 났다. 손이 크게 감전됐던 것이다. 몇 개 구멍이 생겼고(지금까지 몇 십 년이 지나도 손바닥에 하얀 색 흔적을 똑똑히 볼 수 있음) 피부도 까맣게 탔다. 할머니는 이런 모습을 보고 우셨다. 나는 할머니를 위로하면서 “괜찮아요,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다면 오늘 목숨이 없어졌을 거예요”라고 했다.

2000년 12월에 마침 한 수련생을 만났는데 우리 둘은 함께 법을 실증하러 베이징으로 갔다. 톈안먼에 도착하자 나와 수련생은 함께 현수막을 펼치고 크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는 마음속 말을 외쳤다. 경찰들은 우리를 보고 뛰어와 나를 잡고 힘껏 경찰차로 던졌다. 한 빌딩에 수감됐는데 당시 안에 대법제자가 매우 많았다. 좀 지나 수련생들을 대형버스로 보냈는데 나도 따라갔다. 갑자기 한 여경이 날 붙잡았다. 아마 내가 너무 어렸을 것이다. 그녀는 나보고 내려오라고 했고 다른 한 승합차에 태우고 파출소로 보내 한바탕 날 구타했다. 이후에 또 현지로 납치해왔고 강제로 15일간 수감됐다.

고향으로 돌아오자 읍사무소 사람들은 “함부로 마을을 떠나서는 안 된다. 어디에 가려면 먼저 보고해야 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렇게 오랜 한동안 그들은 날 엄격하게 관리했다.

그 어려운 세월에도 이따금씩 신기한 일들이 나타난다. 가장 큰 교란은 이전의 ‘업력의 빚’ 고비였다. 특히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빈번하게 발작하는 간질병이었다. 이렇게 큰 어려움을 대면하고 나는 확고하고 착실하게 법공부하고 연공했으며 모든 박해와 교란을 다 내려놓았다. 처음에 병업은 매우 사납게 와서 머리가 터지고 피가 흘렀지만 모두 상관하지 않고 소업으로 생각했으며 늘 대법으로 어디를 부족하게 했는가, 어디에 제고할 필요가 있는지 자신을 가늠했다. 끊임없이 법공부하고 심성을 닦음으로써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내포를 알게 됐다. 이후로 병업은 갈수록 약해졌고 마지막에는 사라졌다. 동시에 날 감시하던 사람도 우리집에 오지 않았고 어머니도 일자리를 찾으러 나갈 수 있게 되셨다. 모든 것은 구름이 흩어지듯 사라졌다.

시간은 점차 지나갔고 나도 천천히 자랐으며 대법에 대한 이해도 갈수록 깊어졌으며 법리에 대한 인식에서도 승화됐다. 이 몇 년 동안 법을 실증하는 간난신고 중 비록 여기저기 부딪혔지만 지나왔다. 회상하면 정말로 쉽지 않다. 이 모든 것은 사부님의 ‘불은호탕(佛恩浩蕩)’의 보호다! 이번 기회를 통해 사부님과 대법에 감사드린다!

문장발표: 2016년 4월 22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진상을 알려 세인을 구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4/22/32696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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