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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생을 구출하는 중 점차 수련의 성숙으로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4년 3월 21일, 수련생과 변호사가 세 번째 헤이룽장성 젠싼장 칭룽산 세뇌반에 가서 불법수감된 수련생을 구출하러 갔을 때였다. 그들은 젠싼장 공안국 경찰에게 납치당했고 변호사 4명은 혹형과 시달림을 받았으며, 한 명은 갈비뼈가 여러 대 부러졌다. 각계 인사의 성원으로 15일 후 석방됐다. 그러나 우리 수련생 4명은 납치당해 수감됐고, 그중 한 명은 젠싼장 칭산 세뇌반 박해를 직접 받았는데 또다시 납치당했다.

사건이 발생한 후, 수련생들은 구출 팀을 조직했고, 한 수련생이 나에게 참여해달라고 했다. 나는 그때 두려워하며 말했다. 생각해 보고 다시 알려주겠다. 며칠 후 수련생이 또 나를 찾아왔을 때, 나는 내가 부딪친 문제는 우연이 아니고 닦아야 할 무엇이 있는 것이다. 어쩌면 사부님의 안배일 수도 있으며, 신의 길에서는 마땅히 주저하지 말고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후 나는 사흘간 계속 밥도 먹을 수 없고 잠도 잘 수 없으며 법공부를 잘할 수도 없어 심리적 부담이 아주 컸다. 나는 자신에게 법공부를 많이 하고 발정념을 많이 하도록 요구했다. 법공부를 통해 다른 공간에서 짓눌려 내려온 사악이 나를 이 항목에 참여하지 못하게 제지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련생을 구출하는 과정은 진상을 알려야 하는데 진상 알리기는 만능의 열쇠로 각종 사람 마음의 자물쇠를 열 수 있으며 우리의 사명은 바로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시 공안국이었다. 사전에 수련생들은 정체 협력으로 발정념 하기로 약속했다. 공안국 앞에서 수련생이 말했다. “누가 들어가겠는가?” 나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맨 뒤에서 공안국 건물로 따라 들어갔다. 들어간 후 수련생은 경비와 인사하면서 국보위 사람이 있냐고 물으니 경비는 없다고 대답했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밖에서 국보대대 사람이 들어왔다. 우리는 젠싼장 일로 찾아왔다고 하니 이 일은 자기 담당이 아니라 젠싼장 국보위에서 담당한다면서 태도가 아주 좋았다. 한 수련생이 파룬궁 박해 서류를 보여 달라고 하자 국보위 사람은 화를 냈다. 우리는 재빠르고도 묵묵히 도와주었고 작별할 때 그는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 과정에 나는 사람을 구함에 그의 부정적인 것을 건드리지 말고 곳곳에서 대법제자의 자비를 체현해야만 사람을 감동시키고 사람을 구할 수 있으며, 비로소 진정으로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2014년~2015년까지, 우리는 여러 번 젠싼장, 공안, 검찰, 법원 각 부서를 찾아다녔다. 어떤 땐 변호사와 함께 갔고, 어떤 땐 수련생 혼자 가는 때도 있었다. 초창기에는 각 부서로 찾아가는데 압력이 몹시 컸다. 수련하지 않는 남편은 걱정했고, 매번 왕복하는 비용에 마음을 썼다. 매번 성으로 가려면 아침 3, 4시에 출발해야 하므로 전날 저녁에 5장 공법을 연마해야 했고 특히 신분증을 지녀야 했는데. 처음에는 고민이 심했다. 왜냐하면, 2000년 베이징에 청원하러 갈 때 신분증을 빼앗겨 파출소에 몇 번이나 찾아가도 발급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2년 파출소에서 나를 납치하려 핍박하므로 또 1년간 떠돌이 생활을 했다. 2004년에야 나는 신분증을 만들 수 있었다. 매번 젠싼장, 공안, 검찰, 법원 각 부서를 여러 번 찾아다닐 때 귀중한 시간을 지체하지 않으려고 길에서 줄곧 법공부, 법 외우기, 법 듣기, 발정념을 하면서 항상 법으로 자신의 언행을 바로잡았다.

2014년 12월 17일, 엄동설한에 젠싼장 첸진 넝컨 법원은 수련생 4명에 대해 불법 개정했다. 나는 마땅히 가서 근거리 발정념을 해야 한다고 깨달았다. 그러나 가기 전에 잇달아 소식이 왔는데 젠싼장과 첸진 농장으로 가는 길목 곳곳마다 검사대를 설치해 막고 있으며, 어떤 구간은 경찰이 총탄을 장전하고 완전무장하고 서 있다는 것이다. 오가는 차량과 행인의 신분증을 검사하는 데 목적은 대법제자와 변호사를 가로막는 것이었다. 게다가 2014년 3월 변호사와 수련생을 박해할 때 공포감(젠싼장은 사람들 마음속에 불법의 성, 공포의 땅으로 명명됐다)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동안은 정념이고 한동안은 사람 마음에 눌려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는데 공포적인 느낌은 99년 ‘7.20’ 당시의 베이징 상방을 갈 때 못지않아 그야말로 뼈를 깎는 시련이었다. 사부님의 가지 하에 수련생과 교류하면서 정념이 나와 어려운 첫 발자국을 내디뎠다. 밤 12시 열차에 올라 개정 현장으로 달려갔다.

이튿날 아침 6시에 내리자 역전 출구에 숱한 경찰이 서서 “신분증, 신분증…” 하고 외쳐대는데 몹시 두려웠다. 한 속인이 웬일인가 하고 물으니 경찰은 파룬궁을 조사한다면서 그 자리에서 수련생 몇 명을 납치했다. 이때 나의 마음속에는 오직 정념만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처럼 큰 법이 있으며 정념 중에서 대법과 당신들은 같이 있는바, 이는 거대한 보장이다.” [1]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결정하신다. 사부님께서는 나의 곁에 계신다. 정념이 강해지자 두려운 마음이 적어졌다. 나와 수련생은 순조롭게출입구로 나섰다.

출입구로 가니 곳곳이 경찰관이 널려 있었다. 시장, 간이음식점, 마을버스 역 심지어 주택 현관에도 경찰이 있었다. 하늘에서는 눈이 쏟아지고, 영하 30도의 혹한과 살을 에는 찬바람에 눈꽃까지 날리면서 얼굴을 때려 몹시 아팠고 금방 발이 얼어들기 시작했다. 개정시간이 아직 4시간이나 남았는데 이렇게 추우니 어떻게 해야 하나 하면서도 끊임없이 발정념했다. 수련생과 교류하자 오직 진상을 분명히 알려야만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수련생과 함께 작은 마트에 들어가서 물건을 사는 척하면서 진상을 말하고자 입을 열려 하는데 주인이 우리에게 모모 시 사람이 아니냐고 물었다. 우리는 서로 쳐다보면서 나와 버렸다.

날씨가 몹시 추운 데다 눈까지 내려 길가는 행인이 드물었다. 마침 한 아주머니를 만나 몇 마디 말을 나누고 막 진상을 말하려 하는데 그녀는 자기는 예수를 믿는다면서 곧바로 가버리는 것이었다. 길에는 가는 곳마다 모두 경찰차, 경찰, 사복경찰이었다. 우리 둘은 발정념하면서 걸어갔다. 돌고 돌아 한 음식점 앞에 다다랐다. 한 수련생이 안에서 나오면서 우리를 불렀다. 이 수련생은 밖이 너무 추워 견딜 수 없어 이 음식점에 들어와 주인에게 진상을 알렸다. “당신들이 들어서자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주인 부부는 아주 선량해 진상을 알게 되자 우리를 가지 못하게 하면서 경찰이 여기까지는 오지 않는다고 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사부님은 이런 방식으로 제자를 보호해 주셨다.

밖에서 경찰차 경적 소리만 울리면 주인은 밖에 나가 살펴보았다. 점심에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자기 선생님이 파룬궁은 애를 죽인다고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나는 얼른 다가가서 아이에게 진상을 말했고 아이도 알아듣고 소선대에서 탈퇴했다. 또 인연 있는 젊은 부부와 주인의 부친이 왔고, 모두 소선대에서 탈퇴했다. 하지만 주인은 아무리 말해도 단, 대에서 탈퇴하지 않았다. 나는 그 때문에 속으로 몹시 괴로웠다. 돌아갈 기차 시간이 다 돼 가는 것을 보고 나는 눈물을 머금고 주인에게 말했다. “당신처럼 이렇게 좋은 사람이 탈퇴하지 않아 구원되지 못하면 나의 마음은 정말 괴롭고 유감을 남기게 될 거예요, 돌아가도 마음이 불편할 거예요. “여기까지 말하자 그는 말했다. “아주머니 탈퇴하겠습니다.” 정말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자비는 천지에 봄이 오게 하고 정념은 세상 사람을 구하는 도다” [2]였다. 주인은 또 우리에게 차표를 끊어주며 안전하게 현지로 돌아가게 했다. 후에 알게 됐는데 그날 수련생 29명이 납치당하고 가로막혔으나 그날 풀어주었다고 했다.

이번 구출 과정에 깨달은 이치는 2년 동안 사부님의 자비와 가호로 수련생의 정체 협력과 구출팀 수련생이 걸어간 절차와 고소, 변호사 개입은 사악을 극도로 놀라게 했고, 또한 사악의 표면적인 창궐과 내적인 공황을 보아내기도 했다. 정체적인 정념의 장의 역할은 수련생들이 교도소에 보내지지 않고 구치소에 있게 되었다. (수련생 3명은 2016년 3월 21일 석방됐다)

개인적으로 전 과정에 부족한 점이 많았는데 주동적으로 일을 하지 못했고, 교류할 때 나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으면 입을 다물었으며, 교류가 평화적이지 못해도 자신은 수련이 괜찮다고 여겼다. 특히 한 수련생이 면전에서 나를 질책했다. “교류할 때 말도 하지 않으면서 자기는 협조인이란 말인가! 생각조차 없는데 어떻게 협조를 하는가?” 나는 겉으로는 말이 없었지만 속으로는 당신은 늘 남을 질책한다고 생각하면서 속으로 불복했고, 시간이 오래가자 간격이 커져 그녀를 보기 싫어했다.……

이런 개인 수련 문제는 팀에 반영되어 일하는 표면에 나타났다. 어떤 땐 교류하면 생각이 같지 않고 서로 끝없이 다투었으며, 심지어 울기까지 했다. 서로 간에 비난을 그치지 않고, 누가 일을 많이 하면 누가 된다고 여겼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안에서 찾는 이것은 법보이다” [3] 모순 중에서, 마난 속에서 끊임없이 안으로 찾아 자신이 높다는 마음, 남을 얕보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과 불복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폭로되어 나온 것은 질투였다! 구출하는 와중에 심혈을 기울임이 부족하고 한바탕 떠들썩했는데 두려운 마음이 섞여 있었다. 이런 사람 마음이 섞여 있는데 사람을 구할 수 있겠는가?

어느 한 교류에서 이것이 수련인의 상태인가라고 인식되어 앉아서 마음을 활짝 열어놓고 각자 자신의 부족을 찾았다. 어떤 수련생은 말했다. 이전에 나는 여러분을 비난하면서도 의식하지 못했다. 정말 미안하다. 자신을 수련하지 않은 것이다. 모두 안으로 닦고 안으로 찾는 것을 통해 협력할 때 간격을 타파하고 서로 도와 화목해졌다. 상대방의 부족을 보면 모두 선의로 지적하게 되었고, 자신의 부족을 인식하면 덮어 감추지 않아 숨어있는 많은 사람 마음을 닦아버리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 항목에 참여했으며 모두 심성에 아주 큰 변화가 일어났다. 수련생 간에 만나면 겸손한 감각이 있었다. 우리는 시련 속에서 서서히 수련으로 들어갔는데 대법이 우리를 개변시켰던 것이다. 우리는 우주에서 가장 행복하고 운이 좋은 생명이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사부님저작:《각지설법10》〈맨하튼 설법〉

[2] 리훙쯔사부님시사:《홍음2》〈법정건곤〉

[3] 리훙쯔사부님저작:《각지설법9》〈2009년 워싱턴 DC 국제법회설법〉

문장발표: 2016년 4월 12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4/12/32658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