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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생 사이에 두 가지 문제가 존재한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에서 나는 법을 실증하는 중에 발견한 수련생 사이에 존재하는 두 가지 문제를 말하려 한다. 하나는 다른 수련생에 대한 숭배이고 두 번째는 수련생 사이의 협조가 타당하지 않은 것이다. 수련생들이 안으로 찾고 순정한 심태로 법을 실증해 중생 구도에 도움이 되기 바란다.

먼저 수련생들은 한 가지 문제를 생각하기 바란다. 수련인 몸에서 나타나는 속인을 초월한 지혜, 능력과 자비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수련인이 고난 속에서 여전히 중생을 구도하는 그 모든 고난을 초월한 확고한 신념은 또 어디에서 온 것인가? 답은 아주 명확하다. 사부님과 대법에서 온 것이다. 모든 수련자가 대법에서 깨달은 것은 무수한 우주 중에 던져진 한 알의 좁쌀에 불과하다. 그럼 왜 자신과 같은 아직 사람 중에 있는 수련인을 숭배할까? 법에서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功)은 사부에게 달렸다.”[1] 아직 원만하지 못한 한 수련자가 당신을 어디로 이끌어갈 수 있겠는가? 그가 당신에게 뭘 줄 수 있겠는가? 당신이 좋다고 여기는 것은 당신에게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겠지만 그것은 사람마음과 인정(人情)의 표현에 불과할 뿐이다. 진정하게 우리를 도울 수 있는 것은 사부님과 법이다. 수련생 사이에는 모범과 참고가 없다. 오로지 “배움을 견주고 수련을 견주나니”[2]만 있다. 다른 사람이 잘하는 것을 보고 법에서 대조해 자신을 제고해 더욱 정진해야 하고 다른 사람이 잘하지 못하면 안으로 찾아 자신에게 유사한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지 깨우쳐 제고해 올라와야 한다.

많은 수련생이 어떤 한 수련생에게 모두 이런 마음을 품는다면 숭배한 수련생을 위험한 경지로 밀어놓을 수 있지 않을까? 구세력이 세상을 떠나게 한 많은 수련생들에게 다 이런 원인이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대법제자는 엄숙한 수련 군체인데, 구세력은 각종 기회를 이용해 대법제자에게 번거로움을 조성할 것이며, 또한 각종 기회를 이용해 일부 대법제자로 하여금 생명을 잃게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면 자기도 어떻게 하길 좋아하는데, 그것은 자기가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러나 수련인은 자신을 원만에 이르게 하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 구세력은 당신에게 교훈을 주고 당신을 반성하게 하려고 심지어 당신이 따라 배우는 본보기에게 번거로움을 조성해 주고, 심지어 그를 일찍 가게 한다.”[3]

숭배 받는 수련생들은 대략 두 가지 부류가 있다. 현지 협조인이나 법공부를 잘한 사람이다. 나도 여러 수련생들의 숭배를 받았었다. 어떤 수련생은 내가 쓴 심득이 그녀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자신보다 법에 대해 이해를 더 잘했다고 여기면서 내가 쓴 문장을 외울 생각까지 했다고 말했다. 나는 즉시 이 신수련생의 극단적인 행위를 제지했다. 나도 자신의 문제를 의식했다. 표현 중에 아마 자기도 모르게 자신을 실증했거나 자신의 체험을 너무 강조해 수련생들이 법에서 문제를 보는 것을 홀시했을 것이다. 나는 사부님께서 우리를 제도하는 어려움을 체험했고 우리에게 부여해주시고 그렇게 많은 것을 감당해주셨다는 것을 체험했다. 어떤 제자들은 아직 마음을 완전히 사부님께 맡기지 않아 좀 제고가 있으면 자신의 신분을 잊어버린 사람도 있다. 사부님께서 계시지 않는다면 오늘 우리가 아직도 여기에서 조사정법할 수 있겠는가? 수련생을 숭배하고 사람을 배우면서 법을 배우지 않는 이런 사람의 마음을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수련생 사이에 협조가 잘 되지 않는 것은 ‘안으로 찾는 것’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각자 모두 자아라는 인식에 뒤엉켜 법을 실증해야할 기점에서 벗어난 것이다. 나는 수련 중에서 자아 실증과 질투심은 줄곧 대법제자의 법을 실증하는 마장(魔障)이라는 것을 이해했다. 내 몸에서 반영된 이 두 방면의 체현은 잘난 체하는 마음과 자신만의기준이다. 잘난 체하는 마음은 이미 해체됐다고 할 수 있다. 착실한 수련에서 우리는 이 잘난 체함은 하늘이 얼마나 높고 땅이 얼마나 두꺼운지 모르는 사람 마음이 팽창한 것이고 오만한 마음이라는 것을 깊이 알았기 때문이다. ‘자아’를 수련하여 닦아버리는 것이 어떤 때 아주 어려운 것 같다. 자아라는 완고한 기준이 이따금 튀어나오고 수시로 밖을 향해 구하고 다른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질책하는 태도 다음에는 또 후회하며 좋지 않은 표현이 있는데, 늘 ‘내가 언제 그런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4]의 경지에 도달했지?’라고 스스로에게 감동한다. 잘난 체하는 것은 사람의 개념을 법 위에 놓은 것이고자신만의 기준은 사람의 개념을 법 앞에 놓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부님의 법도 적지 않게 배웠는데 그 완고한 자아를 왜 내려놓지 못할까?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들 중 아주 많은 사람이 법 공부가 부족하다. 당신들의 법 공부가 부족한 원인은 당신들이 법을 공부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당신들이 적게 공부했다는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속인의 관념을 품고 공부하기 때문이다.”[5] 나는 사부님께서 우리를 아주 꿰뚫어 보시고 한 마디로 핵심을 찌르셨다는 것을 깊이 느꼈다. 흔히 우리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은 모두 우리가 제고해야할 부분인데 많은 경우에 우리는 에둘러 간다. 사람 속에서 본능적으로 자아를 보호하는 것은 구우주의 ‘위사(爲私)’의 뿌리가 모든 수련자 몸에서 체현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나는 우리 사부님의 경지를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전 우주 천체의 중생을 위해 최대한도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신 그 크나큰 자비, 위급한 국면을 온 힘을 다해 되돌리시는 그 법력은 구우주의 모든 생명이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내 몸에서 표현된 질투심은 다른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할수록 주위에는 늘 반응이 늦은 사람, 오성이 높지 않은 가족 수련생이 배치되어 내 이 마음을 닦아버리도록 도와주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꿈에서 이 문제를 두 차례 점화해주셨다. 한 번은 내가 대학에서 2등이라고 점화하셨다. 1등은 ‘왕융허(王永和)’라고 했다. 나는 왕(王)의 상태는 마땅히 늘 온화하고 선량해야 한다고 깨달았다. 전통문화 중에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명사가 있다. 다시 말하면 먼저 남과 사이좋게 지내면서 포용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우주만물의 번영 역시 생명의 특수성과 층차의 각이함에서 체현되는데 자신과 인식 차이가 많은 사람과 일을 용납하지 못하면 선량할 수 없는 것이다. 두 번째 점화는 꿈에서 속성반에 가서 시험을 친 일이다. ‘리카이(李凱)’가 나에게 시험지를 나누어 주었다. 개(凱)에는 두 층의 함의가 있다. 하나는 승리해 돌아온다는 뜻이 있고 다른 하나는 화합과 부드럽다는 뜻이 있다. 나는 당신이 승리해 돌아오려면 태도가 온화하고 다른 사람을 온화하게 대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에서 말하는 부드럽다는 선(善)의 감화(感化)인 것이다. 수련인들이 가질 왕의 풍모는 ‘용납해야 커진다[有容乃大]’에서 체현된다. 얼마나 큰 흉금 용량이 있어야 ‘위대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사부님의 설법을 배울 때 나는 아주 감동됐다. 사부님 제자의 돈을 갈취하는 것은 대법 자원을 파괴하는 사람이지만 그가 조금이라도 잘못을 고칠 수 있는 희망이 있다면 사부님께서는 수련해 좋게 된 수련생을 대하듯이 그를 싫어하거나 차별하지 않으셨다. 그가 구원 받고 구도 받을 수 있게 하신다. 이 설법을 본 후 나는 다른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는 마음이 담담해졌으며 자아의 기준도 자주 나타나지 않았다. 내 마음을 건드렸던 많은 일들을 마음에 두지 않았으며 자연스럽게 포용할 수 있었다. 나는 정말 사부님께서 이렇게 좋은 법을 우리에게 전해주신데 감격한다. 특히 몇 십 년 동안 인간 세상의 각종 일을 겪은 후 자신이 얼마나 영광이고 행운이며 대법이 얼마나 소중한지 발견했다. 성격이 고상하고 다른 사람에게 굽히지 않던 나도 기쁘게 적자지심(赤子之心: 천진하고 거짓 없는 마음)으로 사존의 발 아래에서 기어 다니고 있다. 이는 사존의 비할 바 없이 위대한 위덕이 부른 힘이다!

수련생 사이에는 정진하는 수련생도 있고 정진하지 못하는 수련생도 있으며 각자의 층차도 다 다르고 깨달은 이치도 다르기 때문에 어떤 때 같이 일을 하면 이런저런 모순과 조화롭지 못한 일이 존재한다. 이런 조화롭지 못한 일은 우리에게 심성을 제고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법을 실증하는 항목 중에서 모순이 존재할 때 우선 대법제자는 정체라는 것을 생각하고 일시적인 사람의 관념 때문에 구세력이 만든 간격으로 서로 협조하는데 장애가 생겨서는 안 되며 모든 대법제자의 진아(眞我)는 모두 조사정법을 위해 온 것임을 분명하게 알고 모두 선을 향하고 향상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선량하지 않은 표현은 배후의 집착을 건드렸기 때문이고 모두 닦아야할 요소다. 세인들이 인간세상에서 대가를 치른 것은 모두 수익을 얻기 위한 것이지만 대법제자가 대가를 치른 것은 수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수익을 구하지 않지만 가장 큰 수익을 얻었다. 그것이 바로 대법제자가 된 것이다. 이런 이치는 법에서 모두 아주 명확하게 알 수있는 사실이다. 남은 시간은 우리가 어떻게 조사정법의 작용을 잘 발휘할 것인가이다. 수련생들과 서로 제고하고 공동으로 정진해 사부님께서 걱정을 덜 하시고 좀 더 기뻐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썼다! 허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의 시: ‘홍음’ ‘착실한 수련’

[3]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세계 파룬따파(法輪大法)의 날 설법’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불성무루(佛性無漏)’

[5]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창춘(長春) 보도원법회 설법’

문장발표: 2016년 4월 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4/8/32637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