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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책임자는 어떠해야 하는가

글/ 랴오닝(遼寧)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일부 지역의 협조 일에 참여했는데, 주요 책임자 자리를 심하게 다투는 현상을 보게 되었다. 이는 정체를 사분오열되게 하여, 힘을 합쳐 사람을 구하고 사악을 억제할 수 없게 하는데, 매우 가슴 아팠다. 그런 수련생들은 사실 구세력이 배치한 길을 걷고 있음을 스스로 몰랐다.

수련생들은 모두 수련에서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해야 함을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구세력의 배치에 따라 걷고 있는지 여부를 어떻게 판단하고, 구세력의 배치는 어떻게 부정하며 어떻게 해야 실제 해낼 수 있는가? 사실 아주 간단하다. 모순 앞에서 진정으로 사부님의 법으로 자신을 지도하여 심성을 제고하고 언행에서 무사무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렵다면 바로 그것이 어렵다. 나는 지역 협조인 자리를 다투는 수련생과 그들을 지지하는 수련생들이 흔히 사람의 이치와 수련생 사이의 정으로 자신의 언행을 지도하고, 사부님의 법으로 자신을 대조하지 않음을 보았다.

그들은 사부님의 법에 따라 자신의 언행을 대조하려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주요 책임자에 관한 설법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법리상에서 흐리멍덩했다. 그러면 구세력의 배치를 전혀 부정할 수 없다.

우리 지역의 주요 책임자 자리를 다투고 빼앗는 현상을 접촉한 후 나는 사부님의 관련 설법을 보며 자세히 사고해 보았는데, 천백 년 간 형성되어 뼛속까지 스며든 사람의 이치가 정말로 시시각각 정진하지 않는 수련생들을 좌우지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사람의 껍질을 벗는 것은 정말로 아주 어렵다. 법에서 진수, 실수하면서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걷지 않으면 구세력을 부정한다는 것은 빈말에 불과하게 된다.

속인사회에서 사람들은 ‘능자거지(能者居之)’라고 말하는데, 직위는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주어져야 하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스스로 물러나 ‘양현(讓賢)’ 즉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자지지명(自知之明)’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일부 수련생들은 모모가 지역 주요 책임자 자리에 부적합하고 능력이 없다면서 스스로 물러나 보다 능력있는 수련생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모모 수련생이 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자신 혹은 더 능력이 있어 보이는 모모 수련생이 지역 주요 책임자가 되어야 한다.’ 이는 맞는 인식인가?

이는 사람의 이치이지 법리가 아니다. 법리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면 대법에 길을 닦아준 신전문화(神傳文化)-‘서유기’ 와 ‘봉신연의’를 참고해 볼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주요 책임자는 도대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여섯 자로 설명해 주셨다. “『봉신연의(封神演義)』 중의 신공표(申公豹)가 강자아(姜子牙)를 보니, 늙고 또 능력도 없었다. 그러나 원시천존(元始天尊)은 강자아에게 봉신(封神)하게 했다.”[1] 그 여섯 글자는 바로 “늙고 또 능력도 없다(又老又沒本事)”이다. 이 한마디는 다른 한 층의 법리도 알려주는데, 그것은 바로 총협조인이 되는 것은 누가 자신이 능력이 있다고 여기거나 어떤 사람이 더 능력이 있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그것은 큰 연극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정해진 것이라는 점이다. 그 사람은 사명을 갖고 온 것으로,사부님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 사람, 한 생명을 만드는 데에 극미시하에서 이미 그의 특정한 생명 성분과 그의 본질이 구성되어 있다.”[1] 다시 말해서 그 사람은 표면적으로는 ‘늙고 또 능력도 없어’ 보이지만 사부님께서는 하세 전에 이미 그에게 한 지역 주요 책임자 역할에 필요한 생명 성분과 소질을 부여하셨다. 하지만 ‘극미시하’에서 부여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소질은 표면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혹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지역 주요 책임자 역할을 잘하는 것과 연관된 소질은 우리가 사람 마음으로 추측하는 소질과 전혀 다르다. 많은 수련생들은 표면에서 보고 표면에서 관찰한 결과 지역 주요 책임자들이 특별한 점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가 어떻게 지역 주요 책임자가 되었을까 라고 생각한다. 사람 마음의 주도 하에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먼저 신화소설 ‘서유기’를 보자. 서천에 가서 경을 구해오는 것은 한 항목이었고 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와 사오정이 항목에 참여했다. 손오공과 저팔계, 사오정은 모두 재간이 있는데 특히 손오공은 72가지 변신술이 있고 단숨에 1만8천리를 날 수 있는데다 여의금봉도 갖고 있었다. 이 네 사람 중 삼장법사는 아무런 재간도 없는 육신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항목 책임자였다.

왜 그렇게 배치했는가? 아이러니하게도 삼장법사의 ‘무능함’이 있었기에 손오공은 투전승불(鬪戰勝佛)로 성취했다. 손오공은 처음에 어떠했는가? 재간이 있었지만 고집 세고 제멋대로 행동했으며 성격이 불같고 흉금이 넓지 못했다. 그래서 화가 나면 여의봉을 마구 휘둘렀다. 그런 사람이 성불할 수 있겠는가? 14년간의 심성 연마와 81차례의 난을 거쳐서야 손오공은 마성을 전부 닦아 제거했고 성격이 온화해져 조급하고 난폭하지 않게 되어 항상 삼장법사를 배려할 수 있었으며 사제 사이에 아무런 의심이 없이 서로 진심으로 대할 수 있었다. 아울러 81차례의 난을 겪고서야 손오공은 성불하는데 필요한 위덕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삼장법사의 ‘무능함’이 없었다면 손오공의 성취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저팔계와 사오정은 왜 성불하지 못했는가? 개인의 이해로는 저팔계는 제거하지 못한 집착심이 많았기 때문이고, 사오정은 갖고 있는 근기와 오성이 제한된 외에 기여도가 모자라고 위덕도 모자랐기 때문이다.

반대로 삼장법사를 말해보자.그는 정말 무능한가? 서천에 가서 경을 구해오는 항목 책임자를 단련시키는 것은 하늘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삼장법사는 여래불의 큰 제자로 근기가 좋았다. 중국 동토에서 전생한 후 어려서부터 절에 배치되어 불법을 배우고 수련했다. 그의 부모의 마난은 아마 배치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귀한 아들을 태어나자마자 절에 보내 수행시키겠는가? 그는 평범한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수련에 대한 마음이 견정하여 서천에 가서 경을 구해오는 항목을 안정적으로 진행시켰다. 삼장법사의 견정한 신념이 없다면 그 항목은 결국 실패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실질적으로는 삼장법사가 그 항목을 안정적으로 진행시켰고 항목의 발전 방향을 장악하여 항목이 기존 목표를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게 했는데 그것으로 충분했다. 다시 말해 지역 주요 책임자는 법을 실증하는 길에서 어긋나지 않고 지역 대법제자들을 어긋나게 이끌지 않으며 같지 않은 단계에서 지역의 법 실증 방향을 결정할 능력만 있으면 된다. 그들은 너무 완벽하고 전면적으로 문제를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사람들은 ‘서유기’를 보면 모두 가장 재간이 있는 손오공이 주인공이라고 여긴다. 손오공이 항목 책임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만약 손오공이 시종 자신의 능력에 집착하고 삼장법사를 무시했다면, 자신의 능력이 더 크다고 생각하고 삼장법사를 대신하겠다는 일념을 움직였다면 큰 일 났을 것이다. 천상과 지상의 신선들이 아무도 손오공을 도와주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늘을 거역하고 판을 뒤엎으며 신불의 배치를 파괴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사부님께서 인정하시지 않는다면 호법신을 포함한 모든 정신(正神)들은 감히 상관하지 못한다. 그러면 구세력은 즉시 빈틈을 타고 들어갈 것이다. 그런 수련생은 구세력의 통제를 받는데, 구세력은 끊임없이 ‘내가 한 것이 맞다. 내가 한 것이 맞다’라는 그의 일념을 강화시킨다. 그러면 그 수련생은 책임자가 갈수록 안 된다고 느끼고 갈수록 문제가 있다고 여기면서 내가 대신해야 한다거나 능력 있는 모모 수련생이 하고 내가 그를 도와서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항목이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전반 지역의 법 실증 형세를 책임지고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원용하고 있으며 조사정법(助師正法)한다고 여기는데, 자신이 이미 구세력의 조종 하에 있고 하는 일마다 사실상 모두 항목의 진도를 파괴하고 정체를 분열시키는 작용을 일으키고 있음을 모른다. 한 수련생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정법 수련 과정에서 불에 용련된 것은 진금뿐만 아니라 돌도 있다.”

사실 여전히 법공부에 문제가 있고 일을 하는 것을 수련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법에 대한 청성한 인식이 없는데 어떻게 구세력의 배치와 조종을 부정할 수 있는가? 어디가 바른 길인지 모르는데 어떻게 걸어간단 말인가?

속인들은 선후를 중하게 생각한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어떤 직책에 있다가 중간에 부득이한 사정으로 떠나게 되었다. 자리를 비워둘 수 없으므로 다른 사람이 대신했다. 얼마 후 떠났던 사람이 돌아왔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를 일단 다른 자리에 배치해 준다. 속인 사회는 이렇게 문제를 처리하는데 어떤 직장이든 마찬가지다. 복귀한 사람이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 하면 사람들은 그가 너무 하다며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다고 손가락질한다. 사람들은 그를 대신한 사람을 동정하고 그를 비난하는데 이것이 바로 속인의 이치이다. 하지만 이는 법리가 아니다.

생각해 보라. 삼장법사가 경을 구하러 갈 때 81차례의 난이 있었다. 중간에 요괴들이 수시로 그를 잡아갔는데 삼장법사가 한번 잡혀갔다고 주요 책임자를 바꾸고, 그가 잡혀가면 또 사람을 바꾸면서 반복하며 매번 바뀐 ‘삼장법사’가 원래 삼장법사가 돌아온 후 물러나지 않는다면 천상의 여래불과 여러 정신(正神)들이 인정하겠는가?

수련생들이 양쪽으로 나뉘어 치열하게 다투니 반감이 들어 어느 쪽 항목에도 참여하지 않고 내 길만 잘 가자. 문제를 이렇게 인식하는 것은 개인 수련으로 보면 맞을지 모른다. 그러나 정체 협조의 각도에서 보면 여전히 구세력이 배치한 길을 걷는 것이다.

구세력의 목적은 무엇인가? 정체 협조를 파괴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정법노정에서 정체를 형성하고 서로 협조를 잘하라고 끊임없이 강조하시고 그렇게 배치하셨다. 그렇다면 구세력은 거기에 고비와 난을 설치하여 대법제자를 고험하고 대법제자가 사부님의 말씀에 따라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 없는지, 정체 협조를 잘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본다.

나는 어떤 다툼도 상관하지 않겠다. 구체적인 법 실증 항목이 앞에 놓여 있으니 협조해야한다. 혹은 우리는 사악의 검은 소굴에서 함께 걸어 나왔기에 그를 도와야 한다.

일부 수련생은 수련생 사이의 정에 눈이 멀었다. 검은 소굴에서 생사를 함께 한 사이라는 것 때문에 누가 지적해도 듣지 않는다. 대법제자들은 모진 역경을 이겨내고 오늘날까지 걸어왔는데, 정말 쉽지 않았다. 정법의 최후가 다가오고 있고 귀위(歸位)할 때도 되었다. 그동안 사람을 구하는 일을 정말 많이 했는데 마지막 몇 개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정체 협조에 파괴 작용을 일으킨다면 원만할 수 있겠는가?

나도 보았는데 많은 이런 수련생들은 오래 전부터 법공부에 문제가 있었고, 발정념할 때 동작이 심하게 흐트러져 자신의 공간마당에서 자신을 조종하는 사령(邪靈)과 썩은 귀신을 해체하지 못했다. 유일한 방법은 일을 모두 내려놓고 집중하여 법공부, 연공, 발정념을 하며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다. 오로지 이렇게 해야만 구세력에게 교란당하고 이용당하는 것을 돌파하고 다시 돌아올 수 있다. 아울러 무의식적으로 수련생의 잘못된 행동을 지지하는 역할을 일으킨 수련생들도 자신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다른 수련생을 도울 수 있고 자신도 도울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역시 구세력의 배치 속에 있는 것이다.

주:

[1] 리훙쯔 사부님 저작:‘전법륜’

문장발표:2016년 2월2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2/21/32439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