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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간 생긴 간격, 이치를 아니 하루아침에 사라져

글/ 산둥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박해 받은 후 압력 때문에 2010년 직장에서 명예 퇴직했다. 집이 새 아파트라 근처에 아는 대법제자가 없기에 나는 한 수련생에게 집 주소를 적어 주면서 가까이에 있는 수련생들을 찾아줄 것을 부탁했다.

그 이듬해 어느 날, 집 초인종이 울렸다. 수련생이 찾아온 것일까? 박해를 받은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좀 두려운 마음으로 누구냐고 물었는데 “당신이 찾아오라고 하지 않았나요?”라고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드디어 소원대로 수련생을 찾게 되었다. 나는 열정적으로 그녀를 맞이하고 오래된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주로 자신이 어떻게 베이징에 가서 법을 실증하고, 어떻게 현지에서 법을 실증했으며, 어떻게 박해를 반대했고, 어떻게 직장과 가족을 대했는지 등 방면에서 수련 상황을 이야기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녀는 현지의 협조인 Z수련생이었다. 나는 흥분되고 그녀를 우러러봤으며 마치 오랫동안 이별했던 가족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흥분은 얼마 가지 못하고 우리는 모순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모순이 그치지 않았다. 나는 최근에야 그 모든 것이 모두 나의 명(名)을 추구하는 마음을 겨냥해 온 것임을 진정으로 인식하게 됐다. 나는 오성이 너무 부족해 4년 동안이나 간격을 초래했고 자신과 Z수련생을 고민에 빠뜨렸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배치에 감사드리는 동시에 Z수련생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첫 번째 모순

2012년, 우리 집에 법공부 소조가 생겼는데 하루는 법공부 도중 Z수련생이 말했다. “법공부는 여기까지 하고 이 시간을 이용해 한 가지 일을 말하겠어요. 다름 아니라 우리는 무슨 일이 있으면 뒤에서 말하지 말고 얼굴을 보고 말하자는 얘기에요. 어떤 수련생은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여기저기에서 좋지 않은 말을 하고 다녀요.”

나는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는 갑자기 내가 뒤에서 자신에 대한 말을 했다고 지목하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면서 얼른 돌이켜보았는데 그런 일이 없는 것 같았다. 그녀가 힌트를 주어 나는 M수련생과 나눴던 대화가 생각났다.

하루는 M수련생이 찾아와서 전화번호를 설치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기대에 차서 “전화로 진상 알리는 항목은 정말 좋아요. 순식간에 1천여 개의 문자를 보낼 수 있잖아요.”(당시 전화 카드 하나당 문자 1천 개를 발송할 수 있었다.) 나도 기분이 좋아서 “정말 그래요. 이 항목은 참 좋은데 Z수련생은 왜 지지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했을 뿐, 그날 대화에서 Z수련생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은 조금도 없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해명해도 그녀는 믿지 않았다. 내가 해명할 때 명을 지키려는 마음이 있었기에 나중에는 말투가 격해지면서 기분 나쁘게 헤어졌다.

이튿날 저녁, 나는 수련생 사이에 간격이 생기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그녀를 찾아가서 그런 일이 없다고 또 해명했다. 그러자 그녀는 변명하지 말라고 쏘아붙였다. 나는 그녀에게 그동안 내가 한 아주머니와 협력했고, Y수련생과도 협력했는데 모두 모순이 있었지만 해명하면 문제가 해결됐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그 아주머니와 협력을 잘하고 Y수련생과 협력을 잘했다는데, 그건 다 그 수련생들이 수련을 잘 했기 때문이에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가 정말 이해할 수 없고 꽉 막힌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밤이 깊었으나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사상은 사건 자체에 빠졌고 속인의 이치에 빠졌으며 시비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나오지 못했다. 나는 ‘전법륜’을 꺼내 들고 책을 보는 것으로 분하고 억울한 마음을 눌러보려고 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머릿속은 여전히 뒤집혀지고 있었다.

갑자기 나는 명백해졌다. 나는 왜 이렇듯 억울해하는가? 자신의 명이 손해를 입었다고 생각해서가 아닌가? 내가 뒤에서 남의 흉을 보는 문제를 그녀가 말했기 때문인데 나의 명과 인격에 대한 모욕으로 생각한 것이 아닌가? 나는 즉시 Z수련생에게 문자를 보냈다. “저는 저의 명이라는 것을 찾았어요.” Z수련생에게서 즉시 답장이 왔다. “동감이에요.” 그 수련생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은 끝나지 않았다. 나의 명을 추구하는 마음은 겹겹이 너무나 강해 억울함을 견디지 못하는 마음, 지적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 지적을 듣고 미워하는 마음, 쟁투심, 자신을 실증하고 자아를 수호하는 마음, 내가 뒤에서 남의 말을 했다고 지적하는 말을 너무 크게 여기는 마음, 질투심 등 마음이 모두 강해 다음과 같은 더욱 많은 모순을 초래했다.

제2차 모순

제2차 모순은 2013년에 발생했다. 당시 기술 수련생은 핸드폰 항목은 돈이 너무 들어서 이 항목은 전개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녀는 나에게 Z수련생을 찾아가 수련생이 지불한 돈에서 조금 꺼내 핸드폰 항목에 쓸 수 없는지 상의해 보라고 했다. 법공부 팀에서 나는 수련생들과 이 일을 토론했는데 모두들 찬성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날 Z수련생이 오지 않았다. 그 중 Y수련생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 왜 Z수련생에게 말하지 않았나요?” 나는 머리만 흔들었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그녀가 핸드폰 항목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먼저 발생했던 모순은 바로 이 말 때문이었으므로 이번에 나는 더는 이 말을 감히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적당한 기회에 그녀에게 말하겠다고 생각했다. 아마 그날 그녀가 법공부 팀에 왔다면 나도 말했을 것이다. 이는 나의 미워하는 마음을 폭로한 것이며, 잠재의식 가운데 그녀에 대한 조그마한 나쁜 말을 하려는 마음과 또 다시 상처를 입을까 두려워하는 자아보호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순은 피해갈 수 없었다. Y수련생이 이 일을 Z수련생에게 말했고 Z는 돈을 보내왔다. 내가 기뻐하고 있는데 생각밖에도 그녀의 화가 돋힌 실제에 맞지 않는 말로 나를 몹시 화나게 했다. 처음에 나는 그녀가 나를 말하는 줄은 모르고 그래도 그녀에게 다른 수련생에게 무슨 선입견이 있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내가 또 Y수련생에게 “그녀가 핸드폰 항목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이 말은 이후에 Y수련생의 실증을 얻었다). 그 때 나는 억울함, 누명, 분노를 느끼면서 말했다. “네, 나는 수련할 줄 몰라요!” 그녀도 밖으로 나가면서 화를 내며 말했다. “나도 수련할 줄 몰라요!” 우리는 또 다시 기분이 잡쳐 헤어졌다.

나는 기술 수련생에게 돈을 주고 자전거를 밀고 문을 나설 때, 자동문의 충격을 감소시키려고 평소 늘 발로 문을 막았는데 이번에는 이 발이 문 모서리에 긁혀 커다란 상처가 생기면서 피가 신발 안에 질퍽했지만 아픈 줄은 몰랐다. 그러나 마음속 고통은 나를 울리고야 말았다. 반평생 살면서 자신을 아주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며 살았다. 학생 시절이든, 교직원으로 있든, 아니면 유치원 원장이든, 어느 직장으로 가든 다수는 칭찬을 받는 사람,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지 나를 이렇게 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당신이 그래도 수련을 한다고? 내가 속인 때도 다 당신처럼 이렇게 대하는 사람은 없었어. 만약 수련이 아니었다면 나는 진작 당신을 멀리 멀리 떠나버리고 말았을 거야!’ 마음이 몹시 쓰렸다! 보는바와 같이 나의 명성 추구는 어려서부터 클 때까지 이제는 엄청 크게 자라난 것으로 누구도 말해서는 안 됐던 것이다. 바로 수련생이 말한 것처럼, 명(名)과 명(命)에서 사실 나는 이미 명(名)을 명(命)보다 더 크게 보았던 것이다.

저녁에 나는 책을 들었지만 사상은 오히려 Z수련생에게 가 있었다. 그녀는 왜 이렇지? 그녀는 왜 이럴 수 있지? 갑자기 왼쪽 귀퉁이에서 정보 하나가 들어왔다. ‘당신은 그녀를 높이 보았습니다.’ 내가 반문했다. ‘제가 왜 그녀를 높이 보았나요? 그녀가 저지른 그렇게 많은 일을 저라면 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회답이 없었다. 나는 심성 방면에 대한 사부님의 법을 베꼈지만 여전히 표면적인 속인의 이치에 머물러 있었고, 모두 그녀의 잘못이고 나는 잘못이 없다고 여겼다

나는 여전히 화가 나서 못 견딜 지경이었다. 한 수련생은 내 공간장 속에 화를 내는 생명이 있었는데 신체를 늘렸다가는 움츠린다고 했다.

이 두 차례 모순의 발생은 똑 같은 한 마디 말 때문이고 똑 같은 관을 넘는 것 같았다. 내가 첫 번째 모순이 부딪힐 때 깨끗이 찾지 못했고 깨끗이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좋지 못한 마음을 해부하지 못했던 것이다. 더욱이 남이 나에 대해 뒤에서 나쁜 말을 했다고 하는데 대해 너무 신경 쓰는, 명을 추구하는 마음에 특별히 주의하지 않았고, 자신이 정말 뒤에서 남의 말을 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더욱 깊이 파보지 않았다. 자신은 속인 때 뒤에서 다른 사람의 말을 하지 않아 그래도 도덕 수양이 있고, 세속적이지 않아 남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여겼으며, 게다가 이 때문에 번거로움을 불러오지 않아 자신을 보호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죄다 명과 자신을 위한 마음이었던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은 당신 그 마음을 수련하는 것으로서, 가장 근본에서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면 여전히 인정할 수 없다 당신은 당신이 표면상에서 잘했다고 말하는데, 당신 내심에 아직도 당신 자신이 발견하지 못한 그렇게 작고도 작은 집착이 있다면 관(關)을 다 넘은 것으로 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장 엄숙한 것이기에 본질에서 진정하게 변화를 가져와야 하기 때문이다.”[1] 그렇다면, Y수련생은 왜 나의 머리를 흔든 표시를 Z수련생이 “핸드폰 항목을 지지하지 않는다”로 표현했을까? 그것은 내가 마음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먼저 번에 생긴 모순 때문에 나는 이미 Z수련생이 무서워 감히 말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구세력은 아주 분명히 보아냈고 Y수련생에게 듣게 했으며 수련생을 이간질하려 했던 것이다.

제3차 모순

제3차 모순은 2014년에 발생했다. 어느 날 점심 때 물건 한 상자를 들고 Z 수련생 집에 막 들어서니 그녀가 또 한 바탕 비난하는 것이었다. “당신이 그곳에 가서 그에게 또 오토바이를 사게 하고, 또 전동차를 사게 하고. 당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또 말했다. “ 어떤 일은 아직 하지도 않았는데 도처에 소문을 냈어요!”

그녀의 이 말은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나는 그와 다투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걸으면서 한 편으로는 화를 억누르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제고할 때가 된 거야! 내가 제고할 때가 된 거야!’ 집에 막 도착하자 마침 12시 발정념이었다. 나는 앉았지만 오히려 Z수련생이 방금 한 말을 생각했다. 눈을 떠 보니 반 시간이 지났다.

이틀 후 법공부를 통해 내 마음은 평화로워졌다. 나는 Z수련생에게 알려주었다. “나에게 L수련생을 찾아가지 말라는 뜻이 아닌가요? 만약 수련생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내가 가지 않아도 돼요.” 왜냐하면 당시 한 가지 항목 때문에 나와 L수련생은 직접 연계를 가졌던 것이다. 나는 또 Z수련생에게 알려 주었다. “나는 L수련생에게 전동차와 오토바이를 사라고 한 적이 없어요.” 나중에 또 말했다. “말하기를 어떤 일은 아직 하기도 전에 도처로 소문을 퍼뜨렸다고 하는데 L더러 프린터 수리를 배우게 한 일을 말하는 게 아닌가요? 사실 P수련생은 L이 아주 총명한 것을 보고 그에게 프린터 수리를 배우게 해도 된다고 말했고, 나도 이 건의가 아주 좋다고 생각해 당신에게 반영했던 겁니다. 당신은 또 P수련생에게서 이 일을 듣게 되니 내가 L에게 알려준 것으로 생각하는 게 아닌가요?”

이번에 Z수련생은 별로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Z수련생의 솔직한 마음을 보았고 그녀가 좀 거북스러워한다고 여겼다. 이 일은 아주 훌륭한 해결을 얻은 것 같았다. 하지만 이는 너무 표면에 제한됐다. 스스로 본질을 깊이 파보지 않았기 때문에 끝내 제4차 모순을 초래했다.

제4차 모순

2015년, 우리가 핸드폰 카드를 산 핸드폰 가게가 사악에게 소란을 당하자 Z수련생이 나를 비난했다. “당신들은 남에게 얼마나 많은 소란을 가져왔나요!” 또 말했다. “당신들은 또 수련생의 신분증을 가지고 카드를 발급받았으니 당신들 이것은 수련생에게 책임지지 않는 것이며, 당신들 이것은 선동입니다! 당신들 하는 일은 그야말로 이중적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의 신분증을 썼다고 말해도 그녀는 화난 김에 듣지 않았다.

이후에 나는 생각했다. ‘어떡하지? 진상을 아는 사람에게 카드를 사거나(팔거나) 해서는 안 되고, 수련생 스스로 가서 카드를 발급해도 안 된다니 그럼 전화로 사람을 구하는 이 항목을 하지 말아야 할까?’ 나는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래서 나는 나가서 진상 전화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그녀와 협력해 농촌에 자료 배포 가는 일을 거절했다.

무슨 원인으로 그녀가 나를 이렇듯 미워하는가? 나에 대한 그녀 질책은 흔히 ‘당신들’이란 칭호를 사용했는데 이는 나로 하여금 그녀가 기술 수련생에게 장시기 동안 이견이 있었다는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그런데 나는 또 늘 기술 수련생과 협력해 일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Z수련생에게 말했다. “오로지 법에만 있다면 저는 누구하고도 다 협력할 수 있으니 일이 있으면 저를 찾으세요. 핸드폰 항목으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기는 아주 좋습니다.”

마음을 후비듯 안으로 찾다

하지만 이렇게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은 너무 속인화, 너무 표면화된 것으로 너무 천박했다. 이 모두는 내 마음을 향해 온 것임을 잊었다. 그러므로 본질상의 것은 전혀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이다. 비록 내가 법리에 따라 자신에게 미워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남이 말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요구했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내려놓을 수 없었다. 나는 사부님께 향을 피워 올리면서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 그런 마음을 내려놓게 해주시기를 바랐다. 나도 법리에 따라 자신을 강박하고 웃으면서 Z수련생에게 말했다. “옳은 것은 당신이고 잘못된 것은 저입니다.” 또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쾌했고 그 물질 덩어리는 계속 존재했다.

‘2015년 뉴욕 법회 설법’이 발표된 후, 나는 자신이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그 배척당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는 Z수련생이 모두를 붙잡고 함께 수련하기를 바랐다. 열심히 하는 수련생은 나와 Z수련생에게 간격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몹시 조급해 하면서 나를 찾아와 상의했고, 이로부터 나는 Z수련생이 다른 사람에게 나를 어떻게 말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더욱 불쾌했다. 사실 이는 바로 내가 명성을 바라는 반영이었고, 그녀의 이것은 나의 명예에 대한 상처이고 그녀야말로 수구하지 않고, 그녀야말로 배후에서 남의 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일의 경과를 말해주었는데, 뜻인즉 도대체 누가 옳고 그른가를 당신이 어서 보라는 뜻이었다. 여기에서 나는 자신의 명성을 위해, 자신을 수호하기 위해, 자신을 실증하기 위해 더는 수구하지 않았고 이 때 말하는 경과란 바로 그녀가 뒤에서 다른 이를 상대로 나쁜 말을 했다는 과정이었다. 비록 한 말은 사실이었지만 나는 이미 분노하는 마음을 첨가했다. 게다가 더욱 중요한 것은 당사자가 없는 곳에서 당사자를 말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나 역시 뒤에서 나쁜 말을 한 것이다. 뒤에서 나쁜 말을 하는 마음이 이렇듯 깊이 숨어 있다는 것을 이때서야 나는 진정으로 찾아냈다.

나는 반복적으로 ‘로스앤젤레스시 법회설법’과 ‘각지 설법10’의 ‘맨해튼 설법’을 통독했다. “당신이 옳든 그르든, 이 문제는 한 수련인에 대해 말한다면 전혀 중요하지 않다. 논쟁하고 논쟁하고 하지 말고,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강조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줄곧 자신이 옳다고 강조하는데, 당신이 옳았고 당신이 잘못이 없다 한들, 또 어떻단 말인가? 법에서 제고했는가? 사람의 마음으로 옳고 그름을 강조하는, 이 자체가 바로 틀린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속인의 이치로 당신 자신을 가늠하고 있고, 다른 사람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이 볼 때 세간에서 한 수련인의 옳고 그름은 전혀 중요하지 않고, 사람 마음의 집착을 제거하는 것이 오히려 중요하며, 수련 중에서 당신이 어떻게 사람 마음의 집착을 제거하는가가 비로소 중요한 것이다. (박수) 아무리 큰 억울함에 직면해도 모두 아주 태연하게 대할 수 있고, 모두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수 있으며, 모두 자신을 위해 구실을 찾지 않는다면, 많은 일에서 당신은 논쟁할 필요조차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수련하는 이 길에는 어떠한 우연한 일도 없기 때문인데, 아마 서로 이야기하는 중에 당신을 건드리고 당신과 이해관계가 있는 모순을 발생시키는 이런 요소는 바로 사부가 마련해준 것일 것이다. 아마 그가 말한 그 한 마디가 당신에게는 매우 자극적이고, 당신의 아픈 곳을 건드렸기에, 당신은 자극을 받았다고 느낀다. 아마 당신은 정말로 억울하겠지만, 그러나 그 한 마디 말은 꼭 그가 말한 것이 아닐 수도 있으며, 아마 내가 말한 것일 수도 있다.”[2]

나는 이 단락 법을 반복적으로 외웠다. 어느 날 점심에 법을 읽는데 졸음이 와서 그 자리에 누워 잠시 눈을 붙였다가 깨어났더니 마음이 유달리 밝았고 감격의 정이 저절로 솟아나왔다. ‘고마워요, 수련생! 고마워요 수련생!’ 아울러 나의 모든 불쾌함은 모두 명에서 왔음을 홀연히 깨닫게 됐다. 그녀가 나를 너무 깨끗하다고 한 말을 포함해, 내가 법 공부하러 온 수련생에게 침대 시트와 수건(당시 우리는 침대에서 법공부를 했다)을 펴준 것은 나 자신이 더러워질까 봐서였고, 나의 잠재의식 가운데는 그녀에게 자신을 과시해 마치 지도자의 인정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그녀 인정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는 등등을 포함해 모두 명성을 위한 것이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이 자신의 잘못을 의식하지 못하는 그것은 안 된다. 당신이 자신에게 아주 강한 사람의 집착이 있음을 의식하지 못하는 그것은 안 된다.”[3]

4년이나 걸린 간격은 이미 완전히 사라졌다. 자신은 예전에 그야말로 바보처럼 표면적인 옳고 그름에 빠져 솟아나오지 못했던 것이다. 실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었고, 마땅히 옳고 그름에서 뛰쳐나와 이 모순 가운데서 모두 어떤 마음을 움직였는지 보아야 했던 것이다. 모순의 시작부터 결말까지의 일언일행, 일사일념, 하나의 말투, 하나의 눈길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마음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마음이 괴로움을 겪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하게 층차를 제고하는 관건이다.”[4] 이것이 바로 내가 막 책장을 넘기자 내 눈에 확으로 들어와 나를 감동시킨 내 마음속 말이다.

바로 내가 이 문장을 쓰면서 당시 베껴 두었던 심성 제고 방면의 법을 찾아보았을 때, 사부님 말씀, “당신은 당신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5]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홀연히 수많은 내포를 알게 됐다. 내가 자신을 찾아보지 않고 밖으로 본다면 수련은 누가 하는 것일까? 원만한 사람은 누구일까? 자신을 위해 존재한단 말인가? 우리는 마땅히 모순을 소중히 여겨야 하고 제고하는 매 한 번의 기회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수련인의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고, 자신의 제고야말로 가장 가장 중요한 것이다.

바로 이때 Z수련생이 나에게 말했다. “저는 우리 사이에 이제는 간격이 없다고 생각해요.” 나는 무척 다시 한 번 듣고 싶었고, 또한 다시 한 번 더 똑똑히 듣고 싶어서 거듭 그녀에게 무슨 말을 했냐고 물었고 그녀도 분명하게 또 한 번 말했다. “저는 우리 사이에 이제는 간격이 없다고 생각해요.” 나는 웃었다.

M수련생과 Y수련생은 이 문장을 본 후 나는 본문은 우리 팀의 매 개인에게 연관되고 어쩌면 우리 모두 수련할 것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아마 당신들 두 사람이 Z수련생에게 말하지 않았다면 모순의 발생이 없었을 것이고, 나도 나의 이 명성을 추구하는 마음을 찾아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여기까지 말한 김에 나는 원래 두 분에게 감사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마 당신들 두 사람이 Z수련생에게 말하지 않았다면 모순의 발생이 없었을 겁니다”란 이 말을 할 때 내 마음 속에서 한 오리 원망심이 나왔다.

Z수련생은 본문을 본 후 나에게 물었다. “이 글을 발표할 수 있어요?” 나는 생각했다. 내가 아직도 사람 마음을 찾지 못한 것이 아닌가? 모순이 발생한 후 나는 생각한 적이 있다. 그녀는 왜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을까? 그녀는 안으로 찾아보았을까? 그녀가 체면을 차리고 명성을 추구하는 게 아닌가? 사실 이때 나는 이미 수련인의 사람 마음 부딪힘을 속인의 모순으로 여겼고, 나는 수련인의 심성 제고의 계기를 나쁜 일로 여겼으며, 반대로 자신은 남을 수련시켰던 것이다. 나는 또 명성을 추구하고 듣기 좋은 말을 듣기 좋아하고, 억울하지 않아야 하며, 남을 말하지 못하게 하고, 미워하는 마음, 쟁투심 이런 것이 있었는데 모두 정에서 온 것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다 옳지 않고 다 나쁘다고 하며 자신은 다 옳고 다 좋다고 하면 그건 질투심에서 온 것이 아닌가?

나는 갑자기 내 잠재의식 가운데는 아직도 그녀에 대한 나쁜 말을 하려는 고만한 마음이 있고, 아직도 자신을 과시하려는 명성을 추구하는 고만한 마음이 있으며, 아직도 ‘모두들 봐요, 그녀가 결국 어떻게 나쁘고 나는 어떻게 좋은가를 봐요’라고 하는 마음이 있음을 발견했다. 잠재의식 속에 교류라는 기회를 통해 남을 대상으로 나쁜 말을 해서 남의 명성을 망가뜨리고 자신을 과시하려는 것이 조금은 있었던 것이다. 이건 더욱 교활하고 더욱 나쁜 마음이 아닌가?! 비록 이 마음이 아주 미묘하더라도 말이다.

자신은 왜 Z수련생에게 이 교류 문장을 보여줄 때 마음속에 겁이 좀 있었는지를 단숨에 알게 됐다. 기왕 수련 중의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다고 한 이상, 내가 남의 옳고 그름을 말해서 무슨 의의가 있는가? 그럼 이 마음의 존재가 아직도 의의가 있는가?

그날 밤중의 발정념 때 나는 다리가 몹시 아팠다. 20분 후, 다리 아픈 곳에서 ‘팍’ 하는 소리가 나더니 업력이 사라지고 다리가 아프지 않았으며, 순간 뜨거운 기류가 온 몸에 흘렀다. 입안에 침이 가득 찬 것 같아 뱉어 보았더니 검은 피였다. 사부님께서 자비하시어 나에게 더욱 철저히 안으로 찾아보게 하셨고 나의 신체를 더욱 순정하게 청리해 주셨다.

그 후 다시 Z수련생을 보아도 원망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저 아주 심한 가책과 미안함을 느꼈을 뿐이다! 속으로는 법을 실증하는 일을 더 많이 분담해서 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이 때에는 더는 그녀의 그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법을 실증하는 기초에 서서, 수련인은 어떻게 법속에서 자신을 바로 잡고, 안으로 찾으며, 구세력의 교란을 타파하고 정체에 협력할 것인가를 말하게 됐다. 수련인 사이의 불쾌함은 버려야 할 마음이 나온 것이라고 나는 여긴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북미 제1차 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 설법10-맨해튼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15년 뉴욕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5] 리훙쯔 사부님 저작: ‘창춘 보도원법회 설법’

문장발표: 2016년 2월 2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2/24/32453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