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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과 함께 있었던 아름다운 시간을 회상하다

글/ 치치하얼 대법제자

사부님께서 치치하얼에서 법을 전하시다

1993년 7월 사부님께서는 치치하얼에 오셔서 법을 전하셨는데 치치하얼시(齊齊哈爾市) 전력문화 궁에서 기공 강의를 하셨다.

사부님께서는 키가 크고 우람하셨으며 대범하셨다. 하얀 와이셔츠에 남색 바지를 입으셨는데, 상냥하고 친절하셨으며, 법리를 알아듣기 쉽게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는 강의하시고 공을 가르치실 때마다 직접 현장에서 개개인의 동작을 바로잡아주셨고, 지위나 신분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똑같이 대하셨으며, 귀찮아하시지 않고 진지하고 온화하셨으며 귀찮은 티를 내지 않으셨다. 강의가 끝날 때마다 우리에게 심득 체험을 쓰라고 하셨다. 사부님께서는 그때 51 여관에(지금의 중앙부 휴대전화 매장 위치) 투숙하셨으며, 매일 룽사(龍沙) 공원에서 산책하시고 연공을 가르치셨다.

나는 몸이 좋지 않아 다른 기공을 연마했었다. 유전성 관상동맥 경화증과 생리통을 앓아 중의와 양의를 다 찾아보았으나, 효과가 없었고 치료할 방법이 없었다. 어머니와 언니 그리고 나는 운 좋게 사부님께서 직접 법을 전하신 학습반에 참가했다. 언니는 머리에 병이 있어 줄곧 잤지만, 강의 내용을 다 알았으며 어머니와 내 병도 다 나았다. 나는 이전에 성격이 괴팍하고 우울했으나, 지금은 명랑하고 낙관적이며 매일 인생의 참뜻을 찾는 행복감에 젖어 있다.

사부님께서는 떠날 즈음에 직접 치치하얼 지역에 연공장을 세워주시고 보도원을 뽑아주셨다. 전력문화 궁 홀 입구에 책상 하나를 놓고, 각 지역에서 연공할 생각이 있는 사람은 이름을 쓰고 녹음기를 가져가도록 하셨기에 자연스럽게 연공장이 형성됐으며 자연스럽게 보도원이 나왔다.

마지막 강의 시간이 끝나 사부님께서 떠나시게 되자 나는 사부님과 헤어지기 아쉬워 소리 없이 줄곧 눈물을 흘렸다. 나는 참지 못하고 심득체험을 썼다. ‘사부님의 설법을 들은 후 사부님께서 세상에서 가장 친근한 사람 같았으며, 법리는 가장 바르고 적극적으로 향상함을 느꼈습니다. 사부님께서 또 오실 수 있습니까?’ 사부님께서는 설법을 마치고 강단에서 내려오시면서 수련생에게 배웅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자연스럽게 떠나셨는데 위대하고 평범하셨다.

사부님께서 하얼빈에서 법을 전하시다

1993년 8월 사부님께서 하얼빈(哈爾濱) 운동장에서 법을 전하실 때는 하얀 와이셔츠에 남색 양복을 입으셨으며, 흰 무늬가 있는 남색 넥타이를 매셨다. 그동안 사부님께서 늘 옆에 계시는 것 같았다. 한번은 숙소에서 수도꼭지가 열린 것을 보고는 속으로, 수련인은 무위를 말하는 데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관여하지 않았는데, 당일 저녁에 사부님께서 설법하실 때 어떤 수련생은 수도꼭지가 열렸어도 닫지 않고 관여하지 않는데 그것은 심성 문제라고 짚어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 광저우에서 법을 전하시다

1994년 12월 말, 임신 5개월이었던 나는 기차 일반석에 앉아 며칠이 걸려서야 오전 9시경 광저우(廣州)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리자 모르는 현지 수련생이 ‘파룬궁’이라는 팻말을 들고 역에 마중 나와 사람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봉사했다. 지역별로 여관을 찾아주며 다른 사람을 위하는 대법 수련자의 경지에 깊이 감동했다. 좋은 여관은 비쌌기 때문에 현지 수련생들은 휴가 기간 비어있는, 하루 저녁에 8위안(약 1,500원)인 중의 대학 기숙사를 물색해 두었다.

사람들은 모두 운동장에 가서 표를 받았다. 나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줄을 섰는데, 임신한 몸으로 길에서 덜컥거리며 왔는데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 차례가 됐을 때 좌석표가 없어 우리는 입석표를 받았고 일부 사람들은 표 없이 그냥 들어갔으며, 공안 강당에서 유선텔레비전을 보았다. 사부님께서 앞으로는 학습반을 열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에, 당시 광저우 기공협회는 현지 교통에 불편을 줄까 봐, 사회에 대해 책임지기 위해, 표를 다 판 다음 사부님께 알려드렸다. 사부님께서 오셨을 때 강당에는 오천 명이 다 들어갈 수 없었다.

사부님께서 강당에 들어서시면 마음이 분발됐고, 사부님께서 설법하시면 온 강당이 즉시 조용해졌으며 기침 소리 한 번 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불광이 널리 비치니, 예의가 원만하고도 밝도다(佛光普照, 禮義圓明).”[1]인 것이다. 입석표를 가진 사람들은 사부님과 제일 가까운 맨 첫 줄에 앉았다. 언니의 8살 딸은 뇌염에 걸려 뇌를 쓸 수 없었다. 언니는 아이를 데리고 와 내 옆에 앉았다. 나는 아이가 노는 데만 열중하여 자꾸 뭔가를 만지작거리기에 아이를 제지하면서 잘 들으라고 했다. 사부님께서는 보시더니 아주 친절하게 “아이는 원래 노는 것을 좋아하니 관여하지 말라. 그 아이는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들어야 할 것을 다 듣는다. 어른보다 더 많이 들을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열흘간의 학습반에서 아이의 뇌염이 다 나았으며 뿌리까지 썩은 충치 두 개도 좋은 이로 변했다. 지금까지도 이 아이는 사회에서 일할 때 머리가 비상하며, 속인 사회의 염색 항아리 속에서도 법으로 자신을 단속하여 품행이 우수하다.

그때 나는 임신한 데다 경제적으로도 쪼들렸기에 남편이 내가 광저우에 가는 것에 동의하지 않아, 어머니는 우리에게 볶은 유채와 케이크, 비스킷, 라면 등 왕복 7일 동안의 음식을 준비해주었다. 사부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신 것 같았다. “헤이룽장(黑龍江)과 신장(新疆) 8,000km의 먼 길을 라면과 과자를 지니고 왔는데 아주 쉽지 않다. 여러분은 다 이 법을 얻기 위해서 왔으니 소중히 여기기 바란다.” 나는 설법을 듣는 동안 몸이 가벼웠으며, 태아는 기뻐서 뒤척이며 줄곧 움직이다가 학습반이 끝난 후에는 움직이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광저우에서 법을 전하시는 동안 광저우 상공에는 파룬과 오색구름이 나타났는데 속인들도 다 보았다. 무수한 작은 파룬이 큰 원을 이루어 회전하면서 돌았다. 사람들은 격동되어 서로 알려주었으며, 모두 중의 대학의 숙소 옥상으로 올라갔다. 속인도 가리키면서 흥분을 금치 못했다. 사람들은 모두 사진기로 파룬을 찍었으며 나도 찍었다. (집에 돌아간 후 사진을 현상하여 각 지역에 우편으로 부쳤다.) 이튿날 수련생이 파룬을 본 일을 쪽지에 적어 사부님께 여쭈었다. 사부님께서는 대략 “기공사는 모두 장을 배치하지 않는가?”라고 말씀하셨다.

학습반이 끝난 당일 광저우 운동장에서 광저우 기공협회 회장이 회의를 주재했다. 이렇게 좋은 공법 파룬따파는 내국인이 얻어야 할 뿐만 아니라 국외 사람도 얻어야 합니다. 이번 학습반이 끝나면 리 대사님께서는 국외에 법을 전하러 가셔서 파룬따파의 씨앗을 세계에 널리 뿌릴 것입니다. 리 대사님께서 국외에서 법을 다 전하시고 국내 사람들이 오래 기다리지 않도록 빨리 돌아오시기를 기대하고 있을 겁니다. 수련생들은 기공협회 회장이 사부님을 언급할 때마다 박수를 쳤다. 사부님께서는 책상에서 1m 떨어진 곳에 서서 미소를 짓고 계셨다.

어떤 사람이 쪽지를 썼다. 선생님께서 현장 중간에 서 계시기에 우리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사부님을 뵐 수 있도록 사부님께서 현장을 한 바퀴 도시길 갈망합니다. 사부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뒤쪽에 앉은 사람들이 첫 줄 난간에 몰려와 손을 내밀어 사부님과 악수했다. 또 어떤 사람이 사부님을 또 뵈었으면 좋겠다고 하자, 사부님께서는 관리자에게 사람들이 한곳에 너무 많이 몰리지 않도록 하라고 하셨다. 사부님을 마주 보던 사람들은 떠나면서 아쉬워하며 눈물을 흘렸다.

사람들이 사부님께 생화와 금박을 붙인 기를 드렸으며, 사부님께서는 책상에 앉아 대연화수인을 하시고는 관심을 가지시고 격려의 말씀을 하셨다. 사람들은 떠나시는 사부님을 눈물을 머금고 눈으로 배웅해드렸다.

광저우에서 되돌아올 때는 올 때보다 표 끊기가 어려웠다. 아이 한 명에 어른 셋, 다른 사람이 객실을 통째로 산 곳에 여유가 있어 우리에게 줄 수 있다고 해서 시간을 정하고 표를 가지러 가기로 했다. 우리가 소문을 듣고 2시간 전에 표를 가지러 가는 도중에 그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빨리 나가기로 했기 때문에 우리가 사전에 오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표를 넘기려던 사람을 만나지 못 할 뻔했다. 제자는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제자를 보호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평온하고 안정된 장 속에서 마음이 평온하고 비어 있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신의 상태에 처해 있었는데, 기차가 광저우를 멀리 떠나 하루가 지난 후에야 상태와 사상이 차츰 사람 속으로 돌아왔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

문장 발표: 2016년 2월 26일
문장 분류: 수련마당>신수련생마당>온고명금(溫故明今)>사부님의 은혜
원문 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2/26/32457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