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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달리면서 자신을 수련할 것인가’에 대한 체득

글/ 허베이 대법제자

[밍후이왕] 정법은 이미 최후에 접어들었고 우리 수련의 기연도 곧 종결될 것이다. 많은 수련생 모두 수련 중의 유감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고 달리기를 할 필요가 있다. 아래에 나는 ‘어떻게 달리면서 자신을 수련했는가’에 대한 체득과 인식을 소개하려 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예를 들었던 것이 기억난다. 즉 용광로 쇳물에 만약 나무 조각, 나무 부스러기가 떨어져 들어가면 순식간에 당신은 그것의 그림자도 볼 수 없다. 사람은 그 나무 부스러기와 같고 이 우주 대법은 그 용광로의 쇳물과 같다. 사람이 용해되는데, 만약 한 사람을 용해하려 한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쉬운 것이다.” [1] 사부님의 이 단락 법을 보았을 때 나는 내포 하나를 깨달았는데, 이렇게 큰 대법이 한 사람을 원만시키기는 아주 쉬운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수련하는 것은 우주의 근본 대법이고, 모든 생명은 모두 이 대법이 창조한 것이다. 이렇게 큰 법에서 수련하기에 우리를 재빨리 제고하게 할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닦는 것은 주의식이고, 수련의 빠르고 늦음, 잘하고 못함은 정말로 우리에게 달려있다. 자신을 어떻게 수련하는가 하는 이 문제에서 오직 우리가 착실하게 법에 동화하기만 하면 틀림없이 공성원만할 수 있을 것이다.

1. 성심성의껏 진수해야

자신을 쾌속 제고하려면, ‘성’(誠)자에 공력을 들여야 함을 나는 깨달았다. 성심성의껏 잘 수련하는 걸 생각하고, 성심성의껏 정진에 힘쓰며, 성심성의껏 중생이 구원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는 자신의 수련의 길에서 성실한 마음으로 임했기에 늘 사부님께서 밀어주시어 가게 했으며, 나에게 제고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제공해주셨다.

우리가 생생세세에 고생하고 괴로움을 당한 것은 바로 이 법을 얻기 위해서였고, 금생에 행운으로 법을 얻었기에 온 심신을 다해 세 가지 일을 잘해야 하는데, 우리로 말하면 금생에는 오직 ‘공성원만하여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우리의 목표다.

수련은 정보 출처나 정보를 교류하는 좋은 통로가 필요하고 정법의 진행 과정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수련생의 교류 문장을 볼 필요가 있고 일에 부딪히면 수련생들과 교류해 토론할 필요가 있고 경제적으로 필요한 부분도 있다. 어떤 수련생은 집을 사고, 가구, 생활 용품을 사는 데는 돈을 듬뿍 사용하지만, 수련에서 필요한 인터넷, 컴퓨터, 법학습에 써야 할 핸드폰, 방송기, 사람을 구하는 프린터 등을 사야 할 땐 오히려 아까워한다. 우리는 역사상 오늘 이 법을 얻기 위해 무수한 고생을 했고 또 어쩌면 목숨을 한 번만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수련하여 집으로 돌아갈 최후의 시각에 오히려 조그마한 이익 때문에 자신에게 영향준다면 이 역시 성실하지 못한 표현이다.

2. 일마다 법으로 대조하고 법에서 깨닫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대법은 또 시간ㆍ공간ㆍ수많은 종류의 생명 및 만사만물(萬事萬物)을 만들었으며 포괄하지 않는 것이 없고 빠뜨리는 것이 없다.”[2] 나는 깨달았다. 대법은 포괄하지 않는 것이 없다. 우리가 어떤 일을 만났던지 막론하고 이 법은 모두 이곳에서 사람의 사유 방식을 형성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만약 이 사람의 사유방식으로 수련 중의 일을 사고한다면 틀림없이 틀린 생각일 것이다. 수련인으로서 우리는 사람의 사유방식, 모든 문제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고, 해답과 처리 방안은 모두 법에서 답안을 찾아야 하며, 일마다 법으로 대조하고, 일마다 법에서 깨우쳐야 하며, 될수록 매 한 가지마다 세부적으로 틀어잡고 자신을 닦아야 한다.

예를 들어, 속인은 자녀의 미래 행복을 위해 많은 과외를 받도록 해 주고, 크고 작은 많은 규칙을 세워 아들은 용이 되고 딸은 봉황이 되길 바란다. 그러나 우리가 법에서 깨달은 것은 이렇지 않다. 사람의 일생은 모두 안배된 것으로 우리는 다만 속인 상태에 부합되게 좋은 아버지, 좋은 어머니가 될 수 있을 뿐이다. 아이에 대한 우리의 과분한 집착은 아이의 운명을 조금도 개변시키지 못하고, 아이에 대한 과분한 단속은 우리의 업력을 짓게 할 뿐이다.

매 일념, 매 언행을 단단히 틀어잡고 자신을 수련해야 한다. 우리의 수련이 잘 되고 못 되고는 우리가 법에 얼마나 동화됐는가와 관계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이 매 일념마저 모두 느슨하지 않고, 자신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간주한다면 당신은 바로 수련 속에 있는 것이다.”[3] 나는 깨달았다. 매 일념, 매 언행마다 모두 틀어잡고 자신을 닦아야 한다. 많은 수련생은 다만 큰일에서만 법을 생각하기에 며칠에 한 번만 겨우 제고할 기회를 갖게 된다. 만약 우리가 매 일념, 매 언행마다 모두 법으로 대조하고 모두 법의 요구대로 한다면 날마다 여러 번 제고할 기회가 있는 것이다.

3. 일마다 자신을 찾아보고 모순에 부딪히면 자신을 찾아야

수련이란 바로 집착심을 버리는 과정으로, 수련의 빠르고 늦음은 당신의 참다운 과정과 관계있으며, 당신이 집착을 찾는 속도와 관계있다. 사부님께서는 모순의 방식으로 우리의 집착, 정, 마성 등 사람의 물질 혹은 법에 동화되지 못한 부분의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데 우리는 될수록 세심하게 자신의 문제를 찾아야 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클 때까지 일하는 속도가 내내 느려서 근무시간에는 죽기 살기로 남을 따라가야만 겨우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다. 하루는 갑자기 자신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나는 왜 이렇게 느린가. 신체 속의 무슨 사람의 요소가 나를 이렇게 느리게 하는가?” 열심히 자신을 찾을 때 사부님께서는 나를 느리게 하는 그 물질을 인식하게 하셨는데, 매 번 배척하니까 사부님께서 그 물질을 떼어주셨다.

길을 걸을 때도 제대로 신호등을 보지 않아 아내가 여러 번 그런 나를 책망했다.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왜 신호등을 보지 못하는가?” 내 안으로 찾을 때 사부님께서는 내 두뇌 위쪽과 측면에 담장 같은 물질이 정렬하여 세워져 있어 나의 감지를 막고 있는것을 보게 하셨다. 이런 물질은 어떤 것은 생생세세에 형성된 것이었고 어떤 것은 구세력이나 다른 공간의 신이 일부러 설치한 것이었다.

친척에게 진상을 알릴 때면 언제나 높게 말해 친척이 늘 이해하지 못했다. 한 번은 나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왜 높게 말하는가, 무슨 물질이 나를 높게 말하게 하는가?” 자신을 찾아보다 집착하는 커다란 물질을 발견했는데 그것이 나를 높이 세워 남을 돌보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법공부할 때 사부님 말씀을 보았다. “어려울 것이 뭐가 있는가? 생각해보라, 여전히 자기 수련의 기연에 대해 중시하지 못하고, 법에 대해 중시하지 못하며, 자신의 생명에 대해 중시하지 못한다.”[4] 나는 정진하지 못하는 많은 상태가 바로 자신이 중시하지 못한 것임을 발견하게 됐다. ‘중시하지 못했다’는 확실히 나의 심성방면에 원인이 있었다. 하지만 정진하지 못하는 이런 상태에는 또 신체상의 원인도 있는 게 아닐까? 자신을 찾을 때, 신체 안에 소극적이고 산만한 집착하는 물질이 있어 그것들이 자신을 지배하여 자신을 정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발견했다.

4. 과거를 내려놓고 최후에 이를수록 더욱 정진실수해야

우리가 어떻게 후회해도 잃어버린 그런 시간과 기회는 모두 돌아오지 못하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오늘과 미래를 후회하지 않게 하는 것일 뿐이다. 정법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조사정법의 임무는 아직도 아주 중하며, 대량의 중생이 모두 우리에게 구도받기를 갈망하고 있고, 수많은 기회를 우리가 가서 빼앗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부터 시작해 우리의 생명이 참으로 정법을 위해 존재하게 하자. 수련의 최후 기연 속에서 분초마다 모두 후회가 없도록 하자!

개인의 깨달음이니 층차의 제한으로 부족한 곳은 수련생들께서 바로 잡아 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뉴질랜드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논어’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스위스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 ‘2005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문장발표: 2016년 2월 1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2/18/32428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