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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을 수련하여 고해에서 벗어나고 지혜를 얻어 세인을 구도하다

글/ 헤이룽장(黑龍江)성 노년대법제자 서술, 수련생 정리

[밍후이왕] 2011년 가을 손자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팽이를 갖고 놀았다는데, 팽이 철판 위에 14송이 우담바라 꽃이 피어 있는 걸 보고 놀랐다. 그중 핀 지 3년 된 한 송이 우담바라는 방금 핀 것처럼 선명했다.

올해 70여 세인 나는 산둥(山東)성의 한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났다. 2살 때부터 고난이 시작되었는데 1996년 8월에 파룬따파를 며칠간 수련하자 온몸의 질병이 사라졌다. 사부님께서 줄곧 우리를 돌봐주시는데, 사람의 언어로는 사부님께 대한 감사를 표현하기 어렵다!

1. 2살부터 고난의 시작

내가 2살 때 사당은 우리 고향에서 ‘토지개혁운동’을 한다면서 사당이 엄마와 아빠를 감금해 나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나는 매일 길거리를 떠돌아다니며 먹을 것도 없고 마실 것도 없었다. 이웃도 우리와 연루될까 봐 감히 나를 받아주지 못했다. 매일 저녁 마음씨 착한 할머니가 나를 옷으로 감싸서 집에 데려가(민병이 볼까 봐 두려워했다) 전병을 먹였다. 먹인 후 나를 또 거리에 풀어 놓았다. 2개월 후 비록 엄마, 아빠가 석방되어 집에서 생활할 수 있었지만, 나는 그때 이미 위가 나빠져 배가 더부룩했고 머리도 아팠다. 부모님은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얼마 살지 못할 거라고 했다.

1956년 초등학교에 들어갔고 58년 사당은 ‘대약진운동’을 시작했다. 그리하여 학교는 휴교하고 강철을 만들었다. 당시 상황은 ‘9평 공산당’ 책에 쓴 것과 똑같다. 14살부터 나는 농장에서 일했고 15살부터 트랙터를 몰고 밭을 갈았다(나는 여자다). 나는 고생을 마다치 않고 매일 밭에서 16~17시간 일했고, 집에 돌아간 후에도 의무적으로 2~3시간 노동해야 했다. 이처럼 비인간적인 조건에서 일하다 보니 몇 년 후 대부분 갖가지 질병을 앓게 되었는데 나도 마찬가지였다.

79년 도시로 돌아간 후 나는 이미 갖가지 질병에 시달렸고 후에 매일 안정제를 먹어야만 2시간가량 잘 수 있었다. 그 후 신경관능증, 신경쇠약, 위궤양, 위하수, 풍습병, 뇌신경통, 병독성 심근경색 등 질병에 시달렸다. 마지막에 심하게 앓았던 해에는 25일간만 집에 있었고 나머지 시간은 병원에서 보냈다. 특히 병독성 심근경색에 엄청나게 시달려 남편은 저녁마다 잠잘 때 밤중에 내가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할 정도였다.

나도 고통스러웠지만, 가정에도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나는 ‘이 고통이 언제 끝날 것인가? 나는 왜 빨리 죽지 않는가? 해탈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2. 대법은 나를 고난에서 벗어나게 함

1996년 8월 나는 파룬따파를 얻어 기뻤다. 연공한 지 며칠 만에 온몸의 질병이 모두 사라졌다. 진정으로 병이 없는 가벼운 상태를 체험했다. 나는 처음에는 제대로 알지 못해서 ‘전법륜’을 몇 개월 만에 다 읽었다. 글자도 모르고 책에서 말한 의미도 몰랐지만, 나는 곳곳에 가서 묻고 수련생을 만나도 묻고 하면서 반년 후에는 스스로 ‘전법륜’을 읽을 수 있었다.

1996년 10월 12일 당시 퇴직하고 단위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었다. 점심때 동료를 위해 뜨거운 물을 떠다가 조심하지 않아 넘어져 왼쪽 팔에 뜨거운 물을 쏟았다. 팔은 즉시 붉게 부어올랐고 손등 피부도 하얗게 변했다. 동료들이 “이 상처는 병원에서 치료한다 해도 2개월 만에 나으면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단위 지도자는 돈을 주며 병원에 가라고 했다. 나는 자신을 수련인으로 보고 병원에 가지 않았고 돈도 거절한 뒤 집에 돌아가니 남편이 또, 병원에 가라고 했다. 나는 가지 않고 대법책을 보고 법공부를 했는데 마음속에 일념이 있었다. “나는 대법제자다. 사부님께서 나를 관여하고 계시니 괜찮다.”

나는 초등학교를 1년밖에 다니지 못했다. 글자를 몰라 남편과 아들에게 ‘전법륜’을 읽어 달라고 하면서 “1시간 후 변화가 없으면 병원에 가고, 만약 좋아지면 병원에 가지 않을 것이다”(왜냐하면, 내가 먼저 집에 돌아온 후 그들이 오기 1시간 전부터 벌써 손가락부터 피부가 변하는 것을 보았고 정상적인 색깔로 변하는 것을 보았으므로 나는 그렇게 말했다.)

이틀 후 출근했더니 동료들이 나에게 “파룬궁은 정말로 신기하다. 우리도 배워야겠다.”고 하며 당시 어떤 사람은 대법 책을 청했다.

수련하고부터 나는 인생의 고난에서 벗어나 참신한 수련의 인생이 시작됐다. 사부님께 대한 감사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3. 아들은 자랑스럽게 “엄마는 켬퓨터와 휴대전화 못 하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1999년 7월 20일 이후 사악이 대법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수련생들은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는 각종 방법을 생각해 냈고, 나도 수련생과 같이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는 길을 걷게 됐다.

후에 협조인이 나에게 진상 자료를 만들라고 했을 때 나는 사람 마음이 올라왔다. 원망심과 질투심이 나왔는데, “나는 초등학교 수준이고, 집에 자리도 없고, 그렇게 많은 수련생이 지식수준이 높고 집도 넓은데 왜 다른 사람에게 하라고 하지 않는가?” 협조인 수련생은 나를 안심시키며 조급해하지 말고 조금씩 하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는 나와 함께 먼저 통지와 진상자료를 인쇄하자고 했다.

그렇게 2009년 우리 둘은 2대의 노트북을 구매했고 수련생이 준 낡은 프린터기로, 사부님의 가지로 한 송이 꽃을 피우게 됐다.

문화 수준이 낮아 병음도 할 줄 모르며 컴퓨터는 더 모르고 인터넷을 어떻게 접속하고 다운하는지 전혀 몰랐다. 수련생은 나를 도와 인터넷 접속, 다운, 인쇄하는 방법을 가르쳐 줬고 어려움이 있으면 수련생을 찾아 도움을 요청하면 수련생이 와서 해결해 주었는데, 직접 나에게 가르쳐 주고 나도 조금씩 진지하게 배워나갔다. 수련생은 순서를 종이에 적어주고 나는 조금씩 기억하고 외우고 연습했다. 마지막에 마침내 각종 합격한 자료를 만들었고 우리 지역의 수요를 충족시켰다.

자료를 만드는 과정도 심성을 수련하는 과정이다. 나는 성격이 급해서 일할 때 조바심을 냈다. 자료를 만드는 과정에서 합격한 자료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인내해야 했고, 진지하게 해야 했는데, 그러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조바심이 사라졌다. 때로 기계가 고장 나면 자신의 심성 방면에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때로 어떤 심성 문제로 인한 것인지 잘 모른다. 때로 어떤 마음인지는 알지만 잠시 제거할 수 없는데 이런 때가 가장 고통스럽다. 이때 수련생이 우리 집에 찾아와서 나를 도와 심성을 제고한다. 심성을 조금 제고하면 표면적으로 수련생이 기계를 수리했다. 만약 심성을 제고하지 못하면 수련생도 기계를 수리하지 못하는데, 이렇게 사람 마음을 닦게 독촉해 준다.

나는 대법에서 지혜가 열려 지식수준이 낮은 노인이 각종 진상 자료를 마음대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아들조차 신기하다고 말한다. 예전에 글자도 모르던 노인이 컴퓨터를 아들보다 익숙하게 사용하자 아들은 친척 모임에서 자랑스럽게 말한다. “우리 엄마는 대단해요. 컴퓨터, 휴대전화 못 하는 게 없어요. 저보다 나아요!”

사부님께서는 줄곧 우리 주변에 계시고 우리를 가호해 주시고 점화해 주시고 격려해 주신다. 사람의 언어로는 사부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할 수 없다. 단지 정진하여 세 가지 일을 잘해야 비로소 사부님의 자비하신 구도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문장발표: 2016년 2월 1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진상을 알려 세인을 구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2/18/32417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