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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은 명심하고 원만은 잊어야 한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불가에서는 세상에 온 사람들은 모두 사명감을 가지고 온다고 한다. 인간 세상에 다시 태어난 것은 어쩌면 아름다운 글을 남기기 위해 황무지를 개척하거나 군주를 보좌하거나 아니면 일종 기능을 전수하고 계승할 수 있다. 아쉽게도 많은 사람은 모두 세상에 깊이 미혹되어 공명과 관록을 이상으로 삼고 원래의 소원을 잊어버린다. 물론 명백한 사람은 자신의 오랜 소원을 명심하고 어릴 때부터 뜻을 세우고 일생토록 세상 사람들을 구도하기 위해 노력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범중엄(范仲淹)은 어릴 때 우연히 한 점쟁이를 만났는데 그에게 “당신은 나를 보세요. 이후에 재상이 될 수 있을까요?”라고 묻자 점쟁이는 “나이가 어린데 너의 말투는 너무 거만하구나!”라고 말했다. 범중엄은 좀 쑥스러워 “그럼 나를 좀 봐 주세요. 내가 의사가 될 수 있을까요?”라고 또 물었다. 점쟁이는 이 아이의 포부가 너무 궁금해서 “하나는 대부대귀(大富大贵)한 재상이 되는 것이고 하나는 비천하게 고생하는 의사가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범중엄은 “오직 훌륭한 재상이거나 의사만이 사람을 구할 수 있습니다. 만약 재상이 되면 천하의 사람들을 구할 수 있지만, 만약 재상이 되지 못하고 의사가 된다면 몇 명을 구할 수 있으면 몇 명만 구하겠지요.”라고 대답했다. 점쟁이는 감동되어 “네가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이 있고 정말로 재상이 되려는 마음이 있으면 너는 장래에 꼭 재상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범중엄은 후에 과연 재상이 되었고 줄곧 백성을 걱정해서 ‘천하의 사람들이 걱정하기에 앞서 걱정한다’는 명언을 남겨 놓았다.

범중엄은 속인이다. 그의 선천적인 사명은 아마 군왕을 보좌하여서 한 지역의 부흥을 도모하는 것일 것이다. 그는 평생 사명을 명심하고 용감하게 임무를 담당하여 책임을 수행했다. 그가 재상으로 되는 목적은 사람을 구하는 것이고 그가 추구하는 것은 재상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수련인이다. 우리 대법제자의 사명은 바로 조사정법 하여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2015년 뉴욕법회설법’에서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당신이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제외하고 당신이 해야 할 것은 없으며, 이 세상에서 당신이 해야 할 것은 없다.”고 말씀하셨다. ‘시드니법회설법’에서는 “날마다 늘 부처가 될 생각만 한다면 그것은 강대한 집착이다. 이 마음을 제거하지 않으면 영원히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수련은 바로 사람의 마음을 제거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우리가 수련하는 목적은 정법 중에서 사람을 구하는 것이고 원만은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 사람을 구하는 사명과 수련원만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 우리가 원만을 이룬 각자의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하고 즉 신(神)의 심태, 경지, 행위로 자신에게 요구해야만 사람을 구하는 효과에 도달할 수 있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조사(助师) 사명은 수련자가 매일 명심하고 실천해야 한다.

사실 인류의 역사는 일찍이 자신을 희생해서 타인을 이롭게 하고 남을 위하는 정통문화를 발휘했다. 석가모니는 중생을 위해 해탈의 길을 찾으려고 왕위를 버리고 출가했다. 현장(玄奘)이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간 것은 동토의 많은 사람이 불법의 진의를 얻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이 진리를 추구하기 위하여 몸을 돌보지 않고 구도를 발원한 것은 자신의 원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하는 것이다. 자신의 해탈만 추구하는 것은 너무 좁고 너무 자아 중심적이며 대법 수련자에게 응당 있어야 할 포부와 목표가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파룬따파의해’에서 “우리는 당신이 완전히 속인을 초월한 한 사람으로 되며, 완전히 개인의 이익을 버리고 전적으로 다른 사람을 위하는 사람이 될 것을 요구한다. 그 대각자(大覺者), 그는 무엇을 위하는가?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수련생에 대한 나의 요구 역시 대단히 높으며 수련생이 제고되는 것 역시 아주 빠르다.”고 말씀하셨다.

범중엄은 젊은 시절 공부할 때 자신을 수양하고 집안과 나라를 다스리는 책임감으로 공부했다. 그는 원대한 뜻을 품었기 때문에 유가인의(儒家仁義) 참뜻을 터득할 수 있었고 득도하여 많은 도움을 받아 차츰차츰 승진했다. 상상해보자. 만약 한 사람의 머릿속에 온통 이익만을 추구하고 권세에 빌붙어 이기적이라면 먹고 자는 것을 잊고 경서를 숙독한다 해도 이러한 사람은 경서의 중요한 이치를 보기 몹시 어려워 천지신명의 가지(加持)를 받을 수 없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오직 중생을 걱정하고 사람을 구하는 것과 사명을 완수하는 것에 뜻을 두기만 하면 사부님께서는 법 중의 내포를 우리가 볼 수 있게 하시므로 따라서 우리도 사부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어떤 수련생의 법학습은 원만을 위해서이다. 어떤 수련생은 진상을 알릴 때 두려움이 있어 진상을 알리지 않으면 원만할 수 없다고 말하고 어떤 수련생은 장쩌민을 고소하지 않으면 원만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관념과 행위가 반영되어 나와서 뿌리를 캐보면 모두 사심(私心)에 둘러싸여 있는데 깨달은 자는 사심이 없다. 이렇게 하는 수련생은 정법수련과 역행하고 있으며 또 원만과 점점 멀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정한 마음으로 사명을 명심하고 많은 사람을 구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다.

문장발표: 2016년 1월 22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22/32252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