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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심을 내려놓고 진정한 자신을 되찾다

글/ 헤이룽장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7년에 법을 얻었고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가호 하에 오늘까지 걸어왔다. 10여 년 동안, 수련에 대해 전혀 모르던 데로부터 갈수록 더 성숙해졌고, 온 몸이 업력으로 가득한 데로부터 홀가분해졌으며, 관념에 의해 지배되던 데로부터 생각이 차츰 진정한 자신이 좌우지하게 됐다. 이 가운데 사부님께서는 얼마나 많은 심혈을 들였겠는가. 제자는 영원히 보답할 길이 없다. 오로지 정진하고 또 정진해야만 사존의 자비로우신 고도(苦度)를 저버리지 않을 수 있다.

1. 기다리지 않고 의지하지 않으면서 가정 자료점을 세우다

2006년 이전, 우리 여기에서는 모두 대형 자료점에서 자료를 제공해 주었는데 자료점 수련생들은 아주 고달팠다. 매일 아무리 많은 자료를 만들어도 사람을 구하는데 필요한 수량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늘 법학습을 할 시간이 없어 수련에 큰 누락이 생겼는데 어떤 수련생은 납치, 노동교양을 당하거나 판결을 받는 등 박해를 받았다.

이 때문에 나는 아주 자책감을 느꼈고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불안했다. 그래서 더는 자료점 수련생들에게 압력을 증가해주지 않고 더 이상 ‘기다리고 의지하며 요구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자신이 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알리며 중생을 구도하는데 필요한 자료는 스스로 해결하려 했다.

2007년 나는 컴퓨터, 프린터를 사고 집에 소형 자료점을 세워 진상자료를 인쇄했다.

처음 밍후이왕에접속해 자료를 다운받는데 어려움이 아주 많았다. 주로는 두려운 마음이었는데 속이 불안한데다 조급했고 게다가 사악이 엄중하게 교란해 가끔은 시간이 오래 걸려서야 밍후이왕에 접속할 수 있었다. 처음 독립적으로 밍후이왕에서 다운받고 첫 번째 진상자료를 인쇄했을 때 속으로 너무 격동됐다. ‘끝내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됐구나.’ 이후에 또 재기록 가능 DVD 디스크, 스캐너를 사게 돼 주위 수련생들에게 소책자, CD 등 진상자료를 제공해 주었고 매주 농촌에 사람 구도하러 가는 수련생을 위해 200부 좌우 되는 진상자료를 준비해주었다.

이후에 운영체제 설치도 배웠는데 주위 수련생들에게 컴퓨터와 프린터가 있으면 그들을 도와 자료점을 세워주었다. 이런 수련생들 중에는 60여 세, 70여 세 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아주 열심히 배워 나중에는 모두 독립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조사정법 가운데서 몸과 마음을 다해 열심히 배웠다. 그들은 두려운 마음, 이기심, 나이가 많다는 관념을 내려놓고 겸허하게 배웠는데 겸손한 미덕은 나를 감화시키고 감동시켰다. 이런 노년 수련생한테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우리는 서로 관심하고 도와주면서 진정으로 하나의 정체를 형성했다. 그때 나는 법학습 외에는 모두 자료를 만들거나 수련생을 도와 일부 기술상 문제를 해결해주었는데 아주 충실하고 행복했다.

나의 이런 기계들도 아주 신통이 있어 지금까지도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우리 지역에 진상자료를 편집하는 사람이 없어 중단되게 되자 나는 주동적으로 이 항목을 맡았다. 처음에는 어려워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여겼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나가서 삼퇴를 권했지만 나는 시간만 있으면 하루 종일 집에서 다운로드하고, 자료를 정리하며 편집하는 데다 모두 스스로 더듬으면서 했기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후에 이 일에서도 수련할 수 있고 현지 진상이 사악을 놀라게 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가운데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는 자아를 내려놓고 대법의 수요를 나의 책임으로 여겼다. ‘내가 무엇을 하려 한다’가 아니라 조사정법 가운데서 무엇이 필요하면 무엇을 했다. 이 과정에서 밍후이 수련생들의 도움도 받았는데 매번 밍후이에서 편집한 원고를 내 원고와 대조해 보면서 내 원고 어느 부분을 수정했는지, 왜 이렇게 수정했는지 보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찾아냈다. 문자의 차이뿐만이 아니라 더욱이 수련의 차이로서 여기에서 나는 원고를 쓰고 투고하는 것은 사악을 폭로하고 진상을 똑똑히 알릴뿐만 아니라 자신의 수련 제고에도 도움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2. 사람을 구하는 것은 나의 책임

나는 외지에서 현재 직장으로 전근해왔다. 사악들은 늘 TV에서 ‘톈안먼 분신자살’ 거짓 안건을 방영했는데 나는 사부님 말씀대로 가서 진상을 알렸다. 나는 직장 동료들에게 분신자살은 거짓이고 모함이라고 하면서 그 중의 의문점을 알려주었다. 내가 이렇게 얘기하자 동료들은 모두 내가 파룬궁을 연마한다는 것을 알았고 아주 빨리 온 직장에서 다 알게 됐다. 하지만 나는 아주 당당했는데 왜냐하면 처음부터 정정당당하게 진상을 알리는 기초를 닦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심태가 바르자 듣는 사람도 긴장해 하지 않았고 다른 눈으로 대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아주 친하다고 여겼다. 왜냐하면 내가 그들을 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생들은 모두 구도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것은 사부님의 위덕이고 대법의 위덕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직장을 옮길 때는 마침 1999년 박해가 금방 시작할 때였다. 중생들이 더 이상 거짓말에 속지 않기 위해 나는 진상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자신이 파룬따파 수련 중에서 수혜를 받은 것뿐만 아니라 역사, 철학, 현실 등 여러 면에서 장쩌민의 파룬궁 박해는 터무니없고 잘못된 것이라고 썼다. 남에게 부탁해 몇 부 인쇄한 후 예전 직장 여 교장에게 발송했는데 자신의 이름이 적힌 편지도 함께 첨부해 보냈다.

여 교장이 내 편지를 받은 그날, 마침 작은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편지를 열어보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편지 한 통에 내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은 내가 발송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때 사악한 당은 연좌 정책을 실행해 ‘자기 사람을 잘 지키게 했고’ 관직과 각종 이익으로 위협했기에 여 교장은 편지를 현장에 있던 새로 온 최고책임자에게 주었다. 학교에서는 밤새 당위원회 회의를 열고 내 편지를 각자 한 부씩 복사한 후 여러 번 정독했다고 한다.

학교 기율검사 서기와 사무실 주임은 이튿날 내가 있는 도시에 왔고 우리 남편 직장에 찾아가 상사를 찾아 나의 상황을 전달했다. 예전 학교에서 파견한 이 두 사람이 나와 얘기를 나누려 해서 우리 집에 온 후 나는 그들에게 분신자살 진상 등을 알려주었다. 그들은 웃고만 있었고 떠날 때 나와 일일이 악수했다. 이후에 남편 직장 상사가 다시 나를 만났을 때 오히려 더욱 존경했다. 이는 그 자신의 근기가 작용을 일으킨 동시에 진상의 힘이 그의 본성의 일면을 깨운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라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진상을 알렸는데 남편 직장 상사, 동료, 친구든 만날 기회만 있으면 즉시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다. 그 후 사악한 장쩌민 집단의 파룬궁 탄압이 가장 엄중했던 그 3년, 남편은 해마다 직장 모범사원이 됐고 한 번은 장려금까지 받았는데 그의 말로 하면 이것은 있어본 적이 없는 특별 영예다. 이것은 나에 대한 사부님의 격려로서 정정당당하게 진상을 알릴수록 위력이 더욱 크다는 것을 알게 됐고 진일보 대법에 대해 깊이 깨닫게 됨으로써 나의 사람 관념을 개변시켰다.

그 몇 해 동안, 우리 직장 서기가 매번 대회 때마다 상부에서 파룬궁에 관해 어떻게 생각한다는 것을 전달하면 나는 과일을 좀 사 들고 그의 집에 가서 진상을 알리고 얘기를 나누었다. 이후에 그 집 식구들은 모두 삼퇴를 했다. 그의 아내는 나에게 그들 친척 가운데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이후에 행정 최고 책임자의 아내도 나에게 그녀의 먼 친척가운데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 있다고 알려주었는데 그 기회에 나는 그녀도 삼퇴를 시켰다.

나는 또 서기와 ‘중국공산당이 언제 멸망하는지’에 관한문제를 토론했는데 그는 아직도 십 년이 더 있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오래 걸릴 것 같지 않다면서몇 년 안에 멸망할 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9평공산당’은 전국 민중의 탈당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2005년 우리 직장에서는 보선(保先: 중국공산당원 선진성유지 교육활동)을 시작하면서 사람마다 배우고 관을 넘도록 했다. 나는 학습에 참가하지 않았고 오랫동안 당비를 내지 않았기에 규정에 따르면 반년 동안 내지 않으면 이미 자동탈당에 속한다고 말했다. 주임은 말로만 해서는 쓸모가 없고 신청서를 써야만 탈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신청서를 쓰고 정식으로 탈퇴했다. 사악한 당이 가입만 하게 하고 탈퇴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친구들은 모두 알고 있기에 그들은 나를 관심하면서 모두 걱정해 주었다. 아마 내가 박해를 받을까봐 염려해서일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시범을 보여줄 테니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정정당당하게 탈당할 수 있었다.

내 업무는 일반 교사들과 만날 기회가 비교적 많은데다늘 강좌를 주최했다. 가끔 강좌 중에 진상을 알리는 내용을 포함시켰는데 요점을 제대로 찾아 진상을 널리 알려 모두들 듣기 좋아했다. 어느 한 번 회의 마지막에 좌담을 했는데 다른 현의 30여 명 교사가 참가하고 내가 주최했다. 나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주고 싶으니 사부님께서 가지해 달라고 빌었다. 그들이 그토록 소박하고 이성적인데 파룬궁에 대해 오해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심리 상태를 잘 조절한 후 나는 이른바 ‘톈안먼 분신자살’ 진상을 알렸다. 이미 삼퇴를 한 나와 비교적 익숙한 교사는 내가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이런 것을 얘기하는 것을 보고 조급해서 나 때문에 아주 걱정했다. 그녀는 마침 손을 내 의자에 놓았는데 힘을 주어 내 어깨를 꼬집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면서 계속 말했다. 말한 후 모든 것이 정상적이었고 그 어떤 좋지 못한 반응도 없었다. 어떤 사람은 나의 강좌 원고를 요구하면서 돌아가서 잘 보겠다고 말했다.

진상을 알리는 중에서 나의 심성도 끊임없이 제고됐고 중생들이 구도되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뻤다. 이 과정이 바로 자신을 닦는 것으로서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功)은 사부에게 달렸다.’[1]는 것처럼 일체는 모두 사부님께서 하시는데 나는 자신만 좀 수련하고 입만 좀 놀렸을 뿐이다.

3. 안으로 찾아 자신을 바로잡다

사부님께서는 제자에게 ‘안으로 찾는’ 수련의 보물을 주셨다. 예전에 생활, 직장에서 밖으로 내다보고 밖으로 찾으며 일마다 객관적 요소를 강조하고 주관적인 원인을 홀시하는 습관을 양성했다. 이런 사유 습관, 사유 방식은 이미 뼛속까지 깊이 박혔는데 이것이 바로 속인과 수련인의 가장 본질적인 구별이다. 수련한 후 나는 자신의 일사일념을 매우 주의했는데 남과 모순이 생겼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해결 방법이 모두 안으로 찾는 것으로 틀림없이 자신 여기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예를 들면 집에서 아이가 급하게 말을 하면 즉시 자신에게 조급해하는 마음이 없는지 찾아보는데 찾으면 아이도 안정된다. 이것은 모순을 푸는 좋은 방법으로서 과거의 설교, 원망, 나무라는 것보다 모두 효과적이고 직접 밖으로 미는 것보다 훨씬 낫다.

직장에서 누군가 나를 칭찬하면 이내 명(名)을 구하는 마음, 허영심, 좋은 말을 듣기 좋아하는 마음이 조성한 것인지 찾아본다. 이성이 우스갯소리를 하면 색욕심, 남녀의 정 등 나쁜 마음이 아닌지 찾아본다.

직장에서 어떤 동료는 아주 오만하고 진상을 명백히 알지 못해 파룬궁에 대해 오해가 있기에 나에 대해 본체만체 하면서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였다. 나는 심리 상태를 잘 조절해 그녀의 나에 대한 태도가 어떠하든 사부님의 요구대로 그녀를 잘 대했는데 조금이라도 원망 혹은 탓하는 마음이 없었다. 그녀를 보고 자발적으로 인사를 했을 때 그녀가 본체만체 해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으며 다음번에 여전히 똑같이 대했다. 기억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았으며 평온하게 대했다.

사부님께서는 ‘이 선(善)의 힘은 매우 큰데'[2]라고 말씀하셨다.

언제부턴가 그녀는 감화됐고 이후에는 주동적으로 나를 찾아와 얘기를 나누었다. 그녀의 과거, 집안일을 얘기했는데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그렇게 친절하고 자연스러웠으며 간격이 없었다. 과거의 일체는 마치 발생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수련생과 어울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되도록 마음을 똑바르게 하고 다른 사람의 각도에 서서 문제를 고려했다. 오해가 있을 때 기어이 해석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평온한 심리 상태로 대하고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면 어떻게 했으며 모순을 크게 하지 않았다. 수련생이 소책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들었을 때 주동적으로 갖다 주었는데 안으로 찾는 것을 통해 각자의 집착을 찾았고 모두 법에서 제고해 올라왔다.

법학습을 통해 나는 수련생 사이에 모순이 없는 것은 정상적이 아닌 것으로서 관건은 모순이 생겼을 때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것이다. 냉정해져서 안으로 찾는지 아니면 집착을 확대해 밖으로 보는지 이것은 속인과의 경계선이자 제고해 올라올 수 있는 관건적인 부분이다.

4. 장쩌민 고소 가운데서 이기심을 버리다

2015년 4월, 전국에서 장쩌민을 고소한다는 밍후이 통지를 보았을 때 나는 아주 흥분됐는데 사부님의 정법이 또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이 소식을 주위 수련생들에게 알려주면서 고소장을 쓰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내가 수정해주고 정리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말을 들으면 고소장을 쓰는 것이 자신과 큰 관계가 없는 것 같았는데 사실은 자신에게 우려하는 마음, 두려운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속으로 나에게는 정상적인 직장이 있으므로 직장이 없는 사람들과는 다르고, 자신은 박해도 그리 엄중하게 받지 않았으며 회사에서 엄하게 관리하기에 좀 지난 후 다시 보자고 생각했다.

수련생의 도움 하에 장쩌민 고소에 대해 나는 인식을 제고했다. 우리 집에서 장쩌민 고소에 관한 교류회를 열었는데 내가 발언할 때 갑자기 사부님께서 아주 많은 물질을 없애주셨다는 것을 느꼈다. 허리를 똑바르게 폈는데 마치 크고 높아진 것 같았다. 다른 공간에서 이는 어떠한 변화이겠는가. 나는 원래 민감하지 않았지만 이때는 크나큰 변화를 느꼈다.

한 달 가까이 나는 낮에는 출근하고 저녁에는 수련생을 도와 고소장을 써주었다. 매일 밤늦게까지 바삐 보냈지만 힘들지 않고 고달프지도 않았다.

고소장을 발송하는 과정 역시 두려운 마음을 제거하는 과정이었다. 나는 신분증 복사본을 고소편지에 넣었는데 기왕 고소장을 썼으니 모든 마음을 다 내려놓고 더 이상 감추지 말자고 생각했다. 발송할 때 우편배달원은 우리가 봉해놓은 편지를 뜯으라고 했는데 나는 이것이 고험이라는 것을 알았다. 발정념을 하면서 그에게 왜 편지를 뜯어야 하는지 물었다. 안에 돈이 있는지 본다고 하자 나는 내가 도와 뜯어주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뜯어본 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닫아버렸다. 집안 식구, 아이를 도와 고소장을 써주기도 했는데 그들에게도 명, 리, 정을 내려놓게 했다.

장쩌민 고소를 통해 내 심리 상태는 더욱 평온하고 이성적이 됐다.

나에게는 아직도 부족한 점이 아주 많다. 예를 들면 명을 구하는 마음, 허영심, 색에 대한 마음, 질투심, 환희심, 과시심, 쟁투심, 남보다 위에 있다는 마음 등등이 있는데 앞으로 수련 중에서 반드시 법학습을 잘해 이런 부패한 물질들을 제거해 버릴 것이다.

내가 한 이 일체는 모두 사존의 가호와 가지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에게는 다만 사람을 구하는 소원만 있을 뿐 사존께서 나에게 지혜와 능력을 주신 것이다. 사존의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되어 사존을 바싹 따라 조사정법하고 중생 구도할 수 있는 것은 내 이번 생의 가장 큰 행복과 영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싱가포르 법회 설법’

문장발표: 2016년 2월 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2/5/32344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