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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 알릴 때의 대화 기교에 대한 탐구

글/ 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 본문은 나 개인의 조그만 경험을 총결한 것이다. 일부 실례를 들어 지혜롭게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의 대화 기법을 탐구·토론하고 수련생들과 함께 고무 격려하며, 태만하지 않고 정진하면서 더욱 많이, 보다 훌륭하게 사람 구하는 사명을 완수하기를 희망한다.

1. 비유·유추를 쓰는 적절한 방식은 효과가 좋다

이는 자주 쓰는 기교이다. 예를 들면, “단·대에 가입했는데 왜 탈퇴하는 행위로 태도 표시를 해야 하는가”를 설명할 때, 이전의 문장 교류에서 한 수련생이 사용한 방식은 “이전에 강호(江湖)를 은퇴할 때면 손을 싹 씻었다.”라고 하는 설명이었는데 내가 보건대 아주 형상적이다. 지금 나는 한 마디 보태겠다. “사직도 보고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2. 숫자의 표현방식을 바꾸어 효과를 높이고 상대방에게 울림이 있게끔 촉동한다.

단순히 숫자만 나열하면 많은 때 청중에게는 감각이 없다. 이럴 때 우리에게는 이 숫자를 전환하여 그를 놀라게 할 수 있는 표현 방식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역사상 중공 사당에 의해 살해당한 민중의 수를 말할 때 우리가 이전에 늘 썼던 표현 방식으로는 “두 차례 세계대전 사망자 총수와 같다.”라고 말하는 것이 있었는데 실제 방식을 바꾸어 더 쉽게 상대방을 촉동할 수 있는 표현이다. 나는 또 어떤 땐 이렇게 말한다. “만약 일본이 난징 대학살에서 30만을 살해했다고 한다면 공산당에 의해 살해당한 사람은 2백 개의 난징 대학살도 넘는다.”라고 말하면 효과는 상당히 좋다. 어떤 때 상대방은 듣고 나서 몸을 부르르 떤다.

또 장쩌민이 팔아버린 동북 영토를 예로 들어 보겠다. 백여만 제곱미터를 팔아버렸다고 말한 후 “40여 개의 대만에 상당하는 그런 크기”라고 한 마디 더 붙이면 더 쉽게 상대방의 공명을 촉동할 수 있다.

3. 상대방의 각도에서 사고하고,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현상을 묘사한다

이를테면 ‘장자석’을 말할 때, 만약 간단하게만 말하면 두뇌가 있는 사람은 의문이 생긴다. “정말 이러하다면 왜 현지 정부는 유람 명소로 개발하여 사람들이 보게 하는가?” 그래서 많은 때 나는 주동적으로 먼저 말한다. 중공 CCTV는 스스로 자신을 속이면서 앞의 다섯 글자만 보도했다. 구이저우 현지 정부는 이런 것을 보고는 우리도 홍색 관광 명소를 개발해 돈을 벌어야겠다며 방탄유리로 명소의 (글자가 새겨진) 바위를 가리고 여섯 글자가 보이게만 하고 만지지는 못하게 했다. 입장권에는 다섯 개 반의 글자만 찍혀 있는데 그야말로 ‘임금님의 새 옷’이다. 내가 이렇게 말을 해서야 상대방은 이해할 수 있었다.

4, 실제 상황에서는 진실로써 거짓을 타파해야 한다

중공의 선전이란 바로 “거짓말, 큰 소리, 헛소리”고 많은 구호는 아주 공허하다. 이 때문에 쉽게 미혹되는 사람을 겨냥할 수 있게 되는데 오직 실제 상황에 적용하기만 하면 분명하게 말하기 쉽다. 예를 들면, 중공은 늘 “국가 이익이 어떠어떠하다.”라고 선전하지만, 국가는 누구인가? 하나하나 개체로 조성된 것이다. 개인 이익의 보장을 운운하지 않으면 어디서 국가 이익이 온단 말인가? 인터넷에도 아주 많은 비슷한 신랄한 평론이 있다. “집이 강제 철거당해 자기 집마저 보호할 수 없는데 또 무슨 댜오위다오(钓鱼岛) 보위를 운운한단 말인가?”

5, 단어 사용에 조심해야 한다. ‘속인’이란 말을 하지 말고 ‘백성’이라 말할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하여는 얼마 전 수련생의 문장에서도 이미 말한 적이 있고 나 자신에게도 절실한 체험이 있다. 몇 년 전, 나는 한 동료에게 진상을 말할 때, “우리 이 법문은 산에도 절에도 들어가지 않고 속인 속에서 수련한다.”라고 말했다. 상대방은 처음에 ‘속인’이란 이 단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물어보고 나서 알게 된 후 그의 기색은 아주 좋지 않게 변했고 분위기도 그다지 조화롭지 못했다. 아무튼, 지금의 사람은 자존심이 아주 강하므로 우리는 그들을 더 많이 이해해 주고 포용해 줘야 하지 우리가 그들 위에 군림했다는 느낌이 들지 말게 해야 한다. 그때부터 나는 이 문제를 말할 때면 “우리 이 법문은 산에도 절에도 들어가지 않고 백성들 속에서 수련한다.”로 고쳤더니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6. 사람의 사고를 계발할 수 있는 작은 이야기를 준비한다

밍후이 진상 소책자에는 작은 이야기가 아주 많으니 마음속에 몇 개 준비해 둘 것을 건의한다. 이를 테면, “수당연의’(隋唐演義)에는 “친수바오와 뤄청의 맹세가 적중한 이야기”가 있는데 어떤 땐 한 마디면 작용이 있다. 시간이 충분할 때면 더욱 투철하게 말할 수 있다. 정통적인 전통문화 역시 오늘의 사람을 구하기 위해 일찍부터 포석을 깔아 주었다.

7. 극단적인 묘사를 피해야

나 개인의 체험인데, “극단적인 묘사”는 당 문화의 두드러진 표현이다. 이런 표현은 대륙에서는 아주 보편적이다. ‘전법륜’에서는 “너무나도 절대적이며, 어떤 것이든 너무나 절대적이면 옳지 않다.”라고 말씀하셨다. 설법의 많은 곳에서 사부님께서는 모두. “어쩌면(也许)”, “가능하게(可能)”를 언급하셨다, 개인 층차에서 내가 체득한 그 속의 내포란 바로 100% 확정할 수 없는 문제에서는 “어쩌면(也許)”, “가능하게(可能)”,“기본상(基本上)”, “대개(大致)”, 많이는(很多), “개별(個别)”로 완화한 묘사를 하는 것은 상대방이 진상 알리기를 받아들이는 데 영향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많은 때에는 효과가 더욱 좋을 수도 있다. 사당은 “탐오하지 않는 관리가 없다”는 말을 하면 기본상 누구나 다 접수할 수 있는 것과 같다. 하지만 정말로 아주 성실한 사람을 만나면 “개별적인 사람을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탐오하지 않는 관리가 없다”로 고치면 그는 즉각 접수할 수 있다.

비교적 심각한 교훈을 들어보자. 몇 년 전, 나는 한명의 당 간부와 폭넓게 부패문제를 이야기하다 마침 예비양식(식량) 문제가 나왔다. 내가 말 나가는 대로 한 마디 던졌다. “그런 양식 창고는 다 비어 있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어떤 반응이었겠는지 맞춰보라. 그가 즉각 말했다. “당신들 파룬궁은 이렇게 과장하기를 즐긴다. 양식 창고가 어찌 다 비어있을 수 있겠는가?” 그 후엔 내가 더 말해도 그는 들어주지 않았다. 사실 나의 서술이 바로 극단적인 사유에서 나온 하의식(下意識)의 반응이었다.

8. 서술 중에 예를 들다

본문에서도 일부 예를 들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구체적으로 더 들지 않겠다.

9. 천의(天意)와 징조를 말하다

대륙에는 무신론이 성행하긴 하지만, 하늘을 말하고 천의를 말하며, 하느님을 말하면(사실 나 개인 체험이라면,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 그건 바로 비교적 모호한 만능의 신의 형상이다) 많은 사람은 그래도 믿는다.

이를테면, 사람은 하늘과 싸울 수 없다. 마오쩌둥은 네 가지 낡은 것을 타파한다면서 자신은 오히려 도사 점쟁이를 찾아가서 “8341”이라는 네 개 숫자를 얻었는데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고, 중앙 경비대를 “8341” 부대라 불렀다. 자신은 83살까지 살았으며, 1935년 쭌이 중국공산당 확대회의부터 1976년 죽을 때까지 권력을 잡은 지 41년이 되었고, 자신의 명은 일찍부터 정해졌는지라 일 년만 더 살자 해도 살 수 없었다. 이런 말을 백성들은 들은 후 모두 머리를 끄덕인다. 지금은 천재인화가 특별히 많아 많은 사람이 다 “사람은 하늘과 싸워 이기지 못한다.”라고 한다. 계속해서 또 ‘장자석’은 하늘의 뜻이며, 3퇴는 하늘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하면 많은 사람은 모두 접수한다.

또 예를 들어 말하면 2015년 10월 1일, 천안문 광장의 오래된 나무 한 그루가 넘어졌는데 정부 당국이 찍은 사진에 나타난 것을 보면 넘어진 나무의 뿌리가 다 썩었다. “일찍도 늦지도 않게 하필이면 이른바 ‘국경절’에 넘어졌다.’ 많은 사람은 듣고 나서 모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이건 징조가 아닌가?

10. “내가 당신에게 좋은 일 한 가지를 알려 주겠다”와 “내가 당신에게 한 가지 일을 알려 주겠다”의 차이

이것은 한 글자 차이인데 차이가 엄청나게 크다. 이 방면에서 나의 어머니에게는 아주 심각한 체험이 있다.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 “한 가지 일을 당신에게 알려 주겠다.”라고 말할 때, 지금의 사람은 경계심리가 아주 강해 상대방에 대해 즉각 아주 긴장하며 얼굴마저 팽팽해진 모습을 보여준다. 나의 어머니는 이어서 말했다. “당신 긴장하지 마세요, 내가 당신에게 좋은 일 한 가지를 알려드릴게요.”라고 했더니 그의 안색이 즉시 펴졌다.

11. 연분을 강조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여러 번 연분을 강조하셨고. 나도 여러 번 체험했다. 우연히 만난 연분이라고 말하면 상대방을 쉽게 깨우쳐 주고 먼지투성인 마음의 문을 열어 줄 수 있다.

12. 가령 한 가지 이치를 말했지만 상대방이 접수할 수 없어할 때, 파생돼 나온 이치(그것이 저층차의 것이라면)를 말해보는 것도 무방하다.혹은 “시간, 공간, 사람”의 각도로부터 분석을 전개하면 그의 이해 능력에 더욱 다가설 수 있기에 상대방은 아마 더욱 쉽게 접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선악에 응보가 있다’를 말할 때 상대방이 접수하지 않는다면 그럼 곧 파생하여 나온 “살인하면 목숨으로 갚아야 하고, 빚을 졌으면 돈으로 갚아야 한다.”를 말하면 상대방은 흔히 접수할 수 있다.

법공부 중에서 나는 또 ‘시간, 공간, 사람’ 이 세 방면에서 깨달은 것으로도 ‘응보’라는 이 문제를 분명히 말할 수 있었다.

시간과 사람의 각도에서도 말을 한다. 부모가 그들 이전 세대를 대하는 태도는 그 자녀들이 주시하는 만큼 자연적으로 그 자녀가 부모에게 효성 하는가에 영향 준다. 이런 것이 바로 현세현보가 아닌가? 옛사람이 남겨놓은 아름다운 문자와 심오한 철리(哲理), 즉 우수한 전통문화는 현대인의 언행에 지도작용을 한다. 이것이 바로 시간을 뛰어넘은 영향이 아닌가? 시간과 사람의 각도로부터 말한다면, 바로 지금의 많은 사람은 응보를 믿지 않기 때문에 무엇을 하든 돈벌이만 생각하고 남을 배려하지 않기에 이런 환경에 몸을 담근 사람은 모두 피해자가 되고, 곧 응보를 받게 된다. 이를테면 북방에서 생산한 독 분유를 남방에 운송해 사람을 해친다. 남방의 유독 식품을 북방에 운송해 간다.

13. 고생을 하다와 지불(대가를 치른) 이후의 보답

진상을 알리는 가운데서 발견한 것인데, 어떤 땐 대법을 수련하여 병을 떼어버리고 몸을 건강히 한 데 대해 말하면 상대방은 접수하지 못하면서 미신으로 여긴다. 후에 나는 명인의 예를 몇 개 들었는데 설득력이 좀 컸다. 더 후에는 더 많이 전개했더니 상황이 크게 변했는데 바로 “대법을 수련하자면 고생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내가 두 팔을 서로 교차하여 결가부좌 흉내를 내며 청중에게 말했다. “날마다 결가부좌를 한 시간 하면 몹시 아플 텐데, 일반인이 견딜 수 있어요? 고생하지 않고 병이 나으려고? 돈벌이도 고생을 해야 하잖아요? 그렇잖아요?” 이때 청중의 얼굴에는 즉시 탄복과 놀라는 표정이 나타나는데(이 결가부좌 모식은 정말로 비슷해서 매번 사용할 때마다 모두 효과가 아주 좋은데 속인에게서 배운 것이다. 그녀가 불가의 가부좌는 모두 이렇다고 했다.)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또 술도 담배도 끊어야 하고 도박을 하지 못하며, 마음을 닦고 선을 향하는 좋은 사람이 돼야 하고, 남을 해치고 자기가 이익을 보는 일을 해서는 안 돼요, 당신은 파룬궁 연마는 이렇게 쉬운 가고 여기지만 요구는 아주 엄격합니다.” 많은 사람은 즉각 대법에 경의가 생겨 말한다. “오, 원래는 이런 일이구나. 보아하니 간단하지 않네요.” 물론 그다음은 상황을 봐서 또 보충한다. “그뿐만 아니라 체조를 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만약 선을 향하지 않고 날마다 아귀다툼을 하면서 자신의 고만한 이익만을 생각한다면 잠도 잘 자지 못할 것인데 병이 나으려고 생각도 하지 말아야지요.”

14. 언행불일치를 해부하여 측면에서 또는 반면으로 말하며 깨닫게 한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은 가짜 기공사로서 그의 언행에서 그가 말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완전히 변별해 낼 수 있다. 무릇 이런 말을 하는 기공사는 흔히 모두 부체(附體)가 있다.” 또 말씀하셨다. “천목이 열린 후에는 한 면에서 동시에 사람 신체의 네 면을 볼 수 있는데, 앞면에서부터 뒷면ㆍ왼쪽 면ㆍ오른쪽 면을 볼 수 있고; 또 한층 한층 절편(切片)하여 볼 수 있으며; 또 이 공간을 꿰뚫어 병이 있는 근본 원인이 무엇인가를 볼 수 있다.”

나는 그 가운데서 한 층의 함의를 깨달았는데 바로 상대방이 진각(眞覺)을 일으켰을 때 담론할 수 있는 문제는 사당의 언행 불일치로부터 말할 수 있었고 꼭 정면으로만 서술해야 하는 것이 아니면 어떤 때는 측면으로나 반면으로 말해도 효과가 더욱 좋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중국에는 좋지 못한 것이 아주 많지만, 미국에도 좋지 못한 것이 있다”고 담론하기를 즐긴다. 사실 이것은 “70점과 30점은 모두 백 점이 아니지만, 합격과 불합격은 차이가 있다”는 것과 비슷한 것으로 “많다와 적다, 있다와 없다”의 문제를 뒤섞어 놓은 데 속한다. 뒤엉키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어떤 때는 직접 측면에서 언행 불일치의 문제를 말하면 미국의 좋고 나쁨과 같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왜 중공 그런 관리들은 입으로는 늘 미국, 영국, 프랑스,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가 나쁘다 하면서 자신의 아내와 아이는 오히려 그곳으로 보내는가. 왜 북한, 베트남 이런 공산주의 국가로는 보내지 않는가? 그들 자신은 애국을 외치면서 왜 우리 백성을 이곳에 버리고 스모그를 마시게 하는가?

예를 들면, “당신들은 공산당이 준 돈을 받으면서 그래 반당을 하는가?”하는 이런 논조에 대해 반문하여 그를 계발할(깨우칠) 수 있다. “그럼 공산당의 돈은 또 어디에서 온 것인가? 정부의 돈은 모두 납세자의 손에서 받아온 것이다. 사회 복지는 어느 나라엔들 없는가? 대다수 나라는 우리보다 낫다. 그뿐만 아니라 퇴직금 역시 내가 이전에 여러 해 일한 후 얻게 된 정상적인 보답이다.”

또 예를 들면, “당신들의 말은 반동이다!”라고 하는 말에 대해서는 “공산당은 운동을 벌이는데, 혁명이란 곧 살인이다. 그 반동이란 바로 운동을 반대하는 것(역방향의 운동)으로서 반혁명이란 바로 혁명을 반대하는 것이고 바로 공산당더러 살인하지 말라고 하는 것인데 그래 나쁘단 말인가?”

또 “참음을 나는 해내지 못하겠다.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라고 하는 이런 논조에 대해 반문하는 것으로 그를 계발할 수 있다. “만약 당신에게 잘못이 있거나 아니면 남과 모순이나 마찰이 있다 할 때 남이 너그럽고 참는 태도로 당신을 대하면 좋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15. 사당 스스로 확정한 범주를 분명히 인식

사부님께서는 ‘전법륜’ 중에서 ‘범주’를 말씀하셨다. “자아의 정의 범위, 확정 범주”는 사당이 쓰기 좋아하는 수완이다. 예를 들면, “인민모순은 내부 협상, 내부에서 해결하지만 반대자는 인민이 아니다.” 또 예를 들면, “파룬궁 수련자에게는 법률을 운운하지 않는다.” 이런 것은 모두 함부로 해석하고 범주를 확정한 데 속하며 함부로 그것을 위해 사용한 것에 속한다. 사당은 습관적으로 이런 수작을 쓰는데 그것을 분명히 인식해야만 이런 허위(거짓)를 격파할 수 있다.

16. 어떤 사람은 대법과 대법제자를 공격하는 행위가 비교적 걸작이다. 어떻게 상대방을 계발하겠는가? (깨우치겠는가?)

인터넷이나 현실에서 어떤 사람은 부분적으로는 대법제자를 공격하는 행위가 아주 ‘걸작’이다. 이 때문에 대법이 나쁘다고 여긴다. 확실히 어떤 대법제자의 정확하지 못하고 과격한 행위는 대법에 손해를 조성했고, 부분적인 사람들이 구원되는 데 심리적 장애를 조성해 주었다.

이런 것을 겨냥해, 어떻게 그들의 마음의 매듭을 풀어줄 것인가? 이를테면 그들에게 말해 줄 수 있다. “이 사람의 말을 자세히 음미해 보면 좀 편파적인 데가 있다. 아무리 훌륭한 교원이라 할지라도 애먹이는 학생을 만날 수 있다. 어떠한 바른 법문이라 해도 모두 스승의 분부를 지키지 않고 스승의 문하에 먹칠하는 제자가 있다. 예수의 12명 제자 중에도 재물을 탐내 변절한 유다가 있잖은가, 하지만 주류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더 말한다면 어떤 것은 당신이 보기에 아주 걸작인 것 같지만, 석가모니는 생로병사 해탈법을 찾으려고 자신의 아름다운 부인마저도 임신시키고도 여전히 집을 떠났다. 개오한 후 다시 돌아와 그의 부인을 구도했다. 이 모두는 평상적인 이론을 적용할 수 없다.”

2001년에 파룬궁 수련생으로 가장하여 톈안먼 광장에서 분신자살하게 하고는 파룬궁에 죄를 뒤집어씌운 이런 걸작을 당신은 알고 있는가? 손에 몇 천만 동포의 피가 묻은 조직에 대해 당신은 어떤 견해가 있는가? 파룬궁이 하늘처럼 큰 억울함과 탄압을 당하면서도 여전히 테러행위와 보복행위를 하지 않고 단지 선악에 응보가 따른다는 이치만 분명히 말할 뿐인데 얼마나 큰 선(善)이며 견인(堅忍)인가! 다양한 의견을 들으면 시비가 분명할 것인즉 편견으로 자신의 앞길을 그르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17. 또 묻는 사람이 있다. “당신들 제자가 이렇게 큰 마난을 당하고 있는데 당신들 사부님은 왜 책임지지 않는가?”

이를테면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서유기’를 보면, 당승과 제자가 경을 구하러 가는데 9981난을 겪어야 했다. 당승이 경을 구하러 가는 것이지 관음보살이 경을 구하러 가는 게 아니다. 하지만 관음보살은 많은 배치를 하여 당승을 구해주었는데 많은 일은 당신이 상상한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니다. 우리 사부님은 제자를 지켜주고 보호해 주는데 그중에 몸을 담그고 있는 제자라야만 체험할 수 있다. 게다가 아주 많은 것은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시간은 일체를 증명할 수 있다.”

또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여기는 인간 속세이지 부처의 선경(仙境)은 아니다. 뭇 중생이 윤회 전생하면서 온몸은 업력으로 가득 찼으니 어찌 난이 없겠는가? 수련인에게는 모두 난이 있어서 먼저는 고생이지만 후에는 달콤할 것이다. 당승도 경을 구하러 가면서 9981난을 겪었다. 하지만 무리한 박해는 천도를 어긴 것이며, 선악에는 아무튼 응보가 따를 것이다. 역사상 불교에는 두 개의 선례(先例)가 있다. 목건련과 연화색이 호법하느라 수난당한 이야기를 참고할 수 있다.

석가모니 수하에는 10대 제자가 있었는데 그 중 목건련은 석가모니에게 신통 제일이라고 불렸다. 목건련은 불교가 법난을 당할 때 선뜻 나서서 호법했고 후에는 외도(즉 사교)에게 살해당했다. 석가모니 여제자 연화색도 신통 제일이었다. 석가모니 종제 데바닷타(提婆达多)는 세속에 있으면서 사람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고 거만하여 배반하고 스스로 부처로 자처하고는 자립하려 했다. 연화색은 선을 권하면서 계율을 지키라고 했지만, 그의 주먹에 맞아 죽었는데 더구나 두 눈을 파냈었다.

생생세세의 매우 긴 윤회를 거치면서 많은 일의 기연, 원한, 연원은 보통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닌 것으로 아주 간단하지 않다. 석가모니 부처는 책임질 줄 몰랐던가? 절대 아니다! 선악에는 언제나 응보가 따르기 마련이다. 당신은 데바닷타(提婆达多)의 최후 끝장이 얼마나 비참했는지 아는가!”

18. 논리문제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논리’를 두 번 말씀하셨다. 한 곳에서는 “사람이 기공태가 나타난 후에는 아주 이지적이다. 하는 말도 아주 철리성(哲理性)이 있을 뿐만 아니라 논리성도 아주 좋다.” 또 한 곳에서는, “그러나 사유논리는 혼란하지 않다.” 논리학은 현대 속인 가운데서 비교적 높은 지위에 놓여있다. 일상생활과 진상을 알릴 때, 사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많은 때에 모두 이런 동서양 선철(先哲)이 다져놓은 논리를 운용하고 있다. 이는 사실 대법의 무량한 지혜가 오늘의 속인 층면에서의 체현임을 나는 터득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나는 단지 법 학습 가운데서의 일부 낮은 체험만을 말하겠는데 이런 것 역시 사실 모두 대법이 속인의 생존을 위해 개창(開創)한 문화임을 실증하기 위해서이다.

속인의 논리 가운데는 반박하는 방법이 있는데 ‘반증법(歸謬法)’이라고 한다. 즉 먼저 상대방의 관점을 정확하다고 가정하고, 상대방의 관점으로부터 아주 분명하게 터무니없는 결과를 추리해 낸다. 이로부터 상대방의 관점을 부정한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육신을 고달프게 하는 것으로 제고해 올라올 수 있다고 한다면, 중국 농민은 매우 고생스러운데 마땅히 모두 대기공사여야 하지 않겠는가?” 또, “오, 흐리멍덩한 것이 바로 기공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흐리멍덩하게 화장실로 가면 무엇이라고 하는가? 그것은 기공을 짓밟는 것이 아닌가?” 또 “오, 기를 어디로 이끌어오면 곧 무슨 기공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밥을 먹을 때 잠시 가부좌를 하고 젓가락을 들고는 기를 운행하여 젓가락 끝에 보낸 다음 밥을 먹는다면 그것은 곧 식사 기공이겠다. 그렇지 않은가? 먹는 것 또한 다 에너지라는데, 바로 이렇다는 것을 말할 뿐이다.”

개인 층차에서 낮게 이해한 것으로는, 사부님께서 인용한 이상의 이런 설법에서 나는 그 중의 한 층 함의를 터득하게 됐는데 바로 사부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이런 지혜를 개시해 주셨다는 것이다.

또 예를 든다면 속인의 법정에서 심리할 때 흔히 많은 증거 사이의 “상호인증’을 언급한다. 평소에 일의 과정을 서술할 때에도 전후가 일치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서로의 말이 맞지 않고 합리하지 못하게 된다. 개인 층차에서의 낮은 이해로는,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일치’를 말씀하실 때, 그중의 한 층 함의가 바로 사부님께서 역시 우리를 위해 이런 지혜를 개시해 주신 것임을 나는 터득하게 됐다.

이상은 개인적 층차의 한계에서 써낸 자신의 낮은 체험인바 부당한 것이 있다면 삼가 수련생의 지적을 바란다.

문장발표: 2016년 1월 26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원지>홍법경험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26/3227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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