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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을 바꾸니 유암화명(柳暗花明)

글/ 허베이 대법제자 퉁전

[밍후이왕] 대법 수련에서 나는 이미 18년을 걸어왔다. 사부님의 가호로 많은 시련을 겪었고 그중 가장 큰 체험은 관념을 바꾸고 안으로 자신을 찾으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모두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이라는 것이다. 아래에 최근의 수련 심득을 보고하려 한다.

1. 요행심을 버리고 정정당당하게 장을 고소

수련에서 왜 시련을 겪게 되는가? 자신의 업력으로 인한 것을 제외하고는 많은 경우 모두 사람 마음과 집착심을 겨냥한 것이다.

1999년 7·20 이후 나의 법 실증은 요행심리가 있었는데 당시 나는 북경에 거주했고 호적은 시골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잠재의식 속에는 늘 이런 관념이 있었다. 즉 ‘내가 법 실증하는 일을 하더라도 행방이 묘연해 두 지역의 경찰이 나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하는 심리였다.

그때 법을 실증하는 여러 가지 일에 앞장섰었다. 예를 들면 대법 자료를 전달하고 수련생을 조직해 교류하고 진상자료를 배포하고 떠돌아다니는 수련생을 받아들이고 진상자료를 만드는 등등이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법을 실증하는 일을 모두 정념으로 한 것도 아니었다. 이성에서 승화된 그런 태연함이 아니라 자신이 북경의 수련생보다 우월하며 또 북경에서의 나의 생활은 고정적인 직장과 거처가 없기에 경찰이 나를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요행심을 버리지 못했기에 후에 납치당했고 감옥에 8년간 감금됐다. 감옥에서 나온 후 호적 소재지에서는 내게 신분증을 발급하는 것을 거절했으며 게다가 이른바 민감일에는 여러 차례 가족들을 협박해 친척 집에 가서 나를 찾아오게 해서 다시 나를 납치하려고 했고 심지어 나의 호적을 사적으로 다른 성으로 옮기려고도 했다. (하지만 다른 성에서 거절당해 실패했다) 감옥에서 나온 4년간 호적 소재지에서 생활하지 않았다.

2015년 대법제자가 장쩌민(江澤民)을 고소할 때 수련생들을 격려하며 고소하라고 했지만, 자신은 오히려 평온하지 못했다. 장쩌민을 고소하는 일은 법리상에서 대법제자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실명으로 고소하기에 자신이 직접 맞닥뜨려야 한다. 전에는 일할 때 요행에 의지했는데 이런 집착심이 또 폭로되어 나왔다.

법공부 후내 생각을 정리해 봤다. 요행심리는 구하고자 하는 변형된 심리이다. 속인의 투기심과 도박하는 심리와 같으며 근본적으로 아직 두려운 마음이 있다. 수련 중에서 이것은 가장 큰 집착심이다. 구세력은 수련생의 이런 집착심을 이용해 거듭 박해한다. 반대로 사악의 박해는 우리의 집착심을 겨냥해 온 것이고 ‘요행심’ ‘도박심리’는 절대 안전하지 못하며 오직 법 중에서 제고해야 하고 착실하게 법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바에 부합돼야만 가장 안전하다.

내가 정념으로 요행심리를 제거하자 자신이 갈수록 커지는 것 같았다. 박해 원흉을 고소하는 것과 박해당하는 것은 어떤 인과관계가 없고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은 대법을 위해 움직인다. 대법제자만이 비로소 세간의 주역이다.

하지만 내가 ‘형사고소장’을 발송하려 할 때 상급에서 회의를 열었는데 우체국에서 고소장 발송을 거절한다고 수련생이 나에게 말했다. 마침 간쑤(甘肅) 진창(金昌) 대법제자가 고소장을 발송하러 갔다가 납치된 소식을 보도를 통해서 보았다. 한 가닥 음산한 기운이 밀려왔는데 만약 박해 초기라면 속으로 불안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자신에게 물었다. ‘장 고소는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인가? 장 고소는 사부님의 정법 형세에 따라 가는 것이고 가장 좋은 일이다.’ 답은 긍정이다. 법에 맞는다면 정면적인 결과가 있어야 바른 법리이다. 가장 바른 일을 하는데 왜 박해와 연결하는가? 그들 사이에는 인과관계란 없다. 16년간 얼마나 많은 수련생이 사악의 이런 박해를 받았는가? 변이된 인과(因果) 관념의 교란으로 인해 박해당했다. 지금 철저히 구세력의 모든 배치를 타파하고 순정하게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원만의 길을 걸어야 한다.

이런 것을 깨달아내 생각을 점검하자 이번에는 정말로 두려운 마음이 없었고 ‘요행심’도 없었다. 5월 30일 충족한 정념으로 우체국에 가 고소장을 발송했으며 결과는 순조로웠다. 3일 후 수련생과 함께 다시 우체국에 가 고소장을 발송했다. 역시 아주 순조로웠다.

며칠 후 밍후이왕에내 고소장 내용을 게재했다. 이때 본 지역 장 고소에 참여한 한 수련생이 납치됐다. 소식에 의하면 사악의 이번 납치는 장 고소를 겨냥한 것이라고 한다. 시 정법위가 통일적으로 배치하였으며 모든 수련생이 이번 납치 계획에 포함됐다고 한다. 마침 나는 경찰국에 가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가야 하는가 안 가야 하는가? 만약 과거라면 자신은 상상해보면서 사람의 관념으로 분석했을 것이다. 사당은 이 일을 잡고 있고 나는 이 지역에서 첫 번째로 장을 고소한 사람이다. 사악이 나를 찾으려 해도 찾지 못해 안달이 났을 것인데 내가 가면 스스로 그물에 걸리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나는 정법시기 대법제자이고 내가 한 일은 사부님의 정법과 연결돼 있으며 어떤 사악과 구세력이라도 근본적으로 정법의 어떤 일에도 손을 댈 수가 없다. 갔지만 결과는 아무 일도 없었다.

때로 시련은 우리의 가상으로 인해 형성된다. 사상 속에 사악이 박해한다는 장을 형성했고 사악이 박해하도록 (사악한) 물질과 토양을 제공했다. 모든 관념과 집착심을 제거하고 순정하게 대법 일을 하면 사악과 모든 패물(敗物)은 두려움에 떨고 뒷걸음칠 것이다.

‘요행심리’는 나의 수련의 길에서 내내 하나의 장벽이었다. 이번에는 진정으로 법리상에서 인식하고 정정당당하게 장을 고소했으며 모든 것이 아주 순조로웠다. 사부님께서 초석을 깔아 놓으시고 다만 우리의 마음이 그 위치에 있기를 바라시는 것일 뿐이다.

2. 증오심이 자비심으로 바뀌자 압류당한 신분증을 되돌려 받음

사부님께선 말씀하셨다. “우리는 당신이 완전히 속인을 초월한 한 사람으로 되며, 완전히 개인의 이익을 버리고 전적으로 다른 사람을 위하는 사람이 될 것을 요구한다. 그 대각자(大覺者), 그는 무엇을 위하는가?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이다.” [1], 몇 년 동안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노력했지만, 문제에 봉착하면 법의 요구에 미치지 못했다.

어려서 사당 ‘투쟁 정신’이 주입됐고 사당이 대법을 박해한 후 끊임없이 우리에게 이런 요소를 강화했다. 이런 것을 근본적으로 인식하지 못했고 제거하지 못했다. 경찰과 검찰도 박해당한 자들일 뿐, 정법 중에서 구도될 중생이라는 것임을 법리상에서 알고는 있지만 ‘증오심’의 작용으로 경찰만 보면 사악이 생각나고 경찰과 사악을 연결했으며 그들을 보통 세인으로 대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자비심이 없었다.

특히 8년간이나 불법적으로 감옥에 감금됐기에 교도관에게는 호감이 없었고 그들을 구하려는 생각도 없었다. 후에 많은 법공부 환경을 개창(개척)했지만 법에서 수련해 낸 정념으로 개창한 것이 아니고 사람의 방법으로 개창한 것이며 심지어는 법 중에서 수련하여 제거해야 할 ‘투쟁철학’의 관념으로 개창된 것이다. 교도관이 법공부를 교란하면 그의 약점을 겨냥한다. 예를 들면 그들이 뇌물 수수한 사실을 수집하고 (어떤 죄수는 과시심으로 자신이 교도관에게 무슨 물건을 주고 돈을 얼마 줬는가를 말한다) 그들이 사법부와 감옥관리국 어떤 규정을 위반했는가를 수집한다. 교도관은 내가 감옥 당국에 고발할까 봐 나의 법공부와 연공을 거의 상관하지 않는다. 2년간 나는 매일 교도관 눈앞에서 온종일 법공부를 했고 교도관도 서서히 습관이 됐다.

후에 20여 세 새 교도관이 중대대 지도관으로 임명됐다. 나는 여전히 매일 온종일 법공부를 했다. 그는 노 교도관이 상관하지 않자 그도 못 본 체했다. 몇 번이나 사무실에 들어가도 보고하지 않고 교도관과 당당하게 말했다. (당시 쟁투심이 강했다) 그는 나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았는데 한번은 내가 없는 틈을 타서 몰래 나의 보존판(珍藏版-소장본) ‘전법륜’을 훔쳐갔다.

이 일이 발생한 후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았고 그 교도관에게 진상을 알렸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이 일을 내려놓지 못했다. 흑굴(감옥)에서 나온 후 이 일을 생각하면 그 경찰을 미워했고 속인의 어떤 방법으로 그를 혼내줘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심지어 그를 구타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후에 이런 생각은 점차 더 강해지고 때로 가부좌를 할 때도 이 일을 생각하며 법을 외워도 마음이 조용해지지 않았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이것은 ‘증오심’이었다. 비록 인식은 했지만 깨끗이 제거하지 못했다. 적당한 환경이 있으면 ‘증오심’은 다시 두드러져 나왔다. 얼마 전 새 신분증을 만들었는데 경찰서 서장이 압류했다. 이 소식을 듣고 제 일념은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지 않고 경찰서 서장에 대한 증오심이었다. 인터넷에서 ‘주민 신분관리법’을 찾는 한편 경찰서 서장이 출근 시간을 이용하여 자신의 장사를 하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상급에 경찰서 서장을 고발하려 했다. 공무원으로서 매일 출근하지 않고 자신의 장사를 돌봤는데 기율위원회에 고발해 공직에서 제명하게 해야 한다. 후에 생각을 바꿨다. 만약 직접 그를 고발하고 그가 처분받고 제명당하면 그에게 대법과 대법제자에 대해 정면적인 좋은 인식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가 구도될 수 있겠는가? 신분증이 압류됐으면 마땅히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안으로 찾아보니 ‘증오심’이 아직도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었다.

‘증오심’의 위험을 똑똑히 알고 이 변이된 생명을 제거하자 점차 자비심이 나왔다. 다시 중생을 보니 어떤 직업을 가졌든 모두 가련한 중생이고 우리가 구도할 생명이다. 인식이 제고되고 대법의 무한한 자비와 아름다움을 체험했으며 법에 대한 견정한 마음이 생겨나왔다. 자신의 관념을 바꾸자 압류된 신분증을 즉시 돌려받게 됐다. 정말로 사부님께서 초석을 깔아 놓으셨는데 우리의 마음이 제 위치에 있기만 하면 된다. 관념을 바꾸자 모든 것이 바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또 션윈 무용에서의 ‘선(善)의 힘’을 연상해봤다. 경찰이 대법제자를 구타해도 대법제자는 원망도 없이 대법책을 그에게 주자 경찰의 본성은 깨어났고 마지막에는 구도됐다. 이것이야말로 대법제자의 흉금이다. 정법 마지막 시기 사부님께서는 우리의 격차를 보도록 하셨다. 사부님은 특무(特務-비밀경찰)도 구도하시는데 우리는 ‘증오심’의 교란으로 인해 많은 중생을 구도하는 것을 지체했다. 사부님의 법리에 대조해보자 자신의 격차가 크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경찰도 사악 요소의 통제 아래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일을 한 것이다. 우리가 배후의 사악 요소를 제거하면 많은 경찰은 진상을 알게 될 것이다.

대법 수련은 아주 기묘하다. 우리가 수련에서 만나는 모든 문제를 안으로 찾으면 우리가 만나는 어려움과 관은 우리가 제고해야 할 요소가 있고 자신이 바로 잡아야 할 요소가 있다. 시련은 집착심을 겨냥해 오는 것으로 마치 서유기에서의 9981개 고험처럼 자신이 제고하면 시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주:

[1] 라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파룬따파의해-창춘(長春) 法輪大法(파룬따파) 보도원을 위한 설법’

문장발표: 2016년 1월 2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25/32266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