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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압 전 헤이룽장 여자감옥 경찰이 죄수에게 파룬궁 배우라고 강력히 권고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파룬따파는 사람의 도덕성 및 질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히 하는데 극히 뚜렷한 효과가 있다. 그래서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전, 헤이룽장 여자감옥 경찰은 몸이 좋지 않고 관리하기 어려운 죄수들에게 파룬궁을 배우라고 강력히 권고했고, 이는 수많은 죄수들이 철저히 회개해 좋은 사람이 되게 했다. 당시 헤이룽장 여자감옥에는 이미 여러 경찰과 80여 명 죄수가 파룬따파를 접촉했었다.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의 파룬궁 박해가 시작된 후 감옥에서는 더는 파룬궁 연마를 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폭정에도 두려움 없이 수련을 견지했다. 펑하이버(馮海波) 등 10여 명 사람은 잔혹한 시달림을 받고 감형해 주지 않는 등 박해를 당했지만 그녀들은 여전히 확고하게 파룬따파 수련을 선택했다.

펑수룽(馮淑榮)은 투옥된 후 옥경이 그녀 성격이 나빠 관리하기 어렵다고 여겨 대법을 배우면 좋게 될 것이라고 입을 때리면서 그녀에게 강제로 파룬궁을 연마하게 했다. 1999년 7월 이후, 옥경은 다시 그녀를 찾아와 ‘전향(수련 포기)’을 강요했다. 펑수룽은 말했다. “내가 연마하지 않을 때는 강제로 연마하라고 하더니 지금은 내가 대법 중에서 이득을 보게 되어 많은 나쁜 버릇을 고치고 진정으로 좋은 사람이 되니 당신들은 또 못하게 하는군요.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겠습니다. 이 대법을 나는 끝까지 연마할 겁니다!” 옥경은 할 말이 없었다.

가오궈보(高國波)는 인생 중 한 번 실수로 큰 잘못을 저질러 사형 집행 유예를 선고 받았다. 그녀는 헤이룽장 여자 감옥에 복역기간 파룬따파를 만났고 그때부터 환골탈태했다. 이하는 감옥에서의 그녀의 경험이다.

“사부님께서 나를 좋게 변하게 하셨다”

나는 생활이 불우해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초등학교 2학년밖에 다니지 못했다. 18살에 일찍 시집가서 2년 후 이혼하고 두 번째 남편은 결혼 반년이 되자 또 황천객이 돼 버렸다. 24살 때 나보다 10살이나 더 많은 산둥 사람에게 시집가서 아이를 갖게 됐다. 우리는 순우현의 편벽한 산 속에서 소를 키우고 목이버섯을 재배했다. 고향의 이웃집 여자아이가 동북으로 배우자를 찾아왔는데 우리 집에 머물렀다. 그런데 남편은 놀랍게도 이 17살 여자아이에게 손을 댔다. 우리 둘은 원래 늘 싸웠는데 이번에는 화가 치민 김에 망치로 그를 때렸는데 그만 실수해 그를 죽였다. 나는 자수해 사형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는데 그 해30살이었다.

1992년 3월, 나는 헤이룽장 여자감옥에 갇혔다. 높은 담장에 철조망, 워터우(窩頭, 옥수수떡)를 먹으며 날마다 해도 해도 끝없는 일을 했다. 나는 내 이 한 생이 끝장이라 생각하고 자포자기하면서 걸핏하면 사람을 때리고 잔인한 수단을 썼다. 이불 커버를 팔아서 담배를 사서 피웠고 백주(白酒) 6, 7냥이 뱃속에 들어가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고 끝없이 사람을 욕했다. 한 번은 내가 하루 종일 사람을 욕했는데 그 사람은 화가 나다 못해 심장병이 생겼다.

1998년 내가 37살 때 마음이 나쁘니 심장도 나빠져 자주 심장이 멈췄다, 또 뇌동맥 경화, 위장병, 모낭염, 과민성 피부염에 걸렸다. 감옥에서 일은 공짜로 해주지만 치료는 자기 돈을 써야 했다. 나는 돈도 없었다. 일은 잘해서 무기징역이 유기징역으로 됐지만 아직도 19년이나 남았다. 하지만 내가 그때까지 살 수 있을까? 그때까지 살 수 있다 해도 병들고 늙었는데 어디로 갈 수 있단 말인가, 누가 나를 받아줄 것인가? 나는 마음이 허전해 더는 감히 생각할 수 없었다.

정말 생각 밖으로 나는 하늘같이 큰 좋은 일을 만났다. 환자 감방에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정구이제(鄭桂傑), 류원잉(劉文英) 그들의 건강은 모두 아주 큰 효과를 보았다. 나는 그녀들을 따라 연공했다. 신체는 즉각 좋아졌고 그야말로 일신이 가벼웠다. 나는 지식이 낮다 보니 모르는 글자를 지니고 함께 공부했다. 사부님께서는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될 것인지 가르쳐주셨는데 내 마음은 창문이 열린 것처럼 밝아졌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더욱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 파룬궁은 불가의 수련 대법으로서 부처 수련을 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나 같은 이런 사람을 꺼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 나를 구도하려 하셨다. 나에게 출로가 생겼다!

헤이룽장 여자 감옥에서는 죄수들에게 옷을 만들게 했는데 초과 근무를 해야 했다. 오전 5시에 직장에 가서 작은 초과 근무를 하고 나면 밤 10시가 되고 큰 초과 근무를 하면 12시다. 돌아와서 우리 몇은 한 시간 법공부를 하고 연공한다. 책이 없어 나는 또 베껴야 했으므로 잠을 얼마 자지 못했다. 씻고 양치질 하는 시간도 다 아까웠지만 일은 지체하지 않고 열심히 했으며 품질을 보증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쁘게 보내도 온 몸에는 힘이 넘쳐 힘든 줄 몰랐다. 1999년 1년 8개월 감형을 받았다.

담배, 술을 끊었고 더욱이 사람을 때리지 않고 욕하지 않았다. 우리는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니 그렇게 할 수 있었다. 그 때 나는 생각했다. 일찍 법을 배웠더라면 나는 아무리 어떻게 해도 사람을 죽이지 않았을 것이고 죄를 짓지 않았을 텐데. 이 한 생에 법을 너무 늦게 배웠음을 알게 됐다.

대장, 간사도 모두 우리가 법을 배우는 것을 지지했다. 누가 몸이 나쁘거나관리하기 어려우면 경찰은 곧 권유한다. “당신은 파룬궁을 배우시오.” 그 때 감옥에는 180명이 대법을 배웠다. 그 때는 대법 책이 너무 부족했다. 밖의 수련생들이 책을 보내오면 그 기쁨이 비할 바 없었다. 한 사람에게 한 권의 ‘전법륜’이 차례대로 보내졌다. 1년을 배우니 모르는 몇 글자도 다 읽을 줄 알게 됐다.

1999년 7월, 장쩌민이 미쳐서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하루는 직장에서 숙소로 돌아오니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둘러싸고 보고 있다가 내가 들어서는 것을 보고 소리쳤다. “가오궈보, TV에 파룬궁이 나와.” 내가 보니 하는 말이 모두 좋은 말이 아니므로 몇몇 수련생을 불렀다. “그걸 들어선 뭘 해요, 가요, 연공하러 가요.”

이튿날 간사가 우리를 찾아와서 정부에서 연마하지 못하게 한다면서 또 보증서를 써야 한다고 했다. 나는 썼다. “정부는 정부고 나는 나다, 파룬궁이 좋다는 것을 나 자신은 알고 있다. 파룬궁을 나는 반드시 끝까지 수련할 것이다.” 우리 감방 구역 몇 사람도 모두 여전히 수련하겠다고 했다. 그 때부터 그들은 우리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그 때 밖의 대법제자들이 베이징 청원을 가기 시작했고 헤이룽장 여자감옥의 류씨 경찰은 베이징 청원을 갔다는 이유로 해직을 당했다. 복역 기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는 작은방에 갇혔고 때리고 욕하고 잔혹하게 박해를 당했다.

연공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지 않은 사람들은 독방에 수감됐다. 나오면 또 법공부하고 연공해 다시 갇히고 다시 나오면 또 연공했고 독방에서도 연공했다, 줄곧 이러면서 2000년에 와서야 겨우 풀어주었다. 독방에는 침대가 없고 겨울에는 난방도 없어 음랭했고 꽁꽁 얼었다. 게다가 수갑을 땅에 잠가 놓았고, 양말이나 신발도 신지 못하게 했으며, 배불리 먹이지 않았는데, 사흘에 소 눈알만한 워터우 한 개에 죽 반 국자만 주었다. 굶은 우리는 저마다 눈이 푹 꺼지고 목을 들 기운조차 없었다. 할 수 없게 된 우리는 단식을 했고 그들은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을 했다. 이후에는 우리를 굶기지 않는다면서 큰 대야에 밥을 담고서는 반드시 다 먹어야 한다고 했는데 배가 불러서 견딜 수 없었다. 때리고, 전기 충격하고, 얼리고, 약물을 주입하고 배를 불리고 어쨌든 온갖 방법을 다해 사람을 괴롭혔다.

2001년부터 밖의 파룬궁수련생이 잡혀 들어오기 시작했고, 2002년에는 몇 백 명이 왔는데 십여 명, 십여 명씩 안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함께 반 박해하면서 법공부와 연공 환경을 쟁취했다. 이렇게 잔혹한 박해 상황에서도 형사범으로서 대법을 배우는 사람이 아직 있었는데 내가 알기만도 우리 감방 구역에 7명이나 됐다.

과거에 사람을 욕하는 것이 나의 특기였는데 대법을 수련한 후 욕하지 않았다. 경찰은 나에게 대법을 욕하고 사부님을 욕하라고 강요했고 욕하지 않으면 곧 때렸다. 나는 결연히 욕하지 않았다. 하루를 모신 사부님을 평생 부친으로 섬긴다는데 사람이 부모를 욕할 수 있는가? 의사가 그의 병을 고쳐 주었는데 이 사람이 목숨을 살려준의사를 욕할 수 있는가? 내 사부님은 나를 진선인을 수련하는 좋은 사람으로 변하게 했는데 장쩌민은 나를 ‘전향’하라고 하니 어디로 전향한단 말인가? 입안 가득 거짓말만 하고 사부님을 배반한 나쁜 놈으로 전향하란 말인가? 나는 그러길 바라지 않는다. 누가 뭐라고 말해도 소용없으며 뼈가 부셔져도 소용없다.

내가 수련하며 ‘전향’되지 않았기에 옥경이 나를 몹시 괴롭혀도 나는 말하지 않았으며 일을 해도 그는 점수를 주지 않았다. 2008년 출옥할 때가 됐지만 감형해 주지 않아 나는 또 6년을 더 갇혀 있었다. 22년 전, 한 죄인으로서 머리를 숙이고 감옥 철문을 들어선 그때의 나는 존엄이 없고 철저히 스스로에게 실망했던 사람이다. 2014년 6월 27일, 나는 감옥을 나서면서 가슴을 펴고 고개를 당당히 들었다. 사부님께서는 나를 좋게 변화시키셨다. 마음이 좋아지고 신체가 좋아졌다. 나는 정정당당한 대법제자다.

문장발표: 2016년 1월 2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25/32265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