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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있는 두 단락 문장에서 나는 새 생명을 얻었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에 나는 꼬박 7년 마비되어 있었다. 심각한 폐결핵에 림프 결핵과 골 결핵은 줄곧 나를 얽매고 있었다. 또 늘 경련을 일으켰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죽기를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1996년 운 좋게도 파룬따파를 수련해 지금까지 거의 20년이 지났는데 나는 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점점 건강해지고 가정도 행복해졌다.

나는 이 세상에서 그 무엇으로도 사부님 은혜에 보답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또 어떠한 언어도 내가 사부님 은혜에 대한 감사를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나의 경험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사부님의 은혜는 하늘과 같습니다.”

‘신선을 보는’ 것은 어릴 적에 가장 행복했던 시간

어린 시절에 나에게는 별로 기쁜 일이 없었다. 내 위로 어머니는 이미 일곱 아이를 낳으셨기에 부모님은 내가 남자아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나는 또 여자아이였다.

내가 갓 태어나자할아버지는 점치는 책을 들고 대조해 보시고는 팔자가 불길하다고 하셨다. ‘상문성(喪門星)’, ‘소추성(掃帚星)’이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듣기 싫고 인정하기도 싫어서 시내에서 두 눈이 실명된 점쟁이를 모셔왔다. 이 점쟁이는 나를 “속죄하라고 신불이 하늘에서 인간세상으로 쫓아낸 것이기에 일생동안 고난이 많지만 좋은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그 후부터 어머니는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말씀하셨다. “내 이 못생긴 딸은 장래에 천서를 읽을 수 있어요!”

나는 못생겼고 어려서부터 신체가 허약해 힘든 일을 못 하기에 늘 가족들에게 무시를 당했다. 하다못해 내가 온종일 보이지 않아도 가족은 나를 찾을 생각을 안 했다.

농촌에는 집집마다 밭에 땔감 더미가 있는데 모두 옥수숫대를 쌓아놓은 것이다. 불을 땔 때 거기 가서 한 아름 안아오는데 횟수가 많아지면 땔감 더미에 굴이 생긴다. 나는 기분이 좋지 않을 때면 땔감 굴속에 누워 하늘을 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어떤 때는 몰래 울기도 했다. 어느 날 눈물을 흘릴 때 나는 눈물 속에서 아주 많은 신선을 보았다. 모두 소매가 넓은 고대 복장을 입었고 선녀는 하늘에서 날았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예뻤다. 나는 즉시 기분이 좋아졌다. 그 후부터 나는 기분이 좋지 않을 때마다 땔감 더미에 가서 신선을 보고 선녀를 보았다. 그때 나는 다른 사람도 이런 정경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이것을 신기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학교를 다닐 때 늘 논밭에서 기다란 흰 수염이 있는 노인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는 늘 소책자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마치 오늘날 대법제자가 세인들에게 진상소책자를 주듯이 말이다. 소책자 안에는 모두 신화 이야기였는데 나는 매우 즐겨 보았다. 내가 아는 신화 이야기는 아주 많이는 그때 본 것이었다. 매번 다 보고 나면 언제인지도 모르게 소책자가 사라졌다.

가정이 생기자 병마가 찾아오다

내가 26세 되던 그해 우리 집은 시내로 이사 왔고 30살 때 결혼했다. 결혼할 때 시댁에서 노동력과 건축 재료를 제공해 친정집 뒷마당에 새 집을 지어 주었다. 안팎으로 30제곱미터인데 동쪽에서 서쪽으로 문 앞 자그마한 마당까지 뒷마당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집이 작고 마당도 작아 자전거를 밀고 들어오면 후퇴해서 나가야 했다. 우리 새 집의 오른쪽에 3분의 2 정도 되는 공지는 다른 사람에게 팔았는데 그 집 사람들은 거기에 2층집을 지었다.

가정도 있고 집도 있어서 좋은 나날들을 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잇따라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 왔다.

83년도에 큰 아이를 낳았는데 딸이었다. 이때 나는 신체가 허약한 문제만이 아님을 느꼈다. 일을 조금만 하면 피곤해서 견딜 수 없었다.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는 내가 강하지 못하다고 했고 나는 이를 악물고 일을 했다. 하지만 스스로가 가장 잘 알았다. 내 신체는 이미 버티기 어려웠다.

2년 후 나는 둘째를 임신했다. 임신 5개월 때 직장에 일이 있어 자전거를 타고 갔다. 길에서 다른 자전거와 부딪쳤는데 심하진 않았다. 그 사람은 멈추지도 않고 가버렸다. 나는 자전거에서 떨어져 땅에 한번 쓰러졌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다만 다리가 좀 아플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오른쪽 다리는 말을 듣지 않았다. 임신 7개월 때 마비되어 거의 침대에 있었다. 가족은 아이를 지우라고 했지만 병원에서는 내가 수술대에서 죽을까 봐 수술해 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낳았다. 출산 전에 친정어머니는 아이를 낳으면 낫는다고 했다.

둘째 아이는 남자아이였다. 출산 후 친정어머니가 말씀하신 것처럼 낫지 않았고 오히려 철저히 마비됐다. 처음에 오른쪽 다리뼈가 참을 수 없이 아파 움직이지도, 건드리지도 못했지만 이후에는 아프지도 않고 아예 감각이 없어졌다.

둘째가 태어나고 큰 아이가 이제 3살인데 나는 마비가 되어 가정이 단번에 곤경에 빠졌다. 남편은 민영교사인데 월급이 아주 적었다. 어떤 때는 월급이 나오지도 않았다. 우리는 갓 결혼한데다 연이어 두 아이를 낳다보니 집에 저축이 하나도 없어 내 병을 치료할 돈이 아예 없었다. 나는 부득불 침대에 누워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말할 기운도 없이 죽기만을 기다리는 느낌이었다.

꿈에서 어떤 사람에 10년을 더 준다고 알려주다

둘째가 3개월 될 때쯤 어느 날 나는 꿈을 꾸었다. 경찰 차림의 두 사람이 집에 들어와 나를 보고 갔다. 그리고 또 두 여자가 들어오더니 나를 데리고 서남쪽을 향해 갔다. 간 곳은 아주 음침했다. 우리가 거기에 도착했을 때 경찰 차림의 두 사람도 거기에 있었다. 나와 그 두 여자가 금방 도착하자 큰 관리가 하나 오더니 경찰 차림의 두 사람을 보고 또 두 여자를 보더니 말했다. “당신들은 일단 가지 마시오. 내가 그녀에게 말을 몇 마디 물어야겠소.”

큰 관리는 나에게 물었다. “당신 시댁은 뭘 믿지요? 친정은 뭘 믿지요?” 나는 말했다. “시댁은 천주교를 믿어요. 친정은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제가 성경을 봤는데 시어머니가 보라고 하셔서 봤어요. 시어머니는 저에게 천주교를 믿으라 했어요.” 큰 관리는 또 물었다. “당신은 믿었나요?” 나는 말했다. “성경에서 한 말은 아주 좋아요. 사람들에게 좋은 것을 배우고 선해지라고 했지만 저는 정식으로 가입하지 않았어요.” 큰 관리는 또 물었다. “당신은 왜 정식으로 가입하지 않았지요?” 나는 말했다. “내가 보니 주를 믿는 그들은 성경에서 요구한 대로 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신도이지만 성경책에 요구한 대로 하지 않았지요. 그들은 말 따로 행동 따로이기에 그들과 함께 하고 싶지 않았어요.” 큰 관리는 말했다. “그럼 당신은 장래에 어떻게 할 건가요?” 나는 말했다. “장래에 저는 가장 좋고가장 좋은 법문을 찾을 겁니다. 천하에 한 번도 있어본 적이 없는 그런 법문 말입니다.” 그는 말했다. “그럼 당신은 신심이 있나요?” 나는 말했다. “저는 신심이 있어요.” 그는 말했다. “좋아요, 당신에게 10년 시간을 주지요.”

말을 마치자 그는 경찰 차림의 두 사람과 두 여자에게 말했다. “그녀의 머리카락을 풀어주시오.” 앞서 그들은 이미 내 머리카락을 아주 높게 틀어 올렸다. 두 여자는 내 머리카락을 풀어주고는 나를 돌려보냈다.

그들이 데려갈 때 유유히 떠서 갔는데 돌아올 때도 유유히 떠서 돌아왔다. 금방 돌아오자 깨어났다. 눈을 뜨고 힘껏 생각했다. ‘내가 조금 전에 어디에 갔더라?’

날이 밝을 무렵에 어머니가 오셨다. 나는 어머니에게 꿈 얘기를 했다. “그 사람은 키가 크고 희고 깨끗해요. 인간 세상의 옷을 입었는데 흰 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싱글벙글 웃었어요.”

내가 어머니에게 꿈 얘기를 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갑자기 말씀하셨다. “너 어제는 거의 안 될 것 같더니 오늘은 어떻게 말할 힘이 생겼니?” 나는 말했다. “그는 나에게 10년 시간을 준다고 했어요. 아마도 나에게 아직 10년의 수명이 있겠지요.” 그 꿈이 있은 후 시어머니는 돈을 빌려 나를 병원에 보냈다.

의사가 검사해 보니 내 신체 안의 결핵균은 표준을 훨씬 초과해 정상인의 몇 십 배나 됐다. 오른쪽 엉덩이뼈는 이미 괴사해 바꿔야 했다. 현지 병원에서는 전혀 이런 수술을 해 본적이 없었지만 집에 돈이 없어 큰 병원에 보낼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남편과 상의해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다. 죽기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낫겠다고 생각했다.

87년 1월 28일, 나는 수술대에 올랐다. 의사는 내 오른쪽 무명뼈(관골)에서 뼈 한 조각을 취해 엉덩이 뼈모양을 만들어 맞춰 넣었다. 수술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의사는 내 병을 치료해 이름을 날렸고 대도시로 진급해 떠났다.

수술한지 3년 후 또 마비되다

나는 100일 입원해 있었고 시어머니가 와서 아이를 돌봐주었다. 이후에 시어머니는 집으로 돌아가셨다. 우리 집이 너무나 작은데다가 주위 집이 모두 우리 집보다 높아 집안은 매우 어두웠고 시어머니도 계실 곳이 없었다. 이웃은 자주 몰래 우리 집에 대해 논하곤 했다. “청룡은 아무리 높아도 두렵지 않지만 백호가 머리 하나 높을까봐 두렵군.” 뜻은 우리 집 풍수가 완전히 주위 높은 집들에 의해 막혔다는 뜻이다. “이 집 사람들이 살아날 수 있을까?”

시어머니가 떠날 때 큰 애는 3살이고 둘째는 겨우 7개월이었다. 나는 매일 침대에 누워 자신이 낫기를 고대했다. 나는 두 아이를 옆에 끼고 큰 아이에게 알려주었다. “얘야, 이렇게 소리치거라. 하느님이시여, 우리 엄마가 빨리 낫게 해 주세요. 부처님이시여, 우리 엄마가 빨리 낫게 해 주세요. 낫거든 내 동생을 보살피게요.” 내가 이렇게 가르치면 큰 애는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큰 소리로 외친다. 둘째는 아직 말할 줄 모른다. 누나가 외치는 걸 듣고 지붕을 향해 힘껏 소리친다. “어-, 어-.” 우리 셋은 매일 이렇게 외쳤다. 백일 후 나는 천천히 일어나 벽을 짚고 걸음을 익혔다. 앞뒤로 휘청거려 잘 걷지 못했지만 밥은 지을 수 있게 됐다.

내가 퇴원할 때 의사는 남편에게 부탁했다. 수술은 비록 성공했지만 요양해야 한다고 했다. 일을 하면 안 되고 또 적당히 영양보충도 해야 수술해 바꾼 뼈 주위에 새 근육이 자라나 뼈를 감쌀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집안 상황이 원래도 안 좋은 데다 수술로 많은 빚을 졌기에 의사의 요구를 전혀 지킬 수 없었다.

남편은 출근해 돈을 벌어야 했기에 집에서 나를 돌볼 수 없었다. 집안은 비좁아서 외부인이 있을 수도 없었는데 설사 자리가 있다고 해도 누가 시간이 있어서 나를 돌봐주겠는가. 친척 친구들은 모두 출근해야 하고 모두 자신들의 일이 있는데 누가 와서 들여다봐도 시간이 제한되어 있었다. 빚도 못다 갚아서 보모를 쓴다는 것도 불가능했다. 대다수 시간에 집에는 나와 두 아이만 있을 뿐이었다. 너무 가난해 툭하면 밥도 못 먹었다.먹을 것이 없을 때가 더 많았다.

우리 집 앞마당에 할머니가 한 분 있는데 딸의 아이를 봐주러 왔다. 마음이 매우 고와 우리 집이 불쌍한 것을 보고 자주 자기 집의 남은 음식을 우리에게 가져다주곤 하셨다. 할머니는 원래 피혁공장에서 일 했는데 두 손이 모두 산에 녹았다. 왼손은 손바닥만 남고 오른손은 손가락 두 개만 남았는데 새끼손가락과 무명지였다. 그는 딸네 아이를 봐주러 왔는데 역시 쉽지 않았다. 매번 밥을 가져다주려면 그녀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두 손이 모두 불구인데다 한 손은 아이를 안고 한 손은 밥그릇을 들었는데 아이가 움직이는 바람에 몇 번이나 그릇이 땅에 떨어졌다. 우리에게 밥을 가져다주느라 그릇을 7, 8개나 깼다.

할머니가 밥을 가져다주는 시간이 길어지자 다른 이웃들도 보고 우리에게 가져다주기 시작했다. 찐빵 몇 개를 주는 이가 있고 사과를 주는 이도 있는데 늘 주는 것은 아니었다. 생각날 때 시간이 있으면 좀 주었다. 둘째는 내가 입원해 있을 때까지만 해도 우유를 먹었는데 시어머니가 우리 집에서 떠나자 우유는 끊겼다. 우리가 뭘 먹으면 아이도 뭘 먹었다.

두 아이가 어려서 어떤 때는 칭얼거리기도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 준다. “하늘에 신이 있고 부처가 있으며 또 천궁이 있단다. 그들은 큰 구리 망치를 들고 몸에 구리 방울과 목걸이 등을 걸었는데 누가 나쁜 일을 하면 구리 방울을 두드린단다. 그럼 나쁜 사람은 놀라서 숨을 데가 없어지는데 땅이 갈라지면 아래로 떨어진단다. 우리는 크거든 절대 나쁜 일을 해선 안 된다. 그 신과 부처님들이 마음을 놓게 해야 한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은 칭얼대지 않았다.

내가 인간 세상에 와서부터 부처님을 믿으면 좋다고 들었지만 세상에 도대체 진짜 부처님이 있는지 몰랐다. 내가 생을 마감하기 전에, 아직도 인피(人皮)를 쓰고 있는 동안에, 하다못해 숨이 남아있을 때, 또는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 그 한순간이라도 진짜 부처님을 볼 수 있다면, 진짜 부처님을 찾을 수 있다면 나는 인피를 괜히 쓰지는 않은 셈이다. 나도 자주 외친다. “진불(眞佛)이시여, 어디에 계십니까. 저는 반드시 당신을 찾을 겁니다. 당신을 찾지 못하면 저는 죽지 않을 겁니다.”

수술하고 3년 후 의사의 요구대로 휴양하지 못해서 내 오른쪽 다리는 또 감각이 없어졌다. 원래 가벼웠던 왼쪽 다리도 철저히 지각이 없어졌다. 나는 돌아누울 능력도 없어졌다. 철저히 마비됐다.

처음 수술할 때 의사는 나에게 골 결핵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알려주었다. 나 자신도 결핵균이 이미신체 내에서 범람했다는 것을 알았다. 겉으로 보기엔 상처가 없고 다만 벌겋게 붓고 아파서 건드리지 못하지만 실제로 안의 살은 이미 썩은 것이다. 나는 이미 치료할 가치가 없어진 것이다. 집에서도 나를 병원에 보내주긴 불가능했다. 처음 수술시 진 빚을 아직도 다 못 갚았는데 누가 또 돈을 우리 집 밑빠진 독에 붓겠는가! 죽음은 나로 말하면 이미 시간 문제였다.

철저히 마비된 후 둘째는 영양불량으로 심각한 빈혈에 칼슘부족으로 생명이 위급했다. 나는 또 맹장염이 갑자기 생겨서 부득이 수술하게 됐다. 나는 둘째와 함께 병원에 입원했다. 병상에 누워 뒤치락거리며 남편에게 너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시집오던 날부터 그들에게 좋은 일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속으로 하늘에게 물었다. ‘내가 정말로 다른 사람이 말하는 집안을 몰락시키는 여인인가요? 정말로 상문성, 소추성이란 말인가요? 정말로 어느 천법을 위반해 인간 세상에 보내져 속죄하는 것인가요?’

그 후 7년 동안 나는 마치 딱딱한 판처럼 꼿꼿이 침대에 누워있었다. 말라서 해골처럼 됐는데 한 치 좀 넘는 두께밖에 되지 않았다. 피부는 주글주글해 마치 물고기 비늘 같았고 오래 누워있자 등에 욕창이 생기기 시작했다. 등이 다 헐어서 하나로 이어져 파리가 들끓었다. 남편이 집에 없을 때는 대소변을 아이가 받아 냈는데 어려서 깨끗이 씻지 못했다. 집안에 냄새가 특별히 심해서 사람들은 감히 집안에 들어오지 못했다. 등에서 나오는 고름은 아래의 요를 뚫고 조금씩 아래로 새어 내려갔다. 주민센터에서 무슨 일이 있어서 누가 통지하러 오면 코를 막고 말을 마치고는 얼른 간다.

우리 집 뒤 이웃은 늘 우리 집 벽 밑으로 구정물을 붓는다. 겨울이면 얼음이 얼어서 처마와 한 자 차이밖에 안 된다. 봄이면 녹아서 집안에서 벽을 누르면 안으로 물이 흘렀다. 몇 년 사이에 기초가 허물어져 집이 아래로 내려 앉아 집안에 있다가는 어느 날에 깔려 죽을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침대에서 숨 쉬는 것 말고는 죽은 사람과 별다른 점이 없었다. 다른 사람이 가져다 준 음식도 못 먹을 때가 자주 있었다.

한번은 셋째 언니가 아이에게 감자 한 바구니 들려 보냈다. 10근은 넘어 보였는데 주방에 놓았다. 사람이 금방 떠나자 쥐가 출동해 단 하루 만에 사라졌고 갉아먹기까지 해서 지저분해 졌는데 한 알도 남지 않았다.

작은 할머니는 마을에 사시는데 어느 해 팥빵을 좀 가져왔다. 우리 집 마당에 있는 독을 깨끗이 씻어서 팥빵을 넣고 뚜껑을 덮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팥빵을 꺼내고 난 후면 뚜껑을 잘 덮고 벽돌을 올려놓으라고 당부했다. 바람이 불면 모래 먼지라도 들어갈까 봐였다. 그날 할머니가 금방 떠나자 돼지가 마당에 들어와 팥빵이 담긴 독 옆을 뒤지자 독이 넘어졌다. 돼지는 팥빵 위에서 짓밟고 배설까지 해서 완전 엉망이 됐다.

나에게 동창이 한 명 있는데남편은 공무원이었고 나를 많이 생각해주었다. 그녀는 자주 남방에 가는데 해마다 나를 보러 왔다. 마비된 동창을 생각해 옷과 먹을 것을 많이 가져오곤 했다. 한번은 그녀가 또 옷과 먹을 것을 많이 가져왔다. 아이들이 돌아오면 먹으라고 음식점에서 사온 생선을 부뚜막에 놓았다. 그런데 그녀가 가자 돼지가 또 왔다. 입으로 한번 젓자 음식이 모두 땅에 떨어져 돼지는 실속 있게 잘 먹었다. 내가 아무리 소리쳐도 돼지는 가지 않았다.

전후 10년 동안 처음 수술할 때 진 빚과 두 아이, 그리고 가망 없는 나의 생명은 세 개의 큰 산처럼 남편을 눌러 숨이 막히게 했다. 누가 우리 집을 봐도 마치 하늘이 무너진 것 같았다. 남편의 삶은 극한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언제 생명이 종점에 닿아야 그 때 끝나는 것이었다.

책에 있는 두 단락 문장에서 나는 새 생명을 얻었다

1996년 딸은 13살이 됐고 아들도 10살이 됐다. 그해 5월 초파일 두 아이는 상의했다. “엄마를 데리고 남지(南地)로 산책하러 가자.” 아이들은 손수레를 빌려 힘을 좀 쓰더니 나를 수레에 태웠다. 그때 나는 말라서 뼈만 남았다.

두 아이는 나를 남지(도시 남쪽의 한 공터)로 밀고 갔다. 아이들은 나물을 캐고 나는 차에 누워 있었다. 그러다가 남쪽에 있는 절을 보았다. 나는 또 생각났다. ‘이 세상에 도대체 진짜 부처님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나는 이 지경이 됐는데 진짜 부처님을 찾지 못하면 안 죽을 거야. 지금까지 나는 아직 진짜 부처님을 못 봤는데 예전에 구호를 괜히 외쳤단 말인가?’ 다른 사람들은 내가 진짜 부처님을 찾으려고 외치는 것은 최후의 발악이라고 했다.

나는 힘껏 생각했다. ‘어디에 가서 답을 얻을 수 있지? 도대체 진짜 부처님이 있을까 없을까? 10여 년에 진짜 부처님을 보지도 못했는데 생명은 끝까지 다 왔다.’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억제하지 못하고 온 몸의 힘을 다해 소리쳤다. 이것저것 생각하지도 않고 크게 외쳤다. “진짜 부처님, 어디에 계십니까?” 돌아오는 길에서 두 아이는 말했다. “엄마 좀 있다가 돌아가거든 외치지 말아요. 다른 사람들이 듣고 웃어요. 우리 둘은 괜찮지만요.” 아이들은 나를 밀고 돌아와 당기고 안고 해서 침대에 올려놓았다.

2년 전 나에게 밥을 갖다 주던 그 할머니의 딸은 이사를 가고 한 할머니가 새로 이사를 왔다. 이웃들은 이 할머니와 왕래하기를 꺼려했다. 그녀가 좀 어리버리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기관지염이 있어 온종일 목을 움츠리고 있는데 목이 거의 안보일 지경이었다. 여름에 문을 나서도 목도리로 코를 가려야 했다. 바람을 맞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누구도 그녀와 아는 체하기 싫어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늘 우리 집에 왔는데 집안에 냄새가 나는 것도 꺼려하지 않았다. 본래 나는 옷을 재단할 줄 알기에 그녀는 늘 어른이 입어 낡아진 옷을 가져와 나에게 아이 옷으로 고쳐달라고 했다. 그녀가 옷을 내 가슴에 펴 놓으면 나는 가슴 위에서 그리고 그녀는 내가 그린대로 재단했다. 이렇게 우리 둘은 아주 사이좋게 지냈다.

그날 우리 셋이 금방 남지에서 돌아오자 그 할머니가 왔다. 보자마자 소리쳤다. “아이고, 아이고, 마침 돌아왔구만. 나는 벌써 몇 번이나 왔다 갔네. 이 책을 좀 보게나, 이 책을 좀 봐. 진짜 좋아. 자네 이 책을 보면 목을 매 죽으면 안 돼. 나는 금방 얻어서 아직 못다 봤어. 자네 이 책을 보면 확실히 도움이 될 걸세.”

그때 나는 폐결핵뿐만 아니라 림프 결핵, 골 결핵에 경련까지 일으켰다. 경련을 일으켜 멍청해졌다.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마치 못 알아듣는 것 같았고 머릿속에 이것저것을 넣고 싶지 않았다. 할머니가 나에게 책을 보라고 했지만 나는 손을 저었다. 가져가라고 했다. 세상에 어디 그렇게 좋은 책이 있는가. 나는 믿지도 않았다. 그녀는 말했다. “자넨 이 지경이 됐는데 누가 자넬 속이겠는가?! 내가 자넬 속여서 뭘 하겠는가? 한번 보게나. 마음에 맞으면 보고 맞지 않으면 다시 나에게 돌려주면 될게 아닌가?” 내가 생각해 보니 옳은 말이었다. 그럼 봐야지.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학교 다닐 때 성적은 줄곧 좋았다. 글을 한 번 익혔는데 한 글자를 볼 수 있으면 한 글자를 보고 두 글자를 볼 수 있으면 두 글자를 보자. 할머니는 나에게 천천히 보라고 하면서 시간을 제한하지 않았다. 나는 책을 보기로 했다.

나는 먼저 ‘논어’를 보았다. 막 두 단락을 보았는데 가슴이 뜨끔했다. 또렷한 일념이 머릿속에 나타났다. ‘부처 수련을 한다는 것은 진선인(眞善忍)에 동화하는 것이구나. 진선인은 우주의 특성이다. 우주는 또 특성이 있다. 줄곧 우주는 자연현상이라 생각했는데, 바로 공기 같은 그런 것 말이다. 그러나 생각 밖에 그는 또 그의 특성이 있구나.’

나는 반복적으로 ‘진선인은 우주의 특성이고 부처 수련은 바로 진선인에 동화하는 것이다’를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몸에 마치 전기가 통한 것처럼 스멀거리는데 매우 편했다. 인간 세상에 와서 한 번도 이렇게 편해본 적이 없이 너무너무 좋았다! 편해지자 나는 눈을 감았다. 책을 아직도 앞가슴에 펼쳐 놓은 채로 잠이 들었다.

잠이 들자 나는 자신이 하늘에 올라간 것 같았다. 그 하늘은 매우 매우 파랬다. 별은 나를 보고 눈을 깜빡깜빡했는데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하늘 남쪽에 큰 부처님이 한 분 나타났다. 내가 얼마나 멀리 볼 수 있으면 부처님은 그만큼 컸다. 그 부처님이 하시는 말은 입체적인 소리였는데 하늘땅을 진동했다. 그리고 메아리도 있었다. 내가 한참 부처님을 보고 있을 때 나의 눈길 아래쪽에 까마득히 많은 사람들이 보였는데 나를 비웃고 있었다. “험상궂게 생겨가지고 몸은 흐물흐물해서 마치 물고기 비늘 같은 게 수련한다고?” 나는 그들을 보았다. 여자들은 모두 원피스를 입었고 입술을 빨갛게 발랐으며 힐을 신고 있었다. 남자들은 허리에 휴대폰을 차고 모두 나를 비웃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그들을 보지 말고 얼른 큰 부처님을 봐야지. 좀 있다가 큰 부처님이 떠나실라.’

내가 아직 꿈속에 있는데 아이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깨어나서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아이는 말했다. “엄마, 이전에 엄마는 계속 잠을 못 잔다고 했는데 오늘은 어떻게 잠이 들었어요? 발음도 왜 이렇게 좋아졌어요?”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는 하늘에 올라가서 큰 부처님을 뵈었단다.” 나는 꿈속의 일을 아이들에게 말했다. 두 아이는 서로 쳐다보더니 말했다. “우리 엄마가 발음이 똑똑해지고 정신도 좋아졌어. 우리 둘은 확실히 꿈을 꾸는 거야. 진짜가 아니야.”

두 아이는 꿈인지 아닌지 실증하려고 앞마당에 외숙모를 찾아갔다. “우리 엄마를 보세요. 왜 나았어요? 말도 할 수 있는데 진짜인지 모르겠어요. 우리 둘이 꿈을 꾸는 건 아니지요?” 아이들 외숙모는 말했다. “헛소리 하지 마.” 아이들은 끌고 당기며 외숙모를 집에 데려왔다. 보니 내가 침대 모서리를 붙잡고 땅에 서 있었다. 비록 잘 서있지는 못하지만 땅에 내려설 수 있게 됐다. 아이 외숙모는 깜짝 놀랐다. 내가 말라서 이 지경이 된데다 또 7년이나 마비되어 있다가 갑자기 바닥에 서 있으니 얼마나 놀랄 일인가! 그녀는 놀라서 쏜살같이 도망쳐 버렸다. 그녀가 달리자 마당의 닭들이 난리가 났다. 온데 날아다니며 이웃들을 놀라게 했다.

많은 이웃이 나를 보러 건너왔다. 나는 방안에서 침대 모서리를 붙잡고 이동했다. 침대 모서리가 없는 곳은 벽을 짚고 주방으로 나왔다.

바로 이때 남편이 돌아왔다. 보니 우리 집 문 앞에 사람이 많이 모인지라 아마도 내가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웃들은 그를 보자 모두 말했다. “봐요. 당신 아내를 보세요, 무슨 일이지요?” 남편은 말했다. “그건 빠르고 늦는 일이라 다 예상했어요.” 이웃은 말했다. “죽은 게 아니라 나았어요!” 그는 말했다. “아, 그런 거짓말을 해서 뭘 해요?!” 그는 그들이 자신을 위안하는 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예전처럼 자전거를 후진해 마당에 들여다 벽 밑에 세우고 집안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주방에 서 있자 그는 겁이 나서 주방문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한 걸음에 창문에 올라 창문으로 집에 들어왔다.

그는 한 눈에 침대 위의 ‘전법륜’을 보고 들어서 보기 시작했다. 10여 페이지를 보고 말했다. “나는 당신이 이 책을 봐서 나은 걸 알아요. 이 책의 작가는 일반 작가가 아니니 당신은 이 책을 계속 봐야 해요. 내려놓으면 안 돼요. 병이 나았다고 그만두면 안 돼요.”

이후에 내가 그에게 그가 한 말을 외워서 말하자 그는 말했다. “나도 당시에 내가 뭘 말했는지 모르겠소.”

나는 다만 ‘전법륜’ 중의 ‘논어’ 두 단락만 읽었을 뿐인데 일어섰다. 이 ‘전법륜’이 천서가 아니라 말인가? 정말 어머니가 말씀하신 것처럼 나 이 추녀가 정말로 천서를 읽었다! 내 신체가 좋아지자 어머니는 매우 감동했다. 책속의 대법 사부님의 사진을 보면서 말씀하셨다. “당신이 바로 내 딸이 찾으려는 진짜 부처님이시군요!” 말하면서 절을 하셨다.

내 왼쪽 아랫배 안에 혹이 하나 있는데 밖에서 손으로 만질 수 있다. 내가 연공한지 14, 15일 될 때, 한참 미싱으로 아이들에게 옷을 고쳐줄 때 배가 아래로 힘껏 당기는 듯 했다. 마치 아이를 낳듯이 말이다. 나는 얼른 화장실로 달려갔지만 공중 화장실까지 가기는 너무 늦어 집 한쪽으로 달렸다. 거기에 변기가 있었다. 거기에 도착하자마자 무슨 물건이 바지 속에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을 꺼내보니 찐빵만큼 컸다. 쇠꼬챙이로 그것을 절개하니 안에는 층층이 겹이 있었는데 마치 물고기 아가미를 한데 압축시켜 놓은 것 같았다. 딱딱하고 층 사이에 또 고름이 있었다. 다 보고 그것을 변기에 버렸다. 남편이 퇴근해 오자 나는 배 안의 혹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말했다. “애석하게도 당신이 버렸구만. 아니면 병원에 가져가서 실험할 수 있었는데 양성인지 악성인지 말이요.”

그 할머니가 나에게 빌려준 책을 나 혼자 볼 수만은 없었다. 돌려줘야 했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사부님, 저는 그렇게 이기적일 수 없어요. 저도 이 책을 갖고 싶어요. 무슨 큰 재산이나 부를 구하지는 않아요. 이 책만 필요합니다.”

이후에 그 할머니는 다른 한 수련생집에 연공하러 가서 나의 일을 말했다. 그 수련생은 나에게 ‘전법륜’ 한 권을 모셔 주었다. 책을 모셔 왔는데 줄 돈이 없었다. 남편이 번 돈은 빚도 못다 갚았는데 남편에게 책을 모시겠다고 돈을 달라고 할 수 없었다. 나는 또 사부님께 요청했다. “사부님, 제가 돈을 좀 벌게 해 주세요. 저는 책값을 주어야 해요. 그 할머니가 진심으로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해도 모두 이 책을 공부하는 사람인데, 모두 수련하려는 사람인데 왜 남에게 책을 달라고 합니까. 그가 명리를 담담하게 보고 나의 부처 수련을 지지한다고 해서 내가 기쁘게 이 책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나는 계속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날 문 앞에 머리카락을 사는 남방 사람이 와서 소리쳤다. “머리카락 받습니다, 머리카락 받습니다.” 나는 단번에 생각났다. 내가 처녀 적에 잘라놓은 긴 머리채가 아직 있었던 것이다. 그 사람은 8위안을 주겠다고 했다. 나는 말했다. “12위안이었으면 좋겠는데요. 12위안이면 나는 부처 수련하는 책을 한 권 모실 수 있지요. 다른 사람이 모셔 준 건데 아직 돈을 주지 않았어요.” 그 사람은 말했다. “그럼 12위안을 드릴게요.” 나는 말했다. “그럼 내가 당신의 것을 빚지는데 당신의 것을 빚질 거면 차라리 그 할머니에게 지는 게 낫지요. 할머니 것은 이후에 갚을 수 있지만 당신 것은 갚을 수가 없어요. 갚지 않으면 옳지 않아요.” 그 사람은 말했다. “사실 당신의 머리채는 20위안도 됩니다. 내가 8위안이라 한 것은 돈을 많이 벌려고 당신을 속인 겁니다. 당신이 부처 수련하는 책을 사려 한다면 내가 지지할게요. 4위안을 더 드리지요. 당신은 나에게 빚지지 않았습니다.” 이리하여 나는 책값을 할머니에게 돌려주었다.

내가 ‘전법륜’을 펼친 후부터 내 신체는 한 번도 경련을 일으키지 않았고 분석 능력도 있었으며 흐리멍덩하지 않았다. 온 몸의 병이 모두 나은 후 나는 남편을 대신해 반년 동안 수업했고 교육국 지도자의 칭찬을 받은 적도 있었다. 이 일로 어떤 사람은 농담했다. “경련을 일으키던 멍청한 아줌마가 연공하더니 우수 교사가 됐네!”

99년 박해가 금방 시작됐을 때 어떤 사람이 우리 집에 와서 뒤지기는 뭣하고 해서 나에게 책이라든지 없냐고 물었다. 나는 말했다. “당신들이 어떤 각도에서 우리 집에 왔던지 나는 당신에게 알려줄게요. ‘파룬따파는 좋습니다(法輪大法好).’ 나에게 ‘전법륜’ 한 권이 있지만 당신들은 가져가면 안 됩니다. 당신이 가져간다면 내 목숨을 가져가는 것과 같아요.”

나는 그들에게 이 책을 얻은 경과를 말해주었다.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은 이 대법이 없으면 나의 오늘이 있겠습니까? 오늘 내가 사건의 경위를 똑똑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전법륜’이 나의 지혜를 열어 주었기 때문이지요. 이 책의 내포가 얼마나 박대하고 정심합니까! 당신은 정말이지 좋은 일을 좀 해야 합니다!” 그들은 갔다. 책을 가져간 것이 아니라 무량한 감동을 가져갔다.

맺음말

내가 꿈속에서 10년 시간을 더 준다는 것을 알고서부터 법을 얻는 그 날까지 두 달이 모자라는 10년이었다. 나는 안다. 사부님께서 내가 법을 얻기 10년 전에 지옥으로부터 나를 건져 왔다는 것을. 그 꿈속의 큰 관리는 바로 사부님이셨다.

지금 20년이 지났다. 나는 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반대로건강하고 가정은 따뜻하고 행복했다. 나와 남편은 서로 존경하고 두 아이는 성장하여 어른이 됐으며 자기 힘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온 식구는 모두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알고 있다. 모든 친척들도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알고 있다.

나는 어떻게 사부님께 감사를 드리고 대법에 감사를 드려야 할 지 모른다. 다만 사부님의 은혜가 하늘과 같고 사부님께서 나와 우리 가정에 하늘같은 은혜를 주셨다는 것을 안다.

문장발표: 2016년 1월 9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신수련생마당>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한 이야기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9/32191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