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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말하지 못하게 하다’에 대해 분석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수련생을 도와 병업관을 넘길 때 나는 공통적인 문제를 발견했다. 바로 모두 ‘남을 말하지 못하게 하는’ 명을 구하는 마음이 있는데 이 문제는 수련인의 심성을 제고함에 매우 큰 저애가 있고, 사부님께서도 설법 중에서 중점적으로 이 문제를 언급하셨다. 아래에 나의 인식을 글로 적어 수련생과 교류하고 공동으로 제고했으면 한다!

가족 내의 적잖은 수련생 혹은 병업관을 장기적으로 넘지 못하는 수련생은 모두 한 가지 문제가 존재한다. 바로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 문제를 말하기만 하면 즉시 구실을 대거나 화제를 돌리기에 계속하여 말할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는, 말해 주는 사람은 대부분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기에, 상대방은 무시당하는 느낌이 강화되며, 자신은 좋은 마음으로 감당하고 있으며 상대방은 이에 대해 반드시 감지덕지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이런 감당하는 기점은 자아 표준의 기초에서 세워진 것이다. 게다가 상대방은 양심이 없다고 여기거나, 좋은 마음으로 말해주는데도 따라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정작 상대방이 자신의 진실한 소원이나 태도를 밝힐 때 듣지 못한다. 가족 내의 수련하지 않는 많은 사람은 이런 악성 순환에 대해 모르며, 서로 원망한다. 한쪽의 입장은 상대방이 좋기를 바란다고 여기나, 이를 받아들여야 할 수련인은 이런 이해를 받지 못하고 존중받지 못하는 고통을 참아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수련인이 장기적으로 이런 가정 관계에 처한다면 곧 마난이 오게 된다.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사람에게 말하지 못하게 하고, 비평하지 못하게 하며, 설사 잘못을 했는데도 말하지 못하게 한다면, 이것이 어떻게 되겠는가? 이것이 어디 수련인인가? 당신이 설사 대법의 일을 하고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해도 여전히 수련인이 하는 것이 되어야 하며, 속인이 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심지어 일부 사람은 잘못을 저질러, 다른 사람이 선의로 제기하는데도, 그는 모두 회피하려 한다. 잘못이 있기만 하면 해명(解釋)을 하고, 눈을 멀쩡히 뜨고 거짓말하며, 심지어 잘못만 하면 해명을 하고 객관적인 원인을 찾는다. 속인보다도 못한 이런 상태가 그래도 대법제자의 행위인가? 수련인은 다른 사람의 비평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책에서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래도 어떤 수련생은 빙빙 둘러서 책임을 밀어내고, 문제가 있기만 하면, 이 면의 원인이 아니면, 바로 저 면의 원인이라고 한다. 정말로 원인이 없을 때면 하나를 만들어내기까지 하며, (뭇 사람 웃음) “당신들은 모르는데, 그 당시에는 어떤 정황이었다.”라고 하면서 여차여차하다고 한다. (뭇사람 웃음) 이건 그나마 비교적 좀 나은 사람에 속하고, 심각한 사람은 조금도 건드리지 못하게 한다. 이런 일이 있을 때면 당신들은 신이 당신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구세력은 즉시 당신을 기억해 두는데, 당신은 이 한 차례 표현으로 그것들에 빌미를 잡혔는바, 그럼 당신은 번거로움을 기다려라. 이 방면에서 心性(씬씽)이 제 위치에 이르지 못하면, 큰 번거로움을 조성할 수 있으므로, 주의하라.” [1]

기 센 성격을 장기적으로 고치지 않으려 하는 사람은 병업관을 넘기 매우 어렵다. 마는 이러한 것을 좋아하며, 그것을 불러온 것과 같다. 무릇 이런 것이면 골칫거리인 것으로 반드시 마성을 조금씩 닦아내야만 비로소 병업의 가상에서 걸어 나올 수 있다.

나는 관찰과 사고를 거친 후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인식하게 되었다. 무릇 남이 말하지 못하게 하거나, 표면으로 듣기는 하나, 진정으로 받아들이거나 고치려 하지 않는 사람은 대부분 좋지 않은 자신을 직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지나간 수십 년의 고통이 모두 자신의 낮은 심성과 전생의 업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받아들인다면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형상을 전반적으로 부정하는 것과 같은데, 사실 그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것으로 앞으로 그 고통을 말할 상대도 없을 것이다. 사실 대법 수련자는 신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것으로, 마음에 무엇을 담고 있는지는 수련인과 속인이 본질에서 구별되는 점이다.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강조하지 마라. 어떤 사람은 줄곧 자신이 옳다고 강조하는데, 당신이 옳았고 당신이 잘못이 없다 한들, 또 어떻단 말인가? 법에서 제고했는가? 사람의 마음으로 옳고 그름을 강조하는, 이 자체가 바로 틀린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속인의 이치로 당신 자신을 가늠하고 있고,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이 볼 때 세간에서 한 수련인의 옳고 그름은 전혀 중요하지 않고, 사람 마음의 집착을 제거하는 것이 오히려 중요하며, 수련 중에서 당신이 어떻게 사람 마음의 집착을 제거하는가가 비로소 중요한 것이다.” [1]

그럼 어떻게 사람 마음의 집착을 제거할 것인가? 나는 다음과 같이 깨달았다. 용감하게 이 좋지 않은 가짜 나(假我)를 직시하고 아울러 그것과 결별하려는 결심이 있어야 하며, 이는 수련인이 ‘진(眞)’을 닦는 첫걸음이다. 사람이 명을 구하는 마음은 다른 사람의 인정과 사랑을 받는 데에서 비롯되는데 바로 정(情)이다. 명을 중시하는 사람은 더욱 많은 사람의 사랑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말하는 것을 피하고자 습관적으로 거짓말하고 덮어 감추며,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고 오직 자신이 좋음을 나타내려 한다. 명을 구하는 자는 이 정을 지키려 하기에 옳고 그름의 도덕표준도 없다. 누가 자기에게 잘해주면 그가 비도덕적이라 하더라도 그를 지켜주려 하며, 누가 자기에게 좋지 않게 대하면 그가 원칙을 견지해도 그를 질책한다. 사람은 정에 이끌려 많은 잘못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인류는 시비 표준과 도덕의 최저선을 잃었고, 많은 속인의 타락도 정에 대한 실망감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련인이 이 정을 내려놓지 못하면 수련에서 가장 큰 장애가 된다.

정법은 이미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고 수련생들은 모두 사부님을 따라 집에 돌아가려 한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을 잘 수련한 기초에서 어떻게 중생을 구도하고 사명을 완성할 것인가 하는 것은 참으로 큰일로서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오직 착실히 수련해야 비로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고 높은 경지의 상태에 이를 수 있으며, 비로소 진정으로 중생을 구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마저도 잘 알지 못한다. 교란과 번거로움, 박해 중에서 자신마저도 돌볼 수 없고 힘이 따라주지 않는데 어찌 중생을 구도할 수 있겠는가? 병업으로 박해당한 많은 수련생은 그 한 사람 때문에 많은 대법제자의 정력을 소모하게 되었음에도 결국 병업을 넘지 못했다.

이상은 나의 현재 층차에서의 깨달음이니 부족한 점은 수련생들이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 10-맨해튼 설법’

문장발표: 2015년 12월 2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2/27/32114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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