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2013년 8, 9월 기간에 3명의 경찰관에게 불법으로 납치되어 끌려갔는데, 어디로 끌려가면 그곳에서 모두 진상을 알렸다. 그러자 나를 납치한 한 경찰관은 “당신이 선전하는 그 능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얼마나 많은 돈을 받기에 이렇게 하나요!”라고 말했다. 나는 “대법제자가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데 돈을 주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라고 말해줬다.
나는 올해 65세로 1996년 11월 13일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했다. 오늘, 내가 17년간 진상을 알리며 법을 실증할 때 특별한 느낌을 받았던 일들을 여러분과 함께 교류하고자 하는데, 이는 수련생 여러분과 함께 힘을 내어 수련을 잘하고, 시간을 다그쳐 사람을 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약병을 버렸고 눈뜬 소경이 글을 썼다
나는 과거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약을 몸에 달고 다녔는데, 직장에서도 언제나 ‘장기 환자’로 알려질 정도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몸이 병투성이었다. 신경기능 장애, 메니에르 증후군, 척추(大椎)골증식, 기관지 확장증, 위축성 위염, 담낭염과 그것들과 관련한 부수적인 염증은 물론, 좌골신경통 등 온갖 질병으로 고통받았는데, 해마다 7~8천 위안(약 126만~144만 원)의 약값을 써야 했지만 낫지도 않았으며, 매년 고액의 약값을 지불해야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눈치까지 봐야 했다. 처지가 그렇다 보니 괴롭고 슬픈 마음에 늘 죽고 싶을 뿐이었는데, 어릴 적에 집이 가난해 학교에 다니지 못했으므로 글을 몰라 비참한 마음마져 더해졌다. 그러니 겨우 40세에 늙은 사람보다도 몸이 더 쇠약했으므로 삶의 희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죽는 날까지 그런 상태로 있겠다는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있었다.
나는 1996년 11월 파룬궁 5장 공법을 배우고 나서,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단체 연공장에 가서 연공을 했다. 나는 글을 몰라 눈뜬 소경이었으므로 법공부를 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지만 낙심하지 않고 매일 사부님의 설법 테이프를 들었다. 비록 들어 뜻은 알지만 글을읽을 줄 몰라 아쉬웠으며, 법공부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조급한 마음에 울음을 터트렸다.그런데 다행히 나보다 일찍 수련을 시작한 두 아들과 여동생, 그리고 동료 수련생들이 대법책의 글자를 한 글자 한 글자씩 가르쳐주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자, 나는 ‘전법륜(轉法輪)’을 읽을 수 있게 됐고, 후에는 글도 쓸 줄 알게 됐다. 그래서 매번 ‘전법륜(轉法輪)’을 받들어 올리며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감사함을 표할 뿐, 달리 무어라고 감사함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한번은 사부님의 설법 테이프를 듣다가 울음이 터졌다. 당시 무슨 이유인지 몰랐다. 제3강까지 들었을 때 몸이 괴롭기 시작했다. 매일 출근하여 근무시간 중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지만, 퇴근하면 기침이 나고 고열로 머리가 아팠다. 처음에는 영문을 몰랐는데 후에 수련생이 “그것은 사부님께서 신체를 조절해주시는 것이다.”라고 알려줘서 두려워하지 않았다.과연 예상했던 대로 한동안 지나자 좋아졌다. 그 후 또 몇 차례 그런 증상이 반복되다가 지금까지 다시는 그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몸의 고질병들도 천천히 하나둘씩 사라졌다.결국 온몸의 병이 없게 되어, 몸은 아주 가벼웠다. 발악하며 절망 속에서 헤맸던 사람이 드디어 고해를 벗어난 것이다.
‘전법륜(轉法輪)’을 배운 후, 사부님께서 연공인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바로 좋은 사람이 되라는 것임을 알게 됐다. 원래 병으로 건강이 좋지 않은데다가 성격은 더 좋지 않았었는데,대법을 수련한 후부터 무슨 좋지 않은 일에 부딪혀도 참을 수 있게 됐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 스스로 잘못을 깨달아 고칠 줄 알게 됐으므로 가정도 화목해졌다. 집안에 수련생이 여러명이므로 서로 배우고 연마하면서 함께 정진했다. 매일 사부님의 은혜를 받는 나로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했다.
나는 1997년에 연이어 두 번 현지 복지원(양로원, 고아원)에 3천700위안(약 66만 원)을 기부했고, 98년에는 희망초등학교(빈곤지역 교육사업)에 3천 위안(약 54만 원)을 기부했는데, 꼭 기탁자를 밝혀야 한다고 해서 이름을 남겼으므로 학교 측에서 나를 신문에 보도하여 크게 칭송해주었다. 또 여동생도 98년 남방에 큰 홍수 피해가 났을 때 5천 위안(약 90만 원)을 기부했고, 현지 복지원에도 3~4천 위안(약 54만~72만 원)을 기부했다. 우리는 대부분 ‘대법제자’ 명의로 했을 뿐 무기명으로 기부했다.
오랜 세월 직접 대면해서 진상을 알리다
99년 ‘7·20’ 장(江) 씨 불량배 집단이 불법으로 파룬궁(法輪功)을 박해한 후 15년 동안나와 몇 명의 가족들이 여러 차례 박해를 받았는데, 그것을 열거하려면 몇 권의 책으로 쓸 수있을 정도다. 그러나 우리는 시시각각 사부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며 지속해서 세 가지 일을잘하면서 확고하게 대법을 연마했고, 여러 방법으로 사람을 구하고 법을 실증했다.
나와 여동생은 오랜 세월 동안 직접 대면하여 진상을 알리는 것을 견지했다. 몇 년간 우리가 삼퇴시킨 인원수는 대략 4, 5만 명이다(환희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려고 일일이 기록한 적 없다). 우리는 매월 20여 일간 바깥에서 진상을 알렸는데, 매일 많으면 6, 70명, 적으면 4, 50명을 탈퇴시켰다. 건축 공사장의 근로자, 학생, 버스 승객, 교차로의 교통경찰관 …… 나이와 직업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은 우리가 진상을 알리는 대상이었다. 건축 공사장, 학교,버스, 경찰파출소 등 어디든 우리가 진상을 알리는 장소였다. 우리는 또 션윈 CD, 소책자등을 가지고 다녔고, 삼퇴한 후 더 많은 것을 알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진상 자료를 주기도 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진상을 알리면서 온갖 고난을 다 겼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대다수는 삼퇴를 하겠다고 했다. 2012년 여름 어느 날 여동생과 함께 진상을 알리러 가서 고등학생 5명을 만나 모두 탈퇴시켰는데, 그중 한 여학생이 기뻐서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들며 “하느님, 드디어 구도 됐어요!”라고 했다. 그러자 그의 동료들이 그녀를 들어 위로 올렸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중생들이 사당(邪黨)에게 아무리 큰 해를 입었어도, 그들 진실한 생명은 구도 되기를 바라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철창신세가 됐어도 사명감을 잊지 않았다
나와 S 수련생은 법리가 똑똑지 못해 줄곧 의료보험카드로 참기름, 밀가루 등을 구입해 집안 살림을 꾸리는 데 사용했으므로 사악에게 틈을 타게 됐다. 2012년 9월 어느 날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현지 세뇌반 소방대대 문에 있는 무장경찰관에게 발각돼 납치당해, 가택수색을 당하며 여동생과 막내아들도 함께 납치되어 15일간 구류처분으로 감금됐다.
유치장에 감금됐을 때 그곳에는 100여 명이 함께 수감되어 있었다. 중국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十八大)를 개최하면서 각 파출소에 사람을 체포하라는 지령을 내렸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잡혀와 있었는데, 마약중독자, 오토바이 교통법규 위반자, 도박범, 만취 소란행위자 등 수용 인원을 초과한 많은 범법자가 수감돼 있었다. 유치인이 많았으므로 식사를 제시간에 마칠 수가 없었지만, 유치장 측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누구도 식당에 남지 못하게 했고 또 음식물을 갖고 갈 수도 없게 했다. 그러므로 많은 음식물을 쓰레기통에 모두 버려야 했는데, 아마 유치장 측에서 식품 판매로 이익을 도모하려고 저지르는 행태로 여겨졌다.
어느 날 배식을 할 때 뒷줄에서 늦게 음식을 받아서 몇 숟갈 먹었을 뿐인데 유치장 경찰관이 식당 시간이 끝났으니 음식을 다 버리고 밖으로 나가라고 했다. 나는 그 경찰관을 쳐다보면서 “농민이 피땀 흘려 지은 음식을 함부로 낭비하면 안 돼요. 우리 사부님께서도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주셨는 데 양식을 낭비하면 되겠어요? 버리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했다.그러자 그는 “버리라고 할 때 왜, 버리지 않아요!”라고 나무라며 나를 식당 중간으로 끌고 가면서 “그런 말대꾸를 하려면 여기서 해봐요!”했다.
그래서 나는 모든 사람을 향해 “여러분, 파룬궁은 누명을 쓴 것입니다. 톈안먼 분신자살사건은 거짓으로 꾸민 가짜입니다. 장쩌민, 뤄간 등이 파룬궁을 모함하기 위해 거짓으로 조작한 겁니다.”라고 큰소리로 외쳤다. 당시 모든 사람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는데, 그중에는경찰관들도 많았지만, 그들은 모두 묵묵히 내 말을 들었다. 계속해서 “파룬궁 책에서 말했어요, 자살은 죄가 되니 자살해서는 안 된다고 했어요. 우리는 닭은 물론 물고기 같은 미물도죽이지 않는데 어떻게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겠어요! 여러분, 파룬궁은 불법(佛法)입니다.‘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기억하면 이후에 좋은 미래가 있을 것입니다.”라고 외쳤다.
다 말하고 나서 다시 큰소리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쳤다. 여동생도 옆에 서서 큰소리로 ‘함께 외쳤다. 그때 누군가가 소장과 정위에게 보고해, 소장과 정위가 황급히 달려와 그곳에 있던 군중을 향해 “빨리 가요! 여기에 있지 말아요!”라고 외쳤다. 나는 또 소장과 정위를 향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기억해요. 당신들에게 모든 일이 순조롭길 바래요. 이후에 좋은 미래가 있길 바래요.”라고 했다. 두 사람은 웃으며 “밥그릇을 빨리 가져가요.”라고 했다. 그래서 밥그릇을 들고 감방으로 돌아왔다.
그 후부터 유치장에서 다시는 밥을 버리라고 강요하지 않았고, 밥그릇을 감방으로 들고 가서 먹게 했다. 수감되어 있는 사람들은 나와 동생을 볼 때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궁하오(法輪功好-파룬궁은 좋습니다)!”라고 외쳤으나, 경찰관들은 듣고도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다.
후에 소장과 정위에게 각각 삼퇴를 시켜줬다. 15일 후 나와 여동생, 아들 셋은 2, 30명의 삼퇴 명단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2013년 8, 9월 기간에 다시 납치됐다. 경찰관이 나를 병원으로 데려가 신체검사를 했는데, 당시 혈압과 심장 상태가 전부 불합격이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강제로 나를 다시 구류소로보냈다. 당시 3명의 경찰관에게 납치당했는데 그들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든지 나는 그곳에서 진상을 알렸다. 납치에 참여한 한 경찰관이 “당신의 선전 능력은 대단하네요. 얼마나 많은 돈을 받기에 그렇게 선전을 잘해요?”라고 했다. 나는 구류소에서 죄수복을 입지 않았다.경찰관이 나에게 빨리 나가서 규칙대로 하라고 했어도 나가지 않았다. 밥은 다른 사람이 대신 받아다 줬다. 매번 식사할 때 감방의 식당 쪽 창문을 열고 배식을 기다려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향해 큰소리로 “여러분, 파룬궁은 불법(佛法)입니다. 이후에 좋은 미래가 있길 바랍니다.”라고 외쳤다. 어떤 사람은 웃으며 들었고, 어떤 사람은 따라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라고 외쳤다. 교도관은 이런 광경을 발견하게 되면 황급히 배식을 받으러 온 사람들에게 모두 “얼른 감방으로 가져가서 먹어라.”라고 하면서 식당에서 먹지 말라고 했다.
어느 해 곧 ‘7·.20’이 다가올 무렵이었다. 공안부에서 주민위원회의 4, 5명에게 우리 집(3층)복도에서 내가 외출하지 못하도록 매일 지키라고 지시했다. 어느 날 점심 때 나를 지키고 있는 그들을 보니 몹시 가련해 보였다. 무더운 날씨인데도 그곳에 주저앉아 나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딱해 보였다. 그래서 내가 돈을 챙겨가지고 문을 나서자, 그들은 나를 잡고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나는 “여러분이 너무 힘들어 보여요. 날씨가 더운데 수박이라도 사올 테니 갈증을 풀어요.”라고 했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뿌리치고 직접밖으로 나왔다. 그들은 내가 밖에 나가 진상 자료라도 배포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를 바싹뒤따랐다. 부근 시장에서 큰 수박(계절적으로 아직 이른 시기라 수박이 좀 비싼 편이었다)을 골라 사서 돌아가는데 여전히 그들은 내 뒤를 바싹 따랐다. 집에 돌아와 수박을 썰어 큰 접시에 담아 그들에게 주었다. 그들은 서로 멍하니 처다보며 난처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반복해서 먹으라고 설득해서야 그들은 먹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대법 진상을 알려줬더니 그들은 다시는 오지 않았다. 공산당이 대법을 박해하면 진정으로 해를 입는 것은 가련한 세인들이다. 지금 많은 세인은, 지금 이 세상에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친척이 진상을 명백하게 알고 복을 얻다
내 고향은 현재 내가 사는 곳과 300여 리 떨어져 있는 외딴 지역에 있다. 몇 년 동안 나와 동생은 여러 많은 진상 자료를 가지고 고향에 가서 배포했는데, 10여 개 친척 가족에게 삼퇴를 해줬다. 친척들 중 삼퇴를 하고 진상을 명백하게 요해한 사람은 모두 복을 얻었다. 어떤 사람은 건강이 좋아졌고, 어떤 사람은 경제적 여건이 좋아졌다. 한 형부는 급성췌장염으로 급히 병원에 실려 가 응급처치를 받고 응급환자실에 입원해 치료비만 1일 5천 위안(약 90만 원)에 달했는데, 병원 측에서는 위급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나와 동생이 병원에 가서 그를 삼퇴를 시킨 후 진상을 알려주자, 즉시 병세가 호전되어 일반 병실로 옮겼으므로 1일 입원비가 1천 위안(약 18만 원)으로 내려갔을 뿐만 아니라, 며칠 만에 완쾌돼 퇴원했다. 그들 친척과 이웃들은 직접 대법의 신기함을 목격한 것이다.
내가 몇 번 납치당했을 때 남동생이 공안국 사람을 찾아가서, “사람을 석방하라.”라고 하여 내가 박해를 면한 적이 있다. 당시 남동생이 공안국 사람을 찾아가 석방을 요구했을 때 경찰관은, 내가 붙인 스티커를 들고 “봐요, 누님이 한 짓이에요.”라고 했다. 남동생은 스티커를들고 보다가 ‘땅’ 하고 책상에 붙이며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가 어때서요? 쩐싼런하오(眞善忍好)가 어때서요? 그래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라고 했다. 경찰은 남동생의 정기에 제압당했고, 나로부터 진상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나를 석방했다. 재작년 남동생의 논밭이 고속도로 용지로 수용되어 90여만 위안(약 1억6천만 원)이나 되는 거액의 토지보상금을 받았다. 그렇게 몇 년 사이에 신체는 건강해졌고 경제적으로도 윤택해지는 등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이것은 그가 대법제자를 보호해서 얻은 복이다.
하고 싶은 말은 아직도 많지만 지면이 제한되어 있으므로 특별한 느낌을 받았던 몇 가지 사례만을 들었을 뿐이다. 수련생 여러분들은 위의 사례 중에서 삼퇴를 시켰고 또 진상을 알린 것 들을 보고, 내가 수련을 잘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나도 몇 년 동안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늘 누락이 많았다. 과시심, 쟁투심, 환희심, 질투심 등등으로 인해 사악에게 틈을타게 했으므로, 여러 번 납치당하고 감금당했던 것이다. 또 안을 향해 찾을 줄도 몰랐으며, 어떻게 자신을 연마할 것인가도 몰랐을 뿐만 아니라 수구도 할 줄 몰랐다. 자비하신 사부님께서는 일에 부딪칠 때마다 여러 번 점화를 해주셨지만 어떤 땐 그래도 잘하지 못했다.
이번 심득교류는 수련생의 격려로 하게 된 것인데, 본인이 구술하면 수련생이 정리해서 작성한 것이다. 이 또한 심성을 닦고 안을 향해 찾는 과정이었다. 층차에 한계가 있으므로 정확하게 말하지 못한 곳이 있을 것이니 수련생들이 자비로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5년 12월 20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진상을 알려 세인을 구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2/20/32065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