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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의 실질

글/ 중국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이 기간에 사존님의 점화와 인도로 나는 ‘자아’의 실질을 깨달았다. 공동으로 제고하기 위해 관련 정황을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미숙한 의견을 내놓겠다.

이전에 나의 사상 속에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서 나는 그것을 제거하고자 끊임없이 법공부를 강화하고 대법의 정념으로 문제를 사고하며 그것을 억제하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두려운 마음이 좀 약해지기는 했지만 줄곧 뿌리째 제거하지는 못했는데 이런 상태가 지속되었으며 휴대폰으로 진상을 알릴 때 점점 두려웠고 늘 사악에게 위치를 추적당할까 봐 근심했으며 마음은 점점 불안해졌다. 한 동안이 지나자 수련에 심각한 동요가 생겼다.

며칠 전 나는 이미 진상을 안 친구를 만났는데 그녀에게 계속 깊이 있게 대법 진상을 알렸더니 그녀는 대법 책을 볼 생각을 내비쳤고 헤어진 후 메시지로 감사의 뜻을 보내왔는데 나를 만날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이 메시지를 받았을 때 나는 좀 기뻤으며 다른 사람이 나를 인정한 것이라고 득의양양해 했다. 생각하다가 갑자기 이것은 자아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가? 고 자각했다. 이때 한 가지 생각이 나로 하여금 안에서 찾는 데서 아주 표면적인 집착을 찾는 데로 인도했다. 예를 들면 명(名)을 구하는 마음이요 정(情)에 대한 집착 등등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부정하고 속으로 나에게 말했다. 나는 꼭 이런 집착의 근본을 찾고야 말 것이다.

끊임없이 안으로 찾으면서 나는 사존님의 가지를 감수했으며 나의 사상은 점차 또렷해졌다. 자아에 집착한 것이다. 무엇이 ‘자아(自我)’인가? 이 점을 의식하자 머리에는 아주 강렬한 생각이 나타났다. 완전히 법에 동화되기 위해 나는 나를 구성한 가장 미시적인 생명의 물질 자체를 버릴 수 있다. 그때 나는 무엇이 두려움인가를 의식했다. 두렵다는 것은 잃을까 근심하는 것이다. 이때 나의 정념은 자기 생명의 근본까지 다 포기할 수 있는데 두려울 게 무엇이 있겠는가하고 의식했다.

여기까지 사고하자 한 동안 나를 괴롭혔던 두려운 마음이 담이 무너지듯 와르르 무너져 두렵다는 물질이 순식간에 사라졌으며 마음속에 대법과 사존님에 대한 신성한 정념이 올라왔다. 진일보 사고하는 가운데서 나는 완전히 ‘자아’를 버리려고 결심했다. 수련의 구체적인 방법은 사상과 행위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이며 사상과 일하는 기점을 완전히 다른 사람에게 두려고 노력했다.

그 후 한 동안 나의 장기간 제거하기 어렵던 나태함, 고려하는 마음, 색욕 등 사람마음이 올라올 때 나는 자신에게 반문했다. “넌 자아를 완전히 버리고 대법에 동화될 수 있는가?” 사상 속에서 긍정적인 대답이 나올 때 자신이 법에 이미 동화된 일면이 강대해짐을 느꼈으며 사람마음이 약해져 어떤 교란 작용도 일으키지 못했다.

그 후 법공부하고 끊임없이 사고하여 나는 수련인이 수련 과정에서 자아에 집착하는 원인에 대해 더 깊은 인식을 갖게 됐다. 한 생명이 어떻게 산생됐으며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물질의 구성이 이미 그 특성의 표현을 결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생명은 주(主)가 있는 것이다. 이 생명의 특성이 바로 그 주(主)의 이 부분 우주 범위 내에서의 특성인 것이다. 구우주 중의 생명의 원래 특성인 멸실(滅失)이란 바로 원래 생명의 해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구우주의 역사와 같지 않은 것은 대법제자가 수련 중에서 사존님께서 요구하신 바에 따라 신우주의 특성으로 자신의 바르지 않은 요소를 바로잡는 것이며 그리하여 생명이 갱신되게 하는 것이다. 바르지 않은 요소의 내원에는 그 생명의 역사상의 주(主) 또는 왕이 갖고 있었던 바르지 않은 요소가 포함되는데 수련 중에서는 수련인의 각양각색의 집착으로 반영되어 나온다. 하지만 사실은 이 부분 요소 역시 생명이다. 그 집착이 바로 그의 변이된 특성이 인간 세상에서 반영된 것으로서 대법제자의 같지 않은 층차의 수련 중에서 이 부분의 생명은 반드시 그 집착을 표현할 것인데 그것의 목적은 두 가지로 나누어 말할 수 있다. 한 가지는 자기가 대법의 구도를 받기 위한 것인데 그것의 바르지 않은 표현을 반영하여 대법제자가 의식하게 함으로써 대법제자가 대법의 바른 이치로 그것을 바르게 닦아 그 생명을 구도하고 갱신하게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바르지 않은 생명을 개변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대법제자가 대법에 동화됨은 그 부분 생명의 원래 특성이 멸실됨을 의미한다. 그것은 미래의 신우주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자아를 보호하는 본능에서 강렬한 집착을 반영하여 대법에 동화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다. 물론 그 속에는 대법제자의 생명을 구성하는 요소와 더 높은 층의 생명과 연관된 행위와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대법제자 체계 내에서 집착을 표현해낸 생명의 목적이 무엇이든지간에 한 가지는 명확하다. 이러한 생명들과 특성들은 모두 구우주 요소가 구성한 것이며 대법에 동화되지 않으면 신우주로 걸어들어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수련 중에서 본다면 이 부분의 특성 자체를 버리는 것이 대법에 동화되고 있는 것이며 이 부분 생명으로 하여금 대법 중에서 갱신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의 특성에 따라 집착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진정하게 그것을 훼멸하는 것이며 그것의 특성을 포기하고 대법의 요구에 따라 수련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이 부분 생명을 구도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자기 체계가 진정으로 철저하게 일신하게 하는 것이다.

더 큰 범위에서 말하면 우리의 사존님은 우주 대법의 창조주이시다. 이번 정법에서 구우주의 위사위아의 특성을 무사무아, 선타후아의 신우주 특성으로 갱신하시는 것이다. 때문에 대법제자의 수련은 선천적 생명이 탄생한 후의 각종 변이된 것과 오염된 것을 깨끗하게 씻는 것만이 아니라 더욱이 근본적으로 생명을 구성한 가장 미시적인 요소가 가져다준 위사위아의 본성을 개변해야 한다. 대법제자들의 수련 과정이 바로 대법으로 (자신을) 대조하면서 끊임없이 안으로 찾아 자아를 닦아내는 것이고 신우주의 무사무아의 특성으로 대체되는 과정이다. 생명이 확실하게 이런 길을 걸어 지나와야 이런 자아의 특성을 바르게 닦을 수 있다. 이 역시 사존님께서 정법이라는 이런 형식을 통해서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생명의 특징이다. 이렇게 구우주에서 신우주로 갱신된 모든 대법제자의 물질은 신우주의 변하지 않는 기본 속성으로 구성될 것이다. 생명이 대법에 비추어 안으로 부족한 점을 바로잡고 아울러 또 쩐·싼·런(眞·善·忍)의 요구에 따라 다른 생명을 도울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신우주 체계 내의 서로 다른 부분이 서로 연계하고 원용불파(圓容不破)할 수 있는 근본 보장이다.

모든 대법제자가 모두 사존님의 요구에 따라 끊임없이 자아의 근본 집착을 포기하고 철저하게 남을 위하는 생명으로 성취하여 사존님이 요구하신 것을 원만하게 하고 공동으로 대법제자 수련의 휘황한 노정을 성취하기 바란다.

지금 단계에서 깨달은 것이니 옳지 않은 점은 수련생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기 바란다.

문장 발표: 2015년 12월 24일
문장 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 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2/24/32088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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