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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복음과 희망

글/ 랴오닝 대법제자 웨이란

[밍후이왕] 내가 말하는 것은 직접 체험한 것이다. 이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경험을 통해, 난세 속에서, 병마의 고통 속에서, 번뇌 속에서 당신이 한 줄기 서광을 보아내기를 바라는 바이다.

인생의 전반부 동안 중공의 운동 가운데서 부침하다

올해 70세인 나는 한 간부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그 해에 베이징 칭화대(北京 清華大學)를 졸업하고, 랴오닝 성(遼寧省) 수리국(水利局)에 배치되어 엔지니어로 근무하셨다. 우리 식구는 9명으로 부모에 자녀가 7명이었으며, 위에는 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셨다.

그해에 중공은 ‘3반’, ‘5반’ 운동을 벌여 국(局)의 간부 모두에게 조직에 보고하라고 강요했다. 그 결과 부친이 나의 할아버지가 국민당의 연대장이었던 사실을 말했다가 우파로 몰려 온 가족이 시펑(西豐)으로 내려갔다. 이에 할머니는 충격을 받아 돌아가시고 말았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급우들은 “네 아빠는 반혁명 활동분자이니 우린 너와 놀지 않겠어!”라고 했다. 나는 방과 후 집에 돌아와 학교에서 발생했던 일을 울면서 엄마에게 말했으며, 울다가 혼절했다.

그러나 그때 시골에는 의사가 없어 엄마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잠시 후 나를 흔들어 깨우셨다. 그 후부터 나는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2년 후, 부친과 신분이 같은 사람 20여 명이 가족을 데리고 선양 쑤자툰 하따다오(瀋陽 蘇家屯 哈大道)에 송환되었다. 그곳은 공지(空地)였는데 진흙으로 아무렇게나 지은 집에 우리를 몰아넣었다. 그런 집은 큰비가 쏟아지면 언제든 무너질 수 있었다. 나는 그때 잠이 들면 집이 무너지는 꿈을 꾸어 몹시 두려웠다.

그곳에서 부친을 날마다 집에 돌아오지 못하게 하였기에 할아버지가 우리와 함께 사셨으나, 이를 감당하지 못한 할아버지는 그만 세상을 뜨시고 말았다. 당시 집에는 엄마가 우리를 데리고 사셨는데, 외부 사람 두 명이 널빤지 넉 장을가져와 못을 쳐서 관을 만들고는 할아버지를 담아서 구덩이를 파고 묻었다

굶주리던 그해, 우리를 베다이황(北大荒)에 보내려 했다. 당시 우리 일가는 고향에 돌아왔지만, 줄곧 통제되었다. 문화혁명 때 부친은 커다란 패쪽을 걸고 엄마와 나는 고깔모자를 쓰고 함께 비판 투쟁의 대상이 되었다. 나는 저녁에 집에 돌아와 통곡했으며, 나중에는 우울증에 걸렸다.

장기간의 탄압으로 부모님이 연달아 돌아가시고 셋째 여동생도 죽자 나는 거의 정신이 무너질 것 같았다. 40여 세였던 나는 요추 추간판 탈출증, 담결석, 견관절주위염, 치통, 심한 빈혈에 걸렸다. 남편은 내 병을 치료하려고 나를 선양 5대 병원, 의대 등 어디든 다 데리고 가보았다. 의사는 사진을 찍어 보고는 요추 추간판 탈출증이 아주 심하여 즉시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몹시 난처했다. 남편 한 사람의 봉급으로 사는 형편에 두 아이가 대학에 가야 하는지라 수술할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진정한 불법을 만나다

1992년, 중국에 기공 붐이 일었다. 나는 선양 전시관과 운동장에 가서 기공사에게 병을 치료받았으나, 치료되지 못했으며, 화장실에서 쓰러졌다. 당시 내게는 한 가지 생각이 있었는데, 나는 병이 많아 오직 진정한 공법을 만나야만 나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1997년 하반기, 남동생이 나에게 ‘전법륜(轉法輪)’이란 책을 보내왔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즉시 손을 깨끗이 씻고 책을 받쳐 들고는 읽었다. 책에서는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으며 우주의 특성 ‘진선인(眞善忍)’을 얘기했다. 보면 볼수록 더 보고 싶었고, 병을 치료하겠다는 생각은 없었으며, 그저 책이 좋다고만 생각했다.

‘전법륜’을 보기 얼마 전에 큰아들의 학우가 처음으로 우리 집에 놀러 왔다. 그때 나는 침대에 누워서 일어나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 아이는 내가 불쌍하게 보였는지 “아주머니, 병을 잘 치료해야 할 거예요. 우리 아빠도 요추 추간판 탈출증에 다른 병까지 있었는데, 여러 번 치료해도 낫지 않아 돌아가셨어요.”라고 했다.

얼마 안 되어 또 우리 집에 온 그 아이는 내가 빨래하는 것을 보고는 몹시 의아해하며 “아주머니, 어떻게 일어나서 빨래할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나는 기쁨에 겨워 “동생이 가져다준 ‘전법륜’ 책을 봤더니 얼마 안 되어 허리가 아프지 않았고 다른 병도 감각이 없어졌어.”라고 대답했다.

그가 “정말 신기하네요. 이 책이 어찌하여 병을 낫게 할까요?”라고 하자 나는 “이건 보통 책이 아니야, 진정한 불법이야!”라고 대답했다.

회상해보면 나도 불가사의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법륜’을 본 지 일주일 만에 정신이 들고 온몸에 힘이 솟구쳐 집안일을 할 수 있었고, 잠도 잘 잤으며, 신경증, 담결석, 요추 추간판 탈출증, 심한 빈혈 증상이 모두 없어졌다! 당시 나와 남편은 얼마나 기뻤는지 말도 말라. 그것은 정법을 만난 게 아닌가? 그때부터 나는 파룬따파 수련의 길을 걷게 되었다. 수련할수록 대법의 순정함과 진귀함을 알게 되었으며, 줄곧 오늘까지 수련해왔다.

대법이 좋다는 것을 믿으니 가족이 복을 받다

나는 수련 후 심신이 건강해지고 이전보다 아주 큰 변화가 왔다. 나와 아들이 식품을 사러 가면 상가에서는 우리가 모자간인 것을 알고 아들에게 “네 엄마는 어쩌면 이렇게도 젊으냐?”라고 하면, 아들은 기쁨에 겨워 “울 엄마는 파룬궁을 수련해요. 파룬궁은 정말 좋아요!”라고 한다.

한번은 남편의 생일 때 아들의 학우 십여 명과 다른 친구가 와서 축하해 주었다. 내가 그들에게 진상을 알릴 때 몇 마디 하기도 전에 아들이, 내 심신이 이익을 본 진실한 과정을 말하고 대법이 좋다고 했다. 그것은 내가 수련 후 새 삶을 얻은 사실을 그가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날, 생일을 축하하러 우리 집에 온 사람은 모두 파룬궁 진상을 알게 되어 ‘3퇴’를 선언했다.

2006년 설날, 나는 랴오양에 있는 둘째 여동생 집에 가서 “나와 함께 이 지역의 친척을 모두 ‘3퇴’ 시키자꾸나! 그들은 모두 착한 사람들이니 하늘의 뜻을 따라 평안을 얻어야 한다.”라고 했다. 둘째 여동생은 “좋아요, 언니와 집집이 다니며 ‘3퇴’를 말해줄 거예요.”라고 했다. 당시 둘째 여동생의 인솔로 이웃 19명이 ‘3퇴’를 선언했다.

둘째 여동생이 나와 함께 진상을 알렸던 그다음 해, 옥수수가 아직 여물지 않은 어느 날, 갑자기 큰바람이 불어 온 마을의 옥수수가 모두 넘어졌다. 당황한 둘째 여동생은 “끝장이야. 식량을 거두어들일 수 없게 됐어. 죄다 끝장이야.”라고 했다.

이때 매부가 갑자기 “위난이 올 때 반드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염하라고 큰 언니가 말했지 않았나?”라고 했다. 동생은 잠시 생각하고는 즉시 옥수수밭에 서서 큰소리로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라고 외쳤다.

한동안 염하고는 앉아서 넘어진 옥수수를 세웠다. 한 대 세울 때마다 한 번씩 염했다. 여동생과 매부는 그 넓은 밭에서 오후 내내 옥수수를 세웠지만, 얼마 세우지 못했다. 아직도 밭에 쓰러져 있는 옥수수를 바라보면서, 날이 너무 저물어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아침, 그들은 또 밭에 나갔다가 깜짝 놀랐다. 옥수수가 모두 곧게 서 있었다! 그런데 다른 집의 옥수수는 아직도 쓰러져 있었다. 그해 그 지역의 옥수수는 모두 생산량이 줄었지만, 여동생 집의 옥수수만은 풍년이 들었다.

대법의 신기함을 목격한 또 한 사람은 넷째 여동생이다. 내가 그녀 집에 놀러 갔을 때, 그녀는 작년 추수 때 벼를 가득 실은 차에서 떨어져 너무 아파 움직이지 못하다가 갑자기 내가 알려준 말이 생각나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했다고 했다. 매부가 그녀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검사했더니 의사는 아무 일도 없다고 했다. 그녀는 매부와 함께 집에 돌아왔다. 넷째 동생과 매부는 대법 사부님의 보호에 감사드렸다.

올케는 몸이 좋지 않다. 내가 그녀를 찾아가 대법 진상을 알려주고 진상 호신부를 주었더니 그녀는 날마다 목에 걸고 있었다. 올케는 공부하지 못했다. 나는 그녀에게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기억하면 위험에 부닥쳤을 때 복을 받는다고 알려 주었다.

하루는 올케가 중풍이 들어 입이 비뚤어지고 반신을 쓰지 못했다. 당시 오빠와 올케는 내가 알려 준 말을 기억하고 함께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를 염했다. 그런 후 오빠는 올케를 병원에 데려갔다. 집이 가난하여 치료비를 낼 수 없었기에 이튿날 병원에서는 올케를 집으로 데려가라고 했다.

며칠 후 올케 집에 갔더니 그녀는 설거지하고 있었다. 올케는 격동되어, 돈이 없어 치료도 못 하였는데 내가 알려 준 대로 날마다 염했더니 몸이 정상으로 회복되어 밭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면서, 자기를 대신해 대법 사부님께 감사드려 달라고 했다.

올케는 대법을 굳게 믿고 있으며, 지금도 매일 여전히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하고 있다.

문장발표 : 2015년 12월 17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2/17/32056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