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날마다 사람 구하는 일을 하니 마음이 즐겁다

글/ 대륙대법제자 동심

[밍후이왕] 1995년부터 나는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했다. 나는 내가 배우는 것이 정말로 지고무상의 우주 대법이며, 신성하기 비할 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법을 얻은 그 시각부터 나는 사람의 애호와 추구를 버리고 진수실수(真修實修)하였다. 특히 이 몇 년은 매일 밥 먹고 잠자는 것 외에는 기본적으로 법 공부, 진상 알리기를 하거나 자료를 만들었다. 비록 나는 금년에 76살이지만 지금껏 자신을 늙은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나는 혼자 살기에 생활이 간단하고 빈틈없으며, 날마다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기에 마음이 충실하고 즐겁다. 수련생은 무슨 일이 있으면 모두 나를 찾아와 도움을 받고 싶어 한다. 대법제자는 정체이므로 자각적으로 원용해야 한다. 정체에 누락이 없으면 사악은 방법이 없게 되고 사람을 구하는 것도 힘이 있게 된다.

진상자료를 배포하고 붙여 박해를 폭로

‘톈안먼분신자살 조작사건’이 발생한 후, 사악의 박해는 끊임없이 격화돼 온 사회는 모두 홍색 공포 속에 휩싸였다. 사람들이 파룬궁이 박해당하는 진상을 알고, 장씨 깡패 집단의 대법에 대한 모함을 폭로하기 위해, 나는 수련생과 함께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각종 진상 자료를 직접 만들었는데 정기 간행물, 소책자와 각종 한 장짜리 전단지를 조합하였다. 매주 몇 백부의 자료와 스티커도 제작했다. 매일 저녁마다 배포하고 붙였고, 주민구역, 상업구역, 사람 많은 곳, 차가 많은 곳에 배포했다. 아파트 단지에 갈 때면 수련생과 상의하여 구역을 나누어 배포하면서 될수록 더욱 많은 사람에게 알렸다. 이쪽에서 배포하면 반대쪽 사람이 차에서 항상 보곤 했다. 어떤 땐 차에다 던지면 상대방이 받기도 했었다. 하루는 저녁에 수련생과 함께 백화점 지하 주차장에 가서 170여 부 자료를 배포했다. 어느 날 정부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 가서 배포할 때 한 여성이 나를 따라 다니며 봤다. 나는 그녀가 못 보게 하라고 생각했더니 그녀는 정말로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안전하게 모든 자료를 배포하고 돌아왔다. 음력 초이튿날 몹시 추운 저녁에, 아주 호화로운 차에 자료를 놓았는데 때마침 호텔에서 나오는 사람이 보았다. “당신 거기서 뭘 하는 거요? 뭘 놓았어요? 당신 가방에 넣은 건 무슨 물건이요?”라며 다가왔다. 내가 “설을 쇠는데 평안을 지켜야죠.”라고 말하자 그는 몸을 돌리고 빙그레 웃었다.

박해 초기에는 스티커가 없었으므로 나는 직접 벽에다 썼다. 한 번은 한 공공장소의 계단 옆에 썼는데 쓰고 쓰다가 눈앞에 한 쌍의 커다란 발이 보이기에 머리를 들어보니 보안요원이었다. “아주머니, 뭘 쓰고 계십니까?” “당신 스스로 보세요.” 다 보고 나서 그는 가버렸다. 2012년의 어느 저녁 나는 200여부를 붙였는데 주변의 벽에, 전봇대에, 어디에나 다 붙였다. 후에 가도 주임이 나의 며느리를 찾아가서 말했다. “당신 시어머니는 늘 나가서 가는 곳마다 붙이는데 그녀보고 더는 나가서 붙이지 말라고 하세요.” 나는 며느리에게 말했다. “너 그 사람보고 나를 직접 찾아오라고 해라.” 며느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어버렸다. 후에 어떤 여자가 먼 곳에서 나를 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한 번은 아래층에서 몸을 휙 돌리니 그녀가 또 나를 미행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일 것이라 추측하고는 열정적으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후부터 더이상 미행하지 않았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다.

잘 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건 2012년 봄의 일이다. 어느 날 오전, 우리 세 사람은 한 명소에 가서 진상자료를 배포했는데 그곳엔 노동자가 엄청 많았다. 나는 한 가방이나 되는 자료를 지고 갔는데 노동자들은 모두 달라고 했다. 우리는 배포하면서 3퇴를 권했다. 한 바퀴 돌고 나니 자료도 다 배포했고 7, 80명을 탈퇴시켰다. 또 어떤 사람이 자료를 얻지 못하게 되자 나는 기쁜 마음으로 집에 가서 자료를 가져왔다. 현장에 오니 작은 책임자 같은 사람이 걸어오더니 자료를 달라고 했다. 내가 한 부 주었더니 보고 나서 즉각 화를 내면서 돈을 주지 않으면 나를 고발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돈이 없다고 했다. 그는 나의 가방이 열려 있는 것을 보더니 다가와서 빼앗아 뒤져 보았다. 결국 한 묶음 (2백위안)의 진상지폐를 빼앗아갔다. 후에 나는 깨달았다. 방금 내가 자료를 많이 배포했고 탈퇴한 사람도 많아 환희심이 일어났고 이로인해 구세력에게 틈 탈 기회를 준 것이다. 그러므로 시시각각 정념을 유지하여 사악에게 틈 탈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한다.

‘9평’을 널리 전해 사람을 많이 구하다

사람을 빨리, 많이 구하려고 2006년 나의 집에서도 자료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복사하는 것만 배웠고 수련생은 나에게 다운받아 보냈다. 이렇게 하니 내가 필요로 하는 진상자료를 해결할 수 있었고 수련생의 수고를 줄일 수 있었다.

‘9평’이 세상에 나온 후, 사람들이 중공의 사악한 점을 알게 되고, 중국인에 대한 당 문화를 제거하도록 하며, 대법제자에 대한 사당의 박해를 한층 더폭로하기 위해 우리는 진상 자료를 배포하는 동시에 또 ‘9평’을 전하는 이 일을 더 강화했다. 2009년부터 나는 세 수련생과 짝을 지어 시 구역 주변의 농산품 시장에 가서 진상을 알렸다. 날마다 장이 서기에 특수한 상황이 없으면 우리는 날마다 갔다. 그녀 두 사람은 대면 진상을 하여 3퇴를 권했고, 나는 ‘9평’을 전하고 진상 CD와 션윈을 배포했다. 매 장날마다 한 배낭 가득 메고 손에는 가방을 들었다. 어떤 시장은 멀어서 한 시간 남짓 차를 타고 가야 했다. 저녁에 돌아와서는 또 이튿날의 자료를 준비해야 했다. 시장에서 진상을 알린 지 이젠 3년이 넘었다. 최근 몇 년은 주요하게 시 구역 내에서 진상을 한다. 몇 년래, 배포한 진상 자료는 무수했다. 다만 ‘9평’만은 겨우 수천 권을 배포했을 뿐이다.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데 두려운 마음이 아주 적었다. 매 번 출발 전이면 나는 생각한다. 나는 가서 사람을 구하여 서약을 실현하며 조사정법의 책임과 사명을 실현하겠다. 정념이 족하기에 몇 년 동안 모두 안전했다. 한 번은 내가 시장에서 진상자료를 배포할 때 어떤 사람이 먼 곳에서 나를 지켜보는 것을 보았으나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내가 다 배포하고 나자 그가 다가와서 물었다. “당신이 배포하는 것은 파룬궁인가요?” “그래요.” “하루 얼마 법니까? (물건은) 어디서 옵니까?” “돈을 벌지 않아요, 우리 스스로 돈을 내서 만든 것입니다.” 이어서 나는 그에게 파룬궁이 박해 받는 진상을 알려 주었고, 그는 드디어 진상을 알게 되었으며, 그도 중공 관리들이 탐오하지 않는 사람이 없어 국민이 화를 입는다고 했다. 그는 자신은 당원이며 탈당했을 뿐만 아니라 아내의 탈단도 도와주었다고 알려 주었다.

한 번은 천을 파는 사람에게 진상 자료를 주는 김에 진상을 알리니 3퇴도 했다. 그러면서 물었다. “당신에게 아주 두꺼운 그 책이 있어요?” 나는 그가 가리키는 것이 ‘9평’이란 것을 알고 없다고 알려 주었다. 나는 다른 수련생을 찾아가 물었더니 그들도 다 배포했다고 했다. 나는 돌아와서 다음 장에 가져다 드리겠다고 했다. 결국 다음 장에 일이 있어 못 가고 또 다음 장이 서기를 기다려서야 그에게 주었더니 그는 기뻐서 말했다. “고마워요! 당신들 파룬궁은 정말 신용을 지키네요.” 한 번은 길가를 따라가면서 9평’을 배포하다가 작은 가게 앞에 차만 정차해 있는 것을 보고 나는 오토바이 손잡이에 책 한 권을 걸었다. 막 걸어놨는데 차 주인이 집에서 나오더니 한 권 집어 들고 포장을 뜯고 보더니 ‘9평’인 것을 보고 얼른 포장 안에 넣고는 차를 몰고 떠나갔다.

대면 진상을 알리며 3퇴시키다

2005년 이후, 나는 대면 진상을 하여 3퇴를 권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친척 친우에게 말하고, 동료에게 말했으며, 그 다음은 사회로 나가서 말하는 데로 확대했다. 기회만 있으면 나는 말했고 말하기만 하면 보통 다수가 모두 탈퇴했다.

나의 바깥사돈(며느리 친정)은 처급 간부인데 박해 시작 때의 텔레비전에서와 같은 목소리였다. 그는 나의 손녀에게 말했다. “너 돌아가 너의 할아버지(이미 사망)에게 너의 할머니와 이혼하라고 알려 주어라. 그녀는 ××당을 반대한다.” 나는 그의 이런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만나기만 하면 곧 그에게 중공이 어떻게 파룬궁을 박해하는가를 말해 주고 장쩌민의 상스럽고 무치함을 폭로했으며, 새 진상자료만 있으면 며느리 혹은 손녀를 시켜 그에게 가져다주게 해 보게 한다. ‘9평’이 나오자 나는 제일 먼저 그에게 보내 주었다. 한 동안 지난 후, 그가 서서히 변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대법과 대법제자에 대한 중공 사악의 박해에 대해서도 비교적 객관적이고 공정한 인식이었다. 2009년 8월, 손녀의 18세 생일 파티에서 나는 현장에 온 15명의 사람에게 다 3퇴를 권했는데 이 바깥사돈은 맨 나중에 사당 조직에서 퇴출했다. 작년 추석 파티에서 안사돈이 술잔을 들고 나와 건배하면서 “파룬따파 하오!” (파룬따파는 좋습니다)하고 말하자 모든 사람들이 함께 일어나 술잔을 들고 함께 외쳤다. “파룬따파 하오!” 지금 우리 가정 모임에서 “파룬따파 하오!”는 당연한 건배사가 됐다.

퇴직하기 전, 사업관계로 나는 많은 가도, 사무실의 사람을 알게 되어 사이가 모두 비교적 좋았다. 그들 대다수도 모두 퇴직해 평소에는 만나기 어려웠다. 한 친구가 멀리 타향에 있었는데 해마다 고향 친척을 방문하고 친구들과 모임을 가진다. 그녀는 사무실 사람과 아주 잘 지냈는데 이렇게 되니 모두에게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게 됐다. 원래 나는 식사초대에 가기 싫어했는데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자 기꺼이 참가했다. 처음에는 한 사람씩 말했는데 점차 탈퇴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서로 영향을 주었다. 매번 모임 전에 나는 모두 겨냥성 있는 진상자료, 션윈, ‘9평’ 등의 내용을 알뜰히 준비해 가지고 가면 아주 환영을 받는다. 몇 년 동안 이미 8명의 서기 주임이 사당 조직에서 퇴출했다. 평소 새 자료가 있으면 나는 늘 그들에게 보내 준다. 어떤 땐 그들 스스로 찾아오기도 한다. 모임에 간 한 주민위원회 여성 서기는 직장에 출근할 때 그 직장의 대법제자 박해에 참여했다. 처음에 그녀들은 내가 하는 진상을 듣지 않았고, 그녀와 몇몇 서기, 주임은 당시 나를 전향시키려 했으나 나의 얘기를 수차례 듣고 나서 점차 이번 박해는 황당한 것임을 알게 됐고, 특히 ‘9평’을 보고 나서 중공의 본질에 대해 비교적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음을 깨달아 더는 나쁜 사람을 도와 나쁜 일을 하지 않게 됐다. 2007년, 한번은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집사람이 받았다. 나에게 전해 주라면서 그녀 집 식구 다섯(그녀 남편, 아들, 며느리, 손자)이 모두 3퇴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그 후부터 매년 설날이면 그녀는 나에게 전화로 세배를 드린다면서 입만 벌리면 ‘파룬따파 하오!’하고 말한다. 그녀의 당뇨병(동료를 박해한 후 얻었다)이 지금은 나았다고 했다. 또 한 여 주임은 당시 박해에 참여했는데, 여러 번의 진상을 듣고 나서 반성했고 3퇴 했을 뿐만 아니라 남편도 탈퇴해 주었다.

목욕탕은 내가 진상하러 가기 좋은 곳이다. 나는 매주 한 번씩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하는데 더욱 많은 사람을 접촉하려고 여러 목욕탕을 윤번으로 다니며 목욕한다. 진상을 알리려고 늘 주동적으로 남의 등을 밀어준다. 목욕할 때면 사람들은 나의 피부가 하얗고 좋다면서 또 사람이 젊어 보인다고 했다. 그럴 때면 나는 그녀에게 알려 준다. “나는 파룬궁을 연마해서 신체가 좋고 병이 없어요. 실은 70살이 넘었어요.” 이렇게 말하면 주위 사람은 놀란 눈길을 보내면서 이것저것 묻는다. 이어서 나는 그녀들에게 파룬궁은 어떻게 좋고, 중공 사당은 왜 파룬궁을 박해하고 대법제자에게 어떻게 가짜를 조작했는지, ‘톈안먼 분신자살조작사건’, 중공의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생체 장기 적출, 구이저우 ‘장자석’은 하늘의 뜻이라는 것, 하늘이 중공을 멸하려 하니 어서 ‘3퇴’해 평안을 지키라는 것 등에 대해 말해준다. 이런 말을 들으면 보통 모두 탈퇴한다. 초기에 나는 목욕할 때마다 10~20명을 탈퇴시켰다. 09년 겨울, 목욕탕에서 당초 함께 일을 했던 회사의 장 서기를 만나 간단한 인사말을 한 후, 곧바로 그녀에게 진상을 얘기했더니 그녀도 재빨리 알아듣고는 통쾌하게 사당에서 퇴출했다.

숨은 두려운 마음을 닦아버리다.

십몇 년래, 진상을 알리는 중에 나에게는 두려움이 아주 적었지만 집에서의 두려운 마음을 줄곧 돌파하지 못했다. 특히 나 자신이 자료를 프린트 할 수 있게 된 후부터 딸이 알까 두려워하고 나를 위해 걱정할까 봐 두려웠다. 게다가 내가 필요로 하는 자료는 또 비교적 많아 프린트 시간이 비교적 길었다. 이 한 점에서 나는 법에서 인식하고 그들에게 진상을 투철하게 알게 하여 그들의 이해와 지지를 얻은 것이 아니라 줄곧 회피했다. 즉 완전히 사람의 생각을 썼기에 결국 어색한 일이 생겼다. 어느 날 오전, 낮에는 아무도 집에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자료를 프린트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아들이 문을 열고 들어서더니 이 장면을 보고는 조급하고 두려워하며 말했다. “아이구 엄마! 뭘 하고 계셔요?” 나는 얼른 일어나면서 말했다. “아들아, 봤으면 본 거지 말하지 마,” “내가 뭘 말한다고 그래요? 내가 그래 남에게 말할 수 있겠어요?” “나 이건 사람을 구하는 거야, 공산당은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으니 너무 나쁜 거야!” “엄마 봤어요?” “보았지. 우리 삼촌은 너무 좋은 사람이었는데 공산당 때문에 돌아가셨단다.” 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른 방으로 가 버렸다. 나는 한 동안 발정념했다. 잠시 후 그의 태도가 좋아졌다. 그 후 한 모임에서 아들은 스스로 친구에게 내가 대법을 수련한 이후 커다란 신체변화가 온 것에 대해 말했다.

이번의 ‘돌발’ 장면을 겪은 후, 나는 법에서 인식하지 않았으므로 잇따라 두 번째 장면이 또 나타났다. 그건 얼마 전의 일이다. 나는 또 누구도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침실 바닥에 앉아서 프린트를 시작했다. 잠시 후 며느리가 들어왔다. 내가 웃음소리를 듣고 머리를 돌렸을 때는 그녀가 이미 집안에 서 있었다. 그녀가 ‘호호호호’하고 웃어 대자 나도 ‘허허’하고 따라 웃었다. 그 순간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어 어색하게 물었다. “이 시간에 어떻게 왔니?” “옷 찾으러 왔어요.”라고 말하면서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나와서 나에게 인사하고는 갔다.

나는 깨달았다. 내가 이 방면에서 아직도 두려운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냥 깨닫지 못하고 그냥 버리지 못해서 사부님께서는 교묘하게 나에게 이런 상황을 안배해 주신 것이다. 나는 인식했다. 그들을 좋게 하려면 나는 집에서도 마땅히 정정당당하게 대법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사부님께서는 몇 차례의 설법에서 모두 제자더러 ‘수련을 처음처럼’ 하라고 하셨다. 정법 수련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제자는 더욱 더 기연을 소중히 여기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잘 하며, 사명을 완수하고, 서약을 실현하겠다.

나는 처음으로 법회에 투고했는데 법에 있지 않는 곳은 지적해 주기 바란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문장발표 : 2015년 12월 10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2/10/31962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