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미중 대법제자 링란
[밍후이왕 2015년 11월 27일] 전에 새 경문을 읽을 때면 사부님의 진지한 가르침에 ‘잘 울리는 북은 무거운 망치로 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는 자신감이 있었다. 이번에는 설법을 경청하고 며칠이 지났지만 마음은 여전히 무겁다. 졸업시험이 조만간 올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한 사람에게는 낙제냐 합격이냐 하는 단 하나의 결과뿐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자신이 대법에서 수련하겠다고 작정했지만 여전히 많은 집착, 사람마음, 관념이 없어졌다가도 또 살아나서 고민하고 있었다. 법회에 참가하기 전에 질문할 문제를 잘 생각해보면서 한 차례 한 차례 글자를 고쳐 쓸 때마다 매번 눈물을 흘렸고 부끄러워서 ‘시간이 긴박한데 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솔직하게 적을 수가 없었다. 법회에서 쪽지를 올리려다가 나는 준비했던 쪽지를 가방에 도로 넣었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는 이미 나에게 해답을 주셨기 때문이다. “사실 수련자로서 마음을 좀 평온하게 내려놓고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할 것만 잘한다면 무엇이든 다 있게 된다! 이 세 가지 일을 잘하면 당신이 하늘 끝, 땅 끝에 있더라도 신은 모두 당신을 주목하고 사부의 법신도 당신을 주목한다.[1]
제자로서 어떻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사부님께 시간을 더 요구하며 위로의 말을 해달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전법륜’을 읽기 시작한 그날부터 대법의 법광(法光) 속에 푹 빠졌는데 그것은 우리들이 제도될 수 있는 희망이었다. 사부님의 이 번 설법에서 비로소 나는 이 희망은 ‘나는 구도 받겠다’는 일방적인 소망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며, 주불이 구도해 줄 수 있게 나 자신의 생각과 행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도 포함됨을 알게 되었다.
‘2015년 미국서부법회 설법’을 반복적으로 학습하면서 사부님의 무량한 자비에 나의 마음은 점차 평온을 찾았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알려주셨다. “과거의 수련인은 집착을 하나씩 하나씩 제거했다. 당신들은, 거의 모든 집착을 다 가지고 있는데, 그것들을 한층한층 약화시키고, 약화시키고, 약화시키고, 약화시켜, 갈수록 더 약해지게 하고 갈수록 더 적어지게 하는 것이다. 나는 당신들에게 이렇게 해주는데, 대법제자가 원만에 이르기 전에 속인 중에서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정상적으로 사람 무리 속에서 사람을 구할 수 있도록 했다. 동시에 바로 이런 다 제거하지 못한 사람 마음이 있기에 또한 당신으로 하여금 사람 마음의 교란 중에서 수련할 수 있게 하고, 시시각각 자신을 각성하고, 자신을 수련하며, 대법제자의 책임을 완성하도록 하는데, 이것이 바로 위덕이고, 이것이 곧 대단한 것이며, 이것이 바로 당신들이 걷는 길이다”[1] 나는 생각한다. 대법 중에 있으며, 불법(佛法)을 들을 수 있다면 시간은 더는 보통사람의 물리적 스칼라(시간ㆍ온도ㆍ체적처럼 방향과는 관계없이 숫자 값으로만 나타내는 양)가 아니다. 왜냐하면 대법은 시간의 본질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늦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곧 펼쳐질 미래와 다시 올 수 없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탄식 때문이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 현재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 현재에 살고 있는 보통사람은 7정6욕 중에서 내일에 내일을 반복하지만, 수련인은 시련 중에서 헤맬 수도 있다. 만약 시험에 늦지 않으려고 생각한다면 부끄러움을 느끼고 용기를 가지라. 역사의 이 시각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갈 때, 매 한 걸음이 현재이고 매 한 걸음이 과거가 될 것이며 매 한 걸음이 미래를 향한 것이다.
사부님은 우리들에게 차별을 두지 않을 것이지만 자신에 대해 느슨히 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 할 것인가? 매일 깨여나서 자신에게 한 번 일깨워 준다. ‘나는 우선 수련생이다. 그 다음도 수련생이다. 생활화된 습관에 대해서도 물어 본다. 오늘 연공할 때 입정했는가? 법을 학습할 때 마음이 조용했는가? 발정념을 할 때 염력이 집중되었는가? 마음을 써서 사람을 구했는가? 법을 암송함에 제고가 있는가? 하루 중의 기쁜 일과 기분 나쁜 일을 법으로 가늠한다. 사람들과 함께 할 때 자아를 보호하려는 마음을 경계해야 하며, 혼자 있을 때에는 생각에 따라 넘쳐나는 망념에 주의해야 하며, 시련이 올 때 자신의 사심과 집착과는 타협하지 않는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태도에 불과하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어찌 하겠는가 소리쳐도 어쩔 수가 없다.
시간이 늦은가 빠른가를 묻지 않고, 법에 얼마나 동화 되었는가만 묻겠다. 이것이 내가 이번 설법을 들은 후 마음이 무겁던 데로부터 조용히 사고한 후의 개괄이다.
주: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2015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문장발표: 2015년 11월 27일
문장분류: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심성제고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1/27/319723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