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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기술을 가르치면서 ‘배움’에 대해 깨닫다

글/ 지린(吉林) 대법제자

[밍후이왕] 쏜 살 같은 시간,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정법의 형세에서 우리들은 또 제12기 대륙대법제자교류법회를 맞이했습니다. 사부님께서 크게 감당하시면서 시간을 연장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오늘 전 세계 수련생들과 교류할 수 있는 소중한 기연임을 기쁘게 생각하면서 저의 부분적인 수련체험을 사부님께 보고 드리고 수련생들과 교류하려고 합니다.

내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사전의 숙원이었는지는 몰라도, 컴퓨터를 배워 자료점을 세우고, 관련 시스템을 배워 다른 수련생을 가르쳐주면서 정법수련의 길을 걷고 있다. 사실 말은 “기술을 가르친다.”고 했지만 사실 부끄러운 일이다. 내가 진정으로 기술을 장악한 시간과 정도는 매우 제한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냥 사이트에 있는 ‘천지행(파룬궁수련생의 기술사이트)’과 기술을책임진 수련생들이 올린 자료를 릴레이식으로 받아서 다른 수련생들에게 전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하면 내가 ‘기술을 가르친다.’고 하는 말은 한계가 있다고 하겠다. ‘천지행’과 기술책임자 수련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제작해서 통상적인 방법으로 우리에게 전달해 주는 것이지만, 그래도 수련의 요소는 높다고 할 수 있다. 다음은 그것을 ‘배우고, 가르쳤던’ 나의 체험을 말하려고 한다.

1. 기술을 보급하는 과정은 세심한 마음과 지구력의 수련이다

2014년 4월, Windows XP시스템을, Windows 7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하면서 기술을 책임진 수련생들은 많은 작업량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특히 우후죽순처럼 설립된 자료점에 기술을 보급하는 문제가 대두됐는데, 그 기술을독립적으로 해결하여 정법형세의 필요에 맞게 만드는 것이 관건이었고, 또 각 수련생들에게 기술을 쉽게 습득시켜야 했는데, 그걸 스스로 구사할 수 있도록 완벽하게 가르친다는 것이 생각처럼 그렇게 수월치가 않았다. 그러므로 ‘배우고, 가르치는’ 수련생은 모두 일정한 습득과정을 거쳐야만 가능했던 것이다.

나는 2013년 하반기부터 수련생들과 교류하면서 사람을 물색했지만 수련생들의 생각은 같지 않았다. 곤란한 일에 부딪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마음을내려놓고 오직 전체의 형세만을 생각하면서 기술습득과 그 기술의 전파 문제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그것 역시 몇 년 동안 총체적으로 존재해온 문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4년 동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게 되었을 때 수련생들은 모두 마음이 급했다. 그래서 시스템을 설치하려는 사람, 시스템을 배우려는 사람, 또 관련 정보를 알아보려는 사람 등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쳤다. 그러므로 해결해야할 많은 작업량이 쌓여가면서자신이 버리지 못한 조급한 마음과 또 원망하는 마음 등등 일련의 부면적인 상태에 이르게 되어 곤경에 빠지게 되었다.

한동안 노력 끝에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일부 수련생들은 시스템 설치를 배우기 시작했으므로, 나는 그들을 가르쳐 주는 단계로 들어섰다. 수련생들은 시스템 설치를 배우려는 열정이 매우 높았으므로, 나 역시 그들이 하루 빨리 기술을 습득할 수 있도록 바쁜 시간을 보내야했다. 배우고 가르치는 것 모두가 급했다. 그런데 학습이 어느 정도 진전되고 시일이 경과됨에 따라 수련생들의 열정이 서서히 식어가면서 태만과 나태의 분위기에 휩싸이게 되었고, 결석하거나, 아예 중간에서 포기하는 수련생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나는 극도의 실망감으로 몸은 지치고 마음은 슬펐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아는가? 오로지 당신이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환경, 어떤 상황 하에서든지 부닥칠 수 있는 그 어떤 시끄러움과 좋지 않은 일, 나아가 당신들이 대법(大法) 일을 위해 더없이 좋고 더없이 신성하다고 여기는 일까지도, 나는 모두 당신들의 집착심을 제거해 버리고 당신들의 마성을 폭로하여 그것을 제거하는 데 이용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들의 제고만이 제일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1]

무조건 나에게서 문제를 찾아야 했다. 계속 해나가려면 ‘얼마나 많이 할 것인가’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급한 마음과 당장 어려움에서 벗어나려는 마음을 닦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수련생들이 계속 배우려고 하지 않는 것은, 나의 ‘조급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나이가 많고 기초가 없는 수련생에게 심리적으로 압박감을 주었던 것이다. 조급한 마음을 닦아내야하고,세심한 마음과 지구력을 배양해야하는 문제가 앞에 놓인 것이다.

나는 수련생들의 상태와 접수능력에 따라 개별적으로 가르쳤다. 접수능력이강한 사람에게는 많이 가르치고, 접수능력이 약한 사람에게는 적게 가르치면서 손을 잡고 진정한 마음으로 가르쳤다. 수련생이 배우려고 하면 반복적으로 가르쳤는데, 아무리 힘들어도 개의치 않고 차분하게 가르쳤다. 누구나배우려는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능히 시스템 설치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어려운 과정에서는 진도를 늦추고, 같은 내용을 반복적으로 가르치며 기억을 되살리게 했다. 내가 차분해지자, 수련생들의 심정도 가벼워지면서 심리적 압박감에서 벗어나게 되어 계속 배우게 됨에 따라 자신감이 생기고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르치는 과정은 확실히 심성을 수련하는 과정이었다. 한 수련생이 처음에는 아주 열심히 배웠는데 후에 배우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그의 집을찾아가서 가르쳤다. 그가 나를 밀어내지만 않으면 계속 가르치겠다는 생각이었다. 수련생은 나의 그런 열정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 거절하지 못했는데, 그는 결국 끝까지 배웠다. 어떤 수련생은 배우는데 성의가 부족해 배운 내용을 필기한 공책을 어디에 뒀는지도 기억조차 못하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그를 도와 함께 찾은 후 계속 가르쳤다. 교육수준이 낮은 어느 수련생은 ‘자신은 그렇게 어려운 시스템 설치기술을 배울 수 없다.’고 지레 짐작하고 미리 포기했다. 나는 그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면서 가르쳤는데 끝까지 배워 완전하게 습득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아주 고생스러웠다. 몸에는 병업상태까지 나타났고 심신이 괴로워 늘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럴 때마다 자신에게 말했다. “끝까지 견지해야한다. 배우는 사람이 몇 명이 되든지,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를 생각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야한다.” 또 “이 일은 당연히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한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만 가지 움직임을 제약할 수 있다.”[2]

2. 기술보급 과정에서 냉정함과 거절하는 것을 배우다

가르치는 과정은 수련하는 과정이었다. 표면적으로는 기술문제지만 실질적으로는 사람 마음의 문제였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어느 수련생이든지 배우겠다고만 하면 누구나 가르쳤다. 그래도 모르면 다시 가서 가르쳤다. 수련생들의 믿음을 격려하기 위해 부르기만 하면 달려갔으므로 인내력의 수련이었던 것이다. 일부 수련생들은 그런대로 계속 견지하면서 일정한 수준까지 기술을배웠지만, 시간이 지나게 되면 역시 다시 의존하려는 속성이 나타났다. 스스로 노력해서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조금만 문제가 있어도 모두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건 하나의 습관으로 굳어진 것이다. 그러니 그런 경우를 만나게 되면 상황을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 만약 달려가서 해결해 주지 않으면 어렵다는 마음이 두려움으로 변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포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미 어떤 수련생은 그런 경우를 맞게 되자 포기한 사례가 있다. 대법의 항목에 대해서는 잠시도 지체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내가 지속적으로 그들에게서 손을 떼지 않았기에 은연중에 그들을 의존상태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수련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길을 걸어 나오지 못하게 한 것이니, 당연히 법에 부합되지 않는 일이 아닌가? 그러는 와중에 나의 건강상태도 심각한 정황이 나타났다. 감당할 수 없는 극한에 도달한 것이다.

한 번은 한 팀의 수련생과 함께 화요일에 그 팀에 가서 무슨 문제를 해결하자는 약속을 했다. 그런데 전날인 월요일 갑자지 어지럽고 구토를 하면서 심각한 병마의 교란상태가 나타났다. 박해를 부정하고 정념으로 제거했으므로 화요일에는 호전된 기색이기는 해도 어려운 상태로 어렵게 약속장소로 갔다. 수련생들은 나의 병마의 교란상황을 알게 된 후 각자의 의견을 말했다. 한 수련생이 말했다. “응당 내려놓을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기술수련생이 기술을 전해주려고 일에만 빠져 오랫동안 바삐 보냈는데, 이제는 일을 내려놓고 조용한 마음으로 법학습을 하는 것이 가장 필요한 것 같습니다.”

‘내려놓는다고?’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수련생들이 모두 내가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내가 내려놓을 수 있는가? 내가 가지 않아도 되겠는가?’ 다른 수련생의 얼굴에도 ‘당신이 오지 않으면 우리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는 근심어린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전에 “먼저 마음을 닦은 후 컴퓨터를 수리한다.”는 교류문장을 본 적이 있지만 정작 내가 접하게 된 상황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오늘 이 “내려놓다.”라는 말은 너무 예리해서 나를 반성하게 만들었다.

한 자료점은 내가 컴퓨터를 가르쳐주고 자료점을 세우기까지 모두 내가 일일이 도와주어서 설립했다. 그 과정에서 무슨 문제가 나타나면 수련생은 나를 찾았고, 나도 연락을 받기만 하면 달려가서 해결해주었으므로 그런 관계는 매우 자연스럽게 습관화 됐으므로 당연히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기를 이미 2, 3년이 됐다. 그런데 최근에 그 자료점에서빈번하게 문제가 발생했는데, 그럴 적마다 수련생은 나를 찾았고, 나는 연락을 받기만 하면 모든 다른 일은 제쳐두고 그 자료점의 문제를 해결해줬다.그런데 그 자료점은 내가 가서 문제를 해결해 줄수록 더 많은 문제가 나타났다. 그래서 우리는 오랜 시간 교란을 해체하는 발정념을 했다. 그런데 우연히 그 자료점의 수련생의 심태를 보게 됐다. 그는 마음을 가다듬어 정념으로 하지 않고 형식의 흐름대로 하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소리쳤다. “나는 모든 정력과 시간을 당신들 여기에 쏟고 있는데, 당신들이이렇게 마음을 쓰지 않다니 이게 되겠어요?” 나는 이런 저런 많은 말을 하고나서 홧김에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손을 놓았다.

내가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일손을 놓자, 그 자료점 수련생들은 바로 자신들의 문제를 안으로 찾은 다음, 스스로 시장에 가서 부속품을 샀다. 그리고자료를 공급하는 학습반 수련생들과 함께 안으로 찾는 것을 교류했다. 후에 비록 기술을 책임진 수련생의 도움으로 기기의 고장문제를 해결했지만, 결국자료점 수련생들의 심성이 많이 높아지면서 ‘의존하는 마음’에 대한 인식을하게 되었다. 이번에 내가 손을 놓자 비로소 자료점 수련생들이 스스로 걸어 나오게 되었다. 이는 나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보게 한 일이었다.

한 젊은 A 수련생 역시 일찍부터 컴퓨터를 다루었던 사람이라 쉽게 시스템기술을 배우게 되었지만, 중도에서 포기하고 말았다. ‘파이어폭스’가 업그레이드 되었다. 그들 현지 학습반의 B 수련생은 컴퓨터 시스템에 대한 기술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밍후이왕으로부터 ‘파이어폭스’의 업그레이드 방식을 받아 스스로 강좌를 보면서 ‘파이어폭스’를 다운로드 해 설치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시스템 기술을 얼마동안 배운 적 있는 A는 밍후이왕에서 ‘파이어폭스’를 다운로드 하려고 했어도 설치하는데 실패했다. 후에 B수련생에게서 ‘파이어폭스’를 복사해 설치하려 했지만 역시 안 됐다. A 수련생은 우리 집과 매우 먼 거리에서 살고 있었으므로 애를 써서 나를 찾아와서야 ‘파이어폭스’를 설치하게 되었다. 교류하면서 나는 그에게 물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을 때 제일 먼저 사부님을 생각했는가? 아니면 나였는가?” 그는 나를 생각했다고 했다. 나는 이것이 기술문제인가 아니면 수련문제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내가 수련생의 기술문제를 해결해 줄 것인가? 아니면 나 자신의 수련문제를 반성해 보아야 하는가? 수련생이 정말 내가 아니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겠는가? 사부님의 가지가 없다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나는 냉정하게 자신을 찾아보고, 조용한 마음으로 법 학습을 한 후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무엇이 바빠서 법을 학습하고 연공할 시간도 모두 없었는가? 정말 기술항목 자체인가?” 나는 인식하게 되었다. “아니다. 사람 마음, ‘자아’ 였던 것이다.” 내가 처음 기술을 가르칠 때 참을성 있게 세심하게 가르쳐, 수련생들이 자신감을 갖고 기술을 익히게 한 것은 틀리지 않았다. 바로 내가 말한 것처럼 수련생들이 두려움에 장애를 받지 않고 손을 들고 발을 옮기기만 하면 기술을 배울 수 있게 했다. 그러나 한 단락 시간이 지나서 수련생들이 일정한 기초지식이 있게 되었고, 더욱 중요한 것은 보편적으로 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했을 때 당연히 수련생으로 하여금 자신의 길을 걷게 해야 하며, 문제만 있으면 나를 찾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나’의 인식 상한계로 수련생들이 자신의 길을 걷는 것을 방해했던 것이다. 나는 기진맥진했다. 다시 안으로 찾아보니 또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다. 수련생이 안 될 것 같아 두려웠고, 견지하지 못할 것 같아 두려웠다. 사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사부님을 믿는가, 믿지 않는가 하는 문제가 아닌가? 수련생의 수련의 길은 사부님이 안배하신 것이다. 나는 다만 이 과정에서 자신을 잘 수련하여정체적으로 원용하는 것이다. 법에 부합되지 않는 모든 사람마음, 자아는 모두 수련생을 교란하게 되며, 정법을 교란하게 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3] “수련하는 사람에게는 본보기가 없으며 매 사람이 걷는 길은 모두 다르다. 왜냐하면 매 사람의 기초가 같지 않고 각종 집착심의 크기가 같지 않으며 생명의 특징이 같지 않고 속인 중에서 하는 일이 같지 않으며 가정환경이 같지 않은 등등 모두가 같지 않다. 또 요소가 같지 않고, 매 사람의 수련의 길이 같지 않고, 집착심을 없애는 상태가 같지 않으며, 관(關)을 넘기는 크고 작음이 같지 않음을 결정한다. 그러므로 표현상에서 다른 사람이 닦아놓은 길을 찾기가 어려우며 무임승차하기란 더욱 불가능하다. 만약 정말로 잘 닦여진 길과 편승할 차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결코 수련이 아니다.”[4] 나는 점차적으로 놓아주고, 나를 떠나면 안 된다는 관념을 개변시켜, 수련생의 문제는 될 수 있는 한 수련생 자신이 감당하게 했다.

어느 날 한 수련생의 집으로 갔을 때 수련생이 말했다. “우리는 스스로 ‘천지행’에 접속해 배우고 있어요. 우리는 꼭 배우고 말겠어요.” 나는 진심으로 말했다. “고마워요!” 나는 아주 감개무량했다.

장쩌민을 고소하는 열풍이 일어났다. 한 노년 수련생이 나를 찾아와 의견을 물었다. 나는 장쩌민을 고소하는 의의에 대해 대화를 하면서 그에게 말했다.“자신이 감당해야할 일은 반드시 자신이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수련하는 나의 친척도 나를 찾아와 대신 고소장을 써달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확실하게 말했다. “수련은 누구도 대체하지 못합니다. 관건적인 문제는 스스로 냉정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다시는 모든 일을 도맡아 하지 않고, 일마다 냉정하게 사고한 후 법의 요구에 따라 도울 것은 도와주고, 거절할 것은 거절하면서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았다.

이 과정은 매우 어려웠다. 인내심 있고 세심하게 하던 방식에서 냉정하게 거절할 수 있기까지는 매우 크게 굽은 길을 걸었던 것이다. 처참하게 넘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자비하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끝없는 대법의 위력으로 나를 일깨워 주셨고, 또 수련생들이 너그럽게 도와주어 나로 하여금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걷게 했다.

3. 기술을 보급하는 과정에 겸손과 무위를 배우려 하다

‘겸손과 무위를 배우려 한다.’는 이 말도 하기가 참 부끄럽다. 왜냐하면 나 자신이 아직 수련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의 소개로 수련생들 여러분이수련에서 교훈으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가르치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문제는 이렇게 해야 한다. 저런 문제는 저렇게 해결해야 한다.”는 식으로 가르치는 방식이 하나의틀로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그런 나의 방식을 수련생도 점차 받아들이는상태가 되었다. 똑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내 의견을 중시하는 식이 되었고,나도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수련생이 틀리거나 부족한 점이 있을 때내가 직설적으로 지적해 주는 것은 내용상 틀리지 않았지만, 태도에서 자신을 높은 위치에 놓고, 나타내려고 하고, 원망하고, 질책하는 것이 점차 양성되어가면서 그 정도가 깊어지게 된 것을 나 자신도 모르게 되었다. “이래라.저래라.”고 하는 명령조의 말투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커지고 높아졌다. 결국 ‘함께 수련하는’ 관계가 아니라 ‘가르치고’ ‘받아들이는’ 관계로 변한 것이다.

내가 자신의 수련되지 않은 사람마음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수련생들이 열심히 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려 하고, 기회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수련생들을 보고 원망하는 마음이 커졌으므로 육체적으로 심각한 교란을 받은 것이다. 한 수련생이 “우리 함께 법 학습을 해요!”라고 말했을 때 나는 “나와 함께 법을 학습하지 않아도 돼요. 당신이 나를 찾지 않는 것이 나를 도와주는 거예요.”라고 했다. 나를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은 모두 내가 도와주어야 하는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이 나를 찾지 않으면 나를 도와주는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한 수련생이 “누구누구가 나에 대해 아주 탄복한다.”고 말해줬을 때, 나는 “나에게 탄복하는 사람이 많고도많아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내가 늘 찾아가는 한 자료점에 아주 선량하고 너그러운 수련생이 있었다. 그는 수구를 아주 잘 했는데, 그가 “누구에게 어떤 부족한 점이 있다.”고 뒤에서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게 훌륭한 수련생이 아주 오랫동안 나에게 반감을 갖고 있었음을 알고 있었는데, 그는 끝내 내게 말하지 않았다. 내가 열변을 토할 때, 그는 내게서 고개를 돌렸다. 당시 나를 이렇게 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으며, 아주 많은 사람들은 나를 찬양했는데 그가 왜 그러는지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번은 나에게서 컴퓨터 시스템 설치를 배운 수련생의 집으로 갔을 때다.내가 보니 그는 내가 가르쳐준 대로 FDM소프트웨어로 다운로드하지 않고 ‘파이어폭스’의 소프트웨어로 다운로드하고 있었다. 내가 이상해서 물어보니 그는 그것의 좋은 점을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내가 돌아와서 사용해 보니 확실히 좋았다. 나는 또 내가 모르는 많은 기술을 그가 알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가 나에게 알려 줄때에 그가 나에게 ‘가르쳐 준다’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다만 그가 알고 있는 것을 나에게 말해 주었을 뿐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가르쳐 줄 때에도 그가 나에게 부탁해서 ‘가르침을 받는’ 그런 느낌이 아니고, 단순히 배우고 있다는 인식이었다.나는 점차 이것이 바로 교류이며 수련생 사이의 정상적인 관계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배우는’ 것을 체험해 보려고 했고, 겸손을 배워보려고 했다. 한 번은 수련생과 함께 진상을 알리려 나가서, 나는 성실하게 말했다. “나는 정말 잘 하지 못하니 많은 양해를 바랍니다. 그렇지만 열심히 배우고 싶어요.” 나는 겸손하게 수련생들이 진상을 알리는 것을 열심히 보고 들었다. 수련생들의온화한 어투와 진심어린 마음을 보면서 나의 평상시의 언행을 생각하며 깊은 반성을 했다. 돌아오려고 차를 탔을 때 한 남성에게 진상을 알렸지만 말을 잘하지 못했다. 그 때 한 수련생이 살짝 나를 제치고 다정한 어투로 내말에 이어서 계속 진상을 알렸다. 그는 원망하는 말도 질책하는 말도 없었고또 그 남성의 탈퇴여부를 상관하지 않고 오직 평온하게 진상을 알리고 있었다. 나는 그 수련생의 그 평화로운 모습이 바로 나에게는 취약한 겸손과 무위임을 느꼈다.

또 한 번은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한 수련생을 찾아 갔다. 그는 수련을 ‘하네 마네’ 하는 식으로 지내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이전처럼 일장연설로 훈계하는 식으로 말하지 않고 진심으로 그가 말하는 수련체험을 귀담아 들었다. 그러면서 그의 조그마한 제고에 대해서도 격려하면서, “내가 응당 배워야 할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말했다. “내가 내방을 정리하지 않는다고 며느리가나무랐었는데, 이제는 밖에 나가 일도 하고 방을 정리하는 것도 배웠어요. 나의 부족한 점을 누가 말해도 나는 다 고쳐요.”라고 했다. 얼마나 소박한 말인가. 그러나 그런 말은 내가 겸손해 지려고 했을 때에야 들을 수 있었다. 만일 이전이었다면 나는 그에게 한바탕 정법형세의 큰 이치를 연설했을 것이다. 그럼 이처럼 진정으로 착실하게 수련한 체험담은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착실하게 수련한 체험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내가 결가부좌하고 교류하는 것을 보고 그는 진심으로 말했다. “나는 몇 년 동안 연공하지 않았어요. 당신이 결가부좌한 것을 보니 나도 꼭 새롭게 수련을 시작하겠어요.” 사실 이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는 다시 수련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겸손에 대해 새롭게 느끼게 되었다.

나는 또 새롭게 컴퓨터 바탕화면의 파일 하나를 열었고 위에는 이렇게 씌어있었다. “자신을 낮은 위치에 놓는 것을 영원히 기억하라.” 이는 내가 오래 전에 자신을 일깨워주기 위해 쓴 한 편의 문장인데 또 여러 가지 구실로 보지 않았으며 나는 부끄러워서 고개를 떨어뜨렸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학습반에서도 현재 자신이 괜찮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으며 그 말하는 태도마저 다르다. 자신이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하는 이것은 바로 불교 중에서도 아주 꺼리는 것이다.”[3]

수련은 얼마나 엄숙한가! 겸손함은 명주처럼 나의 마음 속 어두움을 비춰 주었고 검과 같이 나의 과장, 과시, 강세, 자아, 질투의 집착을 찔러 주었다. 겸손은 일종의 힘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움직임 속에서 고요함이 있게 하고 고요함 속에 위엄이 있게 하며 사람의 지혜를 열어 줄 수 있다. 우리로 하여금 혜안으로 일의 더욱 깊은 한 층의 실질을 보게 한다. 겸손은 수련인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심태이고 마땅히 갖추어야 할 품격이다.

내가 항상 접촉하는 한 수련생은 일을 할 때 결과를 추구하지 않고 열심히 하기만 했으며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 계속했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았다. 연공은 몸이 편안하기 위해 했고, 정공은 다리가 좋아지기 위해 했고, 법을 많이 학습하고 정념을 많이 발한 것은 무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인위적으로 자신에게 배치하고, 무슨 일이나 목적을 갖고 했으므로 법의 효력을 국한시켰다. 제일 뚜렷하게 표현된 것은 수련생들에게 기술을 가르칠 때였다. 수련생들이 내가 요구하는 시간에 열심히 배우지 못하면 수련생이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원망했다. 사실 이것은 모두 결과를 추구하는 마음이다. 나는 점차적으로 가르치는 과정에서 나 자신을 수련하고, 내가 무엇을 수련할 것인지 보아야하며,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무위의 심태로 해야 한다.그러므로 결과를 추구하지 말고, 묵묵히 해야 함을 깨달아야 한다. 지금 기술을 배운 수련생들은 다른 수련생에게 시스템을 설치해 주면서 많은 체험과 경험을 얻었으므로 각자 자신의 인식이 있을 것이다. 어떤 수련생은 다른 수련생에게 시스템 설치를 가르쳐야 함을 깨닫게 되었고, 감수도 많았다고 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功)은 사부에게 달렸다.”[3] 이것은 내가 수련생들에게 어떻게 요구해서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무위에 대해 또 좀 깨닫게 되었다.

안으로 찾는다는 것은 빈 말이 아니다. 진정으로 자신을 바로 놓아야만 박해를 부정할 수 있다. 어떤 때는 기술을 책임진 수련생도 협조하는 일을 겸할 때가 있다. 만일 기술을 책임진 수련생이 ‘배우는’ 마음을 체험해 보고, 협조를 책임진 수련생이 ‘지시를 받는’ 마음을 체험해 본다면 개인수련, 정법수련, 정체적인 제고에 큰 도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술을 책임진 수련생이나 협조를 책임진 수련생이 항상 작은 화상(和尚)으로 되어 큰 화상의 위치를 다른 사람도 윤번으로 해 볼 수 있게 한다면 각자가 모두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를 보는 각도가 다르고, 처리하는 방식이 다르므로 같지 않은 형식으로 정체적으로 원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 대한 수련생들의 이해와 협조에 감사드리며. 내가 질책하고 원망했던 수련생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위대한 사부님께서 제자가 오늘까지 걸어 올 수 있게 자비로운 가지와 보우로 보살펴 주신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제자는 정진하는 것으로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허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저작: ‘정진요지-재인식’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저작: ‘정진요지2’ ‘마지막 집착을 제거하자’

[3]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저작: ‘전법륜(轉法輪)’

[4]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저작: ‘정진요지2-길’

(밍후이왕 제12기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 교류회)

문장발표: 2015년 11월 3일
문장분류:밍후이 대륙법회 제12기
원문위치 : www.minghui.org/mh/articles/2015/11/3/31846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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