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회귀(回歸)
[밍후이왕](전편에 이어)
전반 구우주는 괴멸로 걸어갔고 모든 우주 생명의 본질이 다 변이가 일어났으며 층층이 내려가는 중 이런 변이는 모두 층층에 대응되어 내려왔다. 저층·표면으로 갈수록 복잡하게 변이됐고 마지막에 인간세상까지 오자 욕망과 집착의 숲이 형성됐다. 반드시 아래의 뿌리를 뽑아버리고 끝까지 파내야만 비로소 깨끗이 씻어냈다고 할 수 있고 완전히 구우주와 구세력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아니면 인형극처럼 배후의 그 끈은 여전히 구세력 수중에 통제되어 있고 그것에게 통제당해 인간 무대에서 연출하게 된다.
여기에서 개인 수련의 실례를 하나 들어보겠다. 이전에 한 단계는 문장을 쓰는 것으로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했다. 사부님께서 지혜를 주셨기 때문에 문장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졌다. 영향력이 확대됨에 따라 명리정(名利情)이 전부 왔다. 예를 들어 일부 속인 출판사는 원고가 마음에 들어 높은 가격으로 저작권을 사겠다고 편지를 보내왔고, 어떤 속인 기관은 편지를 보내 단독 강연을 하라고 초청했으며, 어떤 명성이 높은 대학은 교류하자고 초청했고, 어떤 기자는 방문 인터뷰를 하겠다고 했다. 나는 이런 것들을 전부 거절했고 한 푼도 받지 않고 신분을 계속 숨겼다.
당시 대륙에서 박해는 여전히 혹독했다. 나는 속인의 장사와 직장을 그만뒀고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 일을 했다. 그리하여 자신은 명리를 추구하지 않고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오로지 지불하고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을 구함으로 표준에 도달했으며 무사(無私)를 해냈다고 생각했기에 그 때 자신이 매우 바르게 했다고 생각했다. 이 저층 표준의 은폐 속에서 큰 지혜가 없고 깊게 안을 향해 찾을 수 없다면 구우주 속에서 이 이기적인 뿌리를 뽑아낼 수 없다. 그러면 약점을 남기고 구세력에게 이 뿌리를 붙잡혀 통제를 당하게 된다. 나는 법을 훔치고 법을 파괴하는 큰 죄를 저지른 후에야 비로소 각성할 수 있었다.
이 죄는 수련인에 대해서 너무나 크다. 하늘보다 커서 옛날이었다면 완전히 훼멸됐을 것이고 무생지문(無生之門)에 들어가 소각됐을 것이다. 구세력은 이 큰 누락을 잡고 나를 가장 무서운 곳에 가둬 놓고 내 모든 공간장에 그런 가장 두렵고 쥐 죽은듯 고요한 부패한 물질을 일망무제하고 질식케 할 정도로 가득 채워 넣어 마음속 희망이 구세력에게 조금씩 빨려 없어지게 했다. 감당이 극한에 이르고 억눌려 숨쉬기 힘들었으며 두려움, 고통이 극도에 이르렀다. 마음속으로 감당하고 지나간다는 것이 어림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은 내 생명이 감당하는 극한을 훨씬 초과했기 때문에 몹시 절망했다. 생명이 가장 절망하는 최후의 시각에 마음은 오히려 천천히 냉정해졌다. 모든 의욕을 상실한 막판에 ‘무엇을 위해 수련하는가?’라고 자신에게 물었다.
이 특수한 시기 나는 모든 은폐를 내려놓고 자신에게 물었다.
이후에 이 일념을 찾아냈다. 생명의 가장 깊은 속에 줄곧 최대의 유감이 있었다. 즉 아름다운 사물은 언제나 오래가지 못함으로 나는 영원히 괴멸되지 않는 아름다움을 갈망했다. 어릴 적부터 절망하는 생명을 가장 볼 수 없었고 생명이 절망 속에서 허덕이고 어둠속에서 우는 것을 보면 마음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나는 우주의 생명이 영원히 절망이 없고 영원히 기쁘고 행복 속에서 살길 바랐다. 이후에 대법을 찾은 후 대법 수련 중 오로지 이 대법이야말로 우주를 구할 수 있고 우주가 영원히 아름답고 영원히 괴멸되지 않으며 오직 사존이야말로 모든 생명의 절망을 없애주실 수 있고 모든 생명에게 희망과 영원한 행복을 남겨주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난 바로 이것을 위해 수련한 것이다.
이렇게 큰 죄를 범했지만 이전에 어떠했든, 형신전멸(形神全滅)이 되든 말든 적어도 지금은 각성하고 있고 적어도 생명에게 아직도 최후의 시간이 남아있는데, 설령 몇 초라도 이 남은 몇 초로 대법을 찬송하고 생명으로 대법을 실증하며 최후 약간의 힘을 다하면 생명의 결말에는 유감이 없을 것이다. 생명의 최후까지 전력을 다 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우주 중에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이것은 무슨 관계가 있는가, 난 이것 때문에 온 것이고 생명 최후까지 전력을 다 했으면 유감이 없는 것이다.
이 생각이 생명의 가장 깊은 속에서 나온 후 쥐 죽은 듯 고요한 모든 부패한 물질이 단번에 전부 사라졌고 내 공간장은 즉시 순정해졌다. 이때 바깥의 햇빛은 그렇게 아름답고 마음속은 희망으로 충만된 것을 발견했다. 사존께서 나를 위해 이 모든 것을 감당해주셨고 없애주셨다는 것을 안다. 조금도 손실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욱 많은 것을 얻었고 사존께서는 또 내게 더욱 많은 물건을 주셨으며 더욱 큰 지혜를 열어주셨다.
이 모든 것은 단지 이 일념 차이였다. 이 최후의 일념마저 만약 바르지 못했다면 결과는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어떤 일을 하기 전과 과정 중 움직이는 일사일념에 대해 자신에게 ‘왜 이렇게 하는가? 목적과 기점은 무엇인가? 자아를 내려놓고 대법을 실증하는 것인가 아니면 대법을 이용해 자신을 성취하기 위한 것인가?’라고 물었다.
일하는 과정 중 무릇 자신이 자아를 성취했다는 것을 발견했다면 즉시 멈추고 목적이 완전히 순정하고 완전히 이기적인 자아를 위한 것이 아니며 전체를 위하고 대법을 위할 때까지 자신의 마음을 순정하게 하고서야 비로소 계속한다.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모두 가장 순정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 이래야만 진정으로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걷는 것이다.
오로지 마음에 자신이 존재하지 않을 때만 비로소 무한한 큰 지혜를 갖추고 완전히 법 중에 용해되고 시시각각 사존과 함께 있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 속에 여전히 자신에게 약간의 공간, 설령 아주 작은 콩알만한 공간이라도 남겨주기만 하면 그것의 방해를 받고 은폐되어 본질을 똑똑히 볼 수 없으며 완전히 대법에 동화할 수 없고 구우주의 배치에서 뛰쳐나올 수 없다.
2. 표면에서 돌파를 찾지 말고 안을 향해 자신을 찾아야
“그는 왜 그렇게 나쁘지?” “이것은 완전히 그의 잘못이야!” “내가 한 것은 절대 정확한 것이다! 난 잘못이 없어……” 매우 많은 수련인은 표면에서만 문제를 찾을 뿐만 아니라 밖으로 보고 인류사회의 잘못된 표준에 미혹당해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하나 또 하나의 심성을 수련하는 기회를 놓치고 자신의 집착과 이기적인 마음을 보존한다. 그래서 매우 많은 수련생은 이런 상황에서 끊임없이 반면 교훈을 받아들여 자신을 갈수록 교활하게 만들지만 수련의 층차는 제고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전력을 다해 한 수련생을 도와줬지만 그 수련생은 돌아서서 당신에게 헛소문을 퍼뜨리고 상처를 줬다. 이때 보통 표면에서만 원인을 찾는다. ‘그는 왜 이렇게 나쁘지? 그가 아직도 수련인인가? 어떻게 수련하고 있지? 은혜를 원수로 갚는구나! 이후에 조심해야겠어. 다시는 함부로 남을 도와줘서는 안 되고 좀 대비해야 하고 수련생들과 좀 멀리해야 해…….’
이것이 바로 반면교훈을 받아들인 것으로, 자신을 끊임없이 교활하게 만들었지만 수련 층차는 아무런 제고도 얻지 못했고 심지어 교활하게 변해 끊임없이 층차가 낮아지게 된다. 사부님께서는 “그러나 내가 희망하건대 여러분은 곤두박질친 후에 바른 면의 교훈을 받아들이고, 늘 반면의 교훈을 받아들이지 말라. 반면 교훈을 받아들이면 바로 사람의 마음으로 문제를 생각하게 되어 자신을 교활하고 원용하게 변화시키게 되는데, 그것은 나쁘게 변한 것이다.”[1]라고 말씀하셨다.
만약 바른 면의 교훈을 받아들이면 ‘그 수련생을 도와줬는데 그가 오히려 내게 헛소문을 퍼뜨렸구나. 내가 그를 도와주는 과정 중에 마음이 순정하지 않고 이기적이며 보답이나 수련생의 감사를 얻으려 했을까? 혹은 수련생을 돕는 과정 중 어디를 잘하지 못하고 선하지 못해 그가 오해하거나 그에게 상처를 준 것일까?’라고 생각할 것이다. 만약 완전히 사심이 없고 완전히 자신을 내려놓았다면 전혀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마음을 움직이기만 했다면 바로 사심이 있는 것이고 이 사심의 뿌리를 찾아내 그것을 뽑아버려야 한다.
만약 바른 면의 교훈을 받아들이고 사부님 말씀대로 안을 향해 자신의 문제를 찾으면 그 어떤 일도 좋은 일이고 모두 심성을 제고하고 법 중 더욱 좋게 하는 기연이다. 사부님께서 “수련하는 사람은 문제를 거꾸로 보는 것으로, 이런 마난(魔難)과 고통을 모두 제고할 좋은 기회, 좋은 일로 보면서 그것으로 하여금 많이 오고 빨리 오게 해서 자신을 빨리 제고하게 한다.”[2]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사부님께서 “진정한 부처인 그는 우주의 보위자(保衛者)이다. 그는 우주 중의 일체 바른 요소를 책임질 것이다.”[3]라고 말씀도 하셨다. 대법제자도 마찬가지로 바른 요소를 위해 책임져야 한다. 만약 대법을 파괴하고 정체를 갈라놓는 언행을 대면하고도 제지하지 않고 자신을 수련한다는 핑계로 사악을 방종하고 자아를 보호한다면 이것은 마찬가지로 극히 교활한 표현이다. 엄격하게 대법으로 가늠하고 이기적이지 않으며 자아를 내려놓아야만 대법 중에서 온 지혜를 갖출 수 있고 어떻게 해야 하는 줄 알게 된다.
표면에서 돌파를 찾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영원히 돌파할 수 없다. 잠시 효과를 좀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다만 표면적인 가상이다. 착실하게 수련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여전히 막다른 골목에 들어가 하루아침에 무너질 것이다.
사부님께서 반복적으로 “당신들은 혹독한 시련을 거쳐 걸어온 것으로 절대 마음이 바람만 불면 따라서 흔들리는 부평(浮萍)처럼 되지 말아야 한다.”[4]라고 훈계해 주셨다. 우리는 속인 사회의 변화에 따라 사람 마음이 파장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사부님께서 또 “신이 볼 때 세간에서 한 수련인의 옳고 그름은 전혀 중요하지 않고, 사람 마음의 집착을 제거하는 것이 오히려 중요하며, 수련 중에서 당신이 어떻게 사람 마음의 집착을 제거하는가가 비로소 중요한 것이다.”[5]라고 훈계해 주셨다. 우리는 대법을 지키고 엄격하게 자신을 수련해야만 비로소 인간세상에서 사부님께서 가지시려는 사람을 구하는 결과를 성취할 수 있다.
(계속)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각지 설법11-2010년 뉴욕법회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2005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도항(導航)-미국서부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3-소설 『창우겁(蒼宇劫)』에 관하여’
[5]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10-맨해튼 설법’
문장발표: 2015년 11월 10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1/10/31887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