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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기 어려운 법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글/ 허베이 대법제자

[밍후이왕] 우리 자매 중에서 아홉 번째 여동생이 가장 먼저 법을 얻었다. 여동생은 머나먼 신장(新疆)에서 대법 책을 메고 집에 가져와 우리 자매들에게 추천했다. 나는 자매 중 다섯 째였고 집을 떠나 타지에서 출근했다. 아홉째는 전화로 나에게 거듭 진상을 알렸지만 나는 아주 완고하게 반대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사악한 당(黨) 문화의 해독을 심하게 받았다. 공부를 잘해 늘 표창을 받고 상을 탔으며 반 간부, 선진 인물이 됐고 적극분자가 됐으며 구, 시 선진대표 대회 대표가 됐다. 1979년에 대학에 입학할 때 중국어과를 신청했는데 정치교육과로 조정되어 4년 동안 당문화에 더더욱 세뇌됐다. 졸업한 후에는 또 사당(邪黨) 학교에서 정치이론 유형 과제를 가르쳐 사당이 민중을 기만하고 사람마음을 미혹시키는 간부들을 훈련하는 공모자가 됐다. 이렇게 무지몽매하게 사당에게 조종되어 사당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 사당에 가입했고 우수 교사, 선진 공작자로 선정됐고 38홍기수가 되어 천안문에 오르고 기념당을 참관하는 특혜를 받았다. 이런 경력을 가진 내가 쉽게 개변될 리 있겠는가?

나는 스스로 무신론자라고 여겼지만 다행이 신을 믿는 본성을 완전히 저버리지 않아 일부 불경을 읽었고 기공이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을 믿었다. 파룬궁은 낯설지 않았고 신문에서 ‘전법륜’이 10대 베스트셀러라는 것도 보았지만 생활하고 출근하기에 바빠 알아보지 않았다. 1999년 중앙에서 파룬궁을 박해했다. 나는 사당의 하늘을 뒤덮을 듯한 거짓말을 믿고 마음에 증오심이 생겼다. 2003년 내가 중학생들에게 정치과목을 가르칠 때 교장이 단독으로 나를 찾아와 아이들에게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을 말하라고 직접 배치하고 반복해 강조했다. 나는 이렇게 세 개 반 200명에 가까운 학생들의 마음에 해독을 끼쳤다.

아홉째는 노파심으로 거듭 충고하고 번거로워하지 않고 권해 나는 마침내 집에 돌아가면 대법 책을 보겠다고 대답했다. 2008년 5월 나는 집에 돌아가 큰 언니에게 ‘전법륜’, ‘대원만법’을 찾아달라고 했다. 나는 보면서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고 좋다고 여긴 단락을 큰 언니에게 읽어주면서 단번에 적지 않은 이치를 알았다. 예를 들면 인생은 무엇을 위한 것이고 무엇이 수련이고 어떻게 수련하고 반본귀진하며 무엇이 불법인가 등등을 알았고 주화입마, 주의식, 주원신, 대소주천, 축유과, 다른 공간 등등 일부 인식을 분명하게 알았다. 큰 언니는 들으면서 말했다. “원래 그랬구나, 이런 거였구나!”

하지만 몇 십 년 동안 무신론을 주입받은 나는 파룬궁이 좋다는 것을 알았지만 완전히 믿지 않아 갈 때 ‘대원만법’만 갖고 와 시간이 날 때 책에 따라 연공 동작만 하려 했다. 사람의 각종 집착을 버리는데 대해 자신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줄곧 명리를 담담하게 여겨 역사상 명리복록을 포기한 은사들을 동경하면서 자신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겼다.

아홉째는 내가 ‘전법륜’을 가져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아주 조급해 하며 안 된다고 했다. 반드시 책을 봐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당부해 나는 아이에게 집에 한 번 가서 ‘전법륜’을 가져오라고 했다. 가져와도 별로 보지 않았다. 나는 진정하게 그 속의 진정한 내포를 몰랐기 때문에 이렇게 질질 끌었다.

그 다음 해 아홉째는 책을 베껴보라고 했다. 나는 한 사람이 연공하면 온 가족이 수혜를 본다는 말이 생각나 올해 아이가 대학입학 시험을 보니 얼른 베껴 시험 보기 전에 다 베끼면 아이에게 좋은 점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완전히 사리(私利)를 위해 법에서 구하는 마음이었다. 사실 아이는 줄곧 공부를 아주 우수하게 해서 내가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됐는데 시험 첫날 아이는 시험장에서 병에 걸렸다. 재채기를 하고 콧물을 흘렸는데 감독 선생님의 화장지 한 개를 다 썼다. 저녁에 집에 돌아왔는데 40도 고열이 나 얼른 약을 먹이고 수액을 맞혔다. 아직도 하루 더 시험 봐야 하는데 나는 그때 침대에 누운 아이 옆을 지키면서 딸에게 ‘전법륜’의 내용을 알려준 일이 기억났다. 아이는 열심히 듣더니 갑자기 이마 살이 움직이고 살이 한데 모이고 안으로 비틀어 들어가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아이에게 천목을 열어주는 것이 아닌가?’고 생각하고 좀 놀랍고 신기했으나 우려도 되어 아이에게 알려주지 못했다. 그저 아무 일도 없으니 얼른 자고 잘 휴식하라고 말하고 내일 엄마가 휴가를 내서 시험장에 같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사부님께서 아이를 관계하신 것이며 아이에게 신체를 청리해 주신 것이다. 모두 내가 법을 깊게 배우지 않아 깨달음이 부족해 아이가 법을 배우고 얻는 것을 지체한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마음을 기울여 법공부한 것은 2010년 여름이다. 아홉째 동생이 나 보러 두 번 와서야 나는 전면적이고 체계적으로 사부님의 모든 설법을 한 번 보았고 연공 동작을 규범화했으며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세 가지 일이 법공부, 진상 알리기, 발정념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사당이 왜 대법과 대법제자를 박해한 것인지 알았기 때문에 내심으로부터 사당을 부정하고 자각적으로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법리를 안 이후에야 대법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고 법을 얻기가 얼마나 쉽지 않은지 알았다. 속으로 줄곧 이렇게 좋은 대법을 왜 이제야 알았는지 후회했다.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을 허비했는지 알았으며 대법제자가 얼마나 위대하고 책임이 얼마나 중대하며 사명이 얼마나 신성한지 알았고 앞길이 얼마나 멀든 사존을 따라 흔들림 없이 걸어가야 한다는 것도 더욱 분명하게 알았다.

이때 큰 언니, 둘째, 넷째 언니, 오빠도 잇따라 법을 얻었다. 아홉째 동생이 스크린이 큰 MP5, 플레이어를 사서 우리에게 주었다. 아홉째는 우리 형제는 모두 정진한다면서 언니들은 늘 함께 법공부하고 교류하고 밖에 나가 진상 자료를 나누어 주고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며 집에 있는 어른과 아이 모두 삼퇴를 했다고 말했다. 유감스러운 것은 셋째와 열 번째 여동생이 다른 종교를 믿어 장애를 받은 것이다.

이틀 전 아홉째와 통화했다. 그곳 인터넷이 좋지 않아 나에게 대표로 교류 원고를 쓰라면서 자매들도 같이 써 넣으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나는 주로 내가 법을 얻은 과정을 썼는데 이후에 다시 자매들이 대법을 얻은 신기한 이야기를 실증하려 한다. 이 기회를 통해 나는 우리 형제자매 8명을 대표해 사존의 자비로운 제도와 은혜에 감사드린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제자들은 반드시 계속 정진해 세 가지 일을 잘해 중생을 구도해 서약을 실행하고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문장 발표: 2015년 11월 19일
문장 분류: 수련마당>신수련생마당>대법과의 연분
원문 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1/19/31936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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