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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사존께서 줄곧 나를 보호하셨다

글/ 산둥 허쩌(菏澤)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는 농촌에서 자란 대법제자다. 법을 얻기 전 두통, 요통, 다리통증, 어깨통증, 기관지염, 산통(疝痛) 등등 많은 고질병으로 고통스럽게 살았다. 병이 발작하기만 하면 참기 힘들었기 때문에 그때마다 많은 치료비를 들여 치료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30대의 젊은 나이인데도 허리가 80도로 굽어 있었으므로 50대로 보였다. 그러던 중 1996년 말 갑자기 왼쪽 눈이 실명됐는데, 베이징의 큰 병원의 검사결과 ‘안중괴사’라는 진단을 내렸다. 전문의는 “이런 병은 세계적으로 희귀병인데 지금까지 치료된 적이 없다.”고 했다. 나는 절망감에 빠졌다.

1998년 둘째 남동생이 군에서 제대해 돌아와서 농촌의 몇몇 사람과 함께 파룬궁(法輪功) 수련을 했다. 나는 우연히 그들이 사부님의 설법 녹화테이프를 시청하는 걸 보게 되었는데, 마침 그 옆을 지날 때 사부님께서 “천목을 열다.”의 부분을 말씀하셨다. 바로 그 순간 내 앞이마가 조여들면서 살이 한데로 모여서 안으로 뚫고 들어가는 걸 느꼈고, 순간 한 가닥 에너지가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넘어질 듯 몸을 지탱할 수가 없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나는 그런 경험을 하고나서 곧바로 대법수련의 길로 들어섰다. 수련을 얼마동안 하자 단번에 전신이 홀가분해졌고, 더욱 놀라운 것은 실명했던 눈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몸에 지니고 있던 많고 많았던 질병들이 말끔히 사라졌다. 실명됐던 눈도 보이고, 몸의 온갖 고질병도 사라지자, 일신은 가벼워져서 그 홀가분한 기분은 이루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더욱 신기한 것은 80도로 굽어 있었던 허리까지 곧게 펴진 것이다. 가족들은 대법의 신기함을 직접 목격했으므로 아내와 두 딸도 모두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게 됐다.

사부님께서 나를 이끌어주셔서 법을 실증하는 길을 걷다

1999년 7월 20일, 장쩌민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함에 따라 전 중국대륙은 거센 파도가 몰아쳤고, 사악한 기가 하늘을 찔렀다. 내가 현의 연공장과 법 공부 팀을 찾아갔을 때 그곳 수련생들은 모두 대법을 실증하러 베이징에 가고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TV를 켜보니 온통 사부님과 대법을 비방하는 사악한 모략선전 뿐이었다. 나는 아내(수련생)에게 “이것은 한 차례의 정사대전(正邪大戰)이니 나도 베이징에 가서 대법을 실증하겠다.”고 말했다.

2001년 4월 17일 베이징으로 대법을 실증하러 갔다. 농촌에서 나고 자라면서 외지에는 간 적이 없으므로 톈안먼(天安門)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나는 오직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해야한다.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정법이다!’라는 일념밖에 없었다.

톈안먼을 찾아가는 길에서 한 노인을 만났다. 그는 내게 “빨리 가세요! 이 앞으로 계속 가면 그곳에 도착하게 돼요.”라고 알려줬다. 내가 얼른 가다가 뒤돌아보며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그 노인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한 동안 그렇게 걸어가다가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에 다시 누구에게 물어보려고 했는데. 바로 그 순간 또 한 명의 노인이 금방 내 곁에 나타났다. 그 노인은 나에게 “당신은 대법을 실증하러 오셨지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앞에 천교(天橋)가 있는데, 그 천교를 지나면 톈안먼 광장이에요.”라고, 내가 묻기도 전에 말해줬다. 노인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두 발자국 걸어가다가 뒤돌아보니 노인은 또 보이지 않았다. 순간 나는 사부님께 감사를 드렸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사부님께서는 저에게 길을 안내해 주셨습니다!” 내가 빠른 걸음으로 톈안먼광장에 도착하여 광장 중심에 이르러 멈추기도 전에 한 무장경찰관이 내게 다가와 “왜, 이곳에 왔냐?”고 물었다. 나는 맘속으로 ‘만약 지금 이곳에서 법을 실증하지 못하게 된다면 언제 또 기회가 올 것인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두 손을 결인한 후 파룬따파(法輪大法) 제1장 공법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무장경찰관이 즉시 나의 팔을 짓누르면서 “됐어요. 당신은 이것으로 정법을 한 것으로 칩시다! 이것으로 그냥 칩시다. 이것으로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때 또 4, 5명의 경찰관이 다가와 “당신이 한 것은 괜찮습니다. 우리는 정말 놀랐습니다. 당신은 정말 대단합니다! 차에 오르시오. 우리가 당신을 데려다 주지요.”라고 말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그들의 입을 통해 나를 격려해주시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현지 관할 공안의 내근 보위과 경찰관이 베이징에서 나를 인계받아 집으로 끌고 온 후, 불법적인 가택수색으로 TV수상기, 녹화기, 음향기기 및 다수의 대법서적과 관련 자료들을 대거 강탈한 후 나를 구치소에 감금시켰다. 구치소장은 나를 큰 감방에 감금하면서 감방 죄수 우두머리에게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니 잘 ‘보살피라’고 지시했다. 그가 문을 닫고 돌아가자, 담당 간수가 여러 명의 감방 죄수에게 나를 맡겼는데, 실은 심하게 구타해서 버릇을 바로잡으라는 것이었다. 그들 일단의 감방죄수들이 달려들어 구타하기 시작했다. 어떤 자는 발로 등을 차고, 어떤 자는 발로 배를 차고 갈비뼈를 찼다. 그들은 나의 옷을 벗긴 후 판자에 엎어놓고 구두굽으로 궁둥이를 강타했다. 나를 구타한 자는 때리다 지쳐서 얼굴에 온통 땀을 흘렸고, 나중에는 팔이 아파 들지도 못했다. 그러나 나의 몸은 내 몸이 아닌 것처럼 매우 편안했다. 비록 매질로 선혈이 속옷과 궁둥이에 묻기는 했지만 만져봐도 아프지도 않았고 또 부어오르지도 않았다. 나는 사부님께서 제자를 대신해서 감당하셨음을 알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후일 감방죄수들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말해줬고, 중공사악의 박해진상을 알려줬으며, 내가 연공을 한 후 변화된 내 모습에 대해서도 말해줬으며, 파룬궁(法輪功)의 5장공법을 시연해 보여줬다. 그들 중 일부는 나를 따라 연공을 하기 시작했다. 구치소 경찰관은 나에게 강제노역을 시켰는데, 매일밤 11시까지 하게 했다. 또 밤이면 야간당직을 서게 하는 등 극심한 박해로 1개월 동안 불법적으로 감금되어 있다가 나올 때는 76kg이었던 체중이 56kg도 안됐다. 그때 우리 집은 24시간 감시를 당했다. 사복경찰관이 잠복근무를 했고, ‘610’, 국가보안대대, 파출소경찰관 등등이 3일에서 5일마다 들이닥쳐 불법적인 가택수색을 했는데, 돈이 되는 물건은 무엇이든지 보는 대로 강탈해갔다. 그것들은 꼭 도적떼와 같았다.

우리 집은 수련하기 전 죽순을 여러 묘(畝)판에 심어 재배했기에 해마다 수만 위안의 수입을 올렸다. 그래서 우리는 농촌형편으로 볼 때 상당히 부유한 축에 속했다. 그러나 장(江) 씨 집단의 ‘파룬궁에 대해명예를 실추시키고, 경제적으로 파탄시키며, 육체적으로 소멸하라.’는 박해 지령에 따라 우리 집의 생활형편은 극히 어렵게 변했다. 세 아이의 학비를 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일상생활도 지탱하기가 어렵게 됐다. 그 해 설날 우리 가족이 갖고 있던 돈은 겨우 7위안이 있을 뿐이었다. 우리 집은 박해당한 이후 7년 동안 설에 고기를 산 적이 없고, 8년 동안 폭죽도 구입한 적이 없고, 10년 동안 새 옷을 산 적이 없었다. 설이면 우리 가족은 문을 걸어 잠그고 함께 법 공부를 했다. 밥은 먹지 않아도 되지만, 법은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사부님께서는 정념으로 관을 넘도록 가지해주시다

2007년 12월 13일, 우리는 부친의 생일파티를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집 앞에 여러 대의 경찰차가 들이닥친 후 차에서 많은 경찰들이 내렸다. 그들은 손에 총을 들고 있었는데, 나를 향해 “밖으로 나오라”고 하면서 강제로 끌어내더니 한바탕 심하게 구타했다. 그들의 소란스러운 악행에 놀란 마을주민들이 모두 나와 구경을 했다. 그래도 경찰들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총을 들고 위협적인 자세로 불법적인 가택수색을 단행하여 녹화기 4대, TV수상기 1대, 노트북 1대, MP3와 MP5 5대, 현금 5, 6천 위안 등을 강탈한 후 우리 부부를 납치하여 관할 파출소로 끌고 가서 밤새도록 자백을 강요했다. 납치된 지 3일째 되던 날 구치소로 넘겨져 다시 감금됐다. 그런 후 조건을 달아 가족을 위협하며 4만 위안을 갈취하려다가 여의치 않자, 우리 부부에게 2년의 노동교양처분을 내려 지난(濟南) 소재 장취관좡(章丘官莊) 마약중독자재활원에 감금했다.

나는 노동교양소 8대대에 감금된 후 매일 강제노역에 투입됐으며, 밤이면 잔업이란 명목으로 또 노역을 시켜 자정이 넘어서야 잠을 잘 수 있었다. 모두 큰 감방 시멘트 바닥에서 자게 했으며, 작은 걸상에 앉히는 체벌도 수개월씩 당하기도 했다. 또 감방죄수인 소위 바오자(包夾)에게 지시하여 나를 감시하고 학대하도록 했는데, 그자들은 식사와 대소변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학대했고, 식사라고 주는 만두소에는 일명 삼석가루(三石粉)라는 불순물이 대량으로 들어 있어서 삼키기가 힘들었으며, 그걸 먹고 나면 대변이 굳어 용변조차 여의치 못했다. 또 반찬이라는 것에는 늘 4, 5개의 닭털과 잡초 등 여러 가지 불순물이 섞여있어서 먹을 수가 없었다. 나는 늘 욕 소리를 들어야했고, 구타를 당하면서 대법을 모함하는 동영상과 녹음을 들어야 했다.

한 번은 감옥대장 뤄광룽(羅光榮)이 나를 사무실로 불러다 물었다. “파룬궁(法輪功)이 좋은가 좋지 않은가? 또 수련을 할 것인가 안할 것인가?” 나는 “파룬궁은 좋아요. 당연히 수련을 해야지요! 좋지 않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이 수련을 할 수 있겠어요? 파룬궁은 참으로 좋아요.”라고 대답했다. 내 말에 약이 오른 뤄광룽과 왕신장(王新江)은 아무 말 없이 단번에 나를 잡아 쓰러트린 후 주먹으로 치고 발로 걷어차며 마구잡이로 구타를 했다. 그들은 그렇게 한동안 정신없이 구타를 하다가 스스로 힘이 빠지자 나에게 수갑을 채워놓았다. 나는 그렇게 수갑을 찬 채 7~8일간 방치됐다. 어느 날 한 끼의 식사를 주기도 했고, 또 어쩌다 간혹 만두 한 개를 주기도 했다. 그들은 내가 매달려 있는 화장실 아무 곳에서나 대변을 보거나, 용변을 보고 물도 내리지도 않았다. 내가 그렇게 혹독한 감금상태에 있었으므로 장기간 내가 보이지 않자, 나와 함께 수감됐던 수련생들은, 내가 죽었는지 살아있는지 알 수 없다면서 단체로 대대 앞에서 정좌하여 “사람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대대에서는 더 이상 무슨 방법이 없게 되어 나를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또 한 번은 대대장 뤄광룽, 부대대장 왕신장이, 나의 두 손에 수갑을 채워 화장실 스팀 보일러 관에 매달아 놓고, 스팀의 뜨거운 증기가 얼굴로 뿜어져 나오게 했다. 땀이 등줄기에서부터 흘러내렸다. 그러자 그들은 갑자기 나의 솜옷을 벗긴 후 스팀 보일러를 잠그고 화장실 북쪽창문을 열어 놓아 찬바람을 맞게 했다. 전신이 부들부들 떨리며 급속도록 냉각되어갔다. 그때 사부님의 법이 뇌리에 떠올랐다. “진념(眞念)을 움직일 때는 모두 위력이 강대하다.”[1] 나는 생각했다. ‘나는 정법시기의 대법제자다. 우리는 법을 실증하러 왔다. 삼계 내의 일체는 모두 내가 구도해야 할 대상이다.’ 나는 발정념을 하기 시작했다. ‘나를 얼게 하는 바람아, 너는 나를 얼게 하여 사악에 협조하지 말라. 사악을 도와 악을 행하지 말라. 나는 대법제자(大法弟子)다. 나는 진심으로 네가 자신을 위해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기 바란다.’ 순간 찬바람이 내 몸을 지나가면서, 순식간에 다시 따뜻한 온풍이 불어왔다.

나는 다시 수갑과 소통했다. ‘너는 사악의 지시를 받아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너도 자신을 위해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해야 한다.’ 잠시 후 수갑은 ‘카- 카- 카 하는 소리를 내면서 느슨해졌다. 나는 또 일념이 생겼다. ‘나는 대법제자이므로 연공을 해야 한다. 사부님께서 손이 없고 발이 없어도 모두 연공을 할 수 있다고 법에서 말씀 하셨다. 나는 대법제자인데, 수갑이 나를 통제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미러선요우(彌勒伸腰)’를 시작하자, 스팀보일러 관에 채워진 수갑이 뜻밖에도 고무줄처럼 신축성 있게 변하여, 내가 두 손을 쭉 폈다가 내릴 수 있도록 유연해진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때 갑자기 뛰어 들어온 경찰관 왕신강이 나를 보고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손을 들어 올릴 수 있나?” 나는 그에게 “내 두 손은 여전히 수갑이 채워져 있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수갑이 채워진 내 손을 살펴보며 무슨 이상이라도 있는가?하고 점검을 하고는 알 수 없다는 듯 그대로 돌아갔다.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수갑에게 말했다. “대법제자를 채우지 않겠다는 너의 인식을 안다.”고 말했다.

나는 화장실에서 수갑이 채워진 채 4일 밤낮동안 있었는데, 경찰들은 나에게 대소변을 보지 못하게 했다. 처음에는 대소변을 보지 못해 배가 불어 매우 견디기 어려웠다. 경찰에게 수갑을 풀어달라고 했으나 들어주지 않았다. 나는 안으로 찾았다. ‘경찰이 무엇 때문에 대소변을 보지 못하게 하는가?’ 객관적 표면적으로 볼 때 그건 나의 신체를 박해하려는 것이지만, 사실은 그런 형식으로 나에게 수련을 포기시키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다. 그리고 매 대법제자에게는 모두 사부님께서 주신 불법신통(佛法神通)이 있다. 나는 지금 공능을 이용해 다른 공간에서 대소변이 배설되도록 하겠다.’ 이렇게 생각하자, 대소변이 다른 공간장에서 배설됨을 느낄 수 있었다. 배가 부풀어 오르지도 않았고, 몸도 불편하지 않고 편안해졌다. 그렇게 사흘 밤낮의 박해를 사존께서 제거해주셨고 가지해주신 것이다.

지금 나는 깨달았다. 내가 당시 사악의 박해를 인정했으므로 마난을 크게 만든 것이다. 정념으로 사악을 저지하지 못해 경찰의 죄업을 가중시켰던 것이다. 만약 나의 그 일념이 확고했고, 또 법 안에서 금강부동한 자세였으며, 또 아무리 사악한 경찰의 박해에 직면했더라도 그것을 부정하거나 또는 악행을 단호하게 저지했더라면, 일종의 다른 국면으로 변했을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사존께서는 줄곧 나를 보호하셨다

나는 2015년 6월 밍후이왕(明慧網)을 통해 각 지역의 많은 수련생들이 연이어 중공의 최고인민법원과 최고인민검찰원에 장쩌민 고소장을 접수시키는 걸 보고 즉시 깨달았다. ‘장쩌민 고소’는 사부님께서 무량한 자비로 대법제자가 걸어 나와 정체협조, 구도중생, 사악의 박해를 해체하는 하나의 중요한 정법노정 중의 항목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나는 정법시기 대법제자이니, 사부님의 말씀에 따라 가능한 한 빨리 장쩌민을 고소하는 열풍에 뛰어들어야 한다.

나는 아내와 상의했다. “농사일은 아무리 바빠도 멈출 수 있지만, ‘장쩌민을 고소’하는 일은 지체할 수 없소. 우리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험지에 답을 잘 써서 사전의 서약을 완수해야하오.” 지식수준이 낮은 시골사람이 문장을 작성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나는 써야만 한다! 이틀 밤을 꼬박 새면서 16년 동안 받은 박해의 대략적인 정황을 썼다. 이튿날 (6월 21일) 아침 일찍 작성한 문건을 갖고 10여 리 떨어져 있는 현 성의 한 수련생을 찾아가 문장을 정리해달라고 했고, 그걸 다시 워드로 작성한 고소장을 우편으로 발송했다. 당시 아무런 두려움도 없었다. 다만 ‘이 일은 비할 바 없이 신성하다.’는 것만을 느낄 수 있었다. 특급우편으로 고소장을 발송을 할 때 담당 우체국직원이 뜻밖에 “당신은 왜, 이제야 왔어요? 당신을 기다렸어요. 빨리하세요!”라고 말했다. 고소장을 발송하고 밖에 나오자, 어디선가 폭죽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나는 즉시 깨달았다. ‘이것은 사존께서 나를 격려해주시는 것이로구나! 또 다른 공간에서는 나를 축하하는구나!’

10여 년의 수련과정을 되돌아보면, 사부님께서 시시가각 보호해 주셨다.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다면 나는 오늘까지 걸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비틀거리며 제대로 걸어오지 못했던 수련과정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사부님께 죄송한 맘을 금할 수 없다. 이후부터는 아무리 촉박한 막바지 시간이라도,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사부님을 따라 대법제자의 ‘세 가지 일’을잘하여 원만의 길로 들어서서 용맹정진 하겠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만약 부족한 곳이 있으면 수련생이 자비롭게 지적하기 바란다.

합장하고 고개 숙여사부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

[1]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정진요지2-대법제자의 정념(正念)은 위력이 있다’

(밍후이왕 제12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5년 11월 2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제12회 밍후이법회 (2015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1/2/31848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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