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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과 함께 있었던 나날(4)

글/ 다롄 대법제자

[밍후이왕](전편에 이어)

4. 다롄(大連) 2기 대법 전수반

다롄 2기 반은 쉽게 열린 것이 아니다. 원래 이 시간에는 다른 도시에서 학습반을 열기로 돼 있었지만 그들이 잘 안배하지 못했다. 사부님께서 다시 계획하실 때 마침 내가 옆에서 듣고는 다롄에서 한 번 더 하실 것을 청했다. 처음에는 외지에서 2백여 명이 오고 현지에서는 5백 명 밖에 오지 않았기에 다음번에는 반드시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내 의견을 채택하시어 다롄 2기 대법 전수반을 7월 1일에 시작하기로 하셨다. 사부님께서 자비로 사람을 구하시는 것이었다.

하루는 우리 집에서 사부님께서 노수련생과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노수련생이 사부님께 표 값은 어떻게 정할 것인지 여쭈었다. 노수련생은 첫 번째 전수반은 50위안(한화 약 9천원)이었는데 기공협회에 공제금을 주고 나면 얼마 남지 않아 비용도 부족하다고 했으며, 이번에 사부님께서 노수련생은 반값으로 하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처리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사부님께서는 삽시간에 엄숙해 지셨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뭘 하러 왔는지 알고 있습니까? 법을 전하러 왔습니다! 무엇도 법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돈으로 이익을 낼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수련생마다 다 돈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에 신수련생은 종전대로 하고 노수련생은 반값인 25위안(한화 약 5천원)으로 하되 기공협회 공제금은 그들과 협상하면 됩니다.”

사부님의 말씀에 나는 감동해 울고만 싶었다. 다른 기공사는 기공으로 돈을 버는데 하루 이틀 전수반에 몇 백 위안을 받는다. 가는 곳마다 먹고 마시고 고급 호텔에 묵고 차로 이동하면서 잘난 체 한다. 하지만 우리 사부님께서는 비행기를 타지 않고 라면을 드시고 초대소에 묵으시면서 차 없이 이동하신다. 수행하는 수련생은 크고 작은 가방에 책을 넣어 메고 사부님을 따라 전국 각지로 다녔다. 10교시 수업을 9일 전수반에 걸쳐 50위안 밖에 받지 않으며 노수련생은 이번에 또 반값이라니, 전 세계에서 이런 분을 찾을 수 있을까? 사부님 수고하셨습니다!

학습반은 기차 공장 강당에서 개최했다. 본래 2700명밖에 수용하지 못하지만 사부님께서 학습반을 여신다는 것을 알고 노수련생이 모여들고 군중도 소문을 듣고 모여 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입석권을 팔아 3천 명으로 통제했다. 대법의 각도에서 말한다면 기차 공장은 다롄에서 수익이 가장 많은 기업이다. 파룬따파가 여기에서 전수반을 열고 수련생들은 여기에서 심성(心性)교류회를 열었다. 공장에 수련생이 아주 많았는데 지도자 간부 중에도 수련생이 많았다. 대법의 가호 하에 공장의이윤은 자연히 다롄에서 앞자리를 차지했다.

개강 전 어느 날 나는 시의 군급(軍級) 간부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베이징 군구(軍區)의 옛 지도자가 그에게 전화해 리 선생님이 다롄에 오셔서 학습반을 여니까 가족들에게 표를 몇 장 사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그 간부는 우리 집에 와서 얘기를 나눴는데 표를 부탁한 베이징의 노 지도자와 가족은 이미 리 선생님의 설법을 들었으며 이 공이 매우 좋으며 신체의 변화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다롄에 와서 또 한 번 전수반에 참가하고 싶다는 것이었다.또 만약 가능하다면 표를 몇 장 더 사서 자기도 참가하고 싶다고 했다. 1년 후 사부님께서 재차 다롄에 오셨다. 나는 그에게 사부님을 뵈러 올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는 신바람 나서 즉시 달려 왔다. 사부님 앞에 단정히 앉아서 예의를 갖췄다. 갈 때 사부님께 경례를 올렸다. 그를 바래다 줄 때 나는 그에게 물었다. “평생 군생활을 하시고 지금은 또 군 정위인데 불법(佛法)을 믿으십니까? 리(李) 선생님을 믿으십니까?” 그는 말했다. “저는 믿습니다! 리(李) 선생님은 위덕이 너무 커서 어떤 사람이 됐던 선생님 앞에서는 모두 뒤덮여집니다.” 이 말은 정말 잘 했다. 내 마음에 꼭 들었다. 정말로 어떤 사람이 됐든 모두 사부님의 위덕에 뒤덮이고 만다.

개강이 되어 노수련생은 나에게 수강증을 주면서 이 속에 사부님께서 직접 만드신 수강증 2백 개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동시에 나에게 몇 개를 건네주면서 이것이 바로 사부님께서 만드신 것이라고 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 수강증은 지금도 보존하고 있는데 위에는 사부님의 인감이 찍혀 있다.

이번에 사부님께서는 정저우(鄭州)반이 끝나고 다롄에 오신 것이다. 정저우반에서 발생한 일은 많은 수련생이 모두 알고 있다. 사부님께서 설법 중에서도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설법할 때 아주 큰 공룡 같은 동물이 와서 교란했는데 광풍이 몰아치고 계란만한 우박이 쏟아져 학습반 강당 지붕에 구멍이 나고 전기도 나가서 강의를 못했습니다. 수련생이 손전등을 보내왔습니다. 이날 일은 현지 신문에도 실렸지요.” 사부님께서는 그것이 이렇게 오만무례하고 무모하게 날뛰면서 법을 전수하는 것을 파괴하는 것을 보고 손을 쓰셨다. 그것은 매우 사나워서 진정한 재주가 없으면 정말이지 다스릴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부님에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부님께서 대수인(大手印)을 하시어 그것을 제압하셨다. 마지막에 그것은 아주 작게 변해 사부님 손에 잡혀 광천수 플라스틱 병에 들어갔는데 그속에서 녹아버린 후 병은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사부님께서 법을 전하신 이래 일부 요괴와 도깨비들이 빈틈만 있으면 뚫고 들어와 교란했는데스스로 소멸을 자초하는 것이었다.

사부님께서는 지난(濟南)에서 비행기를 타고 다롄에 오시기로 했다. 그런데 사악한 마의 교란이 너무 심했다. 날씨가 크게 악화되어 광풍과 폭우로 비행기가 결항됐다.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는지, 학습반을 제때에 개강할 수 있을지 모든 것이 변화 속에 있었다. 각지에서 문의 전화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걸려 왔다. 그러다가 갑자기 통지를 받았는데 사부님 일행이 노선을 바꿔 옌타이(煙台)에서 배로 오신다는 것이었다.

소식은 빠르게 전해져서 부두에 백여 명 수련생이 모였다. 어떤 이는 현수막까지 들었는데 “리훙쯔(李洪志) 선생님께서 다롄에 오신 것을 열렬히 환영합니다”고 썼다. 카메라들은 초점을 잘 맞추고 배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부 수련생은 배에 올라가서 마중하고 대부분은 밖에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그렇듯 질서정연했다. 배가 부두에 서서히 들어섰는데 선박명이 ‘신세기(新世紀)’호였다. 우연일까 아니면 깊은 의미가 있는 것일까? 사부님께서는 한창 신세기를 열고 계시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 배 출구에 서 계셨다. 아래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환영하러 온 것을 보고 원래 가장 앞에 섰던 다른 승객들이 모두 눈치 있게 자리를 양보해 사부님께서 가장 앞자리에 서 계셨다. 많은 사람들이 신기해서 물었다. “어떤 분이 오신 겁니까?”

수련생들은 펄쩍 펄쩍 뛰면서 박수를 치고 환호했다. 사부님께서도 기뻐서 손을 저어 사람들에게 인사하셨다. 사부님을 에워싸고 밖에 나오니 더욱 많은 수련생들이 와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당신이 안배한 겁니까?”라고 하시자 나는 “안배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소식을 듣고 자발적으로 온 겁니다”라며 히죽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숙소를 안배할 때 사부님께서는 고급 호텔에 묵으면 안 된다고 엄숙하게 명하셨다. 누가 돈을 내도 안 되며 출장을 다니는 사람들이 묵는 작은 일반 호텔인 ‘우한(武漢) 호텔’에만 묶을 수 있다고 하셨다.

(계속)

문장발표: 2015년 11월 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온고명금(溫故明今)> 사부님의 은혜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1/5/31846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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