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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한 부분에서 자신을 수련하다

글/ 허베이(河北)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여기서 여러 수련생들과 내가 최근에 정법수련 중에서의 작은 체험과 제고에 대해 교류하려고 한다.

‘모순은 정말 좋은 일’이란 깨달음

나는 한 4,5명으로 구성된 법공부 팀에 참가했다. 소조의 한 노수련생은 해가 저물어 주위가 어두워지면 법을 읽는 것을 힘들어하고 늦을 뿐만 아니라 쉽게 틀린다. 처음에는 그래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후에는 매번 이 수련생이 법을 읽을 차례가 되면 이 수련생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읽으려 했기에 몇 번이나 법공부를 하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마땅히 읽어야 하는 법을 다 읽지 못했다. 점차적으로 나는 사람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그녀에게 말하려 하다가 마땅치 않다고 생각해 참고 있었다. 그러나 매번 그녀가 읽을 때면 내 마음은 아주 괴로웠다.

어느 날 시간이 거의 다 되었는데 아직 몇 장이나 읽지 못했고 주인(법공부 팀의 집주인) 수련생은 딸을 대신해 아이를 마중 나가야 하기에 모두들 가려고 했다. 만약 정상적으로 돌아가면서 읽었다면 시간이 충분했었다. 그러나 그 수련생은 여전히 한 단락 한 단락 천천히 읽었다. 오후에 햇빛이 점차 어두워짐에 따라 그녀가 읽는 속도는 갈수록 느려졌을 뿐만 아니라 잘못 읽는 글자도 끊이지 않았다. 나는 꾹 참고 있으면서 속으로 ‘왜 다른 사람을 이해해 주지 않는가?’ ‘다른 사람에게 대신 읽게 하면 안 되는가?’라고 그녀를 원망했다. 내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을 때 노수련생은 마침 한 단락을 다 읽었다. 속으로 ‘이제 그만 읽겠지?’라고 생각하는데 그녀는 멈추려는 생각이 전혀 없었고 또 다음 단락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갑자기 참을 수가 없어서 “너무 늦어요, 다음 사람이 바꿔 읽으세요”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 수련생은 다른 말을 하지 않았고 다음 수련생이 법을 마저 다 읽었다.

말을 하고 나서 나는 곧 후회했는데, 방법이 타당하지 않으면 그 수련생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즉시 알게 됐다. 나는 내게서 어떻게 그런 말이 튀어 나왔는지 놀라웠다. 그때 나는 방금 전의 각종 초조하고 불안한 것이 모두 자신의 집착심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법공부가 끝나고 나와서 나는 아이 마중을 가는 그 수련생에게 말했다. “제가 금방한 말이 너무 강했어요.” 그 언니는 약간 그랬다며 우리는 어떠한 사람도 모두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창피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전반 국면을 고려한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느낌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말했으며 자신이 그 노수련생에 대한 불만을 감추고 있었던 것이었다.

집에 와서 생각할수록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그 수련생이 나보다 연세도 아주 많은데 내가 뭔데 실례를 무릅쓰고 다른 사람의 말을 끊었는가? 그 수련생을 다시는 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정말 송구스러웠다. 저녁에 잠자기 전에야 나는 수련생 사이에 나타난 모순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관한 사부님의 법이 생각났다. 사부님께서는 “문제가 생기고 모순이 나타나면 여러분은 모두 자신이 잘하지 못하여 조성된 것이 아닌지 하며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는다.”[1]라고 말씀하셨다. 때문에 모순이 나타난 것은 좋은 일이다. 나의 이런 마음은 옳지 않다. 이것이 체면을 세우려는 마음이 아닌가? 틀렸으면 승인하고 태연하게 대하며 정정당당하게 바로 잡아야 한다. 모순이 나타난 것은 제고할 수 있는 기회이고 집착이 있으면 조만간 드러내고 오늘 나타난 것을 나는 바로 수련해서 없애겠다. 다른 사람에 대한 불만족한 마음과 타인을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느낌을 고려하지 않는 마성(魔性), 또 잘못을 인정하기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없애겠다. 나는 이런 좋지 않은 마음을 없애려하고 그들이 다시는 숨지 못하게 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밝아졌다. 원래 모순은 확실히 좋은 일이다. 이 말을 무수히 공부했지만 이제야 진정으로 법에 동화된 느낌이 들었다. 다시 법공부를 할 때 나는 진심으로 그 수련생에게 미안함을 표했고 양해해 달라고 했다. 그 수련생도 괜찮다고 너그럽게 말했다.

이 일을 통해 나는 마침내 무엇 때문에 대부분 시기에 모순을 좋은 일로 여기지 못하고 모순 중에서 자신을 수련하지 못했는지 알게 됐다. 오직 착실히 수련해야만 모순에 폭로된 자신의 심성을 제고할 수 있고 모순을 좋은 일로 변하게 할 수 있으며, 이때에야 비로소 모순을 좋은 일로 여길 수 있다. 심성을 제고하는 것이 관건이다. 안에서 찾지 않으면 영원히 모순은 좋은 일이 될 수 없다. 이 ‘좋다’는 것은 심성제고를 전제로 한 것이다.

내가 수련한 것이 탄탄한지 검사하기 위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한 가지 작은 고험에 부딪혔다.

일이 많을 때면 남편은 늘 자발적으로 나를 돕는다. 한번은 수련생이 인쇄한 ‘전법륜(轉法輪)’ 몇 권을 무더기로 가져와서 읽기 쉽게 나에게 책장을 장정하라고 했다. 시간이 조금 부족해 나는 남편보고 대신 해달라고 했다. 남편은 처음에 하기 싫은 듯이 중얼거렸다. 내가 다시 물었을 때 그가 그렇게 큰 소리로 안 한다고 할 줄은 몰랐다. 나는 단번에 화가 나서 그 인쇄된 종이들을 안고 방으로 들어가면서 속으로 ‘하기 싫으면 하지 마요. 당신이 하기 싫으면 내가 하면 되지!’라고 생각했다.

대법책을 장정하려면 먼저 한 뭉치 한 뭉치 정확하게 페이지를 나누고 잘 접고 잘 누른다. 다시 두꺼운 종이를 찾아 다섯 등분으로 나누고 가운데 네 칸 중심을 펜으로 표기한다. 그리고 이것을 척도로 해서 한 뭉치 접어놓은 책 페이지 가운데에 놓고 표기에 따라 바늘로 기워야 하는 곳에 송곳으로 구멍을 뚫는다. 마지막에 순서대로 9뭉치로 한 권을 봉합한다. 몇 권의 책, 몇 십 뭉치를 완성하려면 적지 않은 공을 들여야 한다.

나는 한편으로 페이지를 나누고 한편으로 ‘남편은 왜 이런 태도일까’라고 생각하면서 불평하고 있을 때 갑자기 생각났다. 이것은 좋은 일이다! 그리하여 나는 먼저 머리에 이것은 좋은 일이라고 정해놓은 다음 그것이 어떻게 좋은 일인가? 어떤 좋은 일인가? 이렇게 생각하니 뜻밖에 아주 쉽게 발견했다. 이 모순은 내 의지하는 마음에 따라 온 것이었다. 남편이 늘 도와주었기에 나는 이미 나도 모르게 의지하는 마음이 생겼고 아주 많은 일을 당연하게 그에게 맡기려고 했다. 그러나 그 일들은 원래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다. 그의 말대로 하면 내가 그렇게 많은 일을 끌어안고 있으니 그가 나를 도와준 것이었다. 나는 합리적이 되었다. 그가 나를 도와주고 싶어 한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의지했기에 주객이 전도됐다. 필경 나는 ‘정법시기 대법제자(大法弟子)’이기 때문이다!

지난 어느 날 저녁에 책을 장정한 것을 생각하니 시작할 때 내가 두 차례 한 것을 제외하고, 나중에는 모두 그가 혼자 했거나 그가 앞의 일을 다 해놓으면 나는 가끔씩 그를 도와 몇 권을 봉했다. 그러나 이번에 그에게 거절당하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전 과정을 하면서야 그가 매번 했던 노력을 체험할 수 있었다. 원래의 불만은 싹 사라졌고 내심 감격으로 충만됐다. 그 책을 모셔간 수련생들을 대신해 그에게 감사했고 나에게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게 해 주어서 고마웠다. 상대방에 대한 그런 마음이 생기니 화와 원망이 완전히 사라지고 불평이 없었으며 기쁨도 없었다. 사람 마음이 있을 때의 그런 자아 평정심이 아니라는 것을 진짜로 체험했다. 이런 종류의 감사는 수련인의 자아 반성과 한 생명이 자신의 수련과정 중에서 출연한 역할에 대한 소중함으로 응집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비록 가볍게 표현하고 조용히 보여줄 수도 있지만 두터운 내포가 있다.

자신이 맡은 일을 책임지다

어느 날 저녁, B수련생이 나를 찾아와 A수련생에게 다음날 시(市)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라는 통지를 해달라고 했다. B가 금방 퇴근하니 아들이 타지에서 와서 가기가 불편해 내가 가기를 희망한 것이었다. 나는 A의 아내가 아직 대법을 완전히 인정하지 않고 일을 그녀 몰래 하는 것을 고려해보았다. 이때 내가 가는 것이 합당한지 고려하고 고려했지만 시간이 긴박하고 다른 선택이 없었기에 나는 갈 수밖에 없었다.

길에서 사부님께 안배를 도와달라고 생각했다. A수련생의 집에 도착해 초인종을 울렸지만 사람이 없었다. 나는 조금 기다렸다가 또 눌렀다. 여전히 대답이 없기에 아래에 내려가 그를 기다렸다. 밖에서 한참 기다려도 보이지 않자 기쁘지 않았다. 그리하여 위에 올라가서 문을 두드렸다. 여전히 없기에 또 내려왔다. 속으로 ‘그가 집에 없으니 나도 방법이 없지’라고 생각하면서 돌아가려고 자전거를 탔다.

가다가 옳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보고 통지하라고 했는데 이것은 통지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사람을 찾지 못해도 시에 있는 수련생에게 뭐라고 말해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나는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원래 협조하던 수련생 C가 생각났다. 그가 연락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그를 찾아갔다. 그러나 내가 그의 집에 도착했을 때 그의 집에도 사람이 없었다. 나는 생각을 바꿔 시간이 이렇게 늦었으니 A수련생이 집에 갔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A네 집으로 가 보았다. 여전히 불이 켜지지 않았다. 그때 나는 C수련생이 지금 엄중하게 병업으로 교란 받고 있는 한 노수련생을 도와 발정념을 하고 있으니 거기로 법공부 하러 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그 노수련생 집으로 갔다. 노수련생의 가족은 나에게 C수련생이 거기에 없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나와서 양쪽을 살폈지만 아무도 없기에 나는 아주 실망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A수련생 집으로 가보았지만 여전히 없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나는 속으로 ‘사부님. 저는 도저히 방법이 없어 집으로 돌아갑니다’라고 말했다. 갔다왔다 이렇게 시달렸더니 진짜로 배가 좀 고팠다. 집에 와보니 8시가 다 되어갔다. 막 밥을 먹으려 할 때 초인종이 울려서 문을 열고 보니 할 말이 없었다. A수련생이었다. 나는 그에게 어떻게 알고 나를 찾아왔냐고 물었는데, 그는 모른다며 다른 일 때문에 왔다고 했다. 나는 반나절이나 시간낭비를 한 것을 후회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수련 중에는 우연한 일은 없다. 만약 그 몇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아마 수련생 A가 자발적으로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히 사부님께서 내가 이 일을 전가하지 않고 인내심 있게 열심히 책임지는 것을 보고 심성이 표준에 도달하자 이런 결과를 얻게 해주신 것일 것이다. 나로 말하면 중요한 것은 바로 이 과정이다. 보기에는 반나절이나 헛수고를 하고 아무런 수확이 없어 보이지만, 내가 책임을 다하고 노력했기에 사부님께서 고난속에 광명이 있다(柳暗花明又一村)는이 기쁨을 내려 주셨다.

자신이 책임진 정도가 일의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아래에 이 일에서 나는 진일보 깨달았다. 한 가지 구체적인 일에서 매 개인은 마치 쇠사슬의 개개 쇠고리와도 같아 한 사람의 작은 생각도 모두 서로 맞닿은 다른 고리에 긍정적 혹은 부정적인 영향을 줌으로서 일의 전체 국면에 연루된다.

말하자면 일은 역시 크지 않다. 하루는 법공부를 한 후 나는 자료점 수련생에게 다음날 주간 신문을 가서 가져오겠다고 했다. 그러나 다음날 나는 작은 책자를 다 배부하고 곧장 집으로 갔고 저녁에서야 생각났다. 나는 조금 피곤해 하룻밤인데 내일 다시 보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음은 불안했다. 가서 가져온다고 말해놓고 수련생은 온 하루 내가 오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내가 가지 않으면 신용을 잃는 것이다. 일을 하면 책임을 져야 한다. 잊어버린 자체가 과실이다. 지금도 보충할 수 있으니 가지 않으면 잘못에 잘못을 더하는 것이다. 가야한다. 그리하여 나는 수련생의 집으로 갔다.

나는 수련생이 나를 보자 마침 잘 왔다고 말할 줄은 몰랐다. 원래 프린터가 고장 났던 것이었다. 그녀들은 자료점을 세운지 얼마 되지 않아 다른 수련생들과 연락이 안 되었다. 내가 기술자 수련생 B에게 연락할 수 있기 때문에 속으로 기쁘게 생각했다. 방금 전에 조금만 게으름을 피웠다면 큰일을 지체할 뻔 했다.

나는 조급해하지 말라고 그녀들을 위로하고 B수련생을 찾으러 갔다. B수련생은 CD작업을 하고 있었다. 내가 찾아간 용무를 말했으나 그녀는 진짜로 피곤하다며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저쪽에서 조급하게 기다리는데 어떻게 내일까지 기다리지?’라고 생각했다. 다른 때 같으면 나는 곧 그녀에게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지적하면서 즉시 가서 처리할 것을 건의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나는 내가 수련생에게 어떻게 하라고 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수련생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와 내가 수련생을 어떻게 대하는 가는 모두 수련이다. 나는 속으로 B수련생을 이해해주었다. 나는 그녀가 진짜로 아주 피곤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할 때 내 마음은 평화로워졌다. 비록 마음으로 그녀가 꼭 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내 인식을 강요하지 않고 조용히 자료를 만드는 두 수련생이 아주 조급해하기에 가능한 빨리 가는 것이 좋겠다고만 말했다. 만약 너무 피곤해서 내일 가게 되면 수련하지 않는 수련생의 가족을 피하기 위해 언제 가면되는지 선의적으로 알려줬다.

나는 이 부정적인 소식을 자료를 만드는 수련생들에게 알리기 싫었기에 자료점에 가서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집으로 갔다.

집에 가서 자세히 생각하니 똑똑히 보였다. 내가 주간신문을 가져오는 것을 잊어버려서 일어난 모순, 내가 자료점에 갈 것인가 안 갈 것인가, 기계고장을 알 수 있는가 없는가, 문제를 제때에 해결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한 고리 한 고리씩 연계되어 있었다. 나는 내가 바로 앞의 고리인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마지막에 정념으로 자신을 구속했고 한 개 고리의 모순을 해결했다. 그러나 B수련생이 주요 작용을 일으키는 이 고리에 조금 유감이었다. 아마 내가 한 개 고리 앞마디에서 정념과 과정 중의 심태가 법에 부합되었기에 사부님께서 나의 지혜를 계발해주신 것일 것이다. 내 마음속에 또 B수련생을 가지(加持)하자는 정념이 생겼다. 그녀에게 정념이 있어야 정확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하여 속으로 묵묵히 B수련생에게 ‘가야 해요! 가요! 가요!’라고 말했다.

며칠이 지난 후 B를 다시 보았을 때 그녀는 나에게 그날 저녁에 가보니 큰 문제가 아니어서 그날 해결했다고 말했다. 나는 듣고 감개무량해졌다. ‘자신을 수련하고, 책임지며, 최선을 다하고, 정체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이렇게 미묘하게 연계되어 있구나’라고 느꼈다!

약간의 심득을 써서 여러 수련생들과 교류하려는 것이니 부적절한 곳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미국 서부법회 설법’

문장발표: 2015년 10월 19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0/19/31713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