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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은 자신의 원만을 위한 것인가?

-안으로 자신을 보다

글/ 해외 대법제자

[밍후이왕] 한번은 수련생이 나에게 물었다. “만약 수련이 자신을 원만하게 못한다면 당신은 오늘까지 견지했을까요?” 이렇게 묻자 나는 한참을 멍해져서 아무 말도 못했다.

나는 수련생의 물음에 나 자신을 돌이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 만약 수련해서 원만에 이르는 이런 일이 없다면, 특히 오늘도 사악한 공산당이 박해하는 십여 년 동안 나는 정말로 오늘까지 견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수련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사부님께서는 “수련의 최종 목적은 바로 득도ㆍ원만(圓滿)이다.”[1]라고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또 무엇을 위해 수련하겠는가? 아무튼 목적마저 없으면 안 되지 않는가? 원만을 위해 수련하는 이것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수련생은 왜 나에게 이런 문제를 물어봤을까? 꼭 우연한 것이 아닐 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자신을 돌이켜 보았다. 내가 원만에 집착했는가? 몇 년 전에 나는 자신이 근본 집착-원만에 집착 하는 교류 문장 한편을 썼다. 그렇다면 찾았다고 곧 제거한 것이겠는가? 보아하니 아마 당시 층차 중에서 제거했고 위로 수련하면서 또 집착이 생겼다. 여전히 진짜로 자세히 안으로 자신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조사정법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은 우리의 사명과 임무다. 그때 중생 구도 일에 열정이 있었기에 비록 두려운 마음이 있었지만 비교적 주동적으로 했거나 협조해서 했다. 그러나 왜 현재는 그렇게 높은 열정과 의욕이 없는가? 당시 동력은 중생 구도를 위한 것이 아니었는가?완전히 그런 것도 아니다. 내심 깊은 곳에 여전히 자신이 원만을 위한 것이 숨어 있었다. 아무튼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는 세 가지 일을 잘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일체가 모두 그 속에 있다.”[2]라고 말씀하셨다. 때문에 그때 기세등등하게 했다. 그러나 지금은 왜 열정이 없는가? 원만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몇 년 동안 적지 않게 했고 기본은 했으며 몸과 마음이 지칠 정도다. 그러나 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이 두려워서 마지못해 하거나 달갑지 않게 조금 했다. 혹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서 했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협조하려 하지 않았으며 여러 방면에서 태만했다.

그럼 원만을 자신이 수련하는 원동력으로 한다면 뿌리는 거기에 있기에 파지 않아도 이기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을 수련해야만 새 우주의 생명으로 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러나 자신은 구 우주 중에 생긴 생명이기에 속성은 이기적인 것이기 때문에 문제를 생각할 때 늘 자신을 위해 생각하거나 혹은 표면적으로 타인을 위하고 배후에는 자신을 위하는 일면이 섞여 있다. 그러나 미래 우주의 생명은 공적인 것을 위하고 타인을 위하는 것이기에 이것은 수련 중에서 반드시 수련해내야 하는 경지다.

자신의 자비심이 부족하단 말만 하고, 일을 할 때 언제나 사적인 것을 위하는 마음이 포함되고 기점이 바르지 않았으며 마음이 순수하지 않은데 자비심이 어디에 있겠는가? 사부님께서는 “물론 개인의 원만이 제일위이며 당신이 원만에 이르지 못한다면 아무 것도 말할 것이 없다.”[3]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원만하지 못하면 우리의 중생들이 갈 곳이 없고 일체는 수포로 돌아간다. 그러나 한 부처, 대각자는 중생을 위해 일체를 버릴 수 있지만 자신이 무슨 일을 하든지 새 우주의 생명의 요구에 도달할 수 있는지 잘 생각해야 한다. 과거의 수련은 자신의 원만을 위한 것이었기에 산이나 절에 들어가서 고생하면서 수련하는 것을 통해 표준에 도달하는 자는 원만을 얻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우주가 정법하기에 사부님을 도와 중생구도 하는 사명과 책임이 아주 중대하다. 당연히 요구하는 표준도 더 높다. 세 가지 일을 하는 중에서 기점이 타인을 위하고 중생을 위하는 것이어야 한 일이 신성하고 효과가 있다.

수련생의 질문은 나로 하여금 자신의 수련 중의 빈틈을 보게 했다. 평소에 늘 자신이 괜찮게 수련했다고 생각했지만 일을 하는 중에 사심을 전부 다 제거하지는 못했다. 오직 자신의 이 마음을 잘 수련해야만 비로소 법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표준에 도달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일을 한다 해도 누락이 있게 된다. 우리의 수련은 직지인심(直指人心)이고 심성이 제고되어야만 비로소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구하는 사명과 책임을 더 잘할 수 있고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를 저버리지 않을 수 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 설법4-2003년 애틀랜타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날 설법’

문장발표: 2015년 10월 2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0/21/31790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