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베이징 대법제자
[밍후이왕] 문화대혁명 시기 반혁명분자의 누명을 쓴 아버지는 교도소에 수감되어 온 가족이연좌제에 걸려들었다. 아버지와 같은 직장에 있던 큰 오빠는 “잡귀신의 효자현손”으로 몰려비판당하며 그의 팔을 비틀어 끊어버리면서 투쟁적 분위기로 몰아갔고, 둘째 오빠는 우수한 성적으로 칭화(淸華) 대학에 합격했지만 입학을 취소당했으며, 셋째 오빠는 고등학교도 다니지 못하게 했고, 언니와 나도 중학교에서 쫓겨났으며, 심지어 초등학교 4학년인 남동생도 학교에서 쫒겨났고, 막내여동생도 유치원에서 받아주지 않았다. 그 후 온 가족은 호구등록이 말소당해 생활기반을 완전히 빼앗긴 채 허베이 시골로 추방됐다. 우리가족은 10년간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온갖 고난과 고초를 겪었으므로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을 살았다.우리가족은 그런 역경 속에서 오직 대자 대비한 관음보살에게 ‘고통을 덜어주고 어려움을 해결해 달라’고 빌고, 또 조상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앞길에 희망이 있게 해 달라’고 빌며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고난 속에서 생활했다. 아버지가 누명을 벗을 때까지의 10여 년이 되는 재난 속에서 온 가족은 모두 각 종 질병의 시달림을 당해야만 했다.
1993년은 우리 가족에게 큰 변화를 가져다준 해였다. 모든 것이 새롭게 나타났는데, 지금까지의 관념이 모두 전변되는 놀라움 속에서, ‘참으로 생명은 이렇게도 신기하다’는 것을 체험하게 됐는데, 그것은 하나의 천지개벽을 이룬 것이었다.
큰오빠 일가의 큰 변화
조상대대로 부처를 믿었으므로 부모도 불문의 신앙심으로 선악유보(善惡有報)를 믿었기 때문에 정직하고 착실하게 살면서 그렇게 우리 자식들을 교육하며 키웠다. 그런데 큰 올케만은 달랐다. 그녀는 온 가족에게 생트집을 부리며 늘 다투고 싸우려고 해서 가족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당시 우리 집은 ‘흑오류(黑五類-출신성분이 나쁜 지주·부자·반혁명분자·범죄자·우파분자)’로 낙인찍혀 있었으므로 정치적으로 멸시를 받고 있는 집안이었기 때문에 누구도 그런 집안과는 통혼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큰 올케 같은 여자가 오빠와 결혼한다는 것은보기 드문 사건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큰 올케가 제멋대로 행패를 부려도 가족들은 치미는 분노를 참으며 감히 대꾸를 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그렇지만 큰 올케에게는 신체적으로 큰 문제가 있었다. 갑상선기능 항진증을 10여 년간 앓고 있으면서도 낫지 않았는데, 1993에는 눈알이 금붕어처럼 튀어나올 정도로 심해졌다. 그런데다 목 안에 큰 혹이 생겨 매우 굵어진 목 때문에 거동조차 불편했다. 그 10년 동안 중의와 양의를 바꿔가며 좋다는 약을 다 써봤지만 아무런 효험을 보지 못했다. 큰올케는 할 수 없이 당시 중국에 열풍이 일던 무슨 기공인가를 배웠지만 1, 2년을 배웠어도 전혀 효과를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늘 ‘남이 자신의 기(氣)를 빼앗아 갈지도 모른다.’는 걱정만 하게 됐다. 어느 날 올케가 함께 기공을 배우는 지방간 말기 환자에게 “다른 좋은 기공이 있다면 배우고 싶다.”라고 말을 하자, 그가 “공원에 파룬궁(法輪功)을 연마하는 사람이 있는데,그게 어떤지 모르겠네요?”, “내가 먼저 가서 그 파룬궁을 배워볼게요. 만약 좋으면 함께 배워요.”라고 말했다. 한 달 후 그 사람이 큰올케를 찾아왔는데 얼굴혈색이 매우 좋아졌다. 그는 올케에게 “파룬궁은 참으로 좋다. 함께 연마하자!”라고 했다. 그러나 올케는 또 헛소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남편에게 먼저 가서 배워보라고 권했다. 그러자 큰오빠가 그러겠다고 대답했는데, 당시 큰오빠 역시 메니에르병(난치성 어지럼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던 터라 온갖 치료에도 낫지 않아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하다.”라고 푸념을 하고 있었을 때였다.“내가 죽는다고 한들 두려울 게 뭐람!”하면서 시험 삼아 먼저 파룬궁을 배운 것이다.
큰오빠가 파룬궁을 배우면서 나타난 현상은 상상을 초월 했다. 파룬궁수련에서 메니에르병 같은 건 참으로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다. 수련을 시작하자마자 즉시 나았을 뿐만 아니라,우리 온 가족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준 계기가 됐던 것이다. 특히 파룬궁을 연마한 큰 올케의 병세도 뚜렷한 호전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생트집을 잡으며 행패를 부렸던 성질도 없어져서 대가족 모두가 화목한 가정으로 변했다. 당시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참으로 큰 감동을 받았다.
어느 날 큰 올케와 함께 쇼핑을 하러 가던 중에, 올케가 갑자기 목구멍이 간지러워 참지 못하겠다며 기침을 하다가 입을 벌린 채 다물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 목구멍에서 까지 않은땅콩만한 근육덩어리가 튀어나와 땅 바닥에 떨어져 한번 튕겼나갔다가 다시 떨어져 1미터밖으로 굴러갔다. 올케가 그걸 발로 짓밟았다가 다시 그걸 주워 병원으로 가져가 분석을 해봤는데, 목 안에 있던 혹이라고 했다. 정말 기적이었다. 목 안에 있던 종양이 기침으로 튀어나왔다니 기적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그 후부터 올케의 갑상선기능 항진증은 깨끗이 사라졌다.
큰오빠네 아들딸도 부모의 큰 변화를 보고 모두 파룬궁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수련하기 전에 큰 조카는 동창생과 타투다가 고막이 터져 소리를 잘 들을 수 없었는데, 1993년 베이징 동방건강박람회에 갔다가,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께서 직접 치료를 해주셔서 완전히 낫는혜택을 받기도 했다. 그들 두 아이는 파룬궁을 연마하면서부터 철이 들고, 학업성적도 우수했는데, 후에 큰딸은 유명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엄마의 곱사등이 펴져 천리 길 사부님을 따라 다녔다
1994년 1월 큰오빠와 올케가 싫다는 엄마를 억지로 데리고 가 톈진(天津)에서 개최된 첫 파룬궁 학습반에 참가했다. 그때 엄마의 나이는 73세였는데, 몇 십 년간 고된 노동과 병고에 시달리다가 90도 곱사등이 됐다. 허리를 펴거나 굽힐 수도 없고, 목조차도 숙이거나 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온갖 질병으로 시달렸지만 어떤 약도 효험을 보지 못했다. 그러므로 신고 있는 신발조차도 너무 무거워 감당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러 이미 삶에 대한 절망감에 빠져 있어서, 자신의 몸 상태가 좋아질 수 있다는 그런 기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아예 믿지 않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엄마는 아들과 며느리의 성화를 끝까지 외면할 수 없다는 생각에 억지로 학습반에끌려갔던 것이다. 리훙쯔(李洪志) 선생님이 강단에서 설법하셨지만 귀가 들리지 않는 엄마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 참으로 안타까워했다. 그때 사부님께서 “어떤 사람은 들리지 않는데 지금 바로 들리게 하겠어요.”라고 말씀하셨다. 엄마는 즉시 사부님 말씀이 들렸다. 그 후부터 잘 들렸다. 사부님 말씀을 들을수록 옳다는 생각이 들었고, 들을수록 듣기가 좋았다.그런데 설법을 듣는 순간 갑자기 키가 커진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엄마가 큰오빠에게 “내 키가 커지지 않았냐?”라고 물었다. 오빠가 보니 놀라운 현상이었다. 그래서 오빠가 “엄마의 키가커진 것이 아이라, 굽은 허리가 펴졌어요.”라고 했다. 엄마는 믿기지 않아 옆에 있는 낯선 사람에게도 물었다. “내 키가 커진 게 아니에요?” 그 낯선 사람 역시 오빠와 똑 같은 대답을 했다. 그제야 엄마는 허리가 펴졌다는 것을 믿었다! 엄마는 또한 순식간에젊어진 것 같았는데, 30대로 돌아간 것처럼 온몸이 가벼웠다. 난생 처음 몸에 아무런 병도 없는 그런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는 학습이 끝난 후 남의 부축도 없이 혼자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 후 다시는 누구의 부축도 받지 않게 되었다. 엄마가 혼자 집에 돌아와 기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을 때, 큰 올케가 집 마당으로 들어오면서 엄마를 보고 말했다. “학습이 끝난 후 어머니를 찾으려고 여기저기를 둘러보면서 곱사등만을 찾다가 없어서 집으로 달려왔는데, 어머니 혼자서 집에 오셨어요? …… 아! 허리는 어떻게 펴졌어요?!”라고 큰소리로 놀라 외쳤다.
엄마는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하얀 머리카락이 점차 검게 변했다. 엄마는 그 후 두 번 더 학습반에 참가했다. 먼 장춘에서 학습반이 열린 때는 열차 좌석표를 사지 못해 입석 표를 사서 바닥에 앉아서 다녀왔는데, 엄마가 학습반에 다녀온 얘기를 하면서, 학습반 관계자들이“이렇게 연세가 많은 분인데… 이 먼 장춘까지 온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라고 놀라워했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학습반에 참가한 사람들이 모두 학습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사부님을 뵙고 싶어 사부님께서 오시는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언제나처럼 한쪽 옆으로 비켜서서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사부님께서는 언제나 순식간에 바로 엄마 앞에 나타나셔서 한 손으로 입장하시며 “우리 모든 것은 인연으로 맺어진 것이에요.”라고 하셨다고 감동스럽게 말했다. 또 엄마는, 예쁘게 생긴 여자 기자들이 서로 앞다투며 리 선생님께 달려가 팔을 꼈을 때도 여기자가 기분상하지 않게 아주 자연스럽게 만류하시면서 낀 팔을 빼시는 모습을 보고 매우 감탄했다고 했다. ‘이 분은 매우 정직하다. 이후부터 이분을 사부님으로 확신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70대의 엄마는 수련한 후 회춘을 했는데 건강하고 정신도 맑아졌다. 엄마의 기적적인 변화의 모습은 주위 사람들을 모두 놀라게 했다. 가족은 물론 이웃과 고향 사람들도 모두 “기적”이라며 찬탄을 금치 못했다. 그러므로 ‘파룬궁은 참으로 좋고, 파룬궁 사부님은 참으로 대단하시다.’라고 모두 생각하게 됐다.
언니도 구제받고 깨닫고 법을 얻다
남동생은 엄마의 신기한 변화를 보고 몇 번 연공동작을 따라 했는데 즉시 아랫배에 파룬이 돌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는 후에 내게 “파룬은 어떤 모양이다.”라고 그림으로 그려가며설명하면서 알려줬다. 당시 나와 언니는 질병에 시달리고 있었으므로, 우리에게 “빨리 파룬궁을 연마하라!”고 권했다.
1976년 탕산(唐山) 대지진은 둘째 오빠와 막내 여동생의 목숨을 앗아갔다. 언니는 비록 대지진의 생존자이었지만 제23번 요추 복잡골절상, 골반골절, 치골골절과 우측 다리 근육 위축 등등으로 완전한 불구가 됐다. 그는 18년 동안 대변의 배설 기능을 잃은 상태였고, 심한 뇌진탕 후유증과 심장병으로 상태가 심했는데, 심장박동이 느린데다가 간헐적이었다. 그 상태만으로도 매우 고통스러웠는데 질암에까지 걸려 살아날 가망이 없었다. 언니는 사진을 찍어놓고 유서도 써놓은 후, 자신의 딸은 내게 맡긴 채 고통 속에서 세상을 떠날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족의 기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남동생이 그런 언니에게 “파룬궁 연공”을 하라고 권했을 때, “곧 죽을 사람인데 무슨 연공이냐?”라며 언니는 절망감으로 말조차 들으려 하지 않았다. 가족들이 파룬궁의 연공을 가르쳐주는 동영상만을 보여줬다. 언니는 그 연공의 동영상을 보았다. 그 후 병원 검진 예약시간에 맞춰 병원에 가서 질암 검사를 했는데, 의사가 놀라면서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종양이 없어졌어요?!”라고 말했다. 언니는 반신반의하면서 그 병원을 나와 또 다른 병원 두 곳에 가서 검사해 봤지만, 결과는 똑같이 “질에 암 종양이 없다.”였다. 만약 자신이 직접 자신의 몸에서 겪은 일이 아니라면 누가 믿을 수 있는 일이겠는가? 단지 파룬궁 연공동작을 가르쳐주는 동영상을 봤을 뿐인데 종양이 사라졌다니! 언니는 그때부터 희망을 찾아 ‘전법륜(轉法輪)’ 책을 읽고 수련하기 시작했다.
1994년 3월 언니와 남동생은 함께 스자좡에서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이 개설한 학습반에 참가했다. 언니가 학습반에서 法輪樁法(파룬좡파)의 포륜(抱輪) 동작을 할 때 두 팔 사이에 매우 굵고 큰 기둥의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사부님께 “한순간 내 양팔 사이에서 기둥 같은 게 보였는데 그게 뭡니까?”라고 묻자, 사부님께서는 “그것이 바로 기둥 모양의 파룬이라”고 알려주셨다……
언니는 파룬따파(法輪大法)의 법리에 탄복했다. 그래서 사람의 됨됨이는 어떠해야한다는 그 진정한 표준을 알게 되어 끊임없이 심성을 제고시켰다. 언니는 학습반을 수료한 후, ‘질병은 사람이 생생세세 나쁜 일을 했거나, 남을 괴롭혔거나 해서 조성된 업력 때문이라는 것, 그리고 그 업력은 당연히 스스로 감당하고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약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한 후 대변소통을 위한 병원 약을 전부 아래층 쓰레기통에 버렸다. 지나온 18년 동안 그 약이 없으면 배변할 수 없었던 그 약을 전부 버린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배변은 완전한 정상인처럼 순조로웠다. 18년 동안 상실됐던 기능이 순간에회복된 것이다. 언니는 갑자기 알게 됐다. ‘원래 이런 것이 바로 깨달음이로구나! 정말로 일념지차 즉 한 생각의 차이로 완전히 전변될 수 있다’는 것을 크게 깨달았다. 그리고 지독한 근시안 안경도 벗어버리자 금방 시력도 정상적으로 회복됐다.
언니는 그 후 잇따라 두 개 학습반에 참가했다. 반년 간의 수련을 통해 온몸의 질병은 온데 간데없이 사라져 완전히 건강을 회복했다. 온몸은 가볍고 발걸음은 상쾌했다. 사부님과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언니에게 두 번째 생명을 줬을 뿐만 아니라 ‘장애인증’을 찢어버리게 해주셨다. 언니는 목숨을 구해주신 사부님께 어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몰랐다. 생각하다가 감사의 뜻으로 파룬궁(法輪功) 관계자 소재지로 500위안(약 9만원)을 기부금 형식으로 송금했는데,며칠 후 환불 명세서를 받았다. 전달된 메시지에 “매우 감사합니다! 파룬궁은 사심 없이 사람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 재난에서 구해주지만 무슨 대가나 기부를 받지 않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온 가족은 말없이 숙연해졌다.
더욱 신기한 일이 발생했다. 언니는 어릴 적부터 소아마비의 후유증 때문에베이징 지수이탄(積水) 병원에서 오른쪽 다리에 대수술했는데, 수술은 다리 좌우의 근육을 앞쪽으로 이식했으므로 지금까지 다리를 좌우로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제5장 공법을 할 때는 양다리를 교차해서 결가부좌를 해야 하는데 그 동작은 상식적으로 볼 때 불가능한 일이었다.그러나 언니는 고난 속에서 노력한 결과 매우 빨리 결가부좌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얼마 후부터는 1시간 이상씩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감각이 없던 오른쪽 다리에 감각이 살아나면서 완전히 정상적으로 회복됐다. 언니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가 어려서부터 소아마비 증세로 제대로 걷지 못하던 장애자였다는 것을 전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
간난신고 끝에 무지개가 뜨다
나는 가족들의 신기한 변화를 직접 보고도 파룬궁을 수련해보겠다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온 가족들이 모두 나에게 파룬궁을 배우라고 권했지만 나는 고집불통이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고 “가족 중에 혼자만 고집을 부리며 속인의 어리석음에 푹 빠져있어서 아무리 수련을 권해도 소용없으니,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 가족 중에 고집불통인 사람은 나 말고 또 한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셋째 오빠였다. 셋째 오빠는 소위 정토종교라는 걸 연마하는 거사인데 그걸 붙잡고 믿은 지가 꽤 오래됐다. 그 역시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여 자신이 믿고 찾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직장의 지배인이 공금을 횡령하기 위해 나에게 “가짜 장부를 만들라.”라고 지시했을 때, 내가 솔직한 말로 거절했다. 그러자 그는 나의 뺨을 두 번이나 때렸다. 격분한 나는 그동안 생활하면서 오랫동안 쌓여온 모든 모욕과 불만이 마음 한곳으로 모이면서 불행한 감정에 휩싸이게 됐다. 그래서 지배인을 향한 극도의 분노가 폭발했다. ‘나는 죽어도 좋다!싸워야한다. 딸을 위해서라도 오늘 여기서 죽더라도 있는 힘을 다해 싸우자!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비리를 저지른 자들을 모두 죽일 것이다. 하나를 죽이면 본전이고, 둘을 죽이면 버는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소리를 지르며 감정이 폭발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자동차 부품들을 하나하나 집어 들어 지배인을 향해 힘껏 던졌다. 그 무쇠 덩어리 중에 한 개라도 정통으로맞는다면 그는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탁자도 들어 지배인을 향해 힘껏 내던졌다…… 갑자기 감정을 폭발시켜 죽기 살기로 덤벼드는 내 모습에 당황한 지배인은 머리를 감싼 채 쥐새끼처럼 도망갈 구멍을 찾지 못하고 허둥거렸다. 지배인의 생명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려는 바로 그 순간에 나의 목뼈가 삐끗하면서 갑자기 앞이 캄캄하고 하늘이 빙빙 돌았다. 이어서 구토가 일면서 모든 걸 토하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쓴 담즙을 토했고, 이어서 피를 토하면서 모든 오장육부가 전부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실신해 바닥에 쓰러졌다. 온몸은 토사물을 뒤집어썼으며 온 바닥에는 토사물이 흘렀다. 경추의 발작이 올 때는 혈압은 저혈압증세로 70에서 45를 오르내렸는데 어떤 때는 더욱 내려가기도 했다. 직장 동료들은 내가 실신해 움직이지 못하는 틈을 타 재빨리 끈으로 나를 테이블 다리에 묶어 놓았다. 그들은 묶어 놓은 다음 내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는 즉시 현장을 떠났다.
그런 상태에서 시간은 아주 많이 흘렀다. 날이 어두컴컴해졌다. 나는 실신에서 깨어나 호흡을 가다듬기 시작했고, 몸을 움직여서 끈을 풀었다. 아까 죽기 살기 식으로 난동을 부렸기때문에 전신이 아프고 힘이 빠져서 걷기조차 힘들었다. 간신히 정문 밖으로 기어서 나왔을 때 마침 택시 한 대가 있어서 그걸 타고 친정집으로 갔다. 그런데 집안에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혼자 침대에 누워서 생각했다. ‘죽자니 부모와 딸이 걱정되고, 살자니 직장의 비리 상사들과 한 패거리가 되어야 하는 데 어찌할 것인가?’ 이런저런 생각으로 엎치락뒤치락하며 저녁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게 죽어야 할지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면서 고통스러워할 때 큰 올케가 나를 부르며 “어머니가 곧 돌아오실 거니 함께 식사준비를 하자고 했다. 온몸이 쑤시고 아파서 “엄마가 집으로 오는데 나까지 함께 식사준비를 할 게 뭐냐?”라고 묻자, 올케는 많은 손님이 엄마와 함께 온다고 했다. 그들은 전국에서 펼쳐지고 있는 정의로운 활동에 함께 용감하게 뛰어든 사람들을 위해 기금조성을 위한파룬궁 보고대회를 베이징 공안대학 강당에서 개최하는 데 그 일로 손님들이 온다고 말했다.
나는 올케의 말을 듣자마자 몸이 아픈 것을 생각할 여지도 없이 곧바로 일어나서 올케를 향해 “나도 그곳에 갈래요!”라고 말했다. 올케는 입장권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큰 올케의 입장권을 달라고 했지만, 줄 수 없다고 했다. 그전 같았으면 안 된다면 그만이었을 텐데, 나는계속해서 입장권 달라고 졸랐고, 안 되면 어떻게 해서라도 그 입장권을 구해달라고 거듭 빌다시피 애원했다. 그러자 올케는 “위독한 암 환자가 있는데, 만약 그가 가지 않을지도 모르니 알아볼게요.”라고 했다.
이튿날 아침 올케는 내게 입장권을 건네주면서 “하나만 약속을 해요. 반신불수 환자 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을 꼭 책임지고 돌봐줘야 해요.” 하면서 신신당부를 했다. 그 환자도참석하려고 하는데 혼자서는 현관에서조차 나오지 못할 정도로 거동이 불편하므로 누가 옆에서 꼭 부축해줘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러겠다고 쾌히 승낙했다. 이상하게도 입장권을 받자 온몸의 아픔이 다소 사라지는 것 같았다. 문을 나서서 밖으로 나갔는데, 어찌 된 일인지 나에게 부축을 받아야 현관을 나올 수 있다고 했던 그 환자가 벌써 버스정류장에서 혼자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그녀는 “흥분이 되어 혼자 집을 나와 걸어왔다.”라고 했다. 우리는 서로 “정말 참으로 신기해요!”라고 말했다.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빠른 발걸음으로 공안대학 강당으로 달려가 얼른 입장했다.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께서 강단에 오르시는 것을 보자 온몸의 아픔은 즉시 사라졌다. 그런데 초면인 사부님을 어디에서 꼭 본 적이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사부님의 설법은 들을수록듣기가 좋았다. 그러나 설법을 들으면서 생각이 난 것은 ‘어디 이 분을 기공사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신이 사람을 구도하러 온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이 귀중한 법을 너무 늦게 얻게 됐다.’고 크게 후회하는 마음도 생겼다. 그러면서 몹시 조급한 마음이 일면서 ‘나를 떨어뜨리고 받아주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생겼다. 보고회 중에 사부님께서 손을 휙 휘두르시자 내 몸에서 무슨 물건이 떨어져 나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후로부터 나의 고질이었던 경추 병은 다시는 발작을 일으키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65,000위안(약 1,150만 원)이 넘는 보고회 수입금 전부를 ‘정의로운 일을 보고 용감하게 뛰어드는 기금회’에 기부하셨다. 사부님께서 이렇게 대비 대자 하신 것을 보고 엄마와 나는 각자 100위안(약 18,000원)을 기금회에 기부했는데 엄마는 회의장에서 기자와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나는 보고회에서 돌아온 후 다음 학습반에도 참가하겠다는 결심을 한 후 어서 학습반이 개설되기만을 학수고대했다. 그래서 “언제 학습반이 열리느냐?고 수련생을 만나기만 하면 물어봤다. 수련생은 ”5월 정저우에서 개최되는 학습반은 시간문제로 안 되고, 6월 지난에서 열리는 두 번째 학습반에는 참가할 수 있다.“라고 알려줬다. 내가 그렇게 학습반 참가를 조급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을 본 엄마는, 기쁜 나머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튿날 아침 일찍 큰 올케를 따라 공원으로 갔다. 올케는 “우리가 여기에 서서 연공하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저렇게 보고 따라서 해보라”고 했다. 나는 눈을 감았는데도 공원 연공장위에 온통 오색찬란한 파룬이 곳곳에서 돌고 있는 게 보였다. 제4장 공법의 “기(機)를 따라 아래로 내려간다.”라고 할 때는 연보라색 파룬이 보였고, “등 뒤에서 위로 끌어 올린다.”라고 할 때는 황금색 파룬이 보였다. 포륜동작을 할 때는 왼쪽 다섯 손가락 끝에서부터 시작해 모든 손가락에서 작은 파룬이 돌고 있었고, 팔과 허리부터 종아리까지 한 줄기 파룬이 끊임없이 돌면서 신체를 조절해주고 있는 것을 봤다. 예전에 나에게는 반신마비 증세가 있었는데 당시누군가가 “그건 반신불수의 징조”라고 말해준 적이 있었다.
제5장 공법을 연마할 때는 결가부좌를 해야 했지만, 나는 반가부좌도 안 되어 양쪽 무릎이 높게 위로 들려진 채 2분도 견지할 수가 없었다. 고통을 참으며 다만 몇 분이라도 참아보려고 하자, 다리의 통증도 통증이었지만 머릿속이 난잡해져서 어떻게 해도 안정을 취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나를 보고 한 수련생이 “마음속으로 사부님의 이름을 불러보라.”라고 했다. 그래서 사부님 존함을 불렀는데, ‘사부님께서는 신으로 인간 세상에 내려오셔서 사람을 구하는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직접 존함을 부르면 예의에 어긋난다는 생각에서 “리훙쯔(李洪志) 선생님”하고 불렀다. 그러자 연공복을 입고 연꽃 위에 앉으신 사부님께서 하늘에서 날아 내려오셔서, 神通加持法(선퉁쟈츠파)의 수인을 가르쳐주셨다. 다시 마음속으로 두 번 존함을 부르자, 조금 전보다 두 배 정도 작은 모습의 사부님께서 내 좌측으로 역시 연공복을 입으시고 연꽃 위에 앉아서 내려오셔서 또 다른 수인을 가르쳐주셨다. 또 한 번 존함을 부르자, 이번엔 연공복을 입으신 사부님께서 내 오른쪽에 서 계셨는데 매우 몸체가 크셔서 사부님의 얼굴을 반 정도밖에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내 머릿속은 몇 초 동안 조용해졌다가 또다시 난잡해졌다. 아직은 제5장 공법의 수인을 할 줄 몰랐으므로 잠시 사부님께서는 동작은 가르쳐주시긴 했지만 쉽게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머릿속 역시 조용하지 못했고 여전히 허튼 생각만 했다.
수련을 시작한 일주일 내내 잠이 많았다. 밥을 먹을 때 음식을 입 안에 넣다가도 잠이 들 때가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줄곧 신체를 조절해주셨다. 심한 두통, 빠른 심장박동, 위장병, 치질, 습관성 변비증 등등이 좋아졌으며, 어릴 적부터 무좀으로 고생하며 치료했지만, 지금까지 낫지 못했었는데 그 무좀까지 말끔히 사라졌다.
지난(濟南) 학습반에서의 신기한 체험
셋째 오빠는 파룬궁을 가장 완고하게 반대했지만, 파룬궁수련을 거부했던 나까지도 수련을 하게 된 것을 본데다가 큰오빠의 거듭된 설득을 받게 되자, 그럼 한번 시험 삼아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우리와 함께 지난에서 열리는 학습반에 참석했다. 1994년 6월 나와 큰오빠, 셋째 오빠가 함께 열차를 타고 지난에 갔는데, 나는 싫다는 동창까지 억지로 데려가서 모두 함께 지난의 제2회 파룬궁 학습반에 참가했다.
나는 학습반에서 사부님의 설법을 듣고 나서야 “사람은 왜 고생하며,왜 재난을 당하는가? 사람은 왜 병이 생기는가?”를 알게 됐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엄마에게 받은 교육이 있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쁜 일을 해서는 안 된다.”,“누구도 보지 않는 곳에서 나쁜 일을 했으니 아무도 모를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 하늘의 신들은 다 보고 있다.”, “누가 좋은 일을 했건 또 나쁜 짓을 저질렀던지 간에 모두 신의 눈을 피할 수 없다.”라고 교육했다. 나는 사부님의 설법을 듣고 나서 어떤 신이 우리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는지를 알게 됐다. 원래 표준은 바로 우주 특성의 ‘진선인(眞善忍)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그 표준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며, 여러 사람과 만물을 제약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러므로 선한 일을 하면 선한 보답이 있고, 악한 짓을 하면 업보를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므로, 나는 끝까지 대법을 연마하겠다고 결심했다.
학습반이 시작될 때 셋째 오빠는 그가 연마했던 그 법문의 방식대로 결인 자세를 하고 앉아서 눈을 감고 사존의 설법을 들었다. 그가 아직은 파룬파를 수련하겠다는 결심을 못 한 때였다. 그때 사존께서 “한 거사가 왔는데, 한번 들어보겠다는 생각으로 왔다면, 그럼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라고 말씀을 하셨고, 이어서 “지금은 전문적으로 뭘 수련한다고 하는 사람이나 화상도 스스로 구도할 수 없는데, 하물며 당신은 한 사람일 뿐인데 …… ” 라고 말씀하셨다. 셋째 오빠가 깜짝 놀라서 눈을 떴다. 그리고 잠시 뒤 파룬따파의 결인 자세로 수인을 바로잡은 다음 사부님의 설법을 열심히 들었다. 수업이 끝날 때쯤 셋째 오빠에게 “어떠냐?”고 물었다. 셋째 오빠는 미소를 지어 고개를 끄덕이며 “꼭 끝까지 수련해야겠어.”라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 100여 명의 거사가 셋째 오빠가 수련법문을 바꾸는 것을 반대했지만,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나는 학습반이 시작되기 전 언제나 미리 강당으로 가서 연공을 했다. 한번은 法輪樁法(파룬좡파)를 연마할 때 두 팔이 시큰하고 힘이 들어 벌벌 떨리면서 머릿속이 조용하지 않았다. ‘우리 지배인은 그렇게 나쁘고, 그런데 나는 연공을 하고 있다니 ……” 등등의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 사부님께서는 뜻밖에도 내가 생각했던 그런 걸 하나의 실례로 들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서는 내가 이란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아실까?’라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동창의 말이 “내가 그곳에 있을 때 사부님께서 내 뒤로 지나가셨다.”라고 했다. 같은 방을 쓰고 있는 노수련생은 “사부님께서는 다 아신다……”고 말했다.
공능의 신통과 좋고 나쁨의 일념
한번은 함께 하는 세 사람이 횡단보도를 지나가고 있는데 빨간 신호등으로 변하자, 노수련생이 생각 없이 내게 “차를 좀 멈추게 해줘요.”라고 했다. 금방 수련을 시작했으므로 나에겐 공능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무심코 “멈춰”라고 외쳤더니 달려오던 자동차가 즉시 멈췄다. 우연일 거라고 반신반의하면서 계속 걸어가며 “멈춰”라고 외쳤는데 연속해서 4대가 움직이지 못했다. 우리 셋은 이렇게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제서야 정말 내게도 공능이 생겼다는 것을 의식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속인 사회를 파괴하는 것이 아닌가? 맘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렇다면 큰일이다. 우리가 나쁜 짓을 했네.”라고 내가 말을 내뱉었지만 두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우리는 버스에 올라탔다. 달리던 버스 앞에 갑자기 오토바이가 버스 앞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버스 기사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런데 모든 버스 승객은 전부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우리만 다쳤다. 나는 사람에게 발등을 밟혀 발가락은 금방 새까맣게 변했고, 한 수련생은 가슴을 좌석에 세게 부딪혀 얼굴색이 창백해져 말조차 하지 못했고, 뒤에 있던 노수련생은 얼굴을 버스 천장을 향한 채 통로에 나둥그러져 있었는데 이마에는 달걀만 한 혹이 튀어나와 핏발이 새 나왔으며, 그녀가 들고 있던 보온병 안에서 불어터진 찻잎이 온통 얼굴에 쏟아져 뒤덮여 있었다. 그녀의 우스운 그 모습을 보고 크게 웃었다. 내가 그녀에게 “어떻게 넘어졌으면 얼굴은 천장을 향한 채 이마에 큰 혹이 생겼고, 피가 나려고 해요.”라고 묻자, 그녀는 즉시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고는 혹을 문지르면서 “빨리 차에서 내려요, 제가 잘못했네요. 그녀는 노수련생으로 두 명의 신 수련생을 데리고 가면서 나쁜 일을 하는 바람에 벌을 받았네.”라고 말했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렸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그 노수련생이 자신의 잘못을 승인하면서 혹을 문질렀는데 그렇게 큰 혹이 즉시 사라진 것이다. 우리 둘이 혹이 금방 없어졌다고 했는데도 그녀는 믿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온 후 사람을 보기만 하면 “내 이마가 어떻게 됐는지 좀 봐줘요?” 했다. 사람들로부터 모두 “괜찮다.”라는 말을 듣고서야 그녀는 믿었다. 그녀는 “다시는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라고 했다.
학습반이 끝나자마자 모두 시간 맞춰 열차를 타려고 급하게 서두르다 보니 많은 실수가 발생했다. 한 신 수련생은 여관 측의 오해로 떠나지 못하게 됐고, 역시 우리도 떠나지 못하게 됐다. 겨우 오해가 풀렸지만, 열차 시간이 촉박해 택시를 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택시를 잡을 수가 없었다. 내가 연속으로 5대의 택시를 세웠지만, 번번이 다른 사람에게 빼앗겼다. 나와 동창은 겨우 한 미니 버스에 비집고 올라탔는데 차에는 모두 노인들이었다. 역에 도착한 기사는 흙탕물 앞에 차를 세워놓고 우리에게 내리라고 한 후 가버렸다. 노인들의 가방까지 전부 우리 둘이 들고 가야 할 상황이었다. 가방을 목 앞뒤와 어깨, 팔에 모두 걸치고 또 한 손에도 가방을 들어 모두 7개의 큰 가방을 메고 들었을 뿐만 아니라 나머지 한 손은 동창과 함께 나무막대에 대여섯 개의 가방을 꿰들었다. 온몸은 땀으로 푹 젖었다. 비록 동창은 나보다 적게 들었어도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나무막대를 놓쳐버리는 바람에 들고 있던 크고 작은 가방이 전부 흙탕물에 떨어졌다. 우리 둘은 “큰일이네. 가방들이 모두 더러워졌네. 안의 물건이 어떻게 된 건 아닌지 모르겠네.”라고 걱정했다. 좀 숨을 돌린 후 겨우 역에 도착했지만, 우리를 기다렸던 사람들은 금방 물에서 건져낸 것 같은 가방을 보고는 “어떻게 된 거냐?”며 이상하게 생각하며 물었다. 열차에 승차한 후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가방을 봤는데 모든 가방이 다 깨끗했고, 흙도 묻어 있지 않았다. 정말로 신기한 일이었다.
지난의 학습반이 끝난 후 1994년 8월 운 좋게 또 하얼빈 페이츠(飛馳) 아이스하키 체육관에서 개최한 사존의 학습반에도 참가했다. 하얼빈 학습반에서 어떤 사람이 사부님께 “자신은 이전에 사부님을 뵌 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그렇다, 어떤 사람은 몇십 년 전부터 나를 본 적이 있어요.”라고 하셨다. 이 한마디 말씀이 내 기억을 열어주었다. 하얼빈 학습반에 참가하는 중에 사부님께서 공을 가지하시는 보고회에도 참가했는데 그때 사존의 설법을 들으면서 갑자기 ‘사존께서는 바로 내가 어릴 적에 본적이 있는 하늘처럼 큰 ‘하느님’이시라는 … 것을 기억하게 됐다.
문장발표: 2015년 9월 2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신수련생마당>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한 이야기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9/2/31441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