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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치성 자반증 알레르기인 아들이 건강을 회복하다

[밍후이왕] 나는 어려서부터 선천성 심장병으로 고생했다. 10여 세에 시립병원에서 검사했을 때 의사가 “몸이 너무 허약해서 당장 수술할 수가 없다. 일단 집에 돌아가 먼저 영양섭취로 기력을 회복하면서 병원비를 마련한 다음 수술받도록 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만약 수술하지 않으면 24세 이상을 살지 못한다.”는 경고성 진단결과를 말했다. 당시 의사의 말을 듣고 절망감에 빠졌다. 그때 부친은 월 30위안 정도밖에 벌지 못하는 어려운 형편인 데다가 가족은 7식구나 됐으며, 우리 형제들은 모두 학교에 다니고 있었으므로 내 수술비를 마련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부친은 집으로 돌아온 후 슬프게 울며 “얘야, 우리 집에 돈이 없는 것은 너도 잘 알지? 그러니 너의 병은 네 운명에 맡기자.”라고 내게 말했다. 나의 한 가닥 희망도 완전히 부서졌다. 나는 어린 나이에 인간 세상의 고통과 생명에 대한 절망감을 처절하게 느끼게 되었다.

나는 22세에 결혼했다. 정상적인 상황으로 보면 그런 병을 가진 몸으로는 결혼할 수 없다. 자신의 건강이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처지인데 어찌 결혼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나의 병은 다음 세대에 유전되는 병인 것이다. 당시 나는 ‘1~2년 후에 죽더라도 죽은 나를 처리해줄 곳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에 결혼한 것이다. 그러므로 결혼했어도 남편을 좋아하지도 않았으며, 그런 것 때문에 남편에 대해 죄책감 같은 것도 없었다. 그러나 대법을 수련하고 나서야 ‘당시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었는가?’를 알게 되었다.

결혼 1년 후 남자아기를 출산했다. 3일 후 의사는 신생아에 대해 ‘유전적인 선천성 심장병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일찍 죽게 될 것이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러자 시댁에서는 “집안에 선천성 심장 병력이 있는 사람도 없는데 어찌 된 일이냐?”며 놀라운 반응을 보였다. 나는 이미 그런 결과를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아픈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 생명이 꺼지는 마지막을 맞으면서 시댁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상심으로 서럽게 울었다. 그런 걱정 속에 산욕기까지 있어서 불면증으로 고통당해야만 했다. 그때 이미 죽음의 신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죽지 않고 살아날 운명이었다. 한 달 후 천행으로 파룬궁(法輪功)을 만나 수련하기 시작했다. 사부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관용하고, 시부모를 공경하고, 더는 남편을 업신여기지 말고 얕보지 말라.”고 하는 가르침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또 “이익 앞에서 다투거나 싸우지 말고 태연히 대하라”고 가르쳐주셨는데, 그 가르침으로부터 모든 것은 진실해야 하는 것과 또 마음에 거리낌이 없이 처신하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나는 시부모에게 나의 병력과 병세를 전부 말했다. 그러면서 그들을 안위시키기 위해 “지금 저에게는 치료할 약이 생겼어요. 그것은 바로 ‘전법륜(轉法輪)’이에요. 오직 이 보서를 잘 배워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심성표준에 도달하기만 하면 사부님께선 저를 구원해 주실 겁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이듬해 또 남자아이를 낳았다. 아들은 현재 선천성 심장병이나 그 외 어떤 병도 없이 매우 건강하다. 사부님께서 나의 생명을 구해 주셨으며, 동시에 또 아들 하나를 주셨다! 나는 지금 40세로 몸에 무슨 이상 증상도 없고 불편함도 없는 정상적인 상태다. 대법은 나에게 이미 17년의 생명을 연장해 주었다!

아들이 난치성 자반증 알레르기 병에 걸리다

내가 아들을 임신했을 때는 법을 얻은 지 2개월 남짓했다. 그러므로 아들은 나와 함께 법을 배우면서 컸다고 할 수 있다. 아들은 대법과 큰 인연이 있는데, 비록 평소 놀기를 좋아하고 꾀를 부렸지만, 사부님께서는 그래도 그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셨으며, 엄중한 병업의 재난에서 생명을 구해주셨다.

아들이 14세 되는 그해 섣달 그믐날 밤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소리치며 고통을 호소했는데 종아리에 붉은 반점이 생겼다. 그러나 나와 가족들은 ‘명절에 아무 음식이나 마구 먹어서 배가 아픈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초하루가 되자, 아들의 두 손목과 두 발목이 갑자기 탈구가 되어 움직이지 못한 채 침대에만 누워 있게 되었다. 그날 저녁 급히 현 소재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서는 ‘자반병(紫癜)’이라는 초기진단을 내렸다. 정월 초이튿날 새벽에 시립병원으로 이송했다. 그곳 병원에서 불치병인 자반성 알레르기라는 확진 판결을 내렸다.

병세가 매우 위중해졌다. 위장을 비롯한 내장에 전부 자반증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머리에까지 증세가 나타났다. 아들은 침대에 반듯하게 누운 채 움직이지 못하며 심한 복통으로 크게 소리 내어 울었는데, 손목 발목의 탈골로 운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이의 그런 모습에 내 맘도 찢어지는 듯 했고, 남편도 통곡하며 괴로워했다.

입원한 지 8일째가 되었지만, 병세는 더욱 악화하여 약의 양도 나날이 늘었다. 근본적으로 병세를 통제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들은 점차 잠시 잠깐씩 혼미상태에 빠져들었다. 깨어나면 나에게 “어머니, 나는 왜 늘 ‘흑백무상(黑白無常-죽음의 신)’과 두 번째 엄마(죽은 다음의 모친)가 생각이 날까요?”라고 말했다. 나는 비통한 심정을 자제하며 “우리는 일체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말자. 너는 정성스럽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염해라.”고 말했고 아들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에게 이어폰을 꽂아주고 사부님의 설법을 듣게 했다. 좀 지나서 아들은 또 혼미상태에 빠졌다.

그런데 이튿날, 아들의 얼굴색은 기적처럼 좋아졌다. 그는 조용히 “어머니, 제가 조금 전에 무엇을 보았는지 맞춰보세요. 나는 사부님의 법신을 보았어요! 나는 병실에 파룬(法輪)이 도는 것을 보았어요! 어머니, 나는 퇴원하겠어요. 나는 돌아가서 대법을 잘 수련하겠어요.”라고 말했다. 남편은 이 기적을 직접 목격한 후 아이의 결정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병원에는 치료할 약이 없다. 그런데 대법 사부님께서 아들의 생명을 구해주셨기 때문이었다.

당시 주치의 등 병원 관계자들은 나중의 책임문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아들의 퇴원을 적극 반대했다. 결국, 우리가 완강한 태도를 보이며 “차후 환자의 어떤 결과에 대해서도 가족인 우리가 책임진다.”라는 각서를 제출한 후 입원 10일 만에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5일간은 약을 먹었지만, 아들은 결심을 내려 약을 모두 버렸고 매일 법 공부와 연공을 열심히 했다. 연공할 때 간혹 복통으로 울기도 했지만, 연공을 중단하지 않았다.

일주일 후 아들의 건강은 완전히 회복되었고 더는 복통도 없었다. 아들보다 병세가 심하지 않은 사람도 대개는 1년간 요양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아들은 약도 먹지 않고 병원 치료도 받지 않은 채 파룬궁 수련만으로 1개월 좀 지나서 스스로 걸어서 정상적으로 학교에 갔다. 더욱 신기한 것은 집에서 1개월 넘게 결석하다가 학교에 갔지만, 마침 시험을 보는 날이라 시험을 치렀는데 뜻밖에 성적이 상위권에 들은 것이다. 선생님과 학생들은 반농담조로 “이기적이다.”라고 했고, 또한 내막을 안 사람은 대법의 초상(超常)함을 알 수 있었다!

문장발표: 2015년 9월 2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신수련생마당>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한 이야기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9/21/31580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