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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문제를 생각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에야 나에게 아주 눈에 띄는 집착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문제를 생각하는 출발점이 아주 이기적’이라는 점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전에 다른 수련생에게 어디에 부족한 점이 있거나 또는 어느 방면의 집착심이 표현되어 나오면 늘 면전에서 농담하듯 생각 없이 말하곤 했다. “여보세요! 당신은 어디에 무슨 마음이 있어요”라고. 음성도 톤이 매우 높았다. 마치 수련생에게 받아들여야 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고쳐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 같았다. 다행인 것은 이로 인해 나와 갈등이 생긴 수련생은 없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때 나는 면전에서 사람을 질책하는 것과 같은 이런 불량한 행위를 ‘다른 수련생을 위해 책임지고, 이타심의 구현’인 것으로 착각했다. 내심 자신이 잘 수련했다고 만족해하고 자랑스러워하면서 몇 년이 지나도록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른 수련생의 상태에 큰 개변은 없었지만 오히려 최근 한동안 사람들은 서서히 나를 멀리 했다. 무슨 말이든 내 앞에서 하지 않을 뿐더러 눈빛과 표정에는 경계심과 방어의식이 있었다. 그제야 나는 궁금했다. ‘반드시 자신이 어딘가 잘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가족들에게 정성스레 빵을 만들어 주었는데 여러 가지 맛을 내기 위해 빵마다 다른 소를 넣었다. 어떤 것은 소금을 첨가하고 어떤 것은 파를 넣었으며 어떤 것은 설탕, 팥을 넣었다. 반나절 바삐 움직여 만들어낸 빵을 식탁에 놓았을 때 가족들은 보지도 않고 화를 냈다. “나는내가 만든 것을 먹고 싶을 뿐이에요,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순수한 빵이요.” 그리하여 나는 산책을 나갔고 그에게 스스로 만들게 했다. 그러자 그는 오히려 기뻐했고 나도 홀가분해졌다.

깨어난 후 깨달았다. 생명이 탄생된 경지와 층차가 각기 다르기에각 생명은 수련 중에서각종 방식과 표현이 있고 매 생명은 자신에게 적합한 수련의 길을 걷고 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는 것은 옳은 것이지만 자신이 보거나 깨달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해 납득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석가모니부처의 제자가 자신이 있는 층차에서 본 불법의 나타남으로 석가모니의 말을 해석하면서 석가모니의 원래 말을 하지 않은 것과 무슨 구별이 있는가? 행동은 마치 다른 수련생을 위한 것 같지만 실제는 자신의 생각으로 수련생을 교란하고 국한시키면서 그에게 자신에게 적합한 수련의 길을 가라고 격려하지 못했다.

나는무엇 때문에 오랫동안 잘못을 저지르면서 일찍이 발견하지 못했을까? 삶의 원칙에서 아직도 무엇이 있는가? 깊이 파보니 바로 그것이 줄곧 자아표현에 대한 집착을 자양(滋養)하고 줄곧 자신의 생각과 정서를 조종하고 있었다. 이때 돌연 깨달은 것은 ‘문제를 생각하는 출발점이 옳지 않았다’는 것이다. 원래 이전에 어떤 일에 부딪히든지 모두 자신의 각도에서 문제를 생각했는데 모두 나를 위한 것이고 이기적인 것으로서 다른 사람의 입장과 각도에서 문제를 생각하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가르치셨다. “당신들이 앞으로 일함에 먼저 남을 생각해야 하고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1]

일단 사상이 바로 잡히자 즉시 눈앞이 환해졌다. 이때 ‘동수(同修)’ 이 두 글자에 대해 더욱 깊고 넓은 이해가 있게 됐다. 성스러운 인연이고 존중이며 서로 고집하지 않는 것이다.

주)[1] 리훙쯔(李洪誌)사부님저작 : ’정진요지 – 불성무루(佛性無漏)‘

문장발표: 2015년 8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8/28/31476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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